우리는 눈을 뜨자마자 선택을 합니다. 오늘 아침에 신고 나온 연두색 양말은 녹색 구두를 신기 위해 선택했습니다. 녹색구두 신고 밖으로 나오면 경전철을 탈지, 걸어갈 것인지 선택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런 건 사소한 것들입니다. 어쩌다 잘못된 선택을 하더라도 이런 것들의 유효기간은 하루입니다. 하지만 신발이나 옷 같은 것을 선택할 때는 신중해야 합니다. 발에 맞지 않는 신발만큼 불편한 것도 없고 맘에 들지 않는 옷만큼 어색한 것도 없습니다. 이름처럼 오래가는 만년필의 경우는 그 선택이 더 중요합니다. 그럼 어떤 만년필을 선택해야 할까요? 다음 열거되는 10개의 만년필은 지난 120년간 시대별 명작입니다. 여기서 당시 시대정신을 읽고 현재에 적용해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1. 워터맨 스트레이터 홀더(1890년대)

	워터맨 스트레이터 홀더

실용적인 만년필의 역사는 1883년 워터맨 만년필부터 시작합니다. 워터맨이 구현(具顯) 한 것은 모세관 현상을 이용하여 뚜껑을 열자마자 바로 써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펜촉 아래쪽에 피드(잉크를 펜촉에 전달하는 부분)를 끼우는 언더피드와 반대로 펜촉 위쪽에 피드를 끼운 오버피드의 경쟁에서 승리하여, 펜촉이 위에 있어 아름다운 현대 만년필 모양의 기준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바로 써지는 실용성과 아름다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던 것입니다.

2. 워터맨 58(1910년대 중반) 

	워터맨 58

워터맨 58에서 5는 셀프필러(잉크를 넣을 수 있는 장치가 있는 만년필)를 뜻하고 8은 펜촉 호수를 말합니다. 플래그 십(flag ship)은 우리말로 바꾸면 기함(旗艦)인데 그 회사의 대표, 간판을 의미합니다. 이 58이 만년필 역사상 최초의 플래그 십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엄지손톱 만한 펜촉, 잡았을 때 성인 남자 손안에 당당하게 들어오는 느낌은 당대에 최고로 사랑받았습니다. 그리고 당시 경쟁사인 파커 보다 뚜껑과 몸통의 연결 부위 등이 훨씬 정교하고, 마무리가 좋았던 것도 꽤 중요한 포인트였습니다.  

3. 셰퍼 라이프 타임(1920년대)

	셰퍼 라이프 타임

라이프 타임이 나온 것은 1920년입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어떤 새로운 것을 원할 때 쉐퍼사에서 평생보증을 넣어 출시하였는데, 이것은 크게 성공하였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간과하면 안 되는 것은 이 만년필 또한 워터맨이나 파커에 비해 만듦새가 결코 떨어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사람들은 평생보증이 있다는 것만으로 펜을 사지 않기 때문입니다. 

4. 파커 듀오폴드 (1920년대)

	파커 듀오폴드

1921년에 나온 듀오폴드는 명실 공히 파커를 반석(盤石) 위에 올려놓은 만년필입니다. 1920년대 초반 파커는 워터맨, 월 애버샵, 셰퍼에 이어 4등이었습니다. 당시 파커는 방만했습니다. 400여 개의 모델을 생산하고 있고, 워터맨이나 셰퍼처럼 플래그 십이라고 내세울 만한 만년필이 없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듀오폴드가 회사가 노력 끝에 나온 것이 아니라, 한 영업사원의 건의로 기존 모델, 잭 나이프 세이프티 26을 가운데 부분만을 빨강으로 교체하여 내놓았던 것이 크게 성공한 것이었습니다. 여기에 25년 보증을 넣고, 잘 지은 이름인 듀오폴드가 성공의 일부분을 담당했지만, 뭐니 뭐니 해도 성공의 1등 공신은 잭 나이프 세이프티 26의 품질이었습니다.    

5. 셰퍼 밸런스(1929)

	셰퍼 밸런스

1929년은 여러모로 사건이 많은 해였습니다. 증시 폭락으로 시작된 대공황이 터졌고, 펠리칸사(社)가 만년필을 만들기 시작했고, 워터맨이 첫 플라스틱 만년필을 내놓았습니다. 그리고 만년필 역사에 중요한 전환점이기도 한 유선형 만년필의 시작인 쉐퍼 밸런스가 나왔습니다. 유선형이란 위와 아래가 점점 가늘어지는 형태로 어뢰형, 또는 시가형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유선형은 셰퍼 밸런스 만년필 전에는 없던 모양으로 이 시도는 성공했습니다. 바로 파커가 따라 했고, 좀 있다 월 애버샵이 따라 했습니다. 반복되는 생각과 답변입니다만, 새로운 모양만으로 셰퍼 밸런스가 성공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밸런스 역시 좋은 품질을 바탕으로 깔고 있었습니다. - 나머지 5개는 2부로 이어집니다. 

다음 달이면 우리도 중요한 선택을 하게 됩니다. 시대정신에 맞는 사람을 뽑아야 하겠지요. 하지만 시대정신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건 그 사람의 성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