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한국 사회를 집어삼키고 있는 진영 대결이 최근 스크린에까지 번진 모양새입니다. 2월 1일 개봉한 김덕영 감독의 <건국전쟁>은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에 대한 무지와 오해로 가득 찬 한국 사회에 이승만 바로 알기, 역사 바로잡기를 하겠다는 감독의 확고한 목적하에 제작된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다큐멘터리 영화치고는 흥행에 제법 성공하여 영화진흥위원회 통계에 따르면 <건국전쟁>은 3월 12일 기준 누적 관객 114만 명을 기록했습니다. 지금은 다소 순위가 떨어지기는 했으나 아직까지 일별 관람 순위 6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반면 2월 22일 개봉하여 단 10일 만에 500만 관객을 돌파한 장재현 감독의 영화 <파묘>는 미스터리, 스릴러, 오컬트(Occult-심령학) 장르의 영화입니다. 3월 12일에 이미 817만 명을 넘어섰는데, 이는 오컬트 영화로는 이례적인 흥행 성공이라고 합니다. 영화는 어느 부호의 의뢰로 무속인이 이 집안의 모든 화근이 조상의 묫자리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아차린 뒤, 풍수사와 장의사, 무속인이 그의 조부의 묘를 이장하면서 생기는 기이한 일들을 그리고 있습니다. 한국의 풍수, 음양오행과 굿 같은 민속 신앙과 친일파 할아버지, 일제의 쇠말뚝 같은 역사가 버무려져 있는 영화입니다. 또한 이 영화에는 적잖은 항일 코드가 숨겨져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영화 속 차량 번호판이 0301, 1945, 0815 등 3.1 운동과 1945년 해방을 유추할 수 있는 숫자들이고, 풍수가 김상덕, 무속인 이화림과 윤봉길, 장의사 고영근 등 주요 등장인물의 이름은 대부분 독립운동가 이름에서 가져왔습니다. 

이 두 영화의 감독들은 자신의 영화에 자신의 정치 이념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건 너무 자연스런 현상 아닐까요? 영화감독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창작자들의 시각은 편향적입니다. 아니 창작자가 아닌 일반인들도 알게 모르게 대부분 편향적입니다. 따라서 누가 어떤 대상을 재현하더라도 객관적이고 투명한 재현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감독이나 창작가가 자신은 사실에 입각하여 진실만을 그렸다고 주장해도, 그가 말한 사실이란 창작자의 시각에 의해 굴절된 것일 테니까요. 

그런데 재미있게도 스크린 밖에서도 양 진영으로 나뉘어 두 영화에 대한 갑론을박이 격렬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두 영화 모두 영화 자체의 작품성이나 예술성에 대한 평보다는 정치적 논쟁이 뜨겁습니다. 보수 진영 사람들은 <건국전쟁>이 역사적 진실을 담고 있다고 주장하며 영화 관람 릴레이를 펼치고, SNS에 관람 후기와 인증사진을 남깁니다. 반면 진보 진영 사람들은 <건국전쟁>이 역사를 왜곡하고, 이승만이라는 인물을 미화시켰다고 맹비난합니다. 

반면 <파묘>에 대해서는 기자 간담회에서 장재현 감독이 “의미보다는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코로나를 겪고 ……극장에서 영화를 더 재미있게 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 화끈하게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으나 영화의 내용에 반일주의를 불러일으키는 부분과 숨겨진 항일 코드를 들춰내어 비판하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반면 오히려 그런 주장을 비판하며 영화 관람을 적극적으로 추천하기도 합니다. 

영화를 두고 이와 같이 정치적 논쟁을 벌인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닙니다. 2014년에 개봉해 1426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영화 <국제시장>도 개발 독재 시대를 미화하였다는 정치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좀 더 근래에는 바로 지난해 연말에 개봉해 1312만 명의 관객을 모았던 영화 <서울의 봄>을 두고도 비슷한 정치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파묘>의 이례적인 흥행 성공에는 <건국전쟁>을 만든 김덕영 감독이 <파묘>를 반일 좌파 영화라 규정한 것에 대한 반감이 작용했다고 보는 시각이 있습니다. 김덕영 감독은 자신의 SNS에 “또 다시 반일주의를 부추기는 <파묘>에 좌파들이 몰리고 있습니다. ……<건국전쟁>에 위협을 느낀 자들이 <건국전쟁> 덮어 버리기 위해 <파묘>로 분풀이를 하고 있습니다. ……이 고비를 넘어야 185만 명을 동원한 <노무현입니다>를 넘어설 수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하나로 힘을 모아 <건국전쟁> 200만 고지를 향해 애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는 글을 남겼습니다. 이 메시지는 분명 진영 간의 대립을 부추기고 있고, 마지막 문장은 너무 노골적인 선동으로 보입니다. 이 글이 반작용을 일으킨 것인지 삼일절 하루에만 85만 명이 <파묘>를 관람했고, 삼일절 연휴 기간 동안 233만 관객을 동원했다고 합니다. 

이렇듯 각 정치 진영이 영화에서 정치적, 이념적 코드를 끄집어내어 선전 도구로 활용하거나 상대방을 비판하는 데 활용하는 풍조가 도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영화의 작품성, 예술성 논의는 영화의 정치성 논란에 묻혀버린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를 뒤덮고 있는 진영 갈등은 나날이 심화되고 있고, 그 진영 대결이 문화 분야로까지 파고들었습니다. 현재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인 의료 분쟁을 놓고도 이것이 선거 전략이네 어쩌네 하는 얘기들이 떠돌고 있습니다. 사회 모든 분야로 파고든 정치 진영 갈등에 심한 피로감이 느껴집니다. 총선 전(前) 일시 현상일까요? 어쩌면 그럴지도 모릅니다. 아니 그러길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총선이 빨리 끝나고 우리 사회를 조각내고 있는 갈등의 골과 상처들이 봉합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따뜻한 봄날, 의료 분쟁도 해결되고, 영화도 영화답게 소비할 수 있는 마법처럼 평화로운 세상이 찾아오길 고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