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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진 전 사무장과 2,000만 원
2019년 01월 08일 (화) 00:41:00 박상도

2014년 이른바 ‘땅콩회항’ 사건으로 인사상 불이익과 공황장애 등을 겪었다고 주장한 박창진 전 대한항공 사무장이 2,000만 원의 손해배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얼핏 보기에는 법원이 박창진 사무장의 손을 들어준 것 같습니다. 그런데 내용을 찬찬히 들여다보니 이겨도 이긴 게 아닌 판결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선 박씨의 손해배상 청구액은 1억 원이 넘습니다. 그런데 판결은 2,000만 원에 그쳤습니다. 박씨의 요구를 5분의 1만 수용한 겁니다. 또한 박씨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을 상대로 낸 2억 원대 위자료 청구 소송과 회사에서 자신의 직책이 강등된 것을 무효화해 달라는 소송은 모두 기각됐습니다. 그 이유는 이미 조 전 부사장이 이 부분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 3,000만 원의 공탁금을 냈으며, 직책이 강등된 것은 부당한 징계가 아닌 사규에 따른 합당한 평가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소송비용의 90%를 원고가 부담하라고 판결했습니다.

이 기사의 댓글을 보면, “2억도 아니고 2천? 그동안 스트레스와 고통의 가치가 그 정도 밖에 안 된다니…”, “흠, 유전무죄 무전유죄. 정권이 바뀌고 세월이 지나도 안 변하네, 재벌가 편파판결.”, “소송비가 받은 2,000만 원보다 더 나오는 건 아닐지…, 참 나…” 등으로 판결에 대한 불만이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판사의 판결은 독립이 보장되어 개개의 판결로 인해 인사상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야 용감하게 정의로운 판결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위의 판결에 부당한 다른 요인이 작용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또한, 위의 판결이 법리상 문제가 없는 옳은 판결일 수 있다는 생각도 합니다. 그런데 전문가들이 바라보는 세상과 일반인들이 바라보는 세상은 그 궤적이 살짝 어긋나 있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아나운서들도 전문가 집단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재미있는 것은 아나운서들이 인정하는 실력파 아나운서와 대중이 사랑하는 아나운서가 다른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실력을 쌓는 것은 대중에게 사랑받기 위함인데 장인 정신으로 발음을 교정하고 장단음을 잘 지키고 품격 있는 언어를 구사하는 데 집중하다보면 대중이 원하는 것에 귀 기울이고 대중과 호흡하며 그들의 아픔을 공감하고 그들의 즐거움을 위해 몸을 낮추는 데에 소홀하게 되는 경우가 생깁니다. 그 결과 실력은 있으나 외로운 아나운서로 자신의 경력을 마감하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봅니다. 

판사의 판결도 자신들만의 세상에서 바라볼 때는 흠결이 없는 판결일 수도 있지만 보통 사람들의 시각으로 볼 때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경우가 많습니다. 이번 판결은 마치 “자본주의의 거대한 흐름에 역행하지 말고 각자의 위치에서 얌전하게 자신의 직무를 수행할 것이며, 윗 사람의 잘못은 크든 작든 들추려 들지 말 것이며, 공연히 정의를 외치며 나서다가 직장에서 왕따당하고 인사상 불이익을 당해도 이미 기득권에 편입되어 있는 우리가 너희를 위해 해줄 것은 없으니 이 판결을 보고 대중들은 알아서 판단하고 행동하여라!”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실제로 항공사 노동자들의 집회가 한동안 이슈가 되고 많은 동료들이 집회에 참여를 했었는데  지금은 그 세력이 많이 위축됐다고 합니다. 아마 이번 판결을 보며 공연히 나서서 다치지 말아야겠다는 학습 효과를 얻게 되어 더 위축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긴, 신분의 노출을 막으려고 가면을 쓰고 집회에 참여했다는 것부터가 우리나라의 법이 그만큼 노동자들의 정당한 집회와 요구를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며, 그 연장선에서 박창진 전 사무장의 '이겨도 이긴 게 아닌' 이번 판결이 나온 거겠지요.

여러 해 전에 미국에서 겪은 일이었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미국 중부 캔사스 주의 로렌스라는 작은 도시로 가는데, 직항편이 없어서 덴버에서 비행기를 갈아타야했습니다. 그런데 샌프란시스코에서 덴버로 가는 비행기가 기상 문제로 2시간 가까이 늦게 출발하는 바람에 덴버에서 로렌스로가는 비행기를 타지 못하게 됐습니다. 이때부터 악몽이 시작됐습니다. 수백명의 사람들이 창구 하나에 늘어서서 대체 항공편을 문의하고 이름을 등록하느라 공항에서 3시간이 넘게 줄을 섰습니다. 이때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을 목격했는데, 모든 사람들이 불만에 가득 차 있는 표정을 하면서도 아무도 화가 난 것을 겉으로 표출하지 않는 거였습니다. 필자는 옆에 있는 미국 사람에게 “자기 항공사의 비행기가 연착해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불편을 겪는데 저렇게 창구 하나에서 직원 한 명이 일처리를 하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이야기를 하니, 그는 양 손을 펴고 어깨를 한 번 쓱 올리면서 “미국 항공사가 다 그렇지 뭐.”하는 것이었습니다.

미국 국내선의 연착 비율은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높습니다. 따라서 미국의 항공사들은 비행기 티켓을 팔 때, 연착에 대한 승객의 피해를 보상해 주지 않는 면책조항이 있습니다. 물론 이 경우 항공권이 조금 더 저렴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면책조항이 있어도 대체 항공편을 예약하는 데 3시간이나 줄을 서서 기다리게 하는 것은 너무 무성의해 보였습니다. 그럼에도 필자 주변의 미국 사람들은 ‘그저 그러려니’하고 인내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이들의 모습을 보며 세계 최강대국서 살고 있는 소시민의 열패감을 보았습니다. 아마 트럼프는 살면서 그런 경험을 하지 않았을 겁니다. 항공사의 오너도 그런 경험을 하지 않고 살았을 겁니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세상에서 편하게 잘 살고 있을 겁니다. 무기력하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속으로는 얼마나 부글부글 끓고 있었겠습니까? 하지만 공항에서 난동을 부려봐야 경찰에 체포될 것이 뻔하고 소송을 해봐야 이길 수 없는 것이 뻔하니까 불편함과 부당함을 감내하는 것입니다.

자본주의가 고도화된 사회일수록 시스템에 의해 사회가 운영되는데 그 시스템의 한 축을 담당하는 법률 서비스는 정의보다 돈에 의해 굴러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송사는 법률적 다툼인데 돈이 많은 사람이 더 유능한 법률가의 도움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박창진 전 사무장의 판결을 보며 가슴이 아픈 것은 ‘이렇게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사건도 이런 판결이 나온다면 앞으로 힘없고 빽없는 사람들은 절대로 법에 의지 할수 없겠구나’ 하는 절망감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최근 우리 사회가 분노조절이 잘 되지 않고 있다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잘못을 한 사람들이 법에 의해 합당한 처벌을 받기 전에 이미 사회적으로 매장당하는 일이 너무 흔하고 또 아무렇지 않게 자행되어 왔습니다. 그 결과 지은 죄보다 훨씬 더 가혹한 사회적 체벌이 가해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왜일까요? 그 이유는 그동안 법이 사람에 따라 다른 잣대로 판결을 했기 때문입니다. 의사들의 오진에 대한 판결이 관대했고, 재벌에 약하고, 권력에 편승해 왔으니 ‘우리끼리라도 속 시원히 욕이라도 한번 하자’라는 심리가 깔려 있는 것이 아닐까요?

이번 판결이 아쉬운 점은 어느 누구도 승자를 만들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박창진 전 사무장은 이겨도 이긴 것이 아닌 모양새가 됐으며, 대한항공은 그 동안의 잘못을 털고 갈 기회를 잃었으며, 조현아 전 사장은 용서를 받고 이미지를 개선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놓쳤으며, 판결을 보는 대중은 또 한번 상실감을 느껴야 했으며 이로 인해 법원은 법질서 회복을 통한 사회통합이라는 소중한 가치를 실현할 기회를 또 한 번 놓쳤습니다.

1930년 미국 뉴욕의 상점에서 빵 한 덩어리를 훔쳐 절도혐의로 기소된 노인이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판사가 정중하게 물었습니다.
“전에도 빵을 훔친 적이 있습니까?”
노인이 대답했습니다.
“아닙니다. 처음 훔쳤습니다.”
“왜 훔쳤습니까?”
“예, 저는 선량한 시민으로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일자리를 얻을 수 없었습니다. 사흘을 굶었습니다. 배는 고픈데 수중에 돈은 다 떨어지고 눈에는 보이는 게 없었습니다. 배고픔을 참지 못해 저도 모르게 빵 한 덩어리를 훔쳤습니다.”
판사는 잠시 후에 판결을 내렸습니다.
“아무리 사정이 딱하다 할지라도 남의 것을 훔치는 것은 잘못입니다. 법은 만민에게 평등하고 예외가 없습니다. 그래서 법대로 당신을 판결할 수밖에 없습니다. 당신에게 10달러의 벌금형을 선고합니다.”
노인의 사정이 너무도 딱해 판사가 용서해줄 것으로 알았던 방청석에서는 인간적으로 너무 한다고 술렁거리기 시작했습니다.
판사는 논고를 계속 했습니다.
“이 노인은 이곳 재판장을 나가면 또 다시 빵을 훔치게 되어 있습니다. 이 노인이 빵을 훔친 것은 오로지 이 노인의 책임만은 아닙니다. 이 도시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도 이 노인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고 방치한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에게도 10달러의 벌금형을 내리겠습니다. 동시에 이 법정에 앉아 있는 여러 시민들께서도 십시일반 50센트의 벌금형에 동참해 주실 것을 권고합니다.” 그러면서 판사는 자신의 지갑에서 10달러를 꺼내어 모자에 담았습니다. 이 판사의 선고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거둔 돈이 모두 57달러 50센트였습니다. 판사는 그 돈을 노인에게 주도록 했습니다. 노인은 돈을 받아서 10달러를 벌금으로 내고, 나머지 47달러 50센트를 손에 쥐고 감격의 눈물을 글썽거리며 법정을 떠났습니다.

뉴욕 인근에 공항이 세 개 있는데, 맨해튼에서 13Km 떨어진 잭슨 하이츠에 있는 라과디아 공항이 이런 명판결을 내리고 나중에 뉴욕 시장을 세 번 연임한 피오렐로 헨리 라과디아(Fiorello Henry La Guardia)의 이름 따서 지은 것입니다. 사실 위의 판결이 실제로 라과디아의 판결이라는 기록은 없으나 사람들이 그렇게 믿는 이유는 그의 훌륭한 성품과 일치하는 판결이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일 겁니다. 모두가 승자가 되는 판결은 흔치 않습니다. 하지만, 세상과 소통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매일 진지한 고민을 한다면 불가능한 일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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