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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토끼 집토끼 그리고 김제동...
2018년 10월 12일 (금) 00:15:11 박상도

월나라의 한민이라는 사람은 말을 키우며 살았는데, 경마에 나가면 항상 1등을 놓치지 않는 ‘반도’라는 말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는 반도 같은 말이 한 필 더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바오’라는 말을 새로 들여서 훈련을 시켰습니다. 그런데 세상일은 그의 뜻대로 풀리지 않았습니다. 새로 들여온 바오에게 관심이 집중되면서 영양실조 속에 방치된 반도가 경기에 나갔다가 사고를 당해 은퇴를 한 것입니다. 기대를 했던 바오는 좋은 성적은커녕 돈만 먹는 하마가 되었습니다. 한민은 반도를 더 잘 챙기지 못한 것을 땅을 치고 후회했습니다.

방송사에서 개편 때만 되면 등장하는 이슈가 있습니다. 바로 ‘집토끼로 갈 것이냐? 산토끼를 모셔올 것이냐?’입니다. 필자의 경험에 비춰볼 때 대부분의 PD들은 산토끼에 매력을 느끼는 듯합니다. 이것은 마치 내일 맞선을 보러 나가는 사람이 옷장을 열며 입을 옷이 없다고 한탄하는 것과 비슷한 심리일 겁니다.

최근에 KBS와 MBC에서 김제동 씨와 주진우 씨를 진행자로 기용한 것에 대해 말이 많습니다. 두 방송사 모두 경영악화 속에 외부인에게 한 회에 수백만 원씩 주고 프로그램을 맡긴 것에 대한 노조의 성토가 있었습니다. 역사는 헤겔의 변증법을 증명하듯이 시계추의 움직임처럼 오른쪽으로 한 번 올라간 후엔 반드시 왼쪽으로 기웁니다. 필자는 시계추의 진폭의 크기를 줄이는 일을 하는 것이 언론인의 소명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잘 훈련 받은 언론인은 진보, 보수 어느 쪽에 치우치지 않은 균형 잡힌 시각을 갖고 권력의 감시라는 본연의 책무에 충실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하지만, 지난 10년 동안 그걸 제대로 못했습니다. 그러니 이제 와서 기본에 충실하겠다고 나서는 것도 참 우스운 지경이 된 듯합니다. 다만, 바람이 있다면 시계추의 진폭을 조금만이라도 줄이고 싶을 뿐입니다.

따라서 두 사람이 그동안 보여준 정치적 이미지에 대한 논의는 하지 않고 그간 방송사에서 수십 년간 일을 하면서 체득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 문제를 짚어보고자 합니다. 문제의 핵심은 ‘회사가 어려운데 외부 출연자를 기용하여 사장이 받는 급여보다 훨씬 더 많은 금액을 출연료로 줘야 하느냐?’인 것 같습니다. 필자가 아는 한, 김제동 씨의 출연료라고 알려진 350만 원은 같은 급의 연예인들이 연예프로그램에 출연해서 받는 출연료에 비하면 결코 많이 받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예능 프로그램과 시사교양 프로그램의 출연료는 매우 많은 차이가 나며, 일일방송의 경우는 주 단위 방송보다 출연료를 적게 책정한다는 점, 방송 시간이 30분이라는 점에 비춰볼 때, 김제동 씨의 출연료는 많은 편에 속한다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주진우 씨가 받는 출연료는 600만원이라고 합니다. 김어준 씨가 SBS 블랙하우스에서 받은 출연료가 500만 원이었으니까 비슷한 금액을 받는 셈입니다. 이 금액 역시 시사교양 프로그램 진행자에게 주는 출연료치고는 매우 높은 금액입니다. 다만 한가지 변수가 있다면, 진행자로서 대중들에게 인지도가 있으며 호감까지 높은 경우는 출연료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 언급한 진행자의 출연료가 과한 건지 아닌지는 독자들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 옳다는 생각입니다.

최근 KBS는 경영악화로 해외지국 3곳을 폐쇄하기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따라서 비록 적정한 수준의 출연료를 지급하면서 김제동 씨를 기용했다고 해도 시기와 상황을 감안할 때, 구성원들이 이러한 결정에 호의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방송사의 해외지국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장기적으로 볼 때, 시사교양 프로그램 하나를 띄우는 것보다 더 큰 가치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 김제동 씨의 출연료 문제가 불거진 겁니다. 문제의 핵심은 제작 관행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PD는 업무의 특성상 자신의 프로그램에 몰입하게 됩니다. 자신이 제작하는 프로그램을 최고의 위치에 올려놓고 싶어 합니다. 새로운 시도와 참신한 아이디어에 늘 목말라합니다. 결국 집토끼보다 산토끼를 선택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한 우를 범한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선택들은 KBS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방송사에서 늘 있어 왔습니다.

"자네는 4,100만 달러로 팀을 플레이오프에 진출시켰어. 데이먼과 지암비, 페냐를 보내고도 그들이 있을 때보다 더 많이 이겼지. 이긴 경기 수는 양키스와 똑같지만 양키스는 한 경기 이길 때마다 140만 달러를 썼고 자네는 겨우 26만 달러를 썼어. 자네가 욕 많이 먹는 걸 아네만 오래된 틀을 깨려면 아픔이 따르지. 저들은 야구의 방식뿐 아니라 야구 자체를 위협당한 거야. 무엇보다 두려운 건 밥줄이 끊기고 삶의 방식이 바뀌는 거지. 그런 상황에선 누구나 그게 정부든 사업가든 간에 그 일의 주도권을 쥔 자들, 결정권을 쥔 자들은 다 광분하게 돼 있어. 이젠 자네의 모델대로 팀을 해체하고 재조직하지 않는 구단은 도태당할 거야. 올 10월이면 그들은 소파에 멍청히 앉아서 보스턴 레드삭스의 우승을 지켜보겠지.”라고 말하며 레드삭스 구단주는 재킷 안 주머니에서 빌리 빈의 연봉이 적힌 쪽지를 꺼내 놓습니다.

브래드 피트의 연기력이 돋보인 영화 <머니 볼>의 명장면 중 하나입니다. 영화 <머니 볼>은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의 단장 빌리 빈이 자신만의 독특한 선발 방식으로 선수를 영입하여 2002년 8월 13일부터 9월 4일까지 20연승을 달성한 이야기를 소재로 만들었습니다. 빌리 빈의 독특한 선수 선발 방침은 출루율이었습니다. 야구 같은 구기 종목은 점수를 내야 이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점수를 내기 위해서는 타자가 1루에 살아나가야 합니다. 볼 네 개로 살아 나가든 번트를 대고 살아 나가든 상관이 없습니다. 이 같은 빌리 빈의 새로운 시도는 팀의 감독과 스카우트들의 견제를 심하게 받지만 가난한 구단인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의 단장인 빌리 빈은 이름만 번지르르하고 연봉이 비싼 선수들을 과감하게 전출시키면서 출루율이 좋은 저평가된 선수들을 영입해서 그 해 큰 성과를 올립니다. 그 결과 부자 구단인 보스턴 레드삭스의 러브 콜을 받게 됩니다. 그가 제시받은 연봉은 1,200만 달러, 당시 단장들이 받는 최고 연봉을 훨씬 뛰어넘는 금액입니다. 그런데 빌리 빈은 그 자리를 마다합니다. 돈을 제외하면 자신이 레드삭스에 갈 이유가 없었으며 자신은 돈 때문에 후회할지 모르는 선택을 더는 하지 않겠다고 맹세했기 때문입니다.

아마, 영화 머니볼처럼 한국의 방송도 근본적으로 변화가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출연자에게 임원들이 받는 급여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주고 방송을 하는 것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더구나 요즘처럼 만성적자에 허덕이는 방송사들에게 무리한 산토끼 영입은 집토끼의 의욕상실, 영양실조를 부추깁니다. 돈을 많이 주고라도 출연자를 섭외해야 하는 경우는 나가는 돈보다 들어오는 돈이 더 많은 경우이거나 그로 인해 회사의 이미지 또는 미래에 큰 이익이 담보될 때입니다. 그런데 <오늘밤 김제동>은 광고를 받지 않는 KBS 1TV에서 방송을 합니다. 수신료로 출연료를 주는 셈입니다.

또 하나 간과해선 안 될 문제는 기회비용의 상실입니다. 10명의 PD와 수십 명의 작가가 이 프로그램에 매달려 전력투구를 하고 있습니다. 이 정도의 공력이면 내부의 기자가 됐든 아나운서가 됐든 누가 진행을 해도 시사프로그램 진행자의 스타로 키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영화 머니볼의 마지막 부분에는 명장면이 많습니다. 트리플 A팀의 거구 포수 제레미는 몸이 둔해서 2루타를 쳐도 2루까지 달리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어느 날 그는 투수의 가운데 직구를 받아치고는 1루를 지나 2루로 향해 가다가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는지 주저앉아 1루로 다시 돌아옵니다. 그런데 그런 그를 보고 사람들이 웃기 시작합니다. 제레미의 타구는 펜스를 60m 넘어가는 호쾌한 홈런이었기 때문입니다.

언제부턴가 방송사 PD들이 유명 연예인에 의지해서 시청률의 도움을 얻으려는 경향이 짙어졌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창조적인 힘을 깨닫지 못 하고 있는 듯합니다. 무명 출연자를 스타로 만들어주는 프로그램이 방송사로서는 진짜 효자 프로그램이고 무에서 유를 창출하는 창조적인 프로그램인데 늘 하던 대로 비싼 출연자를 불러서 이슈를 만들고 거기에 의지해 프로그램을 띄우려고 합니다. 여기에는 캐스팅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 방송사의 구조도 한몫을 하는 것 같습니다.

김제동 씨와, 주진우 씨의 출연료 문제는 그래서 정작 출연자의 문제가 아닌 방송 제작 관행에 대한 문제이고 방송사가 방만한 운영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며 자존감을 잃어가는 방송의 현 주소를 말해주고 있는 방송사 내부의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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