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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발[足]로 철학’하기다
2018년 09월 17일 (월) 00:25:58 이성낙

‘여행의 즐거움이 없었더라면…’ 하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역마살이라도 붙었느냐”며 여행을 말리는 ‘눈총’을 의식하면서도 기회가 되면, 아니 기회를 만들어서라도 여행길에 오르곤 합니다. 필자가 여행을 하는 중요한 목적이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찾아다니며 아름다움을 섭렵(涉獵)하는 데 있기에 그 즐거움이 더 크다 하겠습니다.
보행(步行)을 하다 보면 정신적, 육체적 부담감을 느끼기 마련입니다. 특히 세계 유수의 ‘박미관(博美館, 박물관+미술관)’을 찾아가는 것부터 넓은 전시 공간에서 작품을 따라 ‘지그재그(Zigzag)’로 왔다 갔다 하며 감상하기까지가 만만치 않은 일입니다. 그래서 필자는 ‘박미관’ 탐방 자체가 ‘정신적 운동’은 물론 ‘육체적 운동’을 하는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필자는 나름 여행은 “그저 놀러 다니는 것이 아니다”라고 주창(主唱)하며, 여행엔 오랜 역사의 맥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도 합니다. 그 한 가지 예가 고대 그리스 성현들의 이야기입니다.
당시의 지식인들은 너나없이 지중해 너머에 있는 이집트로 가서 신격화된 통치자 파라오(Pharaoh)를 만나는 것을 큰 배움의 지름길이라 생각했습니다.

그 무렵의 교통수단이나 여러 가지 여건을 생각하면 멀고 먼 여행이 얼마나 힘겨웠을지 능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맨발로 고행(苦行)의 수학(修學) 길에 오른 것이나 다름없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해오는 문헌에 따르면, 그리스의 젊은 지식인 가운데 약 50%가 이집트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약 20%는 페르시아로 유학을 갔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이집트에서 배워온 ‘유학의 산물’ 중 하나가 바로 오늘날 우리가 수학(數學, Mathematics)이라고 부르는 학문입니다. (주해: 수학과 관련한 인도의 역할은 여기서 논하지 않음.)

그리스의 현자 탈레스[Thales of Miletus, BC 624(?) ~ BC 548(?)]가 사막에 꽂은 지팡이의 그림자를 이용해 거대 피라미드의 높이를 계산하는 방법을 깨달았다는 것은 의미가 큰 역사적 ‘이정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또한 피타고라스(Pythagoras, BC 570 ~ BC495)는 스승 탈레스의 권유에 따라 무려 23년간이나 이집트에서 유학을 했다고 합니다.
아마 ‘피타고라스’ 하면 대부분 중학교 때 배운 ‘피타고라스 정리’가 떠오를 것입니다. 그런데 필자는 대학 시절 책을 읽다가 ‘철학(Philosophy)’이라는 단어의 어원이 ‘피타고라스’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무척 감동한 적이 있습니다.
어느 날 한 제자가 “선생님은 성현(聖賢)이십니다”라고 말하자 피타고라스는 “내가 무슨 성현이겠는가? 나는 지혜의 친구(Freund der Weisheit)일 뿐이네”라고 대답했다는데, 바로 여기서 철학이란 말이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즉 ‘친구’·‘사랑’이라는 뜻의 ‘Philos’와 ‘지혜’·‘학문’이란 뜻의 ‘Sophia’가 합쳐져 ‘Philosophy’가 되었다는 얘깁니다.

 
 독일 주간지 ‘Der Spiegel’에서( 2017.8.17.)

얼마 전 독일 지리학자 베르너 베칭(Werner Baetzing, 1949~) 교수가 쓴 “보행(步行)은 발[足]로 철학하기다”라는 글을 읽었습니다. 짧은 문장에 담긴 큰 뜻이 필자의 마음에 스며들어 “맞아, 맞아”하며 크게 동감했습니다. 그러면서 문득 낯선 외지에서 23년간 도보 여행을 하며 공부한 피타고라스가 생각났습니다. ‘피타고라스가 그렇게 오랜 기간 보행을 했으니 철학을 얼마나 많이 했겠는가?’라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신라의 고승 혜초(慧超, 704~787)가 떠올랐습니다. 당(唐)나라를 거쳐 인도와 페르시아 접경 지역까지 4년 넘게 순례를 하며 저 유명한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을 쓴 바로 그 혜초 스님 말입니다. 스님은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행선(行禪)과 만행(卍行)을 몸소 실천한 분입니다.
이처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옛 성현들은 걸으며 생각의 폭과 깊이를 더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생각이 이어졌습니다.
오늘날 의사들은 병원 응급실에 실려 온 의사(疑死) 상태의 환자를 보면 으레 가운 앞가슴 주머니에서 ‘나무 압설자(壓舌子, 혀 누르개)’를 꺼냅니다. 환자의 발바닥을 눌러 반사 반응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이를 의학 용어로 ‘바빈스키 반사(Babinski reflex)’라고 하는데, 발바닥과 뇌(腦)가 밀접한 신호를 주고받는다는 사실을 확실히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요컨대 걸으면 자연스레 발바닥에 자극을 주고, 이것이 다시금 뇌를 자극하는 효과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보행이 뇌 기능 활성화에 도움을 준다는 뜻입니다. 흔히 걷기 운동을 하면 다리 근육과 심폐 기능이 좋아진다고 하는데, 여기에 더해 뇌 기능까지 활성화된다니 ‘일석삼조’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자고로 현자들은 보행을 함으로써 현명함에 이르렀는지도 모릅니다. 이런 면에서 근래 우리 사회에 일고 있는 ‘걷기 운동’의 긍정적 효과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여행은 발로 철학하기’, ‘박미관 탐방은 발로 미술하기’라는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발바닥이 근질거리고 머릿속에 온갖 계획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마음은 벌써 저 먼 곳에 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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