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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88”의 청소년들
2018년 06월 21일 (목) 00:03:06 한만수

요즈음은 도시의 골목에서 아이들이 뛰어노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서 조용합니다. 리어카나 소형트럭에 생선이며 야채를 싣고 다니며 “팔딱팔딱 뛰는 갈치가 한 상자에 만 원!”이라고 손님을 부르는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출퇴근 시간이 지난 골목은 산사의 절간 같은 고요에 싸여 있습니다. 동네 곳곳에 있는 작은 놀이터에서도 아이들을 보는 것 쉽지가 않습니다. 저 혼자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그네며,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미끄럼틀에 새들이 가끔 쉬어 갈 뿐입니다.

도시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지방의 읍소재지에서도 골목에서 뛰어 노는 아이들을 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농촌에는 아이들 대신 노동능력을 상실한 노인들이 집 앞에 앉아 계시거나, 개들만 느릿하게 돌아다닙니다.

몇 년 전부터 모 종편방송에서 “응답하라” 시리즈를 방영하고 있습니다. 처음으로 방영이 된 “응답하라 1988”의 시청률이 좋아서 시즌별로 이어져 온 드라마입니다.

“응답하라” 시리즈는 그 시절의 서민들이 살아가는 사회상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는 드라마입니다. “응답하라 1988”를 우연히 봤는데 배경은 1988년도를 닮아 있지만 사람들의 의식구조며 갈등 구조 등이 어딘지 모르게 자연스럽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응답하라 시리즈가 “1997” 시즌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 시청률이 높다는 증거 일 겁니다.

“응답하라 1988” 같은 경우 종편에서 시청률 1위를 차지했는가하면 시청 층도 10대부터 60대까지 전 연령 층으로 조사되고 있습니다. 1988년은 올림픽이 열렸던 특수성도 있지만 “응답하라” 시리즈가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는 가장 큰 이유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50~60대는 그 시절에 대한 향수 때문이고, 젊은 층은 현실에서 경험할 수 없는 주인공들의 자유분방한 생활상에 호감을 느꼈기 때문 일 것입니다.

올림픽이 열리던 해에만 해도 골목에서 아이들이 무리를 지어 뛰어 놀았습니다. 여름날 일찍 퇴근을 하다 골목에서 뛰어 놀던 아이들이 아빠를 보면 큰 소리로 “아빠!”하고 부르며 뛰어와서 안깁니다. 그런 날은 그냥 집에 들어갈 수가 없어서 아이들의 손을 잡고 구멍가게로 갑니다. 과자 한 개씩 안겨주면 아이들은 더없이 즐거워하며 또래들에게 자랑스러워했습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갈 시간이면 골목골목마다 책가방을 어깨에 멘 학생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하굣길에는 또래들끼리 장난을 치며 걷거나, 어깨동무를 하고 걷는 광경을 흔히 볼 수 있었습니다.

요즈음 농촌 초등학생들도 학교버스가 있어서 먼 거리를 걸어 다니지 않습니다. 초등학생들은 스쿨버스로 다니고, 중고등학생들도 자전거를 이용하거나 버스로 통학을 합니다. 예전에는 초등학생들도 10리길을 예사로 걸어 다녔고, 중고등학생들은 더 먼 길도 새벽이슬을 밟으며 걸어서 학교에 다녔습니다.

거리가 먼 지역에 사는 학생들은 대부분 같은 동네에 사는 학생들끼리 등하교를 같이 합니다. 여름날은 일찍 수업이 끝난 저학년들은 선배들 수업이 끝날 때까지 기다립니다. 느티나무 밑의 벤치에 누워 낮잠을 자거나, 농구를 하거나 탁구를 치며 기다리기도 하고 교실에 남아 숙제를 하며 시간이 흐르길 기다립니다.

여름날 땡볕으로 달구어진 신작로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걸어가다 냇가에 도착하면 옷을 훌렁훌렁 벗이  젖히고 목욕을 합니다. 산길을 걸어가다 깨금(개암)을 따서 까먹기도 하고, 잔디를 캐 먹기도 하고, 산딸기를 따 먹으면서 걷다 보면 동네가 보이고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빨라집니다.

집에 도착해서는 책가방을 방에 던져 버리고 쇠꼴을 벨 생각으로 지게를 지고 밖으로 나갑니다. 고추를 따거나 콩밭을 매고 있을 부모님을 도우러 밭으로 가기도 합니다. 노을을 등에 지고 집에 들어와서 저녁을 먹은 후에는 낮에 약속을 안 했는데도 둥구나무 밑이며, 어느 집 뒷방이나 냇가 둑에 다시 모입니다. 특별하게 할 이야기가 없는데도 작년 이맘때 했던 이야기를 다시 해도 처음 하는 말처럼 귀를 기울이고, 우습지도 않은 이야기에 와르르 웃어 젖히기도 합니다. 그마저 대화가 궁해지면 어느 누구 하나 선창에 합창을 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학교를 졸업하고 무엇을 할 것인지, 짝사랑하고 있는 이성에게 어떻게 내 마음을 전달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을 하기도 합니다. 어느 누구하나 친구의 고민을 흘려듣지 않고 자기 일처럼 심각하게 받아들이며 해결 방안을 생각하다보면 어느 사이에 밤이슬이 축축하게 어깨를 적십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공부에 안심할 수가 없어서 학원 수업이 필수사항이 되어 버린 요즈음 풍경에 비추어 보면 그 시절에는 공부하고 거리가 멀었습니다. 요즈음은 자식보다 부모가 학교에 다닌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시험성적 체크는 물론이고, 부족한 과목을 보충하기 위한 학원 수강도 부모가 앞장을 서서 자식을 이끕니다.

그 시절 부모의 역할은 학비를 대주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자식이 공부를 못해도 채근하지 않습니다. 교복을 입고 집을 나서면 학교에 가는 줄 알고, 저녁에 집에 들어오면 별 탈 없이 공부 잘하고 있다는 것으로 만족을 했습니다. 건강해서 결석 안하고 열심히 학교에 다녀서 졸업만 하면 제 앞가림 정도는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이라며 자식을 믿기 때문입니다.

자식들은 학교를 졸업하면 도시에 인척 한 명 없어도 저 혼자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직업을 가졌습니다. 은행원이 되거나 재벌회사에 취직을 하지 못해도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중소기업 회사원이며 공장의 직공, 상회의 배달원 자리도 도시에 뿌리를 내릴 수 있는 자리라면 마다하지 않고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작은 회사라서 월급날이 되기도 전에 통장이 비는 수가 허다해도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가난해도 명절이며 집안 대소사에 빠짐없이 참석하는 등 가족의 도리를 다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거울신경(mirror neuron)은 학습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아이에게 밥을 떠먹일 때 엄마가 입을 벌리면 아이가 따라 벌립니다. 아이들의 '흉내 내기'는 뇌의 신경세포 중에 있는 거울신경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 시절의 자식들은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아버지가 자식에게 주는 믿음을 통해서 스스로 학습 받아서 노력을 하면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응답하라” 시리즈가 10대나 20대에게 인기가 있는 것은 아이돌가수나 인기 있는 탤런트들 때문은 아닐 겁니다. 같은 하늘에서 살고 있는 10대,20대이면서도 부모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유분방하게 살아가는 “응답하라”의 인물들이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삶이 부러웠기 때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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