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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마 톤즈」

2011년 01월 24일 (월) 01:00:34

방석순

영화 「울지마 톤즈」가 해를 넘겨서도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습니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눈물을 주체하지 못해, 울렁이는 가슴을 진정하지 못해 한동안 객석에 주저앉은 관객들이 적지 않다고 합니다. 무엇이 먼지가 나도록 메말라 있던 사람들의 가슴을 그토록 뒤흔들어 놓는 것일까요.

‘톤즈(Tonj)’는 딩카족, 줄루족, 봉고족 등 아프리카 흑인들이 살고 있는 남부 수단의 마을 이름입니다. 정권을 장악한 북부의 아랍인들과 오랫동안 맞서 싸우느라 황폐할 대로 황폐해지고 가난과 질병을 숙명처럼 끌어안고 사는 곳입니다.

거기에 한국인 이태석 신부가 발을 들여 놓은 건 9년 전 일이었습니다. 홀어머니 슬하 많은 형제들 틈에 끼여 어렵게 자라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군의관으로 병역을 마친 후였습니다. 집안의 희망이던 그는 맞서지 못할 어떤 힘에 이끌려 사제 수업을 받고, 자원해서 남부 수단의 오지로 선교를 떠납니다.

전쟁과 살육으로 숱한 목숨이 사라져간 곳, 40도 이상의 고온에 말라리아와 콜레라가 극성을 부리는 곳, 성한 사람보다는 아픈 사람이 더 많은 곳, 물도 식량도 턱없이 부족한 곳, 선교보다는 치료가, 청진기보다는 삽질이 더 급한 그곳에서 그는 8년 동안 병원을 짓고 학교를 세우고 환자들을 치료하고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이 신부는 이렇게 자문자답합니다. ‘예수님이라면 이 땅에 학교를 먼저 지으셨을까, 성당을 먼저 지으셨을까. 아마도 학교를 먼저 지으셨을 것 같다. 사랑을 가르치는 성당 같이 거룩한 학교를.’

친구의 소개로 한참 늦게서야 찾은 이 신부의 책 『친구가 되어주실래요?』를 읽으면서 몇 번이나 찡해오는 코를 들고 하늘을 쳐다보아야 했습니다. 마침 파란 하늘 어디에선가 그의 얼굴을 찾아낼 것도 같았습니다.

이 신부는 총이 장난감이던 아이들 손에 악기를 들렸습니다. 전쟁과 가난으로 생긴 상처를 어루만지고 기쁨과 희망을 줄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피리, 기타, 오르간으로 시작된 음악 교육은 여러 곳에서의 후원에 힘입어 트럼펫, 트럼본, 클라리넷, 북이 더해지고 나중엔 어엿한 35인조 브라스밴드도 만들어졌습니다.

아이들의 악기 습득 속도도 놀라울 정도로 빨라서 마침내 두어 달 후 성가 ‘천사의 양식’을 연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수십 년 동안 울리던 총성 대신 아름다운 음악소리가 울려 퍼지던 그날 아이들 눈에는 진주 같은 이슬이 맺혔습니다.

톤즈 가까운 ‘쵸나’라는 나환자촌 방문 진료에서 이 신부는 새로운 충격을 맞습니다. 예닐곱 살 먹은 딸아이의 손을 잡고 온 아낙이 “우리 딸 나병 맞지요?” 하고 묻습니다. “다행히 나병은 아니로군요. 축하합니다.”라는 대답에 실망한 아낙이 풀이 죽어 돌아섭니다. 나병 환자들에게만 배급 주던 강냉이와 식용유가 너무도 절실했었던 것입니다.

감각이 마비되어 상처투성이인 환자들의 손과 발에서 고름을 짜내고 약을 바르고 상처를 감싸다가 이 신부는 그들에게 신발을 신겨야겠다고 작정합니다. 그러나 사람마다 발가락 수가 다르고 발 모양이 달랐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발 모양을 일일이 그려서 슬리퍼를 주문 제작해야 했습니다.

비록 감각신경이 마비되고 찢어지게 가난한 나환자들이지만 이 신부는 작은 것에 기뻐하고 감사할 줄 아는, 보통사람보다 수십 배 민감하고 아름다운 그들의 영혼에 감동합니다. 그들을 보면서 ‘육체적으로 완전한 감각을 지니고 많은 것을 누리고 살지만 그런 것들을 당연히 여길 뿐 감사할 줄 모르는 우리들의 무딘 마음이 혹시 나병을 앓고 있는 건 아닌지’, 회의합니다.

이 신부는 숱한 사람들이 왜 하필 수단이냐고 물었지만 어떤 답도 할 수 없었답니다. 그러나 그곳 나환자들의 삶을 지켜보면서 비로소 자신을 그 땅으로 부른 하느님의 뜻을 깨닫습니다. ‘나로 하여금 소중한 많은 것들을 뒤로 하고 이곳으로 오게 한 것은 주님의 존재를 체험하게 만드는 나환자들의 신비스러운 힘임을 생각하며 그들에게 머리 숙여 감사한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오신 작은 예수님일 수도 있고, 마지막 심판을 예비하도록 미리 파견된 천사일 수도 있고, 우리에게 천국의 문을 열어줄 천국의 열쇠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이 신부는 사람마다 나름대로의 향기가 있다고 믿습니다. 주위 다른 사람에게 어느 정도의 영향을 끼치는 자기장과 비슷한 향기가. 어떤 사람의 향기는 좁은 범위에 아주 미약한 파장을 만들어내지만, 어떤 사람의 향기는 미치는 영향이 놀랍도록 커서 시공을 초월하는 자기장을 만들어내기도 한다고 믿습니다. 수천 년 동안 세상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예수처럼.

그래서 우리의 삶에 향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후각만 자극하는 향기가 아니라 사람들의 존재에, 삶의 원소적 배열에 변화를 일으키는 자석 같은 향기를 만들자고 말합니다.

「울지마 톤즈」는 이태석 요한 신부가 지난해 1월 대장암으로 48세의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 후 그의 봉사와 희생정신을 담은 다큐멘터리입니다. 수백억 원을 들여 흥행을 노리는 블록버스터들과는 상관 없이 지난해 9월 개봉되어 조용하게, 진한 감동으로 수십만 명의 관객을 모았습니다.

영화는 또 이 신부가 생전에 처음 방문해 성령대회에서 그의 아프리카 선교 활동을 전했던 미국 LA에서도 상영되었습니다. 거기서도 한인 동포들을 중심으로 20만 명에 이르는 관객들이 영화를 지켜보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태석 신부의 선종 소식을 전해들은 톤즈도 눈물바다가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브라스밴드의 연주를 은인에 대한 마지막 선물로 바쳤습니다. 일찍이 이 신부가 가르쳤던 노래, “사랑해 당신을 정말로 사랑해/ 당신이 내 곁을 떠나간 뒤에/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오…” 브라스밴드 앞줄에는 이태석 신부의 사진이 펼럭였습니다.

지금 그의 사랑에 감염된 많은 사람들이 후원자로 나서서 아프리카를 돕는 운동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톤즈에서 처음 그를 만난 아이들 가운데 우리나라에 와서 의학, 농학을 공부하며 '쫄리(John Lee)' 신부가 사랑의 씨앗을 뿌린 고향땅을 더욱 기름지게 가꾸겠다고 의지를 보이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이 신부가 말하던 바로 그 향기가 아시아와 아메리카, 아프리카 대륙에 걸쳐 거대한 사랑의 자기장을 뻗치고 있는 건 아닐까요.

“당신은 정말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가실 작정이십니까?” 이태석 신부는 우리에게 그렇게 묻는 듯합니다. 힐책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 스스로도 찾을 수 있는 그 아름다운 생을, 참다운 행복을 제대로 누려 보지 못하고 못난 욕심에 갇혀 살다 가는 데 대한 안타까움을 말하는 듯합니다.

지난 14일이 그의 1주기였습니다. 그는 사람이 태어나서 어떻게 사는 것이 정말 사람답게 사는 것인지, 종교가 해야 할 일이 어떤 것인지, 몸으로 보여주고 하늘로 갔습니다. 문뜩 그가 바로 이 땅의 메마른 영혼들을 위해 하늘이 보낸 천사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