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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밤, 거룩한 밤

2010년 12월 23일 (목) 01:21:13

허영섭

또다시 성탄절을 맞습니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의 찬송가 소리가 곳곳에서 울려퍼질 것입니다. 하지만 올해는 시기적으로 연평도 해역에서 남북이 군사적 위기상황을 맞고 있다는 점에서 성탄절 분위기치고는 매우 긴장되고 심란하기만 합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이미 천안함 폭침사태와 여름철의 집중호우, 전셋값 폭등, 그리고 구제역 발생으로 우여곡절을 겪으며 한해를 보내다 보니 심신이 지쳐 있기는 대부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성탄절이 아니라도 모두가 마음 속으로 위안받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는 뜻입니다. 더군다나 불쌍한 사람들을 구원하려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몸소 이 세상에 오셨다는 성탄절이 아닌가요. 기독교 신자 여부를 떠나서도 그 고귀한 뜻에 두 손을 모으는 엄숙한 시점입니다. 그야말로 온누리에 흰 눈이라도 수북이 내려 고요하고도 거룩한 밤을 맞아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지금의 한국 교회가 과연 상처받은 영혼들의 푸근한 안식처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흔쾌한 답변이 나오지 않는 것 같습니다.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들이 정신적인 안식을 위해 교회를 찾는다고 한다면 과연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줄 만한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물음에 대해 적어도 바깥에서 바라보는 시각은 긍정적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교회나 목회자들이 그만큼 사회적으로 신뢰를 잃고 있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이 교회에서 안식을 찾고자 해도 그들의 영혼이 편히 쉴 만한 쉼터가 거의 없다는 것이지요. 신앙심이 깊다는 교인일수록 배타적이긴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내부 사정을 모르는 바깥 사람들의 지적만은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도 비슷한 자성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교회들이 그동안 너무 세속적이고 물량주의 위주로 성장을 추구해 왔던 것은 아닌지 돌이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가 외형적으로 팽창하면서 세습 문제로 시끄러웠고, 정치권력과의 타협이나 편승 논란도 제기되어 왔습니다. 거기에 목회자들의 개인적인 윤리 문제도 가끔씩 바깥으로 새어나옴으로써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민망스럽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우선 지적할 수 있는 현상은 교회가 너무 많이 늘어났다는 사실입니다. 아파트 단지의 상가마다, 골목마다 교회들이 들어섰으니까요. 교회들이 지붕 위의 십자가에 불을 밝히는 일요일 밤이면 우리 주변에 교회가 얼마나 많은지 쉽게 가늠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같은 아파트 상가에도 층층별로 교회가 두세 개씩 들어 있는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

교회들로서야 저마다 존재 이유가 분명하겠지만 건물 아래위층에서 서로 경쟁하듯이 신도들을 끌어모으는 모습은 교회 바깥에서 바라보기에도 별로 유쾌하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혹시 교회가 더 많이 생겨야 세상 사람들의 헐벗은 영혼을 제대로 구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얘기하는 분들은 안 계실는지요.

더 나아가 대형교회들도 많이 생겼습니다. 처음 발걸음을 들여놓는 사람들이 교회 건물에서부터 주눅들 만큼 비대해졌을 뿐 아니라 지역별로 분교회를 두고 있기도 합니다. 교회에 따라서는 일요 예배를 드리러 오는 신도들만 해도 수만 명씩 된다고 하니까요. 신도들이 타고 온 승용차의 교통정리를 위해 도로 건널목과 주차장 관리당번을 두어야 하는가 하면 서울 시내 지역별로 교회 버스를 운행하는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

교회의 대형화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게 이행되는 과정에서 자칫 위계적이며 권위주의식 조짐이 엿보인다면 결코 올바른 교회 운영은 아닐 것입니다. 대형교회를 이끌어가는 일부 목회자들의 경우 마치 재벌기업의 오너처럼 행세를 한다는 얘기도 들려올 정도입니다. 낮은 자리에서 겸손하게 섬기기보다 지배하고 명령하는 듯한 목회자의 모습은 누가 보기에도 거부감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여기에 목회자들의 세속화와 탈선, 윤리의식의 실종 현상도 우리 교회가 당면한 심각한 문제입니다. 극히 일부의 목회자에 국한된 문제라고 옆으로 젖혀 놓는다면 더 이상 할말이 없습니다. 더구나 가끔씩은 신문과 방송의 사건보도를 통해 일반에 알려지지만 그냥 내부적으로 쉬쉬하며 넘어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어떻게 보면 지금껏 교회가 외형적 성장에 치우쳐 온 후유증이라고도 여겨집니다.

교회에서는 교인들과 세속의 사람들을 구분한다고 하지요. 당연한 얘기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조직이나 단체에서도 있을 법한 일이니까요. 하지만 세속인들이 교회에 나가지 않는 것은 종교의 가치를 몰라서도 아니고, 위안받고 싶지 않아서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자고 깨면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이 험난한 세상에서 어느 누가 종교적인 위안을 감히 마달 수 있겠습니까.

혹시 교회 주변에서 서성대는 사람들이 교회에 몇 번씩 나가보고는 더 이상 나갈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되면서 엉거주춤 망설이고 있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으셨는지요. 만일 그런 경우가 하나라도 있다면 그것은 분명히 교회의 책임이라고밖에 할 수 없습니다. 교회에 구원의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가 아니겠습니까. 교회를 이끌어가는 목회자들의 책임이기도 합니다.

다시금 성탄절을 맞으며 교회의 존재 의미를 되새기게 됩니다. 아무리 크리스마스 캐럴이 우렁차게 울려퍼진다 한들 그 진정한 뜻을 살리지 못한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얘기입니다. 그냥 습관적으로 부르는 몇 마디 찬송가와 설교보다는 차라리 고요한 적막이 더 깊은 교훈의 울림을 전해준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이라도 멀리 교회의 첨탑을 바라보면서, 그리고 목회자가 조용히 지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받을 수 있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기대합니다. 그것이 바로 성탄절의 교훈이기도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