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눈보라와 함께 이곳 캐나다까지 불어온 롯데마트의 '통큰치킨' 소식은 국내의 소비자와 기존 치킨 판매업소 간의 치킨 가격 적정성에 대한 공방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대형업체 롯데마트가 군소 프랜차이즈 업체들의 생존권을 흔든다는 항의에 부딪혀 값이 싼 치킨판매를 중단하자 이번엔 소비자들의 싸게 먹을 권리를 주장하는 항의가 계속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업계와 소비자들 간 첨예한 대립의 원인이 닭인데, 나는 오히려 닭을 주제로 한 추억이 떠올라 잠깐 향수에 잠겼습니다. 우리나라가 1945년 을유년 닭띠 해에 해방이 되는 기쁨을 누렸던 것처럼 닭은 한국인의 정서에 참 친근한 가축입니다. 시골 동네 초가집, 대나무 숲이 바스락거리는 골목 어귀, 닭들이 꼬꼬댁거리며 종종종 이 집 저 집으로 오고 가는 평화로운 모습, 봄이면 맨 먼저 피어나던 노란 개나리와 노란 병아리떼를 노래한 동요도 떠오릅니다. 비록 배불리 먹지 못하고 살았던 세대였지만 정신만은 풍요롭고 이웃사랑이 있었던 풍경은 이제 그 시대를 살았던 서민화가 박수근의 ‘나무와 두 여인’이나 향토색이 짙은 화가 이중섭의 '황소’ 그림에서나 느낄 수 있는 그리움으로 남아 있을 뿐입니다.

비싼 쇠고기를 먹기 어려웠던 옛날에는 사위가 처가를 방문하면 집에서 기르던 닭 한 마리를 잡는 것이 큰 대접이었으니 그 시절 닭으로 만든 요리처럼 중요했던 음식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한국인이면 누구나 좋아하는 닭도리탕, 영계백숙, 닭찜 등을 한여름 물이 졸졸 흘러내리는 계곡에 앉아 소주 한 잔을 기울이면서 목청껏 구성지게 뽕짝노래를 부르던 추억을 가진 분도 많을 것입니다.

나는 이러한 야외놀이의 추억은 없지만 집안의 대소사가 있을 때마다 엄청난 양의 닭들이 모가지가 비틀려 죽어가는 모습을 볼 수 없어 어쩌다가 닭 잡는 장면이 눈에 띄면 뒤뜰로 도망치던 기억은 있습니다. 어린 나에게는 닭이란 요리 재료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지요. 우리 주위를 맴돌던 닭과 노란 병아리들은 육식이 부족하고 가난했던 우리 세대의 애환을 대표하는 존재이자 우리의 삶 속에 밀착되어 있던 따스한 생물체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는 이 '통큰치킨' 소동에 왜 어머니의 얼굴만 떠오르는지 모르겠습니다. 찌는 듯한 여름날의 장면이 생각납니다. 남들이 듣기엔 배부른 소리일 수도 있겠으나 해마다 여름만 돌아오면 닭고기와 씨름을 했습니다. 어머니가 주시는 사랑의 크기가 클수록 닭들과의 씨름은 비례하였는데, 원체 어려서 몸이 약했던 탓으로 여름 내내 닭을 잡아 인삼을 넣고 푹 고은 국물을 계속 마셔야 했던 것은 괴롭기 그지없던 일이었습니다. 원래 인삼 냄새를 좋아하지 않던 나는 그 냄새에 질려 닭고기, 특히 삼계탕에 대한 거부감까지도 생겼습니다.

그러나 외국생활을 하면서부터 편리함을 좇다 보니 쉽게 먹을 수 있는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이나 동네의 대형 슈퍼에서 파는 통닭구이를 사다 먹기도 하게 되었습니다. '통큰치킨'의 논란을 읽다 보니 통닭구이가 먹고 싶어져 겸사겸사 날씨가 엄청 추운데도 불구하고 슈퍼와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점으로 가서 가격을 확인하기로 했습니다.



동네의 대형 슈퍼에서는 패스트푸드를 만들어 팔고 있는데, 그곳에 진열된 일본음식 스시는 공급업자로부터 받아서 팔고 있지만 그밖에 여러 종류의 베이커리, 패스트리(빵 종류), 파스타 혹은 중국식 튀김이나 통닭구이는 슈퍼의 직원들이 직접 만들어 팔고 있습니다. 이 슈퍼의 통닭구이는 슈퍼에서 직접 구워내는 것으로 중간마진 없이 유통단계를 거치지 않고 적정가격으로 소비자에게 판매됩니다. 맛은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과는 다르고 한국의 통닭구이와 비슷한데, 값은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보다 쌉니다. 맛을 비교해 보면 한국의 양념통닭이 훨씬 좋습니다. 그러나 이 슈퍼에서 파는 통닭구이는 한국의 프랜차이즈 통닭구이 점포처럼 무절임, 콜라, 멋진 포장 배달 등의 서비스는 하지 않습니다.

이 슈퍼에서 매일 구워내는 통닭 한 마리, 약 2Kg 정도의 큰 것은 10달러(원화 1만1천원)에, 1.5Kg 정도의 작은 것 한 마리는 대략 8달러(8천8백 원)에 팔리고 있습니다. 이 슈퍼의 정육부에서 소비자에게 파는 3Kg 정도의 가공되지 않은 커다란 생닭 한 마리의 소매가격은 10달러(1만1천원)였습니다. 그렇다면 가공하여 바로 먹을 수 있게 만들어 놓은 통닭구이의 가격은 그것을 구워내는 사원의 인건비가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생닭으로 파는 것이 슈퍼 측엔 훨씬 유리할 텐데도 구워 파는 것은 결국 소비자의 편의를 위한 봉사 차원이 아니면 손님을 끌기 위한 미끼일 수도 있지요.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점으로 갔습니다. 그곳 닭 한 마리에 해당하는 10쪽 큰 용량의 가격은 24달러(원화 2만6천원)로, 감자튀김 4개와 콜라 4개를 포함시킨 가격이었습니다. 이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 점에서는 투니 스페셜이라는 2쪽의 치킨콤보(감자튀김과 콜라 포함) 가격을 매주 화요일엔 2달러 79센트(약 3천원)로 내려 값싼 치킨을 먹을 수 있습니다. 롯데마트가 파격적으로 싸게 '통큰치킨'을 판 것과 같은 맥락의 홍보 차원 서비스일 것입니다.



국내에서 생산되어 팔리는 생닭과 이곳 생닭 값의 유통구조가 어떻게 다른지 세세한 것은 잘 모릅니다. 각국의 현실에 따라 상황이 조금씩 다르겠지만 대체적으로 이곳과 한국의 가격은 비슷하리라 생각합니다. 이 슈퍼의 생닭 값, 1만1천원은 슈퍼의 이익을 충분히 고려한 것이고 구워낸 통닭구이에서 얻지 못하는 수익은 이 생닭 판매에서 보상이 되지 않나 싶습니다.

국내의 프랜차이즈 본사에서 소매점으로 공급되는 가격의 생닭 값이 약 4천원(4달러)이라면 프랜차이즈 본사의 마케팅, 홍보, 재료 공급을 따져볼 때 부당한 이익을 내고 있다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튀기고 포장하여 무절임 콜라까지, 거기에 고유가시대에 배달까지 해주는 소매점의 통닭구이 한 마리 가격이 1만 6천원 혹은 1만 8천원이라면 비싼 가격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배달을 오토바이로 하느냐 자동차로 하느냐, 점포가 있는 지역이 어느 곳이냐에 따라 통닭구이의 가격 산출 또한 변수가 클 것입니다.

롯데마트가 판매한 '통큰치킨' 가격 5천원은 롯데마트의 고객을 위한 사은 차원이었거나 고객을 부르는 수단이었을 것입니다. 결국 영세상인의 생존권을 위협한다는 치킨점 소매상들의 반발로 롯데마트는 백기를 들었지만 그 전략이 비록 호객을 하기 위한 미끼였다 하더라도 저마진 판매 전략으로 기획 생산되는 물품을 싼 값으로 소비자에게 공급한다는 점에서 환영해야 될 일이지, 소비자를 위한 생산 판매를 한 롯데마트가 공정거래법상 부당 염매에 해당되진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소비자는 싸게 먹을, 싸게 살 권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자율경쟁의 자본주의 시장에서 이러한 경우는 '통큰치킨'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일상적으로 소비하고 있는 모든 소비성 상품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며 이것은 브랜드 차별화에 따른 상품가를 결정하는 원리와도 동일합니다. 한 예를 든다면 같은 품질의 같은 소재를 쓴 의류라 할지라도 그 의류가 구찌의 디자인에 구찌의 상표를 달고 팔리느냐, 바니 테일러의 디자인에 바니 테일러의 상표를 달고 팔리느냐에 따라 소비자 가격은 많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관건은 백화점 같은 대형 기업이 영세 상권을 잠식 한다는 우려입니다. 이 문제점을 개선하려면 아예 백화점 업계의 지하 식품부부터 철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의 백화점을 벤치마킹해 들어 온 한국의 백화점 업계와 같은 형식의, 백화점 지하 식품부를 운영하는 백화점, 식품 사업까지 손을 대는 거대 기업은 이곳 북미 지역을 포함하여 유럽 지역에서도 없습니다. 애초에 이런 형태의 백화점 유통업을 허가한 국내법에도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의 핵심은 롯데마트의 싼 값뿐만 아니라 프랜차이즈 본사와 소매점도 문제가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본사는 자사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지나치게 소매점을 확장하는 경향이 있고 소매점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업을 하여 잉여 치킨점이 늘어나는 것입니다. 서로 이익을 쪼개 나누어 가져야 하므로 결국은 어떤 점포들이 쓰러질 수밖에 없습니다. 거기에 과잉으로 생겨난 통닭 프랜차이즈 회사들 또한 더 큰 문제를 불러일으킨 요인일 것입니다. 어떤 사업이 잘된다 싶으면 우후죽순 일어나니 결국 '너도 나도 같이 죽자' 식이 되고 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일은 통닭구이 소매점뿐만이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예전부터 끊임없이 일어났고 현재도 일어나고 있는 우리들의 현실입니다.

치킨 값이 비싼가 아닌가, 이익이 있는가 없는가가 문제의 핵심이 아니라 여기서 풀어야 할 숙제는 지나치게 포화상태인 치킨 소매상들과 공정하지 못한 프랜차이즈 회사들이 어떤 식으로든 정리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치킨 업체들의 생존에 이상이 없을 뿐 아니라 더 많은 이익 창출을 할 수 있게 되고 그 이익은 가격 인하라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소비자들에게 환원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러한 결론에 의하면 롯데마트의 저렴한 가격의 '통큰치킨' 또한 소비자의 선택권을 위하여 반드시 공존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소비자는 롯데마트의 '통큰치킨'값보다 비싼 프랜차이즈 점포의 통닭구이를 집에서 편히 배달시키거나 가까운 소매점에서 먹든지 아니면 추운 바람을 무릅쓰고 지하철을 타거나 자가용을 몰고 롯데마트까지 가서 '통큰치킨'을 사면 됩니다. 어디서 어떤 가격의 통닭구이를 선택하냐는 것은 소비자 개개인의 권리와 자유의지에 속하는 사항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글을 쓰다보니 겨울 눈보라도 그쳤습니다. 마음은 오직 맛있는 양념통닭이 있는 한국으로 달려갑니다. 한 해를 마감하며 바라는 것은 맛있는 한국의 양념통닭구이 같은 새해가 되었으면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