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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은 알고 있다
2017년 10월 20일 (금) 00:02:57 김영환

JTBC 태블릿PC 보도 이후 그 디지털 포렌식(forensics) 보고서가 거의 1년이 다 돼 변호인들에게 공개되었습니다. 작년 10월 25일 순식간에 실시했다는 작업의 늑장 공표는 검찰이 힘 있는 자의 편에 선 것인지, 최순실 특검법 12조에 명시한 국민의 알 권리와 딴판의 모습입니다. 그간 검찰과 재판부, 헌법재판소는 JTBC 태블릿PC에 관해 박근혜 대통령 탄핵 재판 변호인들의 증거 채택이나 국과수 감정 의뢰 요청을 수사 대상도 아니고 증거도 아니라며 거부했습니다.

JTBC가 작년 10월 24일 소위 ‘국정농단의 스모킹 건(확증)’이었다고 터트린 태블릿에는 국정농단의 증거라고 외쳤던 문제의 드레스덴 연설문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박근혜 대통령 공정재판 법률지원단 단장인 김기수 변호사가 최근 유튜브 브리핑에서 밝혔습니다. A4지 출력물로  연설문의 감성적인 표현만을 고쳤다는 최 씨의 진술과 달리 JTBC는 그가 태블릿으로 대통령 원고를 빨갛게 고쳤다고 했지만 태블릿에 문서 편집 프로그램은 아예 없었고 한글 뷰어뿐이었다는 것입니다.

김한수 행정관이 개통한 이 태블릿은 박근혜 경선과 대선 때 SNS팀이 쓰다가 2012년 대선 종료와 함께 3년 이상의 긴 휴면기에 들어가 JTBC가 입수한 이후 다시 켜졌다고 포렌식은 밝히고 있다죠. 이는 대선 팀에서 일한 신혜원 씨의 최근 양심선언과도 부합됩니다. 국정농단의 비밀 통로였다는 G메일 수신기록은 단 7회로 마지막 열람은 JTBC가 입수한 날이라서 최초 보유자와 방송사의 유착 가능성도 엿보이는 대목이라는 겁니다. 최씨 게 아니란 정황이 더 많다는 거죠.

그간 이 태블릿은 전 국민 카톡 시대를 비웃는 듯 발화자(發話者)인 내 말풍선의 왼쪽 표시 등 많은 조작 의혹이 일었는데 포렌식 보고서도 진실을 덮으려는지 카톡 대화를 암호화해 알 수 없었다고 합니다. 김 변호사는 보고서가 수사 방점에 따라 추출한 것일 뿐, 감정의 평가는 전혀 없었다며 이걸 보고 모든 의혹을 해소하라는 것은 검찰의 독단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가치중립적인 디지털 기기는 인간이 유통하거나 심은 정보들을 기억하며 그 과정을 포렌식으로 드러냅니다. 2007년 8월 전남 보성군에서 욕정을 품은 70대 어부가 배에 태워준 대학생 커플을 죽이고 수장한 연쇄 살인 사건은 처음엔 커플의 자살로 추정했지만 어망에 걸려 수습한 피해자의 디지털카메라에서 어부의 모습을 복원하여 체포했다는 것이죠. 디지털의 개가입니다.

지금 와서 태블릿PC의 진실을 밝히는 게 뭐가 중하냐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탄핵의 목표는 명중해 대통령도 교체됐는데…. 승리한 사람들은 도취감으로, 실패한 사람들은 무력감으로…. 국민 대부분은 먹고살기에 바빠서, 사실은 자신을 지배하는 구조와 결정적으로 연관된 사안에 어떤 조직화한 세력들이 자신들의 눈과 귀를 가렸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좀처럼 의식하지 못할 것입니다. “최순실이 나빴잖아?” 하지만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진실도 디테일에 있다’고 말합니다. 태블릿 문제를 중시해야 할 이유죠,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닙니다.

긴 잠을 자던 이 문제는 국회 국정감사에서 국정조사 추진이 본격 거론되기 시작했습니다. 상을 탄 기자와 경영자들, 시민단체의 시상 저지에 맞서 상을 준 여기자협회는 최소한의 포렌식 보고서로도 흠결이 드러난 태블릿PC 보도의 진실 규명 노력을 보며 뭘 생각할까요.

대검의 디지털 포렌식 수사 예규는 ‘디지털 증거의 압수․수색․검증은 디지털 포렌식 수사관 또는 대검찰청에서 실시한 디지털 증거 압수․수색 실무교육을 받은 수사관이 하여야 한다’라고 명시합니다. 포렌식은 증거의 조작이나 훼손의 수사에 핵심 기법이죠. 들고 나와 들여다보고 다시 갖다 놓고 어쩌고 할 사안이 아닙니다. 더욱이 상대는 대한민국 대통령입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 ‘국정농단’의 물증은 JTBC와 검찰이 많이 만진 흔적이 나와 무결점의 원칙을 훼손했다고 김기수 변호사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 국정감사장에서 증언했습니다. “언론의 자유가 국민의 알 권리를 뛰어넘을 수 없다”라고도 그는 말했습니다.

'최순실 재산 10조 원', '정호성 비서관이 매일 밤 30센티미터 높이의 청와대 자료를 최순실에게 배달해 국정을 농단했다‘는 등 소설적 추측으로 광풍을 일으킨 언론사들이 있는데 우리만 잘못이냐. 거짓말도 보도할 가치가 있다는 사고방식에 그들이 오염돼 있었는지 모릅니다. 기획된 오보라면 팩트를 검증하고 징치해야 합니다. 나치도, 일제도 사이비 언론의 프로파간다 부화뇌동에 전체주의의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사실 보도의 철칙을 무시한 것은 국정농단이 아니라 언론농단이었다고 보는 이성적인 학자들의 심각한 연구대상이 될 터입니다.

민주주의는 절차의 정당성을 중시합니다. 영국의 권위지 가디언은 최근 박 대통령이 공정하게 재판받을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받고 있다고 비판하는 국제적 변호사들의 움직임을 심층 보도했습니다. 김기수 변호사는 “박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탄핵되었다. 진실을 외면하는 민족에게는 희망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태블릿PC 조작 보도 의혹을 바로잡으려는 시민단체들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와 언론중재위에 제소했지만 힘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진실을 밝히라는 농성 시민들의 요구에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라고 말한 것으로 보도된 윤리학자인 방통심의위원장 박효종은 방송 윤리가 처참히 짓밟혔을지 모르는 현장의 감독으로 서 있었으나 올해 6월 퇴임 때 “상호 이해와 합의제 정신을 발휘하여 여러 가지 사회적 쟁점 사안에 슬기롭게 대처해 왔다는 점에 자부심을 느낀다”며 자화자찬했습니다.

검찰이 말하는 실체적 진실의 실종입니다. 출시도 전에 선물 받은 것이라느니, 최씨 이메일이 나오니 최씨 거라느니 계속 새끼를 친 태블릿PC 소극(笑劇)은 그것을 손에 넣으면 누구라도, 아무 내용이라도 담을 수 있는 디지털 그릇이라는 걸 외면한 탓입니다. 어느 직종에 있었건 진실을 파헤치기를 저어했던 자들은 반성해야 합니다. 자신과 나라와 역사를 위해서…. 길게 말할 것 없이 국회는 최순실 씨조차 사진으로만 보고 조사받았다는 태블릿PC의 실물을 앞에 놓고 김한수 전 행정관 등 핵심 관련자와 전·현직 검찰 총수와 수사팀, 보도한 방송사 회장·사장 그리고 보도 총책, 기자들을 전부 증언대에 세우기 바랍니다. 나라다운 나라답게 법원에 감식도 맡겨 지금 디지털만이 알고 있을 태블릿PC의 진실을 국민에게 밝혀야 합니다.

“… 나의 오늘은 영원 속에 이어져 바로 시방 나는 그 영원을 살고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서부터 그 영원한 삶을 살아야 하고 영원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구상의 ‘오늘’). 며칠 전 지하철역 승강장 창문을 보니 이런 시가 붙어 있었습니다. 이 시가 말하는 ‘나’는 사인(私人)만이 아니라 국가와 각종 조직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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