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6년전 이맘 때, 우리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외신을 접하고 아연해진 적이 있습니다. 선거공약을 실천하겠다는 조지W부시 대통령의 감세정책에 미국의 갑부들이 반기를 들었다는 뉴스였습니다.

헤지펀드계의 대부 조지 소로스, 석유왕 록펠러의 후손인 데이비드 록펠러 주니어, 월가의 대표적 투자가 워런 버핏 등이 주동자였습니다. 이들 뿐만 아니라 1백 20명에 이르는 억만장자들이 2009년까지 상속세를 단계적으로 폐지하겠다는 부시의 감세안을 반대하는 운동에 나선 것입니다.

“상속세가 사라지면 노력하는 사람이 아니라 물려받은게 많은 사람들이 나라를 좌지우지하게 될 것이다. 평등한 기회가 사라진 귀족사회가 되어서는 민주주의가 발전할 수 없다” 하층 서민이 아닌 미국을 대표하는 부자들의 주장입니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의 아버지 윌리엄 게이츠는 “상속세를 폐지한다는 얘기를 듣고 너무 화가 났다”고 했습니다. 버핏도 “노력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며 “나는 죽으면 재산 전부를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공언했습니다.

이들의 공언이 헛구호가 아님은 실천적 기부행위로 입증되고 있습니다. 빌 게이츠는 2000년 부인 멜린다 게이츠와 함께 1억달러를 출연하여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을 설립한 이래 320억달러(약30조원)의 기금을 만들었습니다.

작은 나라 정부보다 더 큰일을 해낼 능력이 있고, 국제기구보다 더 많은 돈을 쓸 수 있는 게이츠 재단은 말라리아 예방과 에이즈·결핵 퇴치 등 빈곤국의 보건문제 해결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질병에 시달리는 사람의 90%는 가난한 나라 국민인데 이들 국가의 보건자원은 전세계 보유량의 10%뿐이라는 보도가 이들의 결심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여기에다 세계 부자서열 2위인 버핏이 지난 해 6월 전재산의 85%에 해당하는 374억달러(약36조원)를 5개 자선단체에 기부한다고 밝혔습니다. 버핏은 특히 기부금 가운데 310억달러를 게이츠 재단에 기부해 세계 최대의 재단을 만들었습니다.

미국 부자들이 부시의 상속세폐지 반대 캠페인을 벌일 즈음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으로 성공한 미래산업의 정문술 사장은 300억원의 거금을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선뜻 내놓아 놀라움을 주었습니다. 기업을 일군지 8년동안 번 돈의 거의 전부였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자식에게 회사를 물려주지 않고 능력있는 직원에게 경영권을 넘기겠다”는 소신에 따라 퇴임까지 결행한 정서는 “앞으로는 제대로 쓰는 일에 힘쓰겠다”고 소신을 밝혔습니다. 대다수 재벌들의 대물림 관행과는 판이한 결정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지난 1일 KAIST에서 명예공학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학위수여식에도 참석을 고사했던 그는 자신의 기부금 중 110억원을 들여 완공한 ‘정문술 빌딩’ 방문 요청은 끝내 거절했습니다. “아직 그럴 만한 계기가 없다”는게 그의 변입니다.

바이오시스템학과가 입주해 있는 빌딩 방문 시기에 대해 정문술 박사는 “저 빌딩에서 국민이 깜짝 놀랄 만한 결과물이 나오면 기꺼이 가겠다”며 “KAIST 사람들도 이젠 나의 고집을 알기 때문에 이해할 것”이라고 소회를 밝혔습니다.

우리 사회는 요즘 종부세 이름으로 부과된 졸부세(猝富稅)로 적잖은 사람들이 속앓이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세금은 국토개조나 전력강화 및 복지증진에 쓰일 거라고 생각하면 조금은 위안이 될 것입니다.

다만 진정한 기부는 정직하게 번 돈을 자신과 이해집단이 아닌 세상의 모든 생명을 위해 바쳐야 그 아름다움이 더욱 빛날 것입니다. 건강과 친구보다 돈에 집착하는 사람이 대접받지 못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서양이나 동양이나 마찬가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