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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임하는 우리의 자세 -『어머니의 죽음』
김이경 2009년 09월 01일 (화) 05:42:28
여든이 훌쩍 넘은 아버지께서 얼마 전 호되게 병치레를 하셨습니다. 젊은 나이라면 가볍게 앓고 말 감기지만 연세가 연세인지라 보름 남짓 퍽 고생을 하셨지요. 병이 나은 뒤 아버지와 함께 식사를 하는데, “이번에 다시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해봤다.”고 하시더군요. 저희 집은 별로 경계가 없이 대화하는 편이지만 그래도 연세 많은 부모님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 저는 속으로 반색을 했습니다. 어른과 이런 대화를 나누는 것은 책을 읽는 것보다 더 큰 공부가 되기 때문입니다.

무신론자인 아버지께서는 영혼과 사후세계에 대한 생각 등을 말씀하시며, 죽을 때가 되면 죽음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잘 지켜보고 저희에게도 최대한 알려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멋진 계획을 들으며 가슴이 뿌듯했습니다. 생의 마지막까지도 당신 방식대로, 당신 계획대로 살아내려는 그 결의에 감탄하고 감사했지요.

웰다잉(well-dying)이란 말이 유행입니다만, 죽음을 모르는데 어찌 잘 죽는 법을 알겠습니까. 죽음은 무엇보다 모르는 것입니다. 그 점을 일러주는 좋은 예가 『논어』에 나옵니다. 제자 자로가 “감히 죽음에 대해 묻고자 합니다.” 하니, 공자가 한마디로 잘라 대답합니다. “삶도 아직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는가?(未知生 焉知死)”

『논어』를 보면 공자는 시종 ‘지금 여기’의 삶에 대해 이야기할 뿐, 저 너머 피안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습니다. 그에 대해서는 오직 모른다는 자세만을 견지합니다. 저는 이것이 학자 공자의 위대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는 것, 알 수 있는 것과 인간으로서 모를 수밖에 없는 것을 구분하고 인간으로서의 앎에 철저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사는 이 삶에 대해서도 모르는 것투성이인데 죽음에 대해서 뭘 알겠습니까. 모르는 게 당연하고 모르기에 두려운 것이 당연합니다.

미국 최고의 에세이작가이며 ‘지성계의 여왕’이라고 불릴 만큼 현대 문화계에 큰 영향을 미친 수전 손택의 마지막을 읽으면서 저는 이 단순하지만 자명한 진리를 다시 한 번 떠올렸습니다. 손택은 2004년 3월 29일 세 번째 암 선고를 받고 그해 12월 28일 세상을 떠났는데, 『어머니의 죽음』은 그녀의 외아들인 작가 데이비드 리프가 그 9개월간의 투쟁과 고통과 회오를 기록한 책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놀란 것은 죽음에 임하는 손택의 태도였습니다. 마흔둘에 유방암 4기 진단을 받고 긴 투병 끝에 회복한 손택은 예순이 넘어서 다시 자궁육종을 앓았고, 그 병에서 회복한 지 6년 만에 (백혈병으로 진전될 것이 분명한) 골수이형성증후군 진단을 받습니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다 소설․비평․각본․연출을 섭렵하며 전방위 예술가로 전 세계에 이름을 떨친 인생이니 ‘당연히’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리라, 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더구나 세 번째 암 선고였고, 의사도 모든 점에서 희망이 없다고 단언했으니 더욱 그러리라 생각했지요.

그런데 손택은 제 기대와는 전혀 다르게 행동했습니다. 그녀는 희망이 없다는 의사의 말에도 불구하고 실낱같은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죽음에 이르기까지 9개월 동안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겪으면서도 희망을 찾았습니다. 절대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것, 그것이 그녀가 죽음에 임한 자세였습니다.

누군가는 그런 그녀를 보며 ‘노추(老醜)’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만큼 오래 아프면서 그 나이까지 살았으면 됐지 뭘 더 바라느냐고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앞서 두 번의 암 선고 때마다 그녀는 똑같은 자세로 임했고, 희망이 없다는 상태에서 희망을 만들어냈습니다. 단지 살아낸 것만이 아니라 그 고통을 겪으며 『은유로서의 질병』,『인 아메리카』 같은 걸작을 만들어냈던 것입니다.

리프는 자신의 어머니가 “살아온 대로 돌아가셨다”고 말합니다. 그녀는 아무것도 할 게 없다는 상황에서 자신이 할 것을 찾았고, 스스로 말했듯 ‘영원한 학생’으로서 배울 수 있는 모든 것을 배우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고자 했습니다. 또 작가로서 그녀는 아직도 쓰지 못한 글이 있다고 믿었고 그걸 쓰기 위해 최선을 다해 싸웠습니다.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말에도 손택은 죽음을 생각하고 죽음을 알려 하는 대신 삶을 계획하고 삶을 꿈꿉니다. 누구는 부질없다 할 것이고, 누구는 어리석다 하겠지요. 하지만 저는 극도의 고통과 최고의 명예와 짧지 않은 생애를 누리고도 여전히 그 다음을 꿈꾸는 그녀의 열정에서 감동과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고통이나 명예 따위와 상관없이 오로지 자신의 삶을 살았고, 죽음 또한 그렇게 살았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잘 죽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잘 죽는’ 건 어떤 죽음일까요? 흔히 생각하는 웰다잉의 모습은 편안하고 순한 죽음, 사랑하는 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큰 고통 없이 서서히 죽는 죽음일 겁니다. 하지만 이 또한 죽음을 보는 산자들의 시각일 뿐, 죽는 자가 느끼는 ‘잘 죽는 죽음’이 무엇인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노르베르트 엘리아스가 말했듯이 죽어가는 자는 고독합니다. 그가 무엇을 보고 느끼는지 남은 자들은 알지 못합니다. 거대한 간극이 생기는 것이지요. 그리고 죽음은 그 간극과 직면하는 것입니다.

한국인의 60%가 죽음이 두렵지 않다지만, 저는 죽음은 두려워 마땅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 때문에 삶을 망치는 것이겠지요. 죽음이 두려워 삶의 원칙을 저버리고, 그릇된 환상에 삶을 내주고, 오로지 죽음만을 생각하며 삶을 저당 잡힌 뒤에 죽음을 잘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잘 죽는’ 죽음이 아닐 겁니다.

리프는 어머니에 대한 회한에 잠길 때마다 “인생은 과거를 돌아볼 때 비로소 이해할 수 있지만 사는 것은 미래지향적이어야 한다.”는 키에르케고르의 말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그는 어머니가 미래를 살았으며, “세상에 마무리 같은 것은 없”음을 되새깁니다. 삶을 마무리하는 것은 삶이며 슬픔을 마무리하는 것 또한 슬픔이니 결국 다른 마무리란 없다는 뜻이지요.

지난 8월 18일, 마지막 순간까지 미래를 살았던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여든다섯의 나이에 일주일에 세 번 신장투석을 받는 환자였지만 그는 생의 저물녘에도 죽음 대신 삶을 생각했습니다. 유언장 대신 연설문을 썼고, 자신이 살아서 해야 할 일을 고민했습니다. 그것이 죽음을 맞는 최선의 방법인지는 알 수 없으나 최선의 삶으로서 죽음에 임하는 한 가지 방법인 건 분명합니다.

삶이 천차만별이듯 죽음도, 죽음에 대한 생각도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잘 죽기 위해서는 먼저 잘 살아야 한다는 겁니다. 수전 손택과 김대중, 두 사람은 열정적인 삶만큼이나 뜨거웠던 그 죽음을 통해 죽음이 삶의 연장임을 일깨웁니다. 그들이 간절히 바랐던 미래를 살고 있는 지금, 죽은 자에게 미안하지 않게 최선을 다해 살겠다고 서원(誓願)합니다. 그것이 죽음을 모르는 제가 죽음에 임하는 자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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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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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티로 (212.XXX.XXX.116)
웰다잉 - 이 산 자들의 시각이라는 말이 와 닿습니다.
그러고보니 죽음 이라는 건 그야말로 살고 있는 우리에겐 미스테리네요.
이 죽음의 미스테리보다 그러나 삶의 미스테리로도 우리에겐 시간이 충분하지 않을지도요...
좋은 글 늘 감사합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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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03 00:02:47
0 0
cathypark (121.XXX.XXX.5)
죽음에 임하는 자세는 오래전 대선배철학자의말처럼 내일 지구가 망하더라도 나는 한그루의나무를 심겠다는 것이 맞구요,삶에 있어서는 현재 주어진 것을 기쁨과 만족으로 즐기는 것입니다.비록 소인배들이 잘났다고 판치고 난무하는 세상이라하더라도 아량으로 지켜봐주고밥통가지고는 싸움질않는것입니다 아울러 내가 가진것을 못가진 자와 나누겠다는 정신으로살면 죽음에 대해서도 초연할것이라 봅니다.삶의 목적이 뚜렷하고 그 가치관이 바르다면 살아도 죽어도 늘 감사하고 기쁜 마음일 것입니다.인생살이에 희노애락이 어찌없으리요마는 그 와중에서 인생의 묘미를 느끼고 나의 삶자체를 즐기는것,늘 겸허하고 남을 배려하는 자세로 산다면 멋있는 인생을 살다가 죽게되는 것이니 결국 죽음까지 멋있게 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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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02 14:23:28
0 0
올리브 (221.XXX.XXX.253)
잘 죽기 위해서 잘 살아야 한다는 말, 가슴을 울리네요.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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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02 12:03:26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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