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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자격, 그 질긴 목숨
고영회 2009년 07월 30일 (목) 07:56:21
2000년대 초부터 기술사들은 인정기술사제도를 폐지하라고 거세게 요구하였습니다. 그 영향으로 제도개선책이 마련되었고 이제는 인정기술사제도는 거의 없어지고 있습니다. 인정(認定)이란 진짜가 아닌데도 진짜와 같이 취급해 준다는 뜻입니다. 인정기술사는 정식으로 자격자가 아니지만 다른 요소, 즉 학력이나 경력에 의해 정규 자격자와 마찬가지로 취급을 해 준다는 뜻이니 정상적인 제도라 할 수 없습니다. 이런 제도는 정규 자격자로 채울 수 없는 특별한 사정(기술사 대량 부족 등)이 있는 경우에 도입되었습니다. 비정상적인 제도이기 때문에 그런 사정이 없어지면 원래 상태로 환원되어야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비자격자를 동등하게 인정해 주기 위해서는 진짜 자격자와 같은 자질을 가졌다는 것을 인정할 만한 검증을 거쳐야 합니다. 이런 원칙들을 벗어나 그저 세월만 지나면 기술사와 같이 대우해 주는 속칭 인정기술사제도가 운영되었기 때문에 기술사들의 반발을 샀고 그 후 제도 개선을 통하여 인정기술사는 점차 없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변리사제도에는 인정기술사와 유사한 것이 아직도 있습니다. 현행 변리사법 제3조(자격)에는 변호사 자격을 가진 자도 변리사등록을 하면 변리사 자격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변리사가 되려면 시험을 통과해야 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런데도 변호사 자격자는 서류를 갖추어 등록만 하면 자동으로 변리사 자격이 생깁니다. 이렇게 변리사가 된 사람은 인정기술사에 비교하여 인정변리사(認定辨理士)라고 부를 만합니다.

변호사에게 변리사자격을 부여하는 것이 정당성을 가지려면 ‘변호사자격이 있으면 변리사 자질이 있다’는 것이 확인되어야 합니다. 즉 사법시험을 통과하고 사법연수원을 수료하면 현행 변리사시험을 통과한 것에 가름할 수 있는 자질을 갖추었다는 것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법시험과목에 변리사 시험과목에 있는 과목들이 포함되어 있거나, 연수과정에서 일정 학점 이상을 이수하여 변리사로서 업무를 수행하는 데 차질이 없다고 확인되는 사람에게 변리사자격을 준다면 납득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인정변리사 자격은 사실을 왜곡합니다. 발명자들은 정식으로 변리사가 된 사람과 자동으로 변리사자격을 가진 자를 구분할 방법을 모릅니다. 오히려 사정을 모르는 사람은 변리사이면서 변호사 자격을 갖고 있으니 더 전문가일 것이라고 오인하기 십상입니다. 비전문가가 더 전문가로 인정받는 셈이지요.

인정변리사제도와 같이 원칙과 사실을 왜곡하는 제도는 빨리 없애야 합니다. 변리사, 기술사, 세무사 등 각 분야 전문가를 정식 절차를 거쳐 배출하고 그들이 자기 영역에서 자부심을 갖고 활동할 수 있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입니다. 그런 제도가 밑바탕이 되어야 우리의 미래를 기약할 수 있습니다.

자유선진당 이상민 의원이 2008년 8월 7일 변호사에게 자동으로 변리사ㆍ세무사 자격을 주는 제도를 폐지하는 세무사법 개정안과 변리사법 개정안을 발의했었습니다. 그는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세무ㆍ변리 분야에서 변호사자격을 취득할 시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채 자격을 당연 부여하는 것은 불합리하고 변호사자격 취득자에게 부당한 과잉특혜를 주는 것이므로 폐지해야 한다”고 이유를 밝혔습니다. 이 의원 자신이 변호사 출신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법안이 제출된 이후 지식경제위원회에서 제대로 심의되지 않고 있나 봅니다. 하긴 작년 국회 개원하는 것부터 그렇게 힘들었고, 개원 후에는 한미자유무역협정 비준 문제로 국회를 공전시키더니 회기가 끝나자마자 휴가들 잘 즐기고 해를 넘겼죠. 올해 들어와선 그 문제들을 해결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미디어법으로 국회는 여전히 휴업 중입니다. 앞으로 또 어떤 핑계가 나타나 국회를 놀게 할지 알 수 없습니다. 여러 민생 법안들은 언제 처리될지 까마득해 보입니다. 비정규직 관련 법안조차 처리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에 인정자격제 폐지 타령은 한가한 소리에 지나지 않는 것인지요. 인정자격인지 자동자격인지 그놈은 참 목숨이 질기기도 합니다.

   




고영회(高永會) mymail@patinfo.com
1958년생, 진주고, 서울대 건축학과 졸업
기술사(건축시공, 건축기계설비), 변리사
대한기술사회 회장, 대한변리사회 공보이사 역임
현재,
행정개혁시민연합(행개련 www.ccbg.or.kr) 과학기술공동위원장
바른 과학기술사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과실연 www.feelsci.org ) 국민실천위원장
성창특허법률사무소(www.patinfo.com)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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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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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황규 (119.XXX.XXX.235)
인정자격, 그 질긴 목숨. 잘 보았습니다.
글도 맛깔스럽고 주장도 명쾌합니다.
변호사에게 자동으로 부여하는 변리사 제도는 문제가 있군요.
자유칼럼그룹의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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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31 15:3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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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 (99.XXX.XXX.163)
오랜 시대의 낡은 관행이 없어져야 진정한 선진국으로
향하는 길일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옛부터 전문가가 부족하면 그저 오래 일해온 경험자를
전문가처럼 대우하였지요. 물론 경험도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시대가 수십년전이 아닌데도 전문적인 공부를 하지 않은 사람들, 경험조차 없는 사람들에게 자격을 주는 것은 메스를 대어본 경험도 없는 돌파리 의사에게 건강을 맡기는 것과 다름없지 않을까요?
답변달기
2009-07-30 08:3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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