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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봉변을 당했을 때 - 『블랙 라이크 미』
김이경 2009년 07월 21일 (화) 01:52:59
후배 어머니께서 다리를 다치셨답니다. 길에서 갑자기 한 남자가 튀어나와 발을 걸어 넘어트렸다는 겁니다. 다행히 상처는 깊지 않아서 일주일 정도 치료하면 된다지만 놀람은 쉬 가라앉지 않습니다. 무서운 세상인 줄은 알았지만 아는 분이 훤한 대낮에 그런 일을 당했다니까 등골이 오싹합니다.
“그 사람은 뭐래? 왜 그랬대?”
“모르겠어요. 외국인노동자 같은데 넘어지는 거 보고 도망갔대요.”
근처에 공장이 있어서 외국인노동자들을 종종 보긴 했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라며 후배는 한숨을 쉽니다. 그러더니 이내, “월급이라도 떼여서 분풀이를 했나 보지요.” 하고 착한 성품을 드러내며 웃습니다.

웃으며 얘기할 수 있는 정도의 피해로 끝나서 천만다행이지만, 이런 일이 언제든 또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웃을 수만도 없습니다. 원한은 고사하고 아무 인연도 없는 사람에게 해코지를 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세상입니다. 돈이 많아서 경호원을 대동할 형편도 아니고, 호신술을 익히기엔 몸이 너무 무겁고, 궁리 끝에 가스총이라도 장만할까 하다가 그만두었습니다. 존 하우드 그리핀이 48년 전에 쓴 『블랙 라이크 미(Black like me)』라는 책 때문입니다.

1961년에 처음 출간된 이 책은 한때 “저속하고 외설적”이란 이유로 고소를 당하고 금지도서가 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미국 학생들의 권장도서로 꼽히는 저작입니다. 한국어판에는 원 텍스트와 함께 책이 출간된 뒤의 사연을 담은 에필로그와 발문 등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걸 보면 이 작은 책이 미국 사회에 얼마나 큰 충격과 영향을 주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책은 발상부터가 충격적입니다. 작가이며 음악이론가이고 사진가이자 신학도인 그리핀은 1959년 10월 28일 밤, ‘흑인이 되기’로 결심합니다. 흑인이 되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하실 텐데요, 말 그대로 백인인 외모를 흑인으로 바꾸기로 한 겁니다. 그는 울렁증을 참아가며 색소 변화를 일으키는 약을 먹고, 며칠 동안 태양등 아래서 온몸을 태운 뒤 머리를 삭발하고 검은 칠까지 합니다. 결과는 대성공. 그리핀은 완벽한 흑인으로 변신하여 흑인 차별로 유명한 딥 사우스1) 지역으로 들어갑니다. 흑인이 되기로 결심한 날로부터 열흘이 지난 11월 7일 밤의 일입니다.

별별 희한한 일이 다 일어나는 21세기지만, 지금 봐도 그리핀의 시도는 놀랍습니다. 더구나 그는 세상의 눈길을 끌기 위해 깜짝쇼를 벌인 것이 아닙니다. 그는 남부 흑인들의 자살이 늘고 있다는 신문기사를 본 뒤, 흑인을 자살로 내모는 현실을 알기 위해 변신을 결심했습니다. 실제 현실이 어떤지 알아야만 백인과 흑인 사이에 이해가 가능하고 변화도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그가 이런 생각을 한 데는 그의 남다른 경험도 한몫을 했습니다. 그는 2차 세계대전 때 레지스탕스 운동에 가담했고, 미 공군에 들어가 태평양 전쟁의 최전선에서 싸웠으며, 폭발 사고로 시력을 잃었다가 1957년 갑자기 시력을 되찾기까지 십 년 동안 시각장애인으로 살았습니다.

언뜻 보아도 파란만장한 이 경험들을 통해 그는 타자(他者)로 산다는 게 어떤 것인지 깨닫게 됩니다. 그는 타자를 만드는 사회, 타자를 배제하는 사회를 향해 말합니다. “시력을 잃은 한 사람이 있다. 그러나 그는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잃은 게 없다는 것을 이해하라. 그의 지성도, 취향도, 이상도, 존중받을 권리도, 어느 것도 잃지 않았다.”

그가 흑인 문제에 관심을 갖고 차별에 분노하는 것도 그래서입니다. 인간은 그 모든 차이에도 불구하고 똑같이 귀한 존재라는 것, 영혼은 언제 어디서나 평등하며 그럴 권리를 가졌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블랙 라이크 미』는 흑인 차별의 실상을 고발한 논픽션이지만, 단지 폭로와 비판만 있는 책은 아닙니다. 그리핀은 외모를 바꾼 뒤 자신이 겪은 심리적 불안과 갈등을 숨김없이 드러내며, 사회적 차별이 한 개인의 내면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꼼꼼히 기록합니다. 덕분에 이 책은 인간에 대한 철학적 탐구서로도 손색이 없습니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너무도 완벽한 변신이었다. 내가 전혀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나는 두 사람이 되었다. 한 사람은 관찰하는 이고, 다른 한 사람은 공황상태에 빠져 뼛속 깊은 곳까지 흑인을 느끼는 이였다. 엄청난 외로움이 몰려왔다. 한때 나였던 존재, 내가 아는 자아가 다른 이의 육체에 가려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끔찍한 것은 이 낯선 존재에 대해 내가 어떤 동료의식도 느낄 수 없다는 점이었다. 나는 이 낯선 존재의 생김새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일은 벌어졌고 되돌릴 수 없었다.”

“어느덧 3주가 지났고 거울 속에 낯선 남자가 있어도 더 이상 놀라지 않았다.… 얼굴은 편안해 보이지 않았고 어디에도 마음을 두지 못하는 절망감이 가득했다. 내 마음도 오랫동안 텅 빈 채로 지내는 사이 그런 모습으로 변했다. 마음은 늘 먹을 것과 물 생각이었다.… 화장실에 혼자 있는 게 기쁘기만 했다. 마음 깊은 곳에 이 삶의 더러움과 굴욕이 깊이 박혀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수도꼭지만 틀면 마음껏 물을 마실 수 있고 시원한 물로 세수하는 사치도 누릴 수 있었다. 문에 빗장을 걸어놓으면 증오의 시선을 받지 않았고 경멸당하지도 않았다.”

흑인이 백인보다 먼저 버스를 타고 내릴 수도 없던 시대에 씌어진 책이 흑인 대통령이 탄생한 지금도 여전한 충격과 감동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책에 그려진 인간의 모습이 그리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핀은 피부색만 바꿨을 뿐인데도 자신이라고 믿었던 정체가 흔들려서 어쩔 줄 모르는 것이 인간이며, 모습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사람에게 증오를 드러내는 것이 인간이고, 자신의 믿음이 그토록 허약한데도 그런 줄을 모르고 으스대는 것이 인간임을 보여줍니다.

안타깝게도 그가 보여주는 인간의 허약함은 낯설지 않습니다. 책 맨 앞에 실린 추천사에서 저술가이자 어린이잡지의 발행인인 김규항 씨는, 일본인에게선 조센징 같지 않은 조선인으로, 경상도 사람에게선 전라도 사람 같지 않은 전라도인으로 칭찬받아온 아버지를 떠올리며 우리 안의 ‘흑인’을 이야기합니다. 이 짧은 추천사는 우리 사회에 엄연한 차별에 대해, 그리고 그 차별을 부추긴 침묵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블랙 라이크 미』는 누군가 울고 있을 때 그 울음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고 말합니다. 억울한 일을 겪고 터무니없는 봉변을 당한 누군가를 보며 내가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이 책은 우리 모두가 다행하려면 남의 울음 속을 살피고 울게 한 사람 속까지 살펴야 한다고 가르쳐줍니다.

사람이 사는 데는 먹이사슬만이 아니라 슬픔의 사슬도 작동합니다. 누군가 아프고 슬픈 일을 겪으면 그 눈물이 돌고 돌아 결국 내 발끝이라도 적시고 마는 게 세상 이치입니다. 그러니 모두 무사한 세상을 살려면 가스총이 아니라 밝은 귀와 맑은 목청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숨죽인 울음소리도 잘 듣는 밝은 귀와 남의 울음을 대신 울어주는 맑은 목청이 있다면, 모르는 이에게 해코지하는 날선 마음도 조금은 덜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1) 딥 사우스(Deep South) 미국 남부의 사우스캐롤라이나, 미시시피, 앨라배마, 조지아, 루이지애나를 가리키며 때론 플로리다와 텍사스를 포함시키기도 한다. 그리핀이 책을 쓸 당시 흑인에 대한 차별이 가장 심했던 지역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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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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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옥 (210.XXX.XXX.86)
지금 이시대 우리에게 가장 절박한 타인에 대한 배려를 생각하게 하는 책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있는자가 없는 자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일이 그토록 못마땅한 일일까요?
없는 자의 죽음에는 눈썹하나 까딱하지 않겠다는 무정한 있는자들의 목소리가 너무 큽니다.그들이 없는자의 고통을 통절하게 겪을 그날이 오기전에 참회 할 수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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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29 23:5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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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218.XXX.XXX.111)
이 글을 읽으며, 나 자신부터 반성 많이 하게 됩니다. 언제부터 형성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성장과정에서, 교육이나 어른들, 언론들을 통해서 보고 느끼면서 몸에 배었을 것입니다. 백인과 흑인, 선진국과 비선진국, 부자와 가난한 자,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 남자와 여자, 비장애인과 장애인, 일류대와 비일류대, 남한과 북한, 남한국민과 조선족... 이러한 대비에는 항상 차별의식이 잠재해있어서 쓸데없는 자의식과 사회갈등을 키워가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사람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볼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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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27 16:3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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