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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ㆍ담배와 강박장애
황경춘 2009년 07월 18일 (토) 09:02:20
술과 담배 의존증(依存症)에서 벗어나려는 피눈물 나는 싸움에서 본인들은 어느 쪽이 더 힘든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양쪽을 다 겪어 본 분들의 경험담을 들어보면 퍽 흥미로울 거라 생각합니다.

제 선친은 치주암(齒周癌)으로 고생하다 타계하셨는데 평소 애주가였던 거와는 달리 술은 임종 반년쯤 전부터 전연 찾지를 않으셨습니다. 그 반면 담배는 돌아가시기 이틀 전까지 불편한 입을 열며 피우셨습니다.

결국 옆에서 보기에는 술에 대한 의존증은 어느 정도 억제할 수 있으나 니코틴 중독은 어찌할 수 없으셨던 모양입니다. 선친은 젊었을 때 술을 무척 좋아하셨지만 환갑을 지나 체력이 쇠퇴하기 시작하여 과거의 주량을 감당하지 못하는 사례를 몇 차례 겪자 그렇게 사랑하던 술의 양을 의도적으로 조절하는 노력이 눈에 띄었습니다.

담배는 체력감퇴에 관계없이 과거의 수량을 계속 유지하셨습니다. 다만 병세의 악화로 술을 끊으신 후에는 담배도 점차 피우는 수를 줄이기는 하셨으나 완전히 끊지는 못하셨습니다.

니코틴의 해독은 몸으로 쉽게 느낄 만큼 직접적인 것은 아니어서 체력 저하에 관계 없이 끽연량을 계속 유지하셨던 데 비해 알코올이 주는 정신적 육체적 고통은 직접적이어서 그만큼 쉽게 감지(感知)되니 그 대책도 미리 세울 수 있었다고 봅니다.

담배는 말기 암의 통증을 어느 정도 완화하는 듯이 보였기에 간병하는 가족들도 끝까지 금연을 권하지는 않았습니다. 니코틴 금단증상(禁斷症狀)으로 오는 고통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국가나 사회기관이 꾸준히 추진하고 있는 금연운동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위에 아직도 담배를 끊지 못하는 분이 꽤 많은 것을 보면 담배의 니코틴이 사람의 신경을 좀먹어 약물중독자로 만드는 무서움을 깨닫게 됩니다. 니코틴과의 싸움이 알코올의 유혹에 대한 저항보다 더 어려운 것 같다고 생각됩니다.

알코올과 니코틴 외에 사람의 몸과 마음을 좀먹는 것으로 헤로인과 코카인 같은 소위 마약 종류도 있지만, 그보다는 훨씬 조용하게 그러나 집요하게 사람을 괴롭히는 습관성 질환에 강박장애(Obsessive-Compulsive Disorder)라는 것이 있습니다.

미국의 한 연구에 의하면 미국인 다섯 사람 중 한 사람, 즉 약 6백만 명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 강박장애에 시달리고 있다고 합니다. 강박장애가 심한 환자는 조울증이나 정신분열증과 구별하기 어려운 증상을 나타내는경우도 있지만, 가벼운 사례는 복잡한 현대사회생활에 시달리는 우리 주위에서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저는 담배는 애초부터 피울 생각을 안 했고, 술은 생리적으로 몸이 받아주지 않아 폭음을 못하니 니코틴이나 알코올에서 오는 직접적 피해 경험은 없습니다. 그러나 강박장애의 증상은 여러 모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취재경쟁에서 살아남으려는 강박감을 항상 지니고 살던 기자시절에 제게는 모르는 사이에 여러 가지 비정상적인 버릇이 몸에 배었습니다. 그 하나가 아무런 필요나 이유 없이 수를 세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다방이나 식당에 들어가 주문한 음료나 식사가 나오는 동안 벽에 걸린 시계 문자판을 보며 열두 개 있는 숫자를 둘씩 묶어 ‘2, 4, 6, 8’ 하며 12까지 세는 따위입니다. 시계방향으로 돌다가 반대로 돌아 세기도 합니다.

벽지에 같은 모양의 문양(紋樣)이 있으면 가로는 몇 개, 세로는 몇 개 하고 셉니다. 지하철이 생기고 계단을 이용하게 되자 오르내리면서 꼭 계단 수를 셉니다. 자주 이용하는 출입구의 계단 수는 대충 기억하게 됩니다.

텔레타이프 앞에서 기사를 쓰면서 두 다리를 교대로 흔드는 버릇을 지금도 가끔 식탁에서 또는 지하철 안에서 재현하다가 아내에게 혼나기도 합니다. 손가락으로 한자나 영어 단어를 써보는 버릇도 젊을 때 익힌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강박 또는 긴장 상태를 무의식적으로 좀 완화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정신분석가는 말하는 모양입니다만 본인으로서는 딱하고 이를 교정하려는 노력이 매번 수포로 돌아가는 데 대한 허탈감으로 마음 상할 때가 많습니다.

이 나이에 이르기까지 아침 식전에 인터넷 메일부터 챙겨보는 습관도 강박장애에서 오는 버릇이라 봅니다. 현역기자 시절에는 시차 때문에 미국에서 오는 중요한 연락 사항이 자정이 지난 시간에 많이 들어왔습니다. 그때엔 아침 일찍 컴퓨터를 여는 것이 필수였습니다.

한 의학보고에 따르면 강박장애는 두 살 되는 어린아이 시절에 시작된다고 합니다. 초등학교 아동들이 공부에 지장을 줄 정도로 휴대전화나 컴퓨터 게임에 빠지는 것도 이러한 관점에서 초기에 손을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가 아니라 '두 살 버릇 여든 간다'는 뜻이니까.

   




  -일본 주오(中央)대 법과 중퇴
-주한 미국 대사관 신문과 번역사, 과장
-AP통신 서울지국 특파원, 지국장
-TIME 서울지국 기자
-Fortune 등 미국 잡지 프리 랜서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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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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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식 (222.XXX.XXX.38)
우경선생님, 임상학적 견해(?)로 볼때 선생님의 가벼운
증상은 그저 남다른 습관이 아닐런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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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19 19:4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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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옥 (210.XXX.XXX.182)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심하게 다리를 떨던 사람이 생각납니다. 그 때는 너무 젊었고, 타인을 이해해 줄 만한 그릇도 못되었던 탓에 경박하다는 인상만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함으로서 다소라도 긴장감을 줄일 수 있었다면 얼마던지 이해하고 용납했을 것을 하는 후회도 됩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타인을 알아보고 이해 할 수 있는 것 이라면 얼마던지 나이를 더 먹는다고 해도 기꺼워할 것입니다.
답변달기
2009-07-18 23:4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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