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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의 사나이
김창식 2009년 07월 11일 (토) 01:16:02
   
세계가 인정하는 역대 영국 제일의 감독은 데이비드 린(David Lean, 1908~1991)입니다. 그는 '의사 지바고', '콰이 강의 다리', '아라비아의 로렌스', 등 블록버스터 급 영화에서 우리에게 스펙터클한 감동을 안겨 주었습니다. 역사적 사건을 시대배경으로 박진감 있는 서사와 웅장한 화면, 배우들의 열연을 이끌어 낸 거장(巨匠)의 이름에 걸맞은 감독이었죠.

데이비드 린보다 덜 알려졌고 오래 전 활동을 접었음에도 린에 못지않게 평가되는 감독은 캐롤 리드(Carol Reed, 1906~1976)입니다. 그가 만든 영화는 많지 않으나 '올리버', '제 3의 사나이(The Third Man, 1949)'로 지금도 세인의 이름에 오르내리는 감독이지요.

제 3의 사나이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연합국에 의해 분할 점령된 빈을 무대로 우정과 의리, 음모와 배신을 다룬 흑백스릴러 물입니다. 영국소설가 그레이엄 그린이 자기의 소설을 각색, 참여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미국의 대중소설가 홀리 마틴스(조셉 코튼)는 친구인 해리 라임(오손 웰스)의 동업제의로 빈에 도착하지만 친구가 교통사고로 사망했음을 알게 됩니다. 친구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의심을 품던 중 사고현장에 제 3의 사나이가 있었다는 목격자의 말을 듣습니다. 사고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홀리는 해리의 연인인 안나 슈미트(알리다 발리)에게 연정을 느끼는데 사실 해리는 죽은 것이 아니었어요. 범법행위(불량 페니실린 암거래)를 은폐하기 위하여 죽은 척 꾸민 것이지요. 불량 약품의 부작용으로 환자들이 죽고 일반 시민의 피해가 속출하자 갈등하던 홀리는 해리를 만나 설득하지만 해리는 응하지 않습니다. 잠복한 경찰의 추격을 피해 도망치던 해리는 궁지에 몰리며 결국 홀리의 총에 맞아 죽음을 당합니다. 친구의 진짜 장례식을 마치고 홀리는 가로수 길에서 안나를 기다리나 그녀는 무심히 그의 곁을 스쳐 지나갑니다.

캐롤 리드 감독은 20세기 초 한때 세계영화를 이끌었던 독일표현주의 기법을 차용하여 새로운 영화문법을 완성하였습니다. 사각(死角)앵글의 카메라 워크, 극단적인 클로스업과 롱테이크의 빈번한 사용, 수평과 수직의 프레임(벽에 비치는 긴 그림자 같은)으로 인물들의 불안한 내면 심리를 은유하거나, 관객으로 하여금 다가올 재앙을 예감하도록 장치하였습니다.

특히 빈 지하 하수구에서의 추격전을 그림자로 처리하여 긴박감을 고조하였는데, 이 수법은 나중 많은 영화에 영향을 끼쳐 패러디되거나 오마주 형태로 재현되었습니다(예: '대부 2'. 호수에서의 살해 장면을 그림자로 처리함). 또한 안톤 카라스의 지터(Zither, 인도의 전통 타악기) 연주는 양철 지붕 위를 두드리는 빗방울처럼 애잔하게 때론 급박하게 영화 전편에 흐르며 영화의 음울한 분위기에 초조함과 불안함을 더 하였지요.

영화의 또 다른 볼거리는 명배우들의 열연입니다. 영화사상 10대 영화의 첫머리에 오르는 '시민 케인'으로 유명한 천재 오손 웰스야 말할 것도 없고, 트위드 롱코트가 어울리는 조셉 코튼도 우울하며 과묵한 험프리 보가트 류(類)의 연기를 펼쳤습니다. 맥시코트를 입고 나오는 알리다 발리도 분위기가 있었으며, 해리를 쫓는 캘러웨이 소령 역의 트레버 하워드도 절제된 연기를 보여 주었습니다.

무엇보다 이 영화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빈 공동묘지 가로수 길에서 홀리가 안나를 기다리는 마지막 시퀀스이지요. 안나는 하늘을 찌를 듯이 서있는 가로수 길을 또각또각 걸어 나오더니 기다리는 홀리에게는 눈길 한번 주지 않고(이 대목에서 우리는 둘이 한통속이 되리라 짐작했었는데!) 프레임 바깥으로 사라져 버립니다. 홀리는 천천히 담배를 꺼내 물지요. 발치에 나뭇잎이 떨어져 내리고 지터 소리는 가슴을 헤집으며... 이 마지막 장면의 안타까움이 영화의 백미입니다. 아마 영화사상 가장 유명한 라스트 신이 아닐까 생각되는군요.

이 영화는 불법을 행하는 친구에 대한 연민과 공공선(共公善)에의 의지(시민의 안전과 질서의 수호)의 충돌이라는 묵직한 주제에다 친구의 애인에 대한 연모의 감정과 내면의 갈등, 반전, 액션 등 대중 친화적 요소를 가미하여 평론가와 관객 모두를 만족시킨 심리스릴러의 고전입니다.

주인공 홀리의 '그들만의 의리(어디선가 들어 보았음직한!)'를 뛰어넘은 선택은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많습니다. 어려운 결정을 내린 그가 얻은 대가는 무엇이었을까요? 떨어져 내리는 나뭇잎. 떠나가는 여자의 뒷모습. 멀어지는 발자국 소리... 그밖에?

   




  김창식 nixland@naver.com
경복고, 한국외국어대학 독어과 졸업
재학중 독일어로 쓴 소설, 수필, 논문집 간행
대한항공 프랑크푸르트 공항지점장 역임
외대문학상(단편), 2008 '한국수필' 신인상 수상
음악, 영화, 문학, 철학적 관점을 감성적 문체로 표현.
blog.naver.com/nix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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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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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식 (110.XXX.XXX.27)
김영수 님, 김윤옥님, 댓글 감사합니다.
저는 '공포의 보수', '제3의 사나이', '양들의 침묵'을
걸출한 3대 서스펜스 스릴러 영화로 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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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14 21: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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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옥 (210.XXX.XXX.40)
안나는 하늘을 찌를 듯이 서있는 가로수 길을 또각또각 걸어 나오더니 기다리는 홀리에게는 눈길 한번 주지 않고 프레임 바깥으로 사라져 버립니다. 홀리는 천천히 담배를 꺼내 물지요. 발치에 나뭇잎이 떨어져 내리고 지터 소리는 가슴을 헤집으며... 이 마지막 장면의 안타까움이 영화의 백미입니다. 아마 영화사상 가장 유명한 라스트 신이 아닐까 생각되는군요...............
김창식님의 몇(?)번 의 첫사랑도 영화처럼 극적이었을 듯 합니다. 영원한 로맨티스트 이시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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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11 19: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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