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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은사(泉隱寺)에서
오마리 2009년 07월 09일 (목) 01:01:24
가끔 삶의 무게가 버거워질 때마다 조용히 찾아가 쉬고 싶은 곳들이 있습니다. 마음이 심란할 때마다 한여름의 시원한 선들바람처럼 헝클어진 내 사념을 다스려 주는 추억이 깃든 곳들입니다. 그 중에서도 잠시 S시에 머물렀던 유년시절 기억 속의 한 페이지를 먼저 말하고 싶습니다. 그 한 페이지는 소소한 추억이며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으로 계산해 보면 아주 짧은 순간일 뿐입니다. 그러나 이 유년의 추억이 없었다면 고단한 삶의 여정에서 때때로 회상에 젖으며 정신적 휴식을 취할 수 있었던 내 마음의 쉼터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만큼 그곳은 소중한 내 영혼의 고향으로 생각됩니다.

   

10세 무렵 학교에서 소풍을 가기로 결정된 곳은 그 당시도 다리가 시원찮았던 나에게는 갈까 말까 망설일 만큼 먼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기차와 버스, 도보로 대사찰 구례 화엄사(華嚴寺) 답사 소풍을 끝낸 후 그 근처에 있는 작은 절, 천은사(泉隱寺)로 2차 답사를 가게 됐습니다. 기대하지도 않았던 일입니다. 길도 제대로 없었고 숲과 바위와 청정한 계곡의 물소리에 묻힌 심심산속, 인적이 없는 숲 속에 숨어 있던 고요한 절 천은사를 처음 마주했을 때의 인상은 오래 나의 뇌리에 남아 있었습니다.

천은사는 아담하고 규모가 작은 절입니다. 대사찰들 특유의 웅장함이나 장중함은 없습니다. 대웅전 벽의 면 분할이 보여주는 완벽한 조화미를 자랑하는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 수덕사, 소백산맥의 수려한 전망과 팔작지붕 처마를 받치고 서있는 날렵한 배흘림기둥의 극치미를 자랑하는 부석사,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해인사, 국보 13호인 맞배지붕의 극락보전과 삼존벽화 그리고 수월관음도 벽화를 자랑하는 강진 무위사와도 다릅니다.

그러나 천은사에는 다른 곳에서 찾아 볼 수 없는 깊고 신선한 매력이 있습니다. 한 번 찾게 되면 다시 또 가고 싶은 곳으로, 쉽게 싫어지거나 지겨워지지 않는, 아니 어쩌면 시간의 켜가 쌓일수록 더욱 생각이 간절해지는 정인처럼 이곳의 고요함은 더욱 애잔하게 나를 부르는 소리를 보냅니다. 바람을 타고 아주 멀리까지 손짓하는 그 매력은 여느 절에서는 느낄 수 없는 것입니다.

천은사는 들어가는 길부터 한적합니다. 잔잔합니다. 아담합니다. 지리산 노고단을 오르는 길목에 위치한 이곳은 다른 산사에서 마주치는 잡다한 토산품 가게, 시끄러운 식당들이 한 곳도 없어 이 지역에 들어서면 마음이 차분해지며 침묵에 들게 되다가도 아름다운 적송들과 멋지게 어우러진 일주문과 마주치면 살포시 미소가 떠오릅니다. 2자 정도의 높이로 길게 뻗은 낮은 담장을 끼고 옆으로 서 있는 일주문은 앙증맞고 사랑스럽기 그지없습니다. 내가 답사했던 사찰의 일주문 중 가장 귀엽고 소박하고 청순한 시골 소녀 같은 일주문입니다.

원래 감로사(甘露寺)로 불렸던 천은사는 서기 828년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진 뒤 조선시대인 1679년(숙종 5년)에 중건되고, 1773년(영조 49년) 화재로 소실됐다가 1775년에 복원돼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중건할 때 샘에 큰 구렁이가 자꾸 나타나 잡아 죽였더니 샘이 솟아나지 않았고, 그래서 이름을 샘이 숨었다는 뜻으로 천은사라고 바꾸었다고 합니다.

절은 작지만 고려 충렬왕이 하사한 南方第一禪刹(남방제일선찰)이라는 칭호답게 천은사 내 수도암은 고려시대에 가장 뛰어난 선승들로 숲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이 절이 소장하고 있는 보물 중 하나인 아미타후불 탱화는 그 역사가 300년 정도로, 고려불화에 비하면 아주 짧습니다. 그러나 거의 원색으로 돼 있는 조선조 후기 불화와 달리 가라앉은 적녹색 색조의 이 탱화는 고려조 불화만은 못하다 해도 조선조 후기의 불화보다 훨씬 아름답습니다.

   

더욱이 이곳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은 보제루(普濟樓)입니다. 완벽한 면 분할의 디자인적 미감이나 건축물의 장중함은 없어도 맞배지붕의 건축물이 단단하게 배치된 돌들 위에 서 있는 모습에서 균형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래된 나무재질과 회벽일 뿐인 크지도 않은 이 건물에서는 간결미와 힘이 드러납니다.

또한 이곳에는 사랑할 수밖에 없는 두 그루의 나무가 있으니 그 중 한 그루는 사람 키의 수배도 넘게 자라 푸른 잎이 우거진 멋진 보리수이며, 나머지 한 그루는 사찰 뒷편 옆으로 난 길의 밭두렁 가에 서 있는 수 백 년도 넘은 소나무입니다. 영원히 잃지 않을 것 같은 장년의 건강한 힘과 위엄을 보여주고 있어 그 수려함에 넋을 잃고 쳐다볼 수밖에 없습니다.

거기에 부언할 수 있는 고즈넉한 곳은 대웅전 뒤의 선방으로 들어가는 길입니다.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물소리, 소나무, 활엽수들이 어우러진 작은 흙길을 걷는 순간마다 복잡한 모든 생각들이 사라져 갑니다. 또한 잔잔하고 고요하여 나의 고향집 뜰에 오랜만에 돌아와 서 있는 듯한 아늑함과 정취가 가득합니다.

이번 여행에 찾아간 천은사는 선방을 편리하게 고치고 있었으며, 건물과 건물 간의 동선을 연결하는 돌층계도 작은 절의 개성을 잃지 않고 낮게 편안하도록 적당한 크기의 돌을 깔아 고치고 있었습니다. 많이 찾아오시는 노인들에게 불편하지 않도록 고려한 사랑과 배려가 엿보였는데, 그렇게 만든 계단이 오히려 절 분위기를 망치지 않고 더욱 돋보이게 하고 있으니 그 또한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오래 전 찾아갔던 수덕사는 흙길을 없애 버리고 무시무시한 높이의 화강암 계단을 쌓아놓았습니다. 마치 바벨탑을 쌓고 있는 것처럼 인간의 끝없는 욕심을 여실히 보여주었고, 아름다운 설악산 계곡에 있는 사찰 신흥사는 장엄한 설악산의 자연과 어우러져야 할 절 지붕을 청기와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반짝거리는 청색 지붕은 심오한 자연과 전혀 어울리지 않아 그 흉측함이 설악산의 장엄미를 손상하고 있었습니다.

새롭게 개발 단장한다는 명분으로 많은 사찰이나 자연들이 심히 손상되고 그 본연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손을 댈수록 오히려 개선되는 것이 아니라 원래의 아름다움을 잃어버려 더 망쳐지고 있으니 심히 우려되는 현실입니다. 조상이 물려준 소중하고 자랑스러운 전통미가 사라져가고 있는 요즘 사찰들의 변모도 원형미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거기에 이런 변화와 함께 절 산문 앞의 장터 같은 토산품점과 음식점, 거기에 관광철이면 흥청거리는 사람들로 사찰 입구는 쓰레기와 소음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고요한 산사에서 단 몇 시간의 사색을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큰 부담을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천은사가 더욱 소중합니다. 천은사는 사색과 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한적하고 아담한 사찰로, 지리산의 운무와 함께 긴 여운을 남기는 기품이 있는 절입니다.

* 이 글에 실린 사진들은 천은사에서 필자가 찍은 것입니다.
   



글쓴이 오마리님은 샌프란시스코대학에서 불어, F.I.D.M (Fashion Institute of Design & Merchandising)에서 패션 디자인을 전공한 후 미국에서 The Fashion Works Inc, 국내에서 디자인 스투디오를 경영하는 등 오랫동안 관련업계에 종사해 왔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글쓰기, 그림그리기를 즐겼으며, 현재는 캐나다에 거주하면서 아마추어 사진작가로 많은 곳을 여행하며 특히 구름 찍기를 좋아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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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7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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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우 (188.XXX.XXX.175)
인근에 큰 사찰이 있어 지나치기 쉬운 사찰인데 이렇게 아름답게 올려 주셨군요.
그렇지요. 사하촌이 없는 가람이지요. 노고단 올라 가다 이런 절도 있었나 할 정도로...
내소사 처럼, 화엄사 처럼 절 입구의 고즈녁한 길이 없어도 입구에 마주하는 작은 연지와
사찰 뒤편 소나무가 기억에 새롭습니다.

천은사가 있는 구례군 광의면은 우리나라에서 산수유가 가장 먼저 피고 가장 많은 곳이
기도 하지요. 조선조 말 명창 송만갑이 득음하고 동편제의 계보를 정립한 곳이기도 하구요.
동편제의 명창 조선하, 송순섭 등 송만갑의 제자들이 모두 이 천은사에서 득음하고 명창의
계보를 이어온 곳이지요.

소중한 글 ...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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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31 09:04:14
0 0
한창호 (115.XXX.XXX.3)
지난 해 4월, 대학 동문들과 지리산 여행길에 우연히 들렸습니다. 원래는 화엄사와 쌍계사를 가려고 계획했다가 화엄사는 너무나 잘 알려진데다가 당시 인파로 인해 일단 취소하고 전북대 교수로 재직하고있는 동문의 추천으로 천은사와 쌍계사로 변경했습니다. 석양 무렵의 절 풍경과 깨끗한 개울물이 흐르는 것이 너무 멋있었고, 너무나도 조용하고 아름다운 절이란 인상(상업화가 된 다른 큰 절보다 단연 으뜸?)에 남았었는데, 작가님께서 사진과 함께 너무나 잘 표현해 주셨네요.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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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23 15:49:25
0 0
오 마 리 (219.XXX.XXX.170)
덧글을 써주신 선생님들, 유려하지 못한 문장력에 항상 죄책감까지 있음에도 불구하고
좋은 평을 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나라의 문화재를 사랑하는 마음은 누구나 똑 같을 것입니다.특히 우리 나라의 사찰들, 사찰을 둘러 싸고 있는 자연환경이 외국의 유적들과 비교하여 얼마나 잔잔하고 따스하며 아름다운 우리만의 고유미인지라 조상의 미적 쎈스에 감탄할 뿐입니다.

그런 곳들이 더이상 상업화 하지 않길 바라며, 우리 스스로 아껴야 할 우리의 사명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남준기 선생님

요즘 모든 절들이 다 입장세를 받는걸로 알고 있습니다. 저도 그런 부분이 싫은데 사찰 측에 의하면 국가보조가 별로 없고 지금 절들은 고쳐야 할 곳이 너무 많다고 합니다. 아마 사찰도 스스로 유지하기 위한 방책으로 입장료를 받는 모양인데 그 사찰에 들어가지 않는 사람에게도 받는 것은 문제인 거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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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18 09:11:16
0 0
bioj@naver (119.XXX.XXX.242)
오랫만에 보는 흑백사진..
잊어버린 흑백의 조화!
마리님 덕분에
잊혀진 우리의 선을 차분히 보게 되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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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16 19:48:31
0 0
이무성 (211.XXX.XXX.129)
오마리님의 천은사소묘는 너무도 마음에 닿는 글 이었습니다. 영국에서 약 1개월 예정으로 유적을 두루 보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다소곳한 유적의 아름다움 같은 걸 느끼기가 어렵네요. 우리나라의 옛건축은 숨쉬는 나무로 지어 졌는데. 여기 건축물은 돌로 이루어진 것이 특징이네요. 따스한 정감 보다는 위용같은 중압감을 느끼게 됩니다. 자연과 조화롭게 세워진 아름다운 사찰에 길이나 담도 예 선인들이 조성한 대로 살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오마리님의 글은 많은 독자들에게 공감을 주리라 생각 합니다. 항상 좋은 글 주시는 오마리님께 감사 드립니다. 그리고 자유칼럼그룹 필지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2009.7.9. 자정 런던에서 이무성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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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09 16:29:17
0 0
남준기 (115.XXX.XXX.214)
문화재관람료 징수 문제로 국립공원탐방객들의 원성을 한몸에 받고 있다는 사실이 슬픕니다. 천은사 들어가지도 않는 차량들을 대상으로 차단기를 막고 문화재관람료를 받고 있으니...스님들에게 돈이란 초연해야 할 세속의 물질이 아니었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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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09 11:04:16
0 0
김창식 (110.XXX.XXX.40)
사찰 건축과 탱화에도 조예가 있으시군요, 오마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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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09 10:18:37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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