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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도 동지도 없는 세상
김홍묵 2009년 07월 08일 (수) 02:10:44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가 공공의 적으로 전락했습니다.
환경부가 지난 5월 말 집비둘기를 포획할 수 있도록 유해 야생동물로 지정한 것입니다. 따라서 6월부터는 지방자치단체장의 허가만 받으면 집비둘기를 잡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멧비둘기는 사람보다 먼저 한반도에 살았으며, 집비둘기는 20세기 들어 급격히 늘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년에 2~8회 번식을 하는 집비둘기는 마리 수 조사를 한 적은 없지만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만 약 100만 마리가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비둘기가 평화의 상징이 된 것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에서 비롯됐다고 합니다. 방주에서 날아간 비둘기가 올리브 잎을 물고 돌아온 것을 보고 물이 빠지고 평화의 시작을 알렸다는 것입니다. 겨울철 남쪽 하늘의 별자리 비둘기자리(Columba)가 바로 올리브 잎을 문 비둘기 형상입니다.

콩 같은 식물을 주로 먹고 해충도 잡아먹어 이조(利鳥)로 알려진 비둘기는 우리나라에서는 서울의 서초, 송파, 도봉 등 6개 구(區)의 상징이자 경기도의 도로(道鳥)가 되어 있습니다. 그 비둘기가 국민의 재산과 생활에 피해를 주는 유해 야생동물이 된 것입니다.

비둘기의 배설물이 강산성이어서 문화재 등 건축물을 삭게 만들고 폐질환 등의 병원균을 옮긴다는 이유입니다. 그 동안은 비둘기를 잡을 근거가 없어 고작 건물에 그물망을 치는 것이 피해를 줄이는 방법이었습니다. 앞으로는 먹이를 주지 않아 서서히 개체 수를 줄여나가는 방안이 유력하다고 합니다.

국조(國鳥)로 지정된 까치가 해조(害鳥) 취급을 받기 시작한 것은 오래 전부터의 일입니다. 금속광택이 나는 검은 머리에 하얀 턱시도를 걸친 듯 스마트한 모습의 까치는 전국에 걸쳐 사철 우리 주변에 살아서 나라의 새가 되었습니다.

아침 일찍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소식이 있다 하여 길조로 여겨 오고, 쥐나 임목의 해충을 잡아먹는 익조(益鳥)입니다. 봄에 둥지의 문을 북쪽으로 내면 그해 큰 비가 내릴 것을 알려 주는 까치는 기상예보관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까치가 고압선 철탑이나 전철 애자 등에 집을 지어 합선이나 누전으로 적지 않은 피해를 주는 사례가 늘어나자 급기야 한전은 사고를 줄이기 위해 일정 시점과 지역에서 엽사를 동원해 까치를 잡고 둥지를 강제 철거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인간 사회로 치면 무료급식 중단, 강제 철거, 정리해고의 단계를 넘어 아사(餓死) 살상의 대상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도 지능이 ‘새대가리’ 수준이어서 그런지 까치는 아침마다 아파트 주변에서까지 ‘깍 깍’ 울어대고, 비둘기는 도심 사람들 틈에서 종종거리며 먹이를 찾고 있습니다. 아무런 일도 없는 듯이.

도롱뇽과 산짐승의 서식지를 해친다 하여 경부고속철도의 금정산터널과 서울외곽순환도로의 사패산터널 공사가 몇 년씩 지연된 상황과는 판이합니다. 동물 보호단체들조차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것을 보면 흔해빠진 새는 보호받을 가치조차 없나 봅니다.

상상의 동물 가운데 유예(猶豫)와 낭패(狼狽)가 있습니다. ‘유’는 원숭이와 닮았는데 의심이 많아 땅에서 먹이를 찾다 바스락 소리만 나도 쏜살같이 나무 위로 도망칩니다. ‘예’는 몸집이 코끼리 만하지만 겁이 많아 얕은 냇물을 건널 때도 한참씩 망설입니다. 이 두 동물을 합쳐 유예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흔히 듣는 ‘집행유예’ ‘기소유예’ 같은 법률용어가 바로 유예라는 동물 이름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사전적 의미는 우물쭈물하고 결정하지 않거나 시일을 늦춘다는 뜻입니다. 꼭 능력이 모자라서만이 아니라 기다림의 지혜도 담긴 말입니다.

‘낭’은 뒷다리가 없거나 아주 짧은 대신 용감하지만 영악스럽지 못해 먹이 사냥이 서툽니다. ‘패’는 앞다리가 없거나 짧은 대신 꾀가 많지만 겁쟁이입니다. 지체장애인 이들 동물은 ‘패’가 ‘낭’의 허리를 껴안고 한 몸처럼 붙어 다니면서 사냥을 합니다.

서로의 단점을 보완하면서 상생하는 ‘낭’과 ‘패’가 자칫 따로 떨어지면 그야말로 ‘낭패’입니다. 일에 실패하거나 허둥지둥한다는 뜻입니다. 힘을 합쳐 소통하고 단결하지 않으면 될 일도 안 된다는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요즘 나라 안에서는 낭패가 거듭되고 있습니다. 비정규직법 개정을 둘러싸고 벌이던 여야의 협상이 깨지면서 집비둘기 숫자에 버금가는 근로자들이 언제 길거리로 내몰릴지 모르는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구조조정 문제로 대립하고 있는 쌍용자동차는 노사의 극한대립으로 파산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외쳐대는 구호나 현수막에는 ‘살인’ ‘독재’ ‘악법’ ‘결사’ ‘옥쇄’ ‘망국’ 같은 섬뜩한 용어들이 홍수를 이루고 있습니다. 전투적이고 살기가 도는, 저주에 가까운 외침입니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 만인이 만인의 적이 돼 가는 모습입니다.

정치권의 말은 국민과 서민을 앞세우고 있지만 눈치 보기에 급급한 당리당략과 얄팍한 명분뿐입니다. 거대 여당은 파벌싸움으로 낭과 패가 갈라져 있고, 야권은 폭주하는 기관차처럼 유예를 할 줄 모릅니다. 청와대는 다리 부러진 장수 성 안에서 호령하듯 씨도 안 먹히는 정책들만 내보이고 있습니다.

자유 평등 민주... 얼마나 위대한 발견입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외쳐왔습니까. 그런 지고의 진리, 최상의 가치가 광장에 난무하는 살벌한 용어의 포장지 정도로 널리게 되면 까치나 비둘기의 신세가 되지나 않을지 걱정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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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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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묵 (211.XXX.XXX.2)
고대부터 있어왓고 있을것이고 한 인간이외의 것들에 대하여 그 판단여부를 적과 나로 구분하는 세태가 염려스러움을 동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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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21 01: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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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옥 (210.XXX.XXX.144)
어쩌다 이런 지경에 이르렀는지 상상의 동물 낭패가 되어 그야말로 낭패를 거듭하고 그나마 유예의 지혜를 발휘해야 하지만 그조차 어렵고,청와대는 다리 부러진 장수 성 안에서 호령하듯 씨도 안 먹히는 정책들만 내보이고..............
절묘한 사회진단 풀이가 재미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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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08 19:50:01
0 0
김창식 (110.XXX.XXX.58)
평화의 새, 비둘기 가만히 보면 참 무섭게 생겼습니다.
모든 새가 무섭긴 하지만...
낭패는 알았지만 유예는 몰랐습니다. 그런 동물이 있었군요!
답변달기
2009-07-08 13:2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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