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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담 선생
방석순 2009년 07월 06일 (월) 01:38:39
나이 들어 사람 사귀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재고 따지는 게 많아져서 그럴 겁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아무 조건 없이 절로 친해지던 어린 시절과는 영 딴판입니다. 모처럼 알게 된 사이도 너무 성급히 굴다가는 깨어지기 쉽습니다. 이미 성품이 굳어진 어른들 사이의 사귐은 유리그릇이나 사기그릇 다루는 일처럼 조심스럽습니다.

“이번 주말 전시회 같이 갈래?” 친구 A가 물었습니다. ‘웬 일로?’ 얼굴 한 번 보자는 연락도 당일 오후 느지막하게야 해오던 친구였습니다. 늘 바삐 살아 사전 약속 같은 건 기대하지도 못했는데 의외였습니다. 그러마고 약속했습니다. 마침 다른 볼일도 없었습니다.

친구 셋이 어울려 찾아간 전시회는 참으로 특이했습니다. 전시장엔 온통 암녹색 칠판이 널려 있었습니다. 그 어두운 칠판 위에서 참꽃, 산나리 등 아름다운 꽃들이 눈부시게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세상에, 저렇게 거친 칠판도 화사한 캔버스가 되는구나.’ 그래서인지 신문에도 꽤 큼지막하게 소개된 전시회였습니다.

처음 가자고 제의했던 A가 중년의 여 화가와 다정하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친구 둘씩이나 들러리로 세워 놓고 의기양양하게. 우리는 마침 전시장에 나와 있던 그녀의 남편과도 간단히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사실은 남편이 부인보다 더 유명한 화가라고 A가 일러주었습니다.

“야, 너 아주 교양적이다. 언제 저런 예술가들이랑 사귀었니?”
“응, 이웃집 사람들이야.”

알고 보니 화가 내외는 강원도 소양댐 위쪽에서 살고 계시던 A의 아버님 시골집 이웃이었습니다. 평소 내왕이 잦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A의 아버님은 워낙 낚시와 산천경개를 즐기는 분이어서 어느 날 아무 연고도 없는 그곳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낚시와 나무 가꾸는 일로 소일하면서. 그곳이 우연히도 화가 내외가 빈 교실 서너 개를 화실로 개조해 쓰던 이웃이었던 것입니다. 방학이면 가족들을 이끌고 아버님 뵈러 가던 A는 그때마다 화가 부부와 인사를 나누며 지냈던가 봅니다.

그해 여름 늘 바쁘던 A가 바로 그 강원도 시골집으로 우리 일행을 초대했습니다. 또래 친구들의 세 가족이 말하자면 바캉스를 산촌에서 보내게 된 것이었습니다. 도진(都塵)을 털어버리고 상큼한 풀냄새가 진동하는 그곳에서의 해방감이란.

그게 탈이었습니다. 들뜬 기분 때문에 그만 가던 날로 사고가 터지고 말았습니다. 초대받은 친구 B가 쳐놓으나마나한 얕은 철조망을 넘어 이웃 화실로 접근한 것입니다. 전시회에서 인사까지 나눈 화가의 화실이 너무 궁금했던 탓이었습니다.

어찌 알았던지 남편 화가가 금세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달려 나왔습니다. B는 엉겁결에 뒤돌아서 도망치듯 담장을 넘어 나왔고. 소란에 놀란 호스트격의 A가 사정을 설명하며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러나 화가는 영 분이 풀리지 않는지 한참동안이나 더 큰 소리로 야단쳤습니다. 얼마 전에도 그림 몇 점을 도둑맞았다면서.

시골 여행의 첫날 저녁은 그렇게 씁쓰레한 분위기 속에 저물어갔습니다. 일행을 초대한 A가 원래 술 한 방울 못하는 위인이라 늘 섭섭했던 그의 아버님만은 아들 친구들의 대작에 밤늦게까지 술잔을 비우며 즐거워하셨습니다. 모두들 어지간히 취기가 올라 한밤중 무반주로 노랫가락을 뽑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기분을 풀고 있었는데 화가에게 혼이 났던 B만은 그때까지도 언짢은 기분을 떨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웃에서 빤히 아는 사람이 나와 용서를 구하는데 그렇게 난리를 치다니…” 맞장구를 친다고 풀릴 기분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어이 친구! 대신 내가 그대에게 멋진 호를 지어 줄게. ‘월담 선생’, 어때 멋있잖아?”하고 우스갯소리를 해보았지만 시큰둥했습니다. “이 친구야, ‘달이 잠긴 못’, ‘못에 담긴 달’[月潭], 얼마나 운치가 있어? 너 안 가지면 내가 쓴다!”

그날 밤 이후로 B에게는 ‘월담이라는 호가 붙었습니다. 요즘도 가끔 “월담!”하고 불러보지만 그때의 씁쓸한 기억 때문인지 달가워하지는 않는 표정입니다.

그 사건으로 인해 B는 그래도 멋진 호를 얻었지만 A는 정말 더욱 가까이 할 수도 있었던 이웃을 잃고 말았습니다. 사실 ‘월담’한 B조차도 화가 부부에 대한 친근감, 우호적인 호기심이 없었더라면 그런 우발적 사고를 낼 리가 없었는데 말입니다.

그렇다고 유쾌하지 않은 경험을 가진 화가 부부를 원망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이 이전에 받은 상처가 너무 컸다면 누구의 손길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을 테니까요. 다소 치기어린, 장난스러운 접근방식은 그렇게 처참하게 거부당하고 우리는 모처럼 화가 부부와 사귈 수도 있었던 기회를 날리고 말았습니다.

저마다 걸어온 길이 다르고 보고 듣고 갖게 된 생각이 다르다면 어른이 되어서도 서로 부딪치는 일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자칫 부주의하면 엉뚱한 오해를 부르고 원치 않던 시비가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너나 할 것 없이 원래의 뜻, 상대에 대한 이해나 배려, 올바른 판단은 저 멀리 사라지고 감정과 아집과 편견에 사로잡혀 날선 공방만 오가게 되는 것입니다. 남과 사귀는 일, 더불어 살아가는 일이 정말 마음 같지만은 않다는 걸 갈수록 절실히 느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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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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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 (123.XXX.XXX.28)
작가의 맨얼굴, 요리사의 손톱, 또 하나는 뭐였더라? 생각이 나질 않네요.^^ 따위는 직접 대면하지 말아야할 금기라고 일찌기 유명 작가가 설파했더랬지요... 정말 씁쓸합니다..전해 듣는 저도 이런데 당사자의 마음은 오죽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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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06 20: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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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옥 (210.XXX.XXX.24)
아끼는 작품 몇 점을 잃은 경험이 있는 탓에 그렇게 흥분했다 하더라도 곧 그가 전에 전시장을 찾은 적 있는 이웃의 친구란 걸 아는 순간 미소로 답해야 했을 것을....
끝끼지 분한 얼굴을 했다면 그 화가 그림도 별 것 아닐 것 같습니다.

허기사 제가 아는 조각가중에 윤영자 라는 원로 조각가는 정말 부드럽지않은 언사로 옆사람의 마음이 오그라드는 분인데 그 분의 조각작품은 너무나 평화로워서 가끔 혼돈스럽기도 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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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06 14:0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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