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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ㆍ정돈 한다는 것
황경춘 2009년 07월 04일 (토) 00:31:45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정리ㆍ정돈을 잘 한다는 것은 가진 물건을 어떻게 잘 버리는가에 달려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비슷한 말을 어느 외국 방송 프로그램에서도 들은 기억이 납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물건을 아껴 쓰고 애착을 가져 잘 버리지 않는 버릇이 깊이 박여 제 공부 방이나 책상 주위에는 쓰다 남은 연필, 지우개, 공책으로부터 참고서, 잡지, 노리개 등등 잘 정리되지 않은 잡다한 물건이 어질러져 있어 주로 어머니의 야단을 많이 맞았습니다.

어릴 때의 이 버릇은 정말 속담대로 여든이 넘은 지금에도 계속되어 두 평이 될까 말까 한 제 좁은 서재는 아내 말처럼 귀신이 나올 정도로 온갖 물건이 어지럽게 뒤엉켜 있어 저 자신 필요한 물건을 못 찾아 쩔쩔맬 때가 있습니다.

대체로 문과계통 사람이 이공계 사람보다 정리ㆍ정돈하는 능력에 뒤떨어지는 경향이 많은 것 같은 중에서도 신문기자로 평생을 보낸 제 경우는 좀 특별한 예인 듯 해 이 버릇 아마 죽을 때까지 가져가리라 체념하고 있습니다.

1960년 4ㆍ19 학생혁명으로 약 한 달 동안 거의 24시간 체제로 일하던 때 제 사무실엔 일본 등 가까운 나라에 있는 지국으로부터 두세 명의 지원 인원이 교대로 서울에 파견되어 일하였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이 당시 마닐라 지국장으로 있던 단 휴스(Don Huth)라는 유능한 노 기자였습니다. 이 양반이 지금까지 제 기억에 강렬히 남아 있는 것은 신문기자로서는 드물게 거의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로 사무실 내 청소와 정리ㆍ정돈에 신경을 쓰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네 평쯤 되는 우리 사무실에는 벽에 면한 두 개의 큰 책상 위에 전화기 세 대와 태평양전쟁 때 미군이 쓰던 표준형 언더우드 영문 타자기 두 대가 자리잡고 나머지 공간에는 국내외에서 발간되는 여러 신문, 국내 4대 통신사에서 시시각각으로 배달되는 통신 기사, 그리고 텔레타이프를 통해 24시간 본사에서 들어오는 국제 기사 등이 어지러울 정도로 질서 없이 혼존(混存)하고 있었습니다.

사무실에 출근한 첫 날 휴스 지국장은 시간을 내어 아무 소리 없이 혼자서 책상 위 정리를 시작하더니 얼마 뒤 놀랄 정도로 실내 분위기를 바꿔 놓았습니다.

누구에게 시키지도 않고 마침 자기가 사무실 정리를 위해 온 사람처럼 그는 묵묵히 이 일부터 시작한 것입니다. 전 날 그가 김포공항에서 호텔에 도착한 뒤 우리와의 수인사와 취재방향에 대한 대충의 이야기는 있었지만, 사무실에 나온 것은 이것이 처음인데 그의 이러한 깔끔한 행동에 다들 신경을 곤두세웠습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그의 이러한 성격은 회사 내에서도 유명했습니다. 그러나 신문기자로서의 그의 평가도 날카롭고 유능하기로 이름 나 있어 우리는 그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우리는 나중에 더 큰 사무실을 몇 군데 옮겨 다녔지만 저는 끝내 이때 배운 교훈을 잘 살리지 못 한 채 현역 생활을 마감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제 주위를 어지럽히고 있는 주범은 책을 비롯한 각종 인쇄물입니다. 돈 주고 구입한 것도 있지만 학교 관계 친구나 현역시절의 인연으로 알게 된 친지나 기관이 보내는 출판물이 빠르게 쌓이고, 게으른 천성이라 이를 제때 정리 못 하고 있는 것입니다.

10여 년 전 집 개축 때문에 약 일 년 아파트에 세들어 살면서 많은 책을 처분했습니다. 직장 다닐 때 여러 사람의 간청으로 산 수종의 전집 출판물 등 별로 소장할 가치가 없는 것들을 주로 처분했으나 집으로 다시 돌아와 보니 서재가 너무 좁아 책 일부는 거실 책장으로 옮겼습니다. 그 뒤에도 계속 늘어나는 것을 보니 역시 버리는 것보다 들어오는 간행물이 더 많은 모양입니다.

대단한 독서가도 아닌데 아는 분들이 보내오는 책도 생각 이상으로 많았습니다. 얼마 전에는 1952년에 일본에서 간행한 ‘실존주의’라는 문고판 책이 책방에서 씌워 준 엷은 포장지가 그대로 남은 채 책꽂이 구석에서 발견되어 고소(苦笑)를 금치 못 했습니다.

서재 바닥에는 다섯 개의 큰 봉투가 아무렇게나 놓여 있습니다. 5 년 전부터 국내외에서 오는 연말ㆍ연시 카드를 연도별로 모아 놓은 것입니다. 몇 번에 걸친 아내의 독촉에도 불구하고 이 다섯 개의 봉투를 아직 정리하지 못 하고 있습니다. 12월 초부터 들어오는 카드가 1월 중순 경엔 100매 내외가 되어 일부는 봉투에 담지 않고 처리해 버립니다. 나머지는 시간을 내어 다시 읽고 정리한다는 것이 금년으로 다섯 개가 되었습니다.

해마다 훌륭한 붓글씨로 일종의 휘호(揮毫)를 보내는 분이 있는가 하면, 어떤 친구는 새해에 알맞은 한시(漢詩) 한 구절을 보내기도 하고 일본에 있는 친구 몇 사람은 예쁜 그림과 더불어 자그마한 수예품을 넣어 보내주기도 합니다. 이런 것들을 선별할 생각으로 봉투에 넣어두는데 차일피일 하는 사이 봉투가 다섯 개로 늘어난 것입니다. 이젠 마누라도 포기한 모양인지 서재는 잘 들여다보지도 않습니다.

이밖에 빨리 정리해야 할 간행물로는 수십 종에 달하는 여행관계 안내서와 항공편을 비롯한 각종 대중교통기관의 시간표입니다. 이것들이야 말로 계절 별로 수정되는 것인데 10여 년 전에 일본에서 가지고 온 안내서마저 비좁은 책꽂이 속에 아직도 도사리고 있습니다.

거기다 인쇄물의 봉투, 컴퓨터 주변기기에 따라 온 상자, 종이 쇼핑 백 이런 것들도 비좁은 방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으니 아마 이쯤 되면 제가 생각해도 정상심리는 아닌 듯합니다.

돈 많은 사람이 돈에 인색할 때 저승까지 가지고 갈 참이냐고 빈정대지만 저야 말로 인생을 정리해야 할 나이에 이 구닥다리를 끼고 갈 수도 없는데 이렇게 우유부단(優柔不斷)하니 저 자신 한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일본 주오(中央)대 법과 중퇴
-주한 미국 대사관 신문과 번역사, 과장
-AP통신 서울지국 특파원, 지국장
-TIME 서울지국 기자
-Fortune 등 미국 잡지 프리 랜서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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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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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식 (222.XXX.XXX.38)
어떤 분은 어질러 놓고 어떻게 치울까 궁리하는 중에 영감이 떠 오른다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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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06 18: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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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옥 (210.XXX.XXX.100)
저도 정리정돈을 잘 하지 못해서 비좁은 방에 갇혀지내는 형편입니다.
모질게 마음 먹고 버려야지, 하다가도 한 번 더 읽고.... 하면서 도로 제자리에 갖다두길 여러차레......
계간 수필집이 커다란 상자에 가득 찬 걸 보면 독서도 어지간히 계으름을 피웠구나 싶습니다.
*정리정돈 한다는 것*을 읽는 계기로 오늘 부터 한 권 한 권 읽고 정리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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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04 15:5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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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완 (119.XXX.XXX.235)
미국 사람들은 3년 이상 쓰지 않은 것은 다 버리라고 말합니다. 저는 미국에서 40년 살면서 축적된 것들을 중국으로 떠날 때 다 버렸습니다. 좀 아쉽기는 하지만 얼마나 홀가분한지 모릅니다. 물건 뿐만 아니라 우리 마음 속에 있는 잡동산이도 모두 버려야 합니다.
이종완
답변달기
2009-07-04 15:5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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