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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까지 포맷해야 할지
고영회 2009년 07월 02일 (목) 00:30:15
또 기술유출 사건이 보도되었습니다. 국책연구자금으로 폴리머 칩 개발에 관여했던 연구원이 제조기술 자료를 유출하였고, 미국계 회사로 자리를 옮겨 유출한 자료를 새로운 기술개발에 활용하는 것을 적발하여 구속 기소했다는 내용입니다. 언론들은 이 사건을 “세계 최초로 개발 칩안테나 기술 유출”, “나랏돈 수십억 들인 첨단기술, 외국계 업체에 팔아넘겨”, “檢-국정원,‘폴리머 칩안테나’ 해외유출 산업스파이 체포” 등의 제목으로 보도했습니다. 기술유출사건을 생각해 봅니다.

기술유출은 법전에 나오는 용어는 아닙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에서 영업비밀이란 '공공연히 알려져 있지 아니하고 독립된 경제적 가치를 가지는 것으로서, 상당한 노력에 의하여 비밀로 유지된 생산방법, 판매방법, 그 밖에 영업활동에 유용한 기술상 또는 경영상의 정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기술유출이란 영업비밀 중 기술에 관한 내용을 불법으로 빼내는 것을 말합니다.

기술유출사건은 기술자의 이직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기술자는 좋은 환경에서 자긍심을 지키며 일하고 싶은데 회사 여건과 맞지 않는 경우에는 이직을 생각합니다. 회사는 기술개발의 연속성을 고려하고 개발된 기술에 회사의 존망이 걸려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기술자가 이직하는 것을 꺼립니다. 기술자들은 일반적으로 자료에 애착이 많습니다. 물론 기술자료라 하더라도 보호받을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면 그런 자료를 챙겨 나오는 것은 불법행위가 아닙니다. 하지만 경영자가 바라보는 시각은 다를 수 있습니다. 이직을 말리는 경영자와 여건이 맞지 않아 떠나려는 기술자 사이의 불협화음은 법적 다툼으로 이어집니다. 대부분의 기술유출사건은 여기에서 출발하는 것 같습니다.

불법 기술유출사건에 적용되는 법률은 ‘영업 비밀보호법’과 ‘산업기술유출방지법’이고, 이들 법에는 예비음모죄를 두고 있습니다. 예비음모죄는 왕조시대에 ‘반역에 대한 논의’만 해도 엄벌에 처하던 그 죄입니다. 기술유출이 무엇인데 예비음모죄까지 도입해야 하는지 갸우뚱합니다. 예비 음모죄는 강자가 자기 편의대로 이용할 수 있는 반면에 그 상대방은 대책 없이 고통을 당할 수 있어 참 걱정스런 죄입니다.
기술유출 혐의를 받는 사람의 고통은 사법절차에서도 계속됩니다. 피의자의 컴퓨터 등에서 여러 전자문서가 나온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 확인되었고, 그것이 현란한 글솜씨를 빌려 대단히 중요한 기술자료인 것처럼 포장된다면 이를 반박 입증하기에 너무 힘이 듭니다. 일반적으로 공지된 기술자료라면 영업비밀 침해가 될 수 없습니다. 이를 그 분야 기술에 전문성이 있는 사람이 본다면 명확할 것도 우리 현실에서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우리 사법제도에서는 기술검사, 기술을 이해하는 변호사, 기술판사를 양성하지 않아 기술문제에 관해 전문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기술유출사건을 보도하는 언론의 태도를 보면 “첨단기술 도둑을 막아라”, “국내 기술 유출 매국행위 엄단해야”, “산업스파이, 한국은 좋은 먹잇감”, “핵심 기술 중국에 넘긴 매국노들” 식으로 보도하고, 잇따르는 사설에서는 “솜방망이 처벌이 기술유출 부추겨”식으로 기술자들을 엄벌하라고 아우성입니다. 애국심이 진하게 느껴집니다.

사회 분위기상 기술이 유출됐다고 하면 일단 그 기술자는 매국노로 취급 당하고, 불법행위가 없었다 하더라도 그 혐의를 벗어나기 너무 힘듭니다. 언론에서는 솜방망이 처벌이나 무죄로 확정되는 게 많은 것이 사법제도에 문제가 있는 듯이 목소리를 높이지만 검찰이 무리하게 기소한 사건이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요즘 기술유출 사건이 터졌다 하면 피해금액이 조 단위입니다. 그렇게 가치 높은 기술을 개발한 기술자를 제대로 대접했는데도 이직을 생각했을까요? 기밀을 빼돌릴 생각을 했을까요? 혹시 이직에 대한 괘씸죄 성격은 아닐까요? 혹시 알 수 없는 메커니즘에 의한 희생물일 가능성은 없을까요?

기술유출사건에 관한 한 예비음모죄까지 둔 제도, 회사를 상대로 싸워야 하는 힘의 크기, 기술에 대한 전문성이 없는 사법제도, 기술유출이라면 매국노 취급하는 사회 분위기 등 모든 측면에서 기술자는 약자의 위치에 있습니다. 국가 발전에 중요 역할을 한다는 기술자의 사회적 역할과 대조됩니다.

이번 사건에서 그 연구원이 실제로 기술유출행위를 했는지 그것이 불법행위였는지는 법원에서 판단하겠지요. 회사의 기밀을 빼냈다면 당연히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다만 또 하나의 억울한 희생자가 생기는 일이 없길 기대합니다.

이직을 생각하는 기술자들은 기술유출사건에 억울하게 연루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개인 컴퓨터나 집안에 예전 업무 관련된 자료가 전혀 남아 있지 않도록 깨끗이 정리해야 합니다. 컴퓨터는 포맷을 2중 3중으로 하고, 혹시 집안에 남아 있을지 모를 세미나 자료도 회사로 반환하길 권합니다.

심지어 머릿속에 들어 있는 것까지 기술유출이라고 문제 삼는 일이 생기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이직하는 기술자에게 머릿속까지 포맷하고 나가라고 요구하는 사회가 되지 않길 기대합니다.

   




고영회(高永會) mymail@patinfo.com
1958년생, 진주고, 서울대 건축학과 졸업
기술사(건축시공, 건축기계설비), 변리사
대한기술사회 회장, 대한변리사회 공보이사 역임
현재,
행정개혁시민연합(행개련 www.ccbg.or.kr) 과학기술공동위원장
바른 과학기술사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과실연 www.feelsci.org ) 국민실천위원장
성창특허법률사무소(www.patinfo.com)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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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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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낙응 (119.XXX.XXX.235)
기술 유출 사건을 다시 한 번 생각 해 보게 되었습니다.
좋은 글에 감사 드립니다. 김 낙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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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04 15:5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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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달 (211.XXX.XXX.199)
거 참, "원래 있던 회사에서 익힌 기술과 머리까지 비우고 가라" 하기가...
기술 인력의 이동이 회사의 기술자에 대한 처우가 나빠서인지, 기술자 개인의 욕심 탓인지 분간하기도 아리송 하겠네요.
답변달기
2009-07-02 14:5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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