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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맛 씁쓸한 면허증 갱신
황경춘 2009년 06월 20일 (토) 08:54:06
오랜 망설임과 가족과의 숙의(熟議) 끝에 한해 두세 번밖에 쓰지 않는 운전면허증을 갱신했습니다. 집 근처 면허시험장에서 수속을 시작한 지 20여 분 만에 교부된 새 면허증 유효기간은 제 나이 만 94세 6개월이 되는 2018년 8월까지로 되어있었습니다.

효율적인 일선행정에 놀라고 더욱 예쁘게 만들어진 새 면허증을 받은 기쁨은 잠시 뿐, 저는 ‘달리는 흉기’라고도 불리는 자동차 면허증이 고령자에 대해서도 이렇게 간단히 갱신된다는 사실에 왈칵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제 면허증 갱신 시기가 가까워졌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던 4 년 전 어느 날 경찰청이 도로교통법 개정에 따라 2종 면허증의 갱신 주기가 9년으로 연장되어 제 경우 2009년 6월 말 전에 갱신하면 된다는 소식을 알려왔습니다.

실은 그 무렵 10여 년 애용해 온 승용차는 딸아이에 물려주고 꼭 필요할 때만 빌려 쓰거나 렌터카를 이용하고 그 밖엔 거의 대중교통에 의존했습니다. 건강문제 뿐 아니라 편의성, 경제성 등을 감안해서도 이렇게 하는 것이 훨씬 편했습니다.

그래서 그 기회에 제 면허증 갱신에 관한 가족들의 의견을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모두가 다들 어렵게 취득하는 운전면허증인데 일단은 갱신하는 게 좋겠다고 했습니다. 평소에 안전운전에 힘썼고 아직은 건강에 별 문제도 발견되지 않으니 굳이 면허증을 반납할 필요는 없지 않겠느냐는 결론이었습니다.

그 무렵 고령자 운전에 의한 교통사고가 해가 갈수록 늘어난다는 통계가 보도되고 대중교통 뿐 아니라 자가용 운전자의 건강상태에 대한 당국의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높았습니다.

이번 갱신 안내문이 온 뒤에도 가족들의 의견을 물었습니다. 면허증 취득 후 도로 연수만 마치고 본격적인 운전경험은 없었던 딸 하나는 언제 필요할 때가 있을지 모르니 면허증을 살려두자는 주위의 권고로 갱신을 결정하였고, 소위 ‘장롱 면허증’ 소지자였던 아내는 갱신을 포기했습니다. 저는 일단은 면허증을 살리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과거의 예를 보면 면허증 갱신엔 적성검사가 필수여서, 간단한 몸 움직임, 청력, 시력 검사 등을 포함한 신체검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온 안내문에는 갱신은 민원실 접수 후 15~60분이면 끝난다고만 되어 있어 좀 의아하게 느꼈습니다.

우리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노령사회로 치닫고 있는 이웃 일본에서는 75세 이상 운전자에 대한 면허증 갱신 주기는 3년으로 단축되었고 갱신 시엔 지정된 자동차교습소에서 예비 적성검사와 강의를 받게 규정되어 있습니다.

그 뿐 아니라 금년 6월 1일부터는 약 30분간의 치매 판정을 위한 심사도 따로 한다고 합니다. 동시에 고령자의 운전면허증 자진 반납에는 여러 가지 경제적 특전이 부여된다고 들었습니다. 우리나라 고령 운전자 면허증 갱신에도 필경 이러한 사고예방 대책이 있을 거라 생각하며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당일 지정된 장소에 나갔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뜻밖이었습니다. 접수창구의 여직원이 서류를 검토하며 “정정하시네요”라고 한마디 한 뒤 기다리게 하더니 얼마 안 되어 새 면허증을 교부했습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정문을 나오니 바로 옆에 올 때와는 다른 버스 정류장이 있었습니다. 버스카드를 요금계산기에 대니 “환승입니다”하는 녹음된 음성이 들리는 것을 보니 모든 게 도착 후 30 분 내에 끝났다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이때 순간적으로 머릿속을 지나간 것이 “행정의 효율성도 좋지만 고령 운전자에게도 아무런 여과(濾過)없이 이렇게 쉽게 면허증을 갱신해 주어도 괜찮을까”하는 걱정이었습니다. 이렇게 한다면 무척 편리는 하나 운전자의 적성 여부 판정을 개인의 양심에 맡기고 당국은 책임을 안 진다는 말이 아닌가? 뭔가 섬뜩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이가 비슷한 일본인 친구 한 사람이 있습니다. 갱신된 저의 면허증이 9년짜리란 얘기를 듣고 놀라며 얼마 전 갱신한 자기 것은 3년용이지만 그 3 년도 건강 유지에 신경이 쓰인다고 말했습니다.

답신 메일에서 저는 “새 면허증의 유효기간 이상 건강하게 살아남을 수 있도록 노력할 길밖에 없지요”라고 농으로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고령 운전자에게도 젊은 사람과 동일한 면허 갱신규정을 적용하는 당국 처사에 감사를 해야 할지 아니면 이렇게나마 우려의 목소리를 전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잠시 착잡한 심정에 잠겼습니다.

   




  -일본 주오(中央)대 법과 중퇴
-주한 미국 대사관 신문과 번역사, 과장
-AP통신 서울지국 특파원, 지국장
-TIME 서울지국 기자
-Fortune 등 미국 잡지 프리 랜서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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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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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123.XXX.XXX.28)
이것도 한국의 안전 불감증의 한 유형이 아닐까요. 이곳 호주는 고령 운전자의 경우 1년에 한번 적성검사 및 신체적 검사를 받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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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20 21: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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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완 (119.XXX.XXX.235)
선생님의 "면허증 갱신"을 흥미 있게 읽었습니다. 나이가 들어 자신이 운전을 하는 것이 위험하다고 생각되면 면허가 있어도 운전을 하지 않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나이가 높아도 안전하게 운전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통계에 의하면 십대 젊은이들의 사고율이 훨신 더 넢고 치명적 사고는 더욱 그러합니다. 저는 미국에서 수십년을 운전했으나 중국에 와서 운전을 하지 않으니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여기 사람들은 운전 매너가 아주 낮고 법규도 안 지킵니다. 그들 틈에 끼어 운전을 하다가 사고를 내면 큰 골치니까 아예 운전을 하지 않는게 상책입니다. 사고 방지의 최선책은 운전을 하지 않는 겁니다. 이종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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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20 11:5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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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창 (61.XXX.XXX.136)
존재감과 자신감을 재확인시켜 주는 94 세 까지 유효한 운전 면허증 갱신을 받고도 자기중심적인 도취감에 빠지지 않고 혹 일어날 불의의 사고까지 걱정하시는 선생님의 이타적인 배려에 다시금 제 자신을 돌아 보았습니다. 제가 41 년 째 읽는 신문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딸이 현재는 담당하고 있는 인생상담란이 있습니다. Dear Abby...얼마나 많은 자식 또는 친인척이 노년 운전의 안전성 때문에 걱정하여 상담을 청하는 글이 많은지...또 그 어르신들의 못 말리는 고집과 자존심에 상처를 주지 않고 운전대를 그만 두게 하여야 할지 번민하는 글을 읽은 경험이 하도 많아서 선생님의 놀라울만한 영적,육체적 건강함에다 어르신들의 특허품(?)인 왕고집(?)까지 털어 버린 겸허함에 경탄을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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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20 09:2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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