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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쇄원을 찾아서
오마리 2009년 06월 11일 (목) 04:31:40
나는 전생에 유랑하는 집시였거나 아니면 정처 없이 생존을 위해 여기저기 떠도는 유목민의 피가 흐르고 있는지 일반 사람들보다는 방랑벽이 많은 것 같습니다. 얼마 동안 집안에 오래 처져 있게 되면 그만 어디든지 사람이 없는 곳으로 카메라 메고 훌렁 떠나고 싶어집니다. 여기저기 홀로 돌아다니면 가라앉았던 가슴이 쭉 펴지고 아기들의 낮잠과 같은 평화가 옵니다.

무작정 떠나는 여행도 있지만, 가고 싶은 곳을 계획하여 실행에 옮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 우선순위에 들어 있는 여행지보다는 그렇지 않은 곳을 먼저 가게 되는 때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답사할 기회가 미루어져 안타까웠던 곳, 담양 瀟灑園(소쇄원)을 찾아 만사를 제쳐두고 예향 남도를 향하여 길을 떠났습니다.

   
  소쇄원 초입  

소쇄원을 답사하러 가는 길은 고향 가는 길만큼 가슴이 설레었습니다. 대나무 숲과 오리, 닭들이 사람과 어울려 노는 소쇄원 초입에 들어서자 오랜 방황 끝에 돌아온 내 집 마당처럼 애틋한 잔잔함에 잠시 마음이 풀어집니다. 소쇄원의 정원이 시작되는 이 편과 계류의 물이 흘러내리는 저 편 사이에 새 색시처럼 얌전하게 다리가 놓인 정원 입구에 들어서자 나는 그만 탄성을 지르게 됩니다. 한참 멍하니 정신없이 훑어보며 다리를 사뿐히 지나 光風閣(광풍각)에 잠시 앉아 500년 전의 시대, 상상의 세계로 내 몸을 실어봅니다.

그곳은 정원이 조성되기 전부터 흘러내리고 있던 장원봉에서 흘러내리는 계류와 계곡의 바위 나무들이 고요 속에 묻혀 있습니다. 잠시 신선이 된 듯한 꿈에서 깨어나 광풍각을 뒤로 하고 霽月堂(제월당)이 있는 언덕바지 돌계단을 올라갑니다. 주변을 휘이 한바퀴 돌자 정원 전체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우와! 하는 탄성만 자꾸 나옵니다. 이 정원을 조성한 옛주인의 취향에 존경을 보내지 않을 수 없으며, 내 몸은 감동으로 잠간씩 전율이 흐르고 지나갑니다.

   
  광풍각  


무등산 영봉까지도 감상할 수 있도록 조망의 대상에 포함, 대자연의 일부를 정원으로 탈바꿈시켰다고 하는 소쇄원은 지형의 높낮이를 이용한 다양한 변화와, 그 높고 낮음이 마치 반음이나 반박자의 변화로 온갖 음악을 변주해 내듯 여기저기서 다른 아름다움을 수없이 드러냅니다. 거기에 빠른 변화의 화음처럼 광풍각과 제월당의 상하의 위치, 그 앞을 五曲門(오곡문)에서 시작하여 빠르게 느리게 바위 사이를 누비며 내려가는 계류는 청각과 시각의 맛을 더욱 깊게 합니다.

개인적으로 이곳 소쇄원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은, 진달래가 무리지어 피어있는 길 따라 계곡의 상류로 가는 통로를 만들어 놓은 오곡문 주변이었습니다. 특히 진달래가 무리진 애양단을 거쳐, 오곡문 옆 담장 안으로 흘러드는 계류 위로 걸친 다리와 오곡문은 한 편의 시였습니다.

   
  오곡문  

소쇄원에서의 소쇄는 '기운이 맑고 깨끗하고 시원하다'라는 뜻으로 이 정원을 조성한 조선 중종 시대 양산보는 사약을 받은 조광조를 따라 내려와 이곳 고향인 담양에 정원을 조성하고 평생 은둔하며 자연에 묻혀 살게 됩니다.

혹자는 고산 윤선도가 지은 洗然亭(세연정)이 있는 부용동 정원을 조선시대의 가장 아름다운 정원으로 꼽지만, 부용동은 수평적인 조성이어서 호탕하게 트인 전망으로 하늘 구름, 바위 등 편안하고 고요한 자연을 즐길 수는 있으나 변화가 없어 재미가 약합니다.

나의 개인적인 안목과 취향으로는, 오밀조밀하면서 탁 트이기도 하여 지형에 따라 변화가 있는 소쇄원을 조선시대의 전통 정원 가운데 가장 예술적이며 사색적인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쇄원에서 찍은 사진만으로 사진전을 할 수 있을 만큼의 다양한 그림이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제월당  


인공적으로 다듬어진 일본의 정원이나 현란한 색채와 경물들로 치장한 중국정원의 분위기와는 다른, 소박하고 자연스러우며 기품을 지니고 있는 소쇄원은 그 당시 낙향한 선비들의 이상향이라고 할 수 있었듯 나에게도 그곳은 이상향이었습니다.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었던 가장 아름다운 조선적인 정원으로, 오직 우리 조상만이 조성할 수 있었던 고유한 문화 유산입니다.

세계에 자랑하여도 손색이 없는 이 유산을 잘 지켜 나가기 위해선 답사 방문객을 제한적 예약제로 바꾸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관람하다 보면 작은 수목, 돌부리 하나라도 훼손되지 않을까 심히 우려되기 때문입니다.

* 이 글에 실린 사진들은 소쇄원에서 필자가 찍은 것입니다.

   



글쓴이 오마리님은 샌프란시스코대학에서 불어, F.I.D.M (Fashion Institute of Design & Merchandising)에서 패션 디자인을 전공한 후 미국에서 The Fashion Works Inc, 국내에서 디자인 스투디오를 경영하는 등 오랫동안 관련업계에 종사해 왔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글쓰기, 그림그리기를 즐겼으며, 현재는 캐나다에 거주하면서 아마추어 사진작가로 많은 곳을 여행하며 특히 구름 찍기를 좋아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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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1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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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브로 (119.XXX.XXX.197)
사진을 보니 우리나라도 이런곳이 이군요.
한번 시간내어 가봐야 하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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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8 19:48:12
0 0
한창호 (115.XXX.XXX.3)
'기운이 맑고,깨끗하고,시원하다'라는 뜻의 소쇄원을 지난 달, 5월8일, 전남, 진도 여행 길에 중도에 들렸답니다. 60 허리의 26명 동창들이 서울서 역시 담양 소쇄원이 초행인 버스 기사 아저씨와 함께 '남도 유적 탐사'라는 거창한 제목을 갖고 출발하였는데, 고창 선운사와 고창읍성의 판소리 박물관을 들려 소쇄원을 찾아가는데 중도에 이정표가 애매하게 되어있어 잠시 헤맨 기억도 나고, 늦게 도착한 탓에 해설가를 찾았으나 마침 자리를 비우는 바람에 관리인이 대신나와 소년 천재 양산보가 왜 당시 벼슬을 마다하고 고향으로 내려와 정원을 지은 배경을 오곡문 앞에서 들었는데, 그 분(관리인)의 청산유수와 같은 해설에 우리일행은 모두 감탄, 또 감탄했답니다. 14대 후손이라는 젊은 이가 매표소에서 표를 팔고 있었는데, 작가님이 말씀하신 원형 그대로의 보존, 유지 탓이지, 정말로 자연스럽다못해 오곡문, 좁은 개울에선 냄새도 났고, 모기때들이 극성도 부렸지만, 그의 명 해설로 소쇄원의 역사를 잘 이해하게 되었답니다. 사진 잘 보았습니다. 지금도 사랑채와 서재가 붙은 제월당 마루에서 잠시 휴식하던 생각이 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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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7 12:12:59
0 0
부시시 (58.XXX.XXX.61)
몇 년 전에 내가 갔을 때는 입구의 대나무 울도 없었고 인공적인 맛이 그래도 좀 덜했는데.물론 오리는 그 이후에 태어난 녀석일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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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5 21:24:13
0 0
Thackeray (61.XXX.XXX.136)
그 중 소쇄원은 혼자 또는 박물관 대학팀,여행자 클럽팀, 또는 그 호남에서 태어난 속칭 백제도민 친구들의 집에 들렀다가 자의반 타의반으로 자주 들를 기회가 많았다. 봄 여름,가을,겨울 대나무가 울창한 주변과 유명세 덕분인지 언제나 번다하였으나 어느 여름 무섭게 장대비가 내리는 소쇄원은 너무나 특이한 인상을 주었다. 물에 떠내려갈까 악 소리가 나올만큼 소쇄원도 우리가 타고 갔던 체어맨 차체도 굉음에 묻혀 있었다. 물론 그 난리속에는 그 많던 관광객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그 날 소쇄원은 비록 폭포처럼 쏟아져 내려가는 장대비 속이었지만 기이한 호젓함을 우리에게 안겨 주었다. 소쇄원을 돌아 보성 차밭으로 올라가는 도중 비가 멈추었고 년 중 그 곳을 가장 운치있게 한다는 장마철 안개속 다원의 그림같은 풍경에 절로 찬사가 터져 나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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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5 05:29:23
0 0
관리자 (211.XXX.XXX.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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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5 01:21:14
0 0
조형자 (211.XXX.XXX.129)
오마리님,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잠시동안 글속에 파묻혀 있었습니다.
좋은 사진이 있으시면 보내주실수 있는지요. 안녕히 계세요. 조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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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2 18:22:34
0 0
김윤옥 (210.XXX.XXX.31)
...................소쇄원에서 찍은 사진만으로 사진전을 할 수 있을 만큼의 다양한 그림이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한 번 소쇄원 사진전을 열어주심이 어떠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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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2 13:40:45
0 0
이금희 (24.XXX.XXX.87)
소쇄원에 꼭 가보고 싶었습니다.
올 여름엔 답사할 계획을 세우렵니다.

좋은 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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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2 11:54:58
0 0
신아연 (123.XXX.XXX.28)
그리고 부럽습니다. 언제나 훌쩍 떠날 수 있는 선생님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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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1 11:42:49
0 0
김창식 (110.XXX.XXX.40)
사진과 글이 어우러진 정갈한 기행문이군요, 오마리님.
특히 윗 사진 깊은 사유에 잠겨있는 철학자 오리의 모습이 가슴을 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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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1 08:5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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