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검색어 : 자유칼럼, 에세이
> 연재칼럼 | 방석순 프리즘
     
외포리 가는 길
방석순 2009년 06월 08일 (월) 08:33:43
마음이 울울 답답할 때엔 어디로든 훌쩍 떠나보는 것이 꽤 효과적인 치유법입니다. 몸이 불편할 때 전지요양을 떠나고, 땀 흘린 만큼 성과가 보이지 않을 때 전지훈련을 떠나는 것도 같은 이치일 것입니다. 서울에서 가까우면서도 일상사를 잊기에 충분한 자연과 볼거리들이 있어 강화도는 별다른 준비 없이도 찾기 좋은 나들이 코스입니다.

한강변 남쪽으로 시원스레 뻗어있는 88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끝까지 가다보면 김포 어귀에서 거의 360도를 돌아서 들어가는 제방도로가 나옵니다. 강화로 들어가는 가장 운치(?)있는 길입니다. 왕복 2차선 좁은 뚝방길 옆에 대북 경계용인지 철조망에 군데군데 초소까지 서 있습니다. 재미있는 건 그 철조망 넘어 강 건너에 신기루처럼 일산 신도시의 고층빌딩들이 들여다보인다는 사실입니다.

강화읍에서 다시 섬의 서쪽 해안에 있는 석모도로 가려면 84번 국도를 타고 강화도 허리를 가로질러 외포리로 가는 게 지름길입니다. 그 외포리 가는 길에 정말 ‘외포리 가는 길’이라는 카페가 있었습니다. 서울 살던 젊은 아낙 하나가 강화도가 너무 좋아 남편 자식 다 팽개치고 혼자 살며 운영하던 곳입니다.

젊은 여자가 무슨 배짱으로 그런 용기를 냈느냐니까 예전 더 젊었던 시절 전국 각지를 다니며 역사 유적을 돌아보는 재미에 흠뻑 빠졌었답니다. 그 가운데 특히 천년고도 경주가 마음에 들었는데 살던 서울을 버리고 떠나기엔 너무 멀어 대신 가깝고도 유적이 많은 강화도를 택했다는 겁니다. 그 바람에 서울 사는 남편은 아들을 데리고 주말이라야 찾아와 견우직녀가 되고 말았답니다. 강화도는 정말 석기시대부터 최근세까지의 수많은 유적들이 널려 있어 역사박물관 같은 곳입니다.

강화도의 특별한 분위기를 즐기며 드나들던 어느 날 바로 그 길 옆에 붙어선 카페에 처음 들어가 보았습니다. 처음엔 카페 이름이 마음에 들었고, 다음엔 그 속의 아기자기한 치장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갖가지 모양의 시계, 예쁜 집 미니어처 등이 카페 안에 오밀조밀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한 해에 겨우 한두 번 들러도 변함없이 반겨주는 여주인의 따사로운 인정에 반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곳이 돼 버렸습니다. 겨울이면 화롯가에 붙여서 구워주는 고구마 맛도 별미입니다.

남의 이름을 함부로 공개하는 건 아무래도 조심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워낙 사람들을 좋아하고 함께 수다 떠는 걸 마다않는 분이니 이해하리라 믿고 여기 소개하려 합니다. 그 여주인 이름은 ‘한득남’입니다.

어느 날 우연히 카페에서 마주친 그 여주인의 맏언니 되는 분의 재담에 우리는 한참이나 박장대소했습니다. 부친이 첫딸을 낳아 서운해 하자 잘 알고 지내던 스님이 그 딸 이름을 ‘득남’이라 지어라, 그럼 둘째는 아들을 낳게 될 것이라고 일러주더랍니다. 부친이 뭐 그러려구, 콧방귀를 뀌고 낳은 둘째 역시 딸이었습니다.

거 보라니까, 둘째라도 ‘득남’이라고 지으라구, 했지만 아무래도 딸 이름으론 적절치 않다고 거절하고 낳은 셋째 역시 딸이었습니다. 그렇게 사양하다 네 번째에도 득남에 실패한 부친이 눈물을 머금고 지은 이름이 바로 카페 여주인의 ‘득남’이라는 이름이었답니다. 덕분인지 부친은 곧바로 그렇게 바라던 아들을 얻었다며 맏언니는 깔깔대고 웃었습니다.

안양대 강화 캠퍼스, 강화도 농업기술센터를 지나자마자 마주치게 되는 그 카페 이름은 지금 ‘허브&커피’로 바뀌었습니다. 너무 메마른 이름이라고 타박했더니 사람들이 ‘외포리 가는 길’은 그냥 지나치는 길로만 알기에 바꿨다고 변명합니다. 실은 예전 주인과 주위 사람들과의 마찰이 있어 부득이 바꿨다는 설명이었습니다.

견우직녀도 뜻을 모아 지금은 남편 아들이 모두 옮겨와서 강화도가 본진이 되었습니다. 서울 꽃미남으로 불렸을 법한 남편은 어느덧 검게 그을린 얼굴의 농부가 되었고, 서울 초등학교를 다니다 말고 강화도로 들어온 아들도 어느덧 고등학생으로 자라 역사의 고장 강화도의 헌헌장부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강화도 나들이도 유쾌하지만 ‘허브&커피’에 앉아 주인 내외와 수다를 떨면서 갈 길을 점검해 보거나, 귀로에 그날 돌아본 길을 함께 이야기하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강화도엔 산이 있고 내가 있고 바다가 있어 좋습니다. 거기에 역사 유적, 그리고 그런 것들을 함께 좋아하고 이야기할 사람들이 있어 더욱 좋습니다. 그들을 만나러 가는 길도 즐겁고 그들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 역시 늘 즐겁습니다.
   
ⓒ 자유칼럼(http://www.freecolum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칼럼의견쓰기(4개)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떠나가는 김삿갓 (61.XXX.XXX.136)
불쑥 찾아갔더니 후배는 집에 없었습니다. "미리 연락할 걸 그랬나?"하고 쪼메 후회하고 있는데 옆 집 아재가 말을 걸어 왔습니다."하이고...** 엄마가 아마 유아원에 가셨나 봅니다. 기다리시면서 저 홍시 함 따서 드셔 보세요..이 쪽 홍시는 드시지 마세요...맛이 훤씬 못합니다..." 그 다음 날 아침 일찍 차로 데려다 주겠다는 후배를 뒤로 하고 총총 서울행 정류장으로 향했습니다. 가을걷이가 한참인 들녁이었지만 들국화,코스모스와 함께 외롭지 않았고 안개 속을 헤메임은 기이하네...솔바람이 불어 오는 가을 언덕에....한 떨기 들국화가 피어 있는데..생각나는 대로 시귀를 읊다 노래를 부르다 마구 달려 오는 대형 트럭에 놀라 논바닥으로 뛰어 내리기도 하고..한 낮이 기울어서야 도착한 강화 시외 버스 정류
장... 두고 두고 강화도 갓길을 혼자서 걸어 간 무지몽매한 사람으로...온갖 야유와 화제의 주인공이 되었었죠...ㅋ 후배는 설마 끝까지 걸어가리라곤 상상도 못했다고 합디다만....ㅋ 장사익씨의 가락이 전등사를 수놓은 또 다른 산사 음악회 가을밤도 잊지 못할 강화도의 생생한 추억거리로 남아 있습니다.
답변달기
2009-06-10 22:24:20
0 0
김윤옥 (210.XXX.XXX.12)
'여기가 어디냐고'- 이성복(1952~ )

붉은 해가 산꼭대기에 찔려
피 흘려 하늘 적시고,
톱날 같은 암석 능선에
뱃바닥을 그으며
꿰맬 생각도 않고
-여기가 어디냐고? -맨날 와서 피 흘려도 좋으냐고?

이성복의 詩-- 여기가 어디냐고? -- 아마도 강화였나봅니다.
답변달기
2009-06-10 12:33:41
0 0
김윤옥 (210.XXX.XXX.137)
아무래도 그곳에 남모르는 보물을 묻어두신 듯 합니다.
때때로 찾아 갈 수 있고, 때때로 찾아가고싶은 곳 한 곳 쯤 있다면 고향 없이 이렇게 떠도는 영혼의 쉼표 하나 가질 수 있겠지요.
답변달기
2009-06-09 16:06:35
0 0
나그네알바트로스 (61.XXX.XXX.136)
"외포리 가는 길"이 그대로 상호를 유지하고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봅니다. 후배가 강화도에 살 때 가끔 찾아 간 그 곳은 이제 그렇게 고즈넉하거나 안주하고 싶은 곳은 아니더이다...너도 나도 강화도로 달려가 투기꾼의 표적이 되었으며 오염시키고 파괴하여 한동안 찾지 않았으나 재작년인가 만추에 불교 교사 협의회에 묻혀 절간 네 곳을 찾아 보았습니다. 아무리 세월이 산천을 망가뜨려도 산사는 그 곳에 그대로 머물며 수 백 년은 실히 되었을 울울창창한 거목으로 세속의 영혼을 숙연하게 하더군요. 아름다운 이야기에 아름다운 표현 잠시나마 뿌듯하였습니다.
답변달기
2009-06-08 23:46:30
0 0

다음에 해당하는 게시물 댓글 등은 회원의 사전 동의 없이 임시게시 중단, 수정, 삭제, 이동 또는 등록 거부 등 관련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운영원칙]

  • 욕설 및 비방, 인신공격으로 불쾌감 및 모욕을 주거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
  •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저작권을 침해하거나 불법정보 유출과 관련된 글
  •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사생활 침해 및 개인정보 유출
  • 공공질서 및 미풍양속에 위반되는 내용을 유포하거나 링크하는 경우
  • 불법복제 또는 해킹을 조장하는 내용
  • 영리 목적의 광고나 사이트 홍보
  • 범죄와 결부된다고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내용
  • 지역감정이나 파벌 조성, 일방적 종교 홍보
  • 기타 관계 법령에 위배된다고 판단되는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