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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은사에서의 30분
김수종 2009년 06월 03일 (수) 07:56:07
30분의 시간에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간단히 신문을 보는 일, 텔레비전 뉴스를 보는 일, 동네 공원 산책하는 일, 출퇴근 하는 일 등이 있습니다.

식사하는 일도 30분 동안에 할 수 있는 적합한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30분 정도의 시간에 가장 많이 반복하는 일상사가 아마 식사일 것입니다. 물론 10분 만에 먹어치우는 사람도 있고, 사람을 접대하느라 2시간을 식탁에 앉아 있는 경우도 있을 것이나, 보통 사람들이 식사하는 것은 30분이면 족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얼마 전 서울 봉은사에서 30분간 아침을 먹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희망제작소 후원클럽이 명진 주지스님과 함께 소위 발우공양(鉢盂供養)을 하는 모임이었습니다.

   
발우공양은 절간 스님들이 식사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발우는 승려들의 식기세트로 네 개의 그릇으로 구성됩니다. 제일 큰 그릇은 밥그릇, 두 번째는 국그릇, 세 번째는 청수그릇이며, 가장 작은 그릇은 찬그릇입니다. 밥그릇은 무릎 왼쪽 바로 앞에 놓으며 국그릇은 오른쪽 앞에 놓습니다. 찬그릇은 밥그릇 바로 앞에, 물그릇은 국그릇 바로 앞에 놓습니다. 목탁이나 종으로 공양을 알리면 승려들이 모여 주지 스님을 중앙에 두고 좌우로 가부좌합니다.

절간 음식은 동물 식재료를 쓰지 않는 소식(素食)이니 그릇이 많이 필요하지 않지만, 그나마 개인 찬그릇 하나에 반찬을 먹을 만큼 덜어내서 먹으니 식기는 이렇게 간편합니다.

승려가 아닌 사람들이어서 그날 발우공양은 엄격한 격식에 따르지 않고 약식으로 했으니 발우공양 체험이라고 해야 옳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총무스님이 “음식을 절대 남겨서는 아니 됩니다. 먹을 만큼만 덜어내야 합니다.”고 강한 톤으로 말하는 바람에 사회적 지위도 꽤 있는 참석자들이 주눅이 들 정도였습니다. 주지스님이 “총무스님이 기합 주느라고 내가 배고파 죽겠네요. 옆에 분들과 잡담도 하고 자유롭게 드세요.”라고 농담을 해서 밥 먹는 분위기가 좀 부드러워졌습니다.

그날 식단은 잣죽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절간 음식이 단순한데 이날따라 잣죽이니 단순의 극치였습니다. 밥그릇은 쓰이지 않고 죽 그릇에 먹을 만큼만 잣죽을 담았고, 찬그릇에 김치 등 두어 종류의 반찬을 덜어내서 놓았습니다. 총무스님의 잔소리가 카랑카랑 쏟아졌습니다. “반찬접시에 있는 단무지를 한 조각만 찬그릇에 갖다 놓되 절대 먹어서는 아니 됩니다.”

잣죽 한 그릇을 30분 동안에 먹었습니다.
진짜 발우공양에서는 말은 없고 오직 죽비소리에 따라 무언의 식사가 이뤄진다고 합니다. 참석자가 말을 할 때는 음식을 감사히 받는다는 요지의 ‘오관게’를 외우는 일만 허용됩니다. 그야말로 먹는 일도 수행의 일부가 되는 것입니다.

그날 우리 중생들은 그래도 총무스님의 친절한 육성안내와 군데군데 앉은 다른 스님들의 행동을 곁눈질하며 잣죽을 먹었습니다. 죽은 참 맛있었지만 숟가락은 분위기를 받아 무거웠습니다.

죽을 다 먹자 총무스님이 죽비를 치며 숭늉 먹는 방법을 말합니다. 제일 큰 밥그릇에 숭늉을 원하는 양만 받아 그릇을 헹구고, 그 물을 다시 국그릇(그날은 죽그릇)으로 옮긴 후 반찬 그릇에 남겨둔 단무지를 젓가락으로 집어 수세미 대용으로 죽그릇을 깨끗이 씻으라는 겁니다. 그리고 그 물을 다시 찬그릇에 옮겨 꼭 같은 방법으로 씻은 후 단무지도 먹고 그릇을 씻은 숭늉을 남기지 말고 마시라는 안내였습니다. 참석자들은 그릇 닦은 숭늉을 마시는 것에는 익숙하지 않은 눈치를 드러냈습니다만 전반적으로 독특하고 좋은 체험을 한다는 만족감을 보였습니다.

이렇게 하니 죽그릇과 반찬그릇은 물기만 조금 있을 뿐 깨끗해졌습니다. 그 다음으로 행주로 네 개의 그릇에서 습기를 닦습니다. 이렇게 습기를 없앤 그릇을 큰 것 속에 차례대로 작은 것을 포개 넣으면 러시아 인형처럼 하나의 그릇처럼 간편하게 정리가 됩니다.

발우공양, 그것은 간결의 극치였습니다. 30분 동안의 발우공양에서 두 가지 상념이 떠올랐습니다. 첫째 먹을 만큼 먹고 남기지 않음으로써 음식의 귀중함을 깨닫고 몸을 가볍게 유지하는 짧은 체험입니다. 둘째 이런 행동을 통해 몸뿐만 아니라 마음의 절제를 느껴보게 됐습니다.

요즘 절음식이 웰빙 음식으로 또는 친환경 음식으로 인구에 많이 회자됩니다. 너무 기름진 음식을 먹어 영양의 밸런스를 잃은 사람들에게는 훌륭한 웰빙 음식이라 할 만합니다. 전국적으로 하루 1만 톤의 음식쓰레기를 배출하는 나라에서 발우공양의 식습관을 가진다면 정말 환경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어느 종교나 음식을 낭비하는 것은 권장하지 않습니다. 불교뿐 아니라 개신교와 천주교 등 갖가지 종교가 이렇게 융성한 나라에서 음식 낭비가 심한 것은 우리 사회만의 특징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하루 한 끼쯤 발우공양을 하듯이 식사를 하며 절제의 시간을 갖는다면 나라 분위기도 좋아지고 환경도 좋아질 것입니다. 내수가 위축되어 경기회복에 도움이 안 된다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권장할 만한 소비행위는 아닙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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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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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옥 (210.XXX.XXX.137)
무엇보다 ..............총무스님이 “음식을 절대 남겨서는 아니 됩니다. 먹을 만큼만 덜어내야 합니다.”고 강한 톤으로 말하는 바람에 사회적 지위도 꽤 있는 참석자들이 주눅이 들 정도였습니다................ 참 좋은 경험을 하셨습니다. 이런 절제와 경건함의 기회를 가끔씩 가진다면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 사회를 정화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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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09 17: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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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범 (121.XXX.XXX.217)
김수종님의 글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시간의 길이는 마음이 잣대라는것 실감합니다.

신상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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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03 20: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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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123.XXX.XXX.28)
집에 혼자 있을 때는 정말 물에 말아 김치 하나 놓고 '떼우듯' 하는 일이 잦지만 문제는 나갈 때입니다. 접대를 받을 때나, 접대를 할 때 정말 음식 낭비가 심한데, 저는 좀 그런 면에서 유별나서 그러고 나면 며칠 간 심한 자책에 시달린 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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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03 09:3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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