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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느냐 물으면 - 『시절을 슬퍼하여 꽃도 눈물 흘리고』
김이경 2009년 05월 26일 (화) 05:53:46
얼마 전 팔순을 맞으신 어머니는 예순여섯 되던 해 위암 수술을 받고 일년여 치료를 받으셨습니다. 위의 ⅔를 잘라낸 데다 항암제 때문에 음식을 제대로 넘기지 못해 참 힘든 나날을 보내셨지요. 그때 어머니는 “나는 지금 죽으면 딱 좋은데 왜 이 고생을 해야 하나!” 하며 한탄하곤 하셨습니다. 옆에서 간호하던 자식들 입장에선 맥 빠지고 듣기 싫은 말이었지요.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
“너희들도 다 커서 제 앞가림하지, 나도 할 만큼 하고 누릴 만큼 누렸는데 아쉬운 게 뭐가 있겠냐? 공연히 더 살아서 이보다 더 험한 꼴이나 볼까 무섭다.”
그 마음을 잘 알면서도 그때마다 저는 몹시 골을 냈습니다. 자식이 열심히 간호를 하면 열심히 사실 생각을 해야지 왜 죽을 생각을 하나, 서운하고 속상했습니다. 다들 책임감으로 사는 거라고 아픈 어머니를 다그친 적도 여러 번이었습니다.

평균 팔십 년을 산다는 세상이지만, 그 팔십 년 중 기쁨의 세월보다 고통과 근심의 세월이 더 긴 걸 생각하면 꼭 좋다고만 할 수도 없는 것 같습니다. 책임감으로 사는 거라고 잘난 척도 했지만 사람이 어떻게 책임감으로만 살겠습니까? 그러니 왜 사냐고 물으면 웃지도 못하고 그저 답답할 따름이었지요. 다행히 요시카와 고지로의 ‘두보강의’가 힘이 되어줍니다.

책 제목 『시절을 슬퍼하여 꽃도 눈물 흘리고』는 두보의 명시 「춘망(春望)」의 한 구절입니다. 756년, 반란을 일으킨 안녹산 군에게 붙잡혀 있을 때 쓴 시라고 하니 두보 나이 마흔여섯 무렵입니다. 시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나라는 부서졌는데 산하는 남아 있고(國破山河在)
성 안에 봄이 와서 초목이 우거졌네(城春草木深)

반란군이 일어나 세상은 어지러운데 자연은 늘 그렇듯 무심한 듯 의연합니다. 가족과도 헤어져 홀로 잡혀 있는 시인에게 유유한 자연의 흐름은 더욱 사무칩니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만 같아 시선을 돌리니, 저기 보이는 꽃도 새도 슬퍼 우는 것만 같습니다. 그리하여 “시절을 슬퍼하며 꽃도 눈물 흘리고, 헤어짐을 한하며 새가 마음을 놀랜다.”고 시인은 탄식합니다.

불우한 시인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두보답게, 가슴 저미는 시구가 읽는 이의 마음을 흔듭니다. 하지만 세계적인 중국문학자 요시카와 고지로는 그 우수(憂愁)를 단순히 개인적인 불행의 반영으로만 보지는 말라고 합니다. 두보 시의 우수는 “그의 성실한 인격에서 나온 것”이며, “세상의 부조리와 불공정에 대한 성실한 노여움”의 표현이라는 거지요.(이 부분은 『당시 읽기』에서 인용했습니다.)

젊은 시절부터 관직에 나아가 세상에 쓰이기를 바랐지만 두보는 그 꿈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안녹산이 죽은 뒤 반란군 진영을 탈출하여 황제를 찾아간 공으로 관직에 임명되었지만, 그의 의견은 번번이 묵살되고 결국 몇 개월만에 지방으로 좌천되고 맙니다. 역사가들은 이에 대해 “이상만 높고 실제적이지 못한” 탓이라고 평가합니다. 아마도 그 말이 맞을 겁니다. 백성을 위해 이상적인 정치를 펴겠다는 포부가 없었다면 어찌 다음과 같은 절창이 나올 수 있었겠습니까?

붉게 칠한 문엔 술과 고기 썩어나는데(朱門酒肉臭)
길에는 얼어 죽은 뼈가 나뒹구는구나(路有凍死骨).
영고는 지척을 사이에 두고 다르니(榮枯咫尺異)
슬퍼서 더 이상 말하기 어렵구나(惆悵難再述).……
살아서는 늘 조세를 면하고(生常免租稅)
이름은 정벌에 있지 않은데(名不隸征伐)
자신을 돌아보면 여전히 괴로움 겪으니(撫跡猶酸辛),
평범한 사람은 참으로 어지러울 것이로다(平人固騷屑).
말없이 실업의 무리를 생각하고(黙思失業徒)
그로 인해 먼 전쟁의 병졸을 생각하니(因念遠戍卒)
근심스러움은 종남의 산과도 나란하고(憂端齊終南)
홍동하여 그칠 수가 없다네(澒洞不可掇).

755년 겨울, 안녹산의 난이 일어나기 며칠 전 간신히 미관말직을 얻은 두보는 봉선현 시골에 맡겨둔 처자식을 만나기 위해 달려갑니다. 하지만 장안에서 봉선까지 사흘의 짧은 여정 동안 그가 본 것은, 황제의 총애를 받는 고관대작들이 흥청망청하는 사이 백성들은 길에서 얼어 죽는 현실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가족을 만났을 때 두보는 끔찍한 소식을 듣습니다. 어린 자식이 이미 굶어죽은 것입니다.

“부끄러운 바는 사람의 아비가 되어 먹을 것이 없어 요절시킨 것”이라 가슴을 치던 시인은, 그러나 자신의 슬픔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그나마 사족(士族)이라 하여 납세 의무도 없고 병역 의무도 없는 내가 이럴진대 평범한 백성은 얼마나 괴로울 것인가. 500자가 넘는 장시 「장안에서 봉선현으로 가는 길에 회포를 읊다(自京赴奉先縣詠懷五百字)」는 온 세상의 불행을 아파하는 시인의 울음으로 끝을 맺습니다. 높은 이상이 있었기에 가능한 ‘성실한 노여움’이요, 그 노여움이 있었기에 가능한 ‘지극한 울음’입니다.

두보는 “시어가 사람을 놀라게 하지 않으면 죽어도 그만두지 않는다.”는 정신으로 시를 썼다고 합니다. 시를 팔아 밥 한 끼도 해결하지 못하는 시대였음에도 그가 시를 대하는 태도는 그토록 엄정했습니다. 비록 관리가 되어 뜻을 펴지는 못하지만, 자신의 앎으로 세상을 조금이라도 낫게 만들겠다는 드높은 이상이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그 이상 때문에 세상의 비웃음을 사고 고독한 운명에 처하게 되어서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대의 뜻을 남들은 알지 못하나니(君意人莫知)
인간 세상은 밤에 고요하도다(人間夜寥闃). (「곡강삼장(曲江三章)」에서)

남들이 알지 못하는 뜻을 품고 혼자 새우는 밤, 그 쓸쓸함과 함께 인간의 밤은 덧없이 깊어갑니다. 요시카와는 그 고독감을, 시대를 앞선 시인이 겪어야 했던 피치 못할 고독이라고 설명합니다.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눈을 가졌기에 그는 고독한 예언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는 거지요.

살다보면 내가 왜 이런 고통을 겪으며 살아야 하는가, 하늘에 묻고 싶은 날이 있습니다. 두보는 같은 시에서 “이 생애는 하늘에 묻지 말리라 스스로 결단했네.”라고 읊습니다. 인생에 대한 체념일 수도 있지만, 더 이상은 운명을 헤아리려 애쓰지 않겠노라는 결심일 수도 있습니다. 누가 뭐라든 나는 내가 생각한 대로 ‘죽어도 그만두지 않겠다’는 각오인 거지요.

어린 자식을 잃는 참담함을 겪고도 두보는 끝까지 살았습니다. 그리고 수십 년을 헤매다 끝내 타향 땅에서 쓸쓸히 눈을 감았습니다. 그러나 불행이나 비참이라는 말로 그의 삶을 기리는 것은 그가 남긴 시에 대한 모독입니다. 스스로 고독을 결단하는 의지로 그는 중국시를 혁신하고 새로운 세계를 엽니다. 누구보다 현실에 투철했던 시인이지만, 그는 삶의 의미를 세간(世間)에서 구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스스로가 정한 뜻을 믿고 묵묵히 제 길을 걸어갔습니다.

왜 사느냐는 물음이 더없이 무겁고 막막하게 느껴져 차라리 눈을 감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삶의 의미는 구하는 것이 아니라 결단하는 것. 기왕 사는 인생, 남들이 알든 모르든 온 세상을 아우를 만큼 큰 뜻을 세워도 좋을 겁니다. 그래서 세운 제 포부는, 이 땅의 악이 명을 다하는 날까지 사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오래 살겠다는 뜻이 아니냐 하신다면… 예,… 그냥 웃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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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7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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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섭 (211.XXX.XXX.17)
좋은 글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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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8 00: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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慧 輪 (59.XXX.XXX.211)
삶 과 죽음에 관해 너무 많은 표현이 있게 마련이지요. 그런데 김선생님의 글을 읽으며 그 의미를 다시 돠삭여보게됩니다. 사람으로 태어나기가 '장님거북이가 태평양같은 바다에서 나무토막 만날 수 있는 가능성'만큼 어렵다지요. 그렇게 어렵게 태어나도 누구나 할것없이 '生老病死'를 앓지요. 두보 같은분이야말로 처절한 인생을 치열하게 사셔서 詩聖이되시어 후세사람들에게 시를통해 인생을 가르쳐주면서 위무해주시어 어떻게 감사드려야할지 모릅니다. 김선생님같은 분이 이렇게 소개해 주시어 정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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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6 17:2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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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장미꽃은흐드러지게피었건만 (210.XXX.XXX.253)
선구자는 외롭습니다......선구자는 고통스럽습니다.....선구자는 그러나 훗날을 기약합니다. 먼지에서 와서 먼지로 돌아가는....흙에서 나와 흙으로 돌아가는...세상사....아래 누군가 올린 댓글은 영국에서 제 질녀가 "얼마나 충격이 컸을까..."걱정된다며 보낸 편지에 대한 답 아래 끌어다 보냈습니다. 감동 그 자체라고 하면 쪼까 영화 광고물처럼 보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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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6 16:2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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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123.XXX.XXX.28)
'삶의 의미는 구하는 것이 아니라 결단하는 것', 그리고 그 전에 선택하는 것입니다. 저는 항상 제 반사적 본능이 이끄는 쪽의 반대쪽을 선택합니다. 그것이 단 1% 의 차이에 불과할지언정. 이해인 수녀가 말한 저울이 '행복'쪽으로 기울게 하는 49대 51의 '2'만큼의 차이라고 빗대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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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6 14:4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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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옥 (210.XXX.XXX.212)
자유칼럼 독자 한 분이 쓴 덧글중에 '참으로 빛나는 몇몇 여성의 칼럼읽는 즐거움으로 여기를 찾는다' 는 글을 읽었는데 오늘아침 김이경님의 글이 딱 그런 즐거움을 대표하는 것같습니다.
정말 좋은 글 감사합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서중 '삶과 죽음이 한가지가 아니겠는가?' 하신 말씀으로 또 다른 의미의 삶(죽음)을 통해서 우리에게 하시고자한 말씀은 무엇이었는지 곰곰 헤아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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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6 11:3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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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클뭉클 (211.XXX.XXX.129)
석달이 조금 안된 지나간 일입니다
살아가야하는 파란만장한 인생이 남았는데도
그때는 죽을만큼 힘이 들었습니다
그때 엄마가 새벽불공이 끝나고 보낸 문자입니다
"살아남는자의 슬픔이란 말 우리를 슬프게 하지만 그게 현실인 것을
맘속의 응어리 다 던져버리고 툴툴 털어버리렴..."

김이경님의 글을 읽다보니 엄마의 문자가 생각이 납니다
여기저기 '죽음'의 그늘에 휩싸여 아등바등되는 요즘
글귀 하나하나가 가슴에 와닿습니다!!!
감사히 잘 읽고 갑니다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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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6 10: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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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eddulnal (118.XXX.XXX.124)
<등고(登高)>


風急天高猿嘯哀 (풍급천고원소애)

渚淸沙白鳥飛廻 (저청사백조비회)

無邊落木蕭蕭下 (무변낙목소소하)

不盡長江滾滾來 (부진장강곤곤래)

萬里悲秋常作客 (만리비추상작객)

百年多病獨登臺 (백년다병독등대)

艱難苦恨繁霜鬚 (간난고한번상빈)

燎倒新停濁酒杯 (요도신정탁주배)

바람이 빠르며 하늘이 높고 원숭이의 휘파람이 슬프니

물가가 맑고 모래 흰 곳에 새가 돌아오는구나.

끝없이 지는 나뭇잎은 쓸쓸히 떨어지고

다함이 없는 긴 강은 잇달아 오는구나.

만 리에 가을을 슬퍼하여 늘 나그네가 되니

한평생 많은 병에 혼자 대에 오른다.

온갖 고통에 서리 같은 귀밑머리가 많음을 슬퍼하니

늙고 초췌함이 흐린 술잔을 새로 멈추었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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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6 10: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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