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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표범 추성훈
김창식 2009년 05월 16일 (토) 12:43:48
이종격투기가 정통 스포츠는 아니지만 우리나라에 팬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저도 가끔 TV를 통하여 경기를 시청하는데, 제가 좋아하는 선수는 '추성훈(34, 秋成勳, 일본명 아키야마 요시히로)' 입니다. 그가 일본 국적의 선수이면서도 우리 민족의 피가 흐르고 있어서만은 아닙니다.

격투기 입문 오래전 추 선수는 재일동포 유도선수로서 우리나라에서 활동하였으나 큰 선수는 되지 못하였고, 어쩔 수 없이 다시 일본으로 돌아갔습니다. 실력을 갖추었으면서도 그럴 수밖에 없었던 데에는 우리나라 유도계의 시스템(편 가르기로 인한 판정시비)이 일부 작용하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 후 그는 일본인으로 귀화하였고 일본 국적 선수로 부산 아시안게임(2002년)에 출전, 결승에서 우리나라 선수를 물리치고 우승하였습니다. 저는 추 선수를 진즉부터 알고 있었고 사태가 이렇게 전개될 수밖에 없음이 못내 안타까웠습니다.

추 선수는 이종격투기선수로 전향하여 경, 중량급의 최강자가 되었으며 우리나라에도 많은 팬을 확보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가 격투기 선수로서 가진 최고의 강점은 뛰어난 경기력도 그렇거니와 적극적이고 투사적인 경기 스타일에 연유합니다. 그의 경기를 보면 야수와 같고 혼이 살아있음을 느낍니다. 검게 그슬린 피부의 그를 보면 한 마리 날렵한 흑표범이 연상됩니다. 요즘 '꽃미남' 전성시대라고 하지만, 그는 실종되어가는 '수컷'의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그는 강하며 아름답습니다. 사자나, 호랑이, 표범 등 맹수를 보면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데 같은 이치가 아닐까 생각되는군요.

경기 내용이 박진감있게 진행됨은 물론, 그의 강함과 아름다움이 어우러진 멋스러움은 경기시작 전부터 이미 느낄 수 있습니다. 등장 세레모니 때 유도복을 입은 그가 4~5명의 동료들과 함께 꿇어앉아 있고 사라 브라이트만의 'Time To Say Goodbye'가 흘러나옵니다. 이 서정적인 노래가 강한 투사의 이미지와는 대조적이면서도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습니다. 그는 이윽고 링에 올라와 도복에 새겨진 태극기와 일장기를 각기 두 번씩 두드립니다. 비록 귀화하여 일본인이 되었지만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음을 밝히는 것이지요. 이 대목에서 보는 이들에게 비장함이 전이(傳移)됩니다.

그렇더라도 그가 연전 모 방송사의 오락프로인 '무릎팍 도사'에 출연하기 전까지는 캐나다 국적의 '데니스 강'처럼 심정적으로 응원하는 같은 핏줄의 선수였지, 청소년들의 아이콘이 될 정도로 인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어요. 그는 이 프로에 출연함으로써 반신반의하던(일본인인지 한국인인지 그의 정체성에 회의하던) 대중들까지도 일거에 열렬한 팬으로 만들었습니다.

우선 그는 약간 어눌하기는 하였지만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우리말을 잘해 호감을 샀습니다. 유머감각이 있는 데다 태도 또한 솔직, 담백, 유쾌하여, 우리 주변의 성실한 젊은이가 갖고 있는 순수함과 친근함을 그에게서도 보았습니다. 이러한 장점들은 그를 정녕 돋보이게 한 요소였습니다. 전 우연히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시종 미소를 띠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무엇보다 마음에 와 닿은 것은 그의 대범한 마음가짐이었습니다. 모국의 유도계에 대해 할 말도 많으련만 자신의 부족함을 탓하며 자신을 한층 더 채찍질하였다는 겸손함이 진솔하게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겉으로 그런 체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불만스러움과 섭섭함을 극복한 듯 보였고 그것이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이처럼 마음을 추스려 성숙한 경지에 이른다는 것은 나이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든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 생각이 들자 한때 그에 대하여 석연치 않은 느낌을 가졌었던 저 자신이 부끄러워졌습니다. 그는 프로그램을 보았던 우리 모두에게 자성(自省)과 깨우침을 준 것이지요. 그것은 '우리가 그를 버렸었다'는 인식에 다름 아닌 것입니다. 그가 우리를 버린 것이 아니었어요.

물론 추 선수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일본의 인기 레슬러 사쿠라바 가츠시와의 경기 때 불미스러웠던 일로 징계를 당하기도 했고, 혹자는 언론 플레이가 능(能)한 선수라고 비난하기도 합니다. 일본에서의 그의 이미지는 악역(惡役)인데, 흥행위주인 프로 스포츠 특성상 선수 주변(경기단체. 방송사, 소속 프로모션)의 이해관계가 얽혀 그렇게 연출되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그는 장점이 많은 프로 격투기 선수입니다. 저는 팬으로서 추성훈 선수의 경기를 보고 싶을 뿐입니다. 'UFC(미국격투기단체)'로 진출하여 경기날짜가 잡혔다 하니 그의 활약이 기대됩니다. 흑표범의 포효(咆哮)를 다시 듣고 싶습니다.

   




  김창식 nixland@naver.com
경복고, 한국외국어대학 독어과 졸업
재학중 독일어로 쓴 소설, 수필, 논문집 간행
대한항공 프랑크푸르트 공항지점장 역임
외대문학상(단편), 2008 '한국수필' 신인상 수상
음악, 영화, 문학, 철학적 관점을 감성적 문체로 표현.
blog.naver.com/nix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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