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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전에 새그물이 쳐지고...
김홍묵 2009년 05월 13일 (수) 05:19:45
사람도 떠나고 동물도 떠나고......
지난달 하순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 노건평 씨의 집안을 들여다 본 일간지 기사(중앙일보 4월 25일자)를 읽어 보고는 참으로 신산(辛酸)하고 처연(悽然)한 감회를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마당에는 마른 나뭇가지와 비닐 등이 아무렇게나 널려 있었다. 꽥꽥 소리를 질러대던 거위와 오리들은 먹이가 없어 마른 나뭇잎을 주둥이에 물고 있었다. 사슴 두 마리는 어디론가 옮겨졌고, 쉼 없던 앵무새들의 지저귐도 끊겼다.

마을 주차장에 나와 있는 리트리버 개는 털이 군데군데 빠졌고, 갈비뼈가 앙상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비에 젖은 데다 눈곱이 잔뜩 끼어 있었다. 식당 앞에 놓인 쓰레기봉투로 다가가 냄새를 맡던 개는 도로를 어슬렁거리다 봉하마을을 방문한 관광객의 차에 치일 뻔했다.

팔뚝만한 잉어들이 살던 현관 앞 연못엔 이끼가 잔뜩 끼어 물밑이 보이지 않았다. 여섯 마리 개들 중 네 마리는 가출했고, 개밥그릇의 사료는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노씨가 구속된 뒤 부인 민미영 씨도 오래 전에 집을 나가 아무도 살지 않는 노씨의 집은 흉가나 다름없었다.」

다섯 달 전에 기자가 노씨 집을 찾았을 때와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동물농장을 방불케 하는 400여 평의 마당에는 거위와 오리들의 울음소리가 귀를 찌르고, 사슴이 풀을 뜯고, 현관문을 두드리기만 해도 앵무새가 큰 소리로 사람 말을 흉내냈던 곳입니다.

“문지방이 닳도록 고급차를 타고 온 거물들이 (이 집을) 들락거리던 것이 엊그제 같다.” “권력의 허망함이 느껴진다.” 한 주민의 술회는 권력무상ㆍ인생무상을 웅변해 주는 것 같습니다. 문전작라(門前雀羅)의 현장을 보는 듯합니다.

작라란 참새를 잡는 새그물입니다. 몰락한 집 문전에는 인적이 끊기고 참새 떼가 몰려와 새그물을 치고 잡을 정도라는 뜻입니다. 가난하다, 사람이 찾아들지 않는다, 한산하고 적적하다는 표현으로도 흔히 쓰입니다.

「사기」(史記)의 「급ㆍ정열전」(汲ㆍ鄭列傳)에 나오는 말입니다. 한무제(漢武帝: 재위 기원전 141~기원전 87년) 시절 벼슬을 한 급암(汲黯)과 정당시(鄭當時)는 고위직까지 올랐으나 파면당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급암은 모든 일에 꾸밈이 없이 간(諫)하는 성품 때문에 무제의 눈 밖에 나 면직되었습니다. 협객(俠客) 기질이 있는 정당시는 “손이 오면 귀천을 가리지 말고, 문간에서 기다리게 하지 말라.”고 강조했으나 자신이 추천한 사람의 죄에 연루되어 공직에서 밀려났습니다.

사기를 쓴 사마천(司馬遷)은 이들 두 사람의 전기를 적고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급ㆍ정 같은 현인이라도 세력이 있으면 빈객이 10배가 되나, 세력이 없으면 곧 떠나버린다. 보통 사람 같으면 말할 필요도 없다.” 2,000년 전이나 오늘날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비슷한 맥락의 문전성시(門前成市)라는 말도 있습니다. 후한 10대 황제 애제(哀帝:재위 기원전 7~기원전 1년)는 정치를 외척에게 맡겨버리고 남색에 빠져 헤어나질 못했습니다. 보다 못한 중신 정숭(鄭崇)이 이를 간하려다 오히려 하옥되고 말았습니다.

애제는 정숭을 신문하며 “그대의 문은 저자(市)와 같다”고 힐책했습니다. 그러자 정숭은 “신의 문은 저자 같아도 신의 마음은 물과 같다”며 결백을 주장했습니다. 얼마 안 돼 정숭은 옥사했습니다. 문전성시는 바로 애제가 말한 문여시(門如市)에서 생긴 성어입니다.

아무튼 임금에게 잘못을 고치도록 간하는 일은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어려운 일인가 봅니다. 좋은 약이 입에 쓰고 충언일수록 귀에 거슬려 여차하면 낙직(落職)하거나 죽음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목숨걸고 직언하는 사람이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간하기가 어렵다면 탐(貪)하기는 쉽습니다. 새는 높은 나무 가지에 집을 지어 놓고도 더 높은 가지를 골라 둥지를 짓고, 물고기는 더 깊은 물속에 집을 지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새와 물고기가 사람에게 잡히고 마는 것은 먹이를 탐하기 때문입니다.

간언과 탐심 모두 결과는 비슷한 것 같습니다. 문전에 작라를 치는 현상 말입니다. 하지만 간관은 고매한 이름을 남기고, 탐관은 더러운 악명을 남기는 것이 다릅니다.

이 좋은 봄에 봉하마을의 애틋한 정경을 상상하며 유행가 한 구절이 떠오릅니다.
‘성은 허물어져 빈 터인데 방초만 푸르러
세상이 허무한 것을 말하여 주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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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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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경 (61.XXX.XXX.179)
문전작라 문전성시 그리고 황성옉터...
참으로 적절한 비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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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15 07:20:01
0 0
다비 (99.XXX.XXX.163)
전 왜 흐흐흐 라고 웃음이 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황성옛터의 노래를 마지막 문장에서 읽으니
갑자기 웃음이 터졌습니다..

제가 웃은 것은 선생님 말씀과 글에 전적으로 공감한다는 뜻입니다.
감사합니다. 공감을 주는 글을 읽게 해 주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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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14 04:3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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