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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된 기러기의 슬픔
박시룡 2009년 04월 30일 (목) 08:05:39

매년 2~3월이면 충북 청원군 강내면의 하늘에서는 수많은 기러기 떼가 북으로 향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새들의 이동광경은 주로 새벽에 볼 수 있습니다. 아마도 우리나라 남쪽 해안에서 겨울을 나고 시베리아로 떠나는 중일 거라고 생각됩니다.

그런 어느 날, Λ대형을 이루어 날아가는 쇠기러기 한 무리를 보았습니다. 뭔가 대화를 하면서 내 머리 위를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한 무리는 20여 마리 정도인데, 어떤 개체가 소리를 내면 다른 개체가 이 소리에 응답하는 식으로 대화를 하며 날아갑니다. 마치 군대의 제식훈련을 연상케 합니다. 앞 사람이 구령을 붙이면 뒷 사람이 그 소리에 맞춰 행진하듯이 말입니다. 분명한 것은 중도에 약간 대형이 흐트러지긴 해도 이런 Λ대형을 거의 한결같이 유지한다는 것입니다.

새들은 왜 Λ대형을 이룰까요?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한 것이라는 게 조류학자들의 주장입니다. 다른 새와 비교하면 기러기는 날개의 크기가 몸무게에 비해 작은 편입니다. 구조적으로 날개에 얹히는 하중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가능하면 힘을 비축해야 합니다. 그래서 무리 지어 날아가는 기법이 다른 새와 다르다는 것이지요.

기러기는 다른 개체의 옆에 딱 붙어 가는 식으로 날아갑니다. 그렇게 하면 다른 개체의 날개에서 발생하는 힘을 이용해 자신은 날갯짓을 덜 해도 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도 이것을 실험할 수 있습니다. 고속도로 위를 달릴 때 다른 차 옆에 딱 붙어서 가 보세요. 위험을 무릅써야 가능한 일이지만, 아마 연료를 약 15% 이상 절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조류학자들은 실험실에 풍동(風洞ㆍ인공으로 바람을 일으켜 기류가 물체에 미치는 작용이나 영향을 실험하는 터널형 장치. 비행기 자동차 따위에 공기의 흐름이 미치는 영향이나 작용을 실험하는 데 쓴다)을 만들어 놓고 실험했습니다. 앞에서 나는 새와 뒤에서 나는 새의 에너지소모율을 계산했는데, 뒤에서 나는 새가 앞 새보다 약 15%정도 에너지 소비가 적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럴까요. 기러기들은 뒤선 개체가 앞으로 오고, 앞선 개체가 뒤에 가는 식으로 대형을 수시로 바꾸어 날아갑니다. 그러나 그 대형의 맨 앞에 서는 것은 무리 중에서 나이가 들고 경험이 많은 개체라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목적지와 방향은 항상 그 무리의 우두머리인 개체가 선도하기 마련입니다.

V자를 거꾸로 했으니 바람의 저항도 적어지겠지요. 그런데 Λ대형보다 I자 대형이면 어떨까요? 한 무리가 이동할 때 기러기들은 청각과 시각을 동원해 대형을 유지합니다. I 대형이라면 소리는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앞 새는 볼 수 있지만 뒤의 새는 볼 수 없는 단점이 있습니다. Λ대형이라면 소리도 들을 수 있고,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뒤에 있는 새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두 눈으로 보는 시야가 약 160도라면 새는 약 250도입니다.

먼 거리를 이동하려면 무리를 이루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무리에서 이탈하거나 낙오되는 것은 새들에게는 죽음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안전하고 먹이가 있는 중간 기착지점을 알려주는 것도, 그곳에서 먹이를 조달하는 것도, 또 포식자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도 모두 무리 내에서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가끔 무리에서 이탈하여 혼자 청원군 창공을 날고 있는 쇠기러기가 있었습니다. 혼자이기 때문에 소리를 낼 필요는 없겠지요?. 그러나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 날 혼자된 쇠기러기는 연거푸 소리를 내며 날고 있었으니까요. 그 소리는 무리 속에서 구령에 맞춰내는 소리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구슬피 울면서 내는 소리와 같았습니다.

이 소리의 의미는 몇 년 전 학교 운동장에 자유롭게 풀어 길렀던 갈매기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실험실에서 부화한 두 마리의 괭이갈매기는 형제처럼 매우 친했습니다. 이 갈매기들은 매일 아침이 되면 서쪽(아마 서해안)을 향해 날아갔다가 저녁이 되면 내 연구실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저녁에 도착해서는 연구실 주변을 날면서 규칙적으로 소리를 내곤 했습니다. 나는 이 소리를 듣고서야 먹이를 챙겨 내 연구실을 나설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나는 수개월 동안 이들과 교감을 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런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 날은 두 마리가 아니고 한 마리만 돌아왔습니다. 혼자 돌아온 갈매기는 학교 캠퍼스를 구슬피 울며 혼자 헤매고 다녔습니다. 지금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학교 현관의 유리문에 자신의 모습이 비치자 그것을 자기 동료로 여기고 며칠을 떠나지 않고 울어댔던 일입니다.

동물들의 이런 감정표현은 오랜 진화과정의 결과입니다. 사람은 눈물로 슬픔을 표현하여 상대방에게 마음을 전합니다. 동물들은 눈물을 흘리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눈물을 흘리지 못하는 동물들도 슬픔을 느끼며, 그리고 나름대로 그것을 전달하려 합니다. 무리에서 떨어진 쇠기러기의 소리나 친구 잃은 갈매기의 소리는 분명 외로운 자신의 처지를 알리는 신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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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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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bero (211.XXX.XXX.199)
박 박사님, 반갑습니다. 다시 그 신비의 동물세계로 여행을 함께 할 수 있게 됐군요. 동물의 정서까지도 느낄 수 있게돼 정말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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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30 13: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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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식 (222.XXX.XXX.48)
한국 발(發) 슬픈 '갈매기의 꿈'을 읽는 듯한 감동을 주는군요.
동물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 이상의 존재임에 틀림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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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30 10:3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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