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벅찬 이웃, 한국과 일본
황경춘 2009년 04월 25일 (토) 10:04:14
좁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동서로 맞서고 있는 한국과 일본 두 나라는 숙명적으로 공통 관심사가 되는 국제문제나 두 나라만이 이해할 수 있는 사회문제 등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지난 주에는 이런 화제거리가 유달리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봄 햇살처럼 마음을 훈훈하게 녹여주는 기사가 특히 기억에 남았습니다. 백제 성왕(聖王)의 셋째 왕자 임성(琳聖) 태자의 45대 후손이라는 일본인이 익산(益山)에 있는 백제 무왕(武王)이 묻힌 곳으로 추정되는 능을 찾아 준비해 온 ‘조상님의 능에 드리는 영광의 인사’ 글을 읽었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일본 치바현(千葉縣)의 후나바시시(船橋市)에서 부인과 함께 온 69세의 오우치 기미오(大內公夫) 씨는 당국에서 마련해 준 예복을 갖추어 입고 참배를 마친 뒤 문화재 보호에 써달라고 일본 돈 100만 엔 (약 천삼백만 원)의 성금까지 내놓았다고 합니다.

한국일보에 의하면 그는 “임성 태자가 일본에서 보여준 업적을 소중히 하며 자랑스러운 태자의 후손임을 잊지 않고 대대손손 살아왔다”며 “지난 1월 미륵사지에서 무왕 시대의 유물이 출토됐다는 소식을 접하고 익산에 직접 가서 찬란한 우리 선조의 문화를 느껴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합니다.

백제 성왕의 셋째 아들인 임성 태자는 성왕이 신라의 복병에 의해 피살되자 타이완을 거쳐 1,400 년 전에 일본으로 건너가 백제의 우수한 문화예술을 전파한 대표적 백제왕족으로 알려져 있다고 합니다.

공교롭게도 이 일본 부부가 익산을 찾은 바로 그날 한일 관계에 또 하나의 뜻있는 일이 있었습니다. 구한말에 일본인에 의해 시해된 명성황후의 기신제(忌晨祭)를 주관하는 홍릉봉향회의 이동재(78) 회장이 시해에 가담한 일본 낭인(浪人)들의 후손이 많이 살고 있는 일본 규슈(九州)의 구마모토(熊本)를 찾아 떠난 것입니다.

명성황후 시해사건에 관계한 일본인 관리, 헌병, 낭인 등 48명 중 21명이 구마모토 출신으로 그들의 후손을 중심으로 ‘명성황후를 생각하는 모임’이 결성되어 그 회원이 몇 년 전부터 명성황후의 기신제에 참례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처음엔 이들을 재실 근처에 못 오도록 해 멀리서 참례하게 했으나 재작년부터는 그렇게 박절하게 대할 수만 없어 재실에 접근할 수 있게 했다는 이 회장의 설명이었습니다. 이번에 일본을 방문하는 목적은 2005년 KBS가 제작한 명성황후 다큐멘터리의 정수웅 감독을 동행시켜 그 다큐멘터리를 통해 시해사건의 진상을 널리 알린다는 것입니다.

일본 교과서에 실리지도 않은 시해사건인 만큼 이번 기회에 많은 홍보활동을 벌여 낭인들의 후손 뿐 아니라 일반 시민에까지 명성황후 시해사건의 진상을 알리겠다는 것입니다.

‘명성황후를 생각하는 모임’의 회원들은 대장금(大長今)은 알면서 이런 부끄러운 사건을 모른다는 것은 수치스럽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인 만큼 이런 운동을 더 확산시켜야 할 거라는 포부를 가지고 이번 여행길에 오른다고 했습니다.

이 두 가지 기사 외에 지난 주에는 한일 역사에 연관된 화제가 또 있었습니다. 하나는 일본 우경화(右傾化) 운동의 대변자 역할을 꾸준히 해오던 문필가 가미사카 후유코(上阪冬子) 여사가 사망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항상 말썽 많은 동경도지사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씨가 일제의 조선 식민지 통치에 관해 또 한 번 실언(失言)을 한 것입니다.

이시하라 지사는 2016년도 올림픽 유치에 관한 동경외신기자클럽에서의 기자회견에서 식민지통치에 대한 영국 기자의 질문에 답하면서 조선의 식민지 통치가 다 좋았다는 것은 아니나 유럽 여러 나라의 아시아 식민지 통치와 비교하면 일본의 통치 방식은 “부드러웠고 공평했다”는 이야기를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가미사카와 이시하라 두 사람은 일본문단을 대표하는 보수파 논객으로, 한국과 중국 문제에 관해 기회 있을 때마다 일본의 우익 민족주의를 옹호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입니다. 이들은 위안부 문제, 중국 난징(南京) 학살사건 및 일본 자위대의 성격 등에 관해 일본 우익의 입장을 대변하는 활동을 많이 해왔습니다.

스포츠계에 있어서도 지난 주엔 두 나라에 얽힌 뉴스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자랑하고 또 남달리 애국심이 강한 재일교포로 일본 프로야구에서 활약했던 장훈 씨는 일찍이 생애 통산 안타수 3,085개라는 동양에서는 최다의 경이적인 기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대기록이 지난 주에 다른 사람도 아닌 이치로 선수에 의해 깨졌습니다. 장훈 씨는 후배의 이 새 기록 달성을 직접 보기 위해 현장인 LA다저스 구장으로 갔고, 그가 지켜보는 가운데 그의 동양 기록은 무너졌습니다. 그는 이치로에 축하를 보냈고 이치로는 그에 공손히 감사의 뜻을 표했습니다.

두 차례에 걸친 WBC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리 야구를 깔보는 망언과 태도로 우리나라 야구팬의 미움을 산 그였지만 그의 기록 달성 후 우리 네티즌들은 기록은 기록으로 평가한다며 대체로 냉정하게 이 장훈 씨와 이치로 사이의 기록 세대교체를 받아들였습니다.

일본은 세계 제2의 경제대국, 우리는 12위, 국토는 우리의 약 4 배, 인구는 2.5 배, 그리고 노벨 학술ㆍ문학 수상자 수는 15-0. 그러나 우리는 많은 분야에서 정정당당하게 맞서 일본을 따라잡거나 앞지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선의의 경쟁에서 비굴함이 없이 정도를 걸으며 이 벅찬 이웃과 더불어 살도록 노력했으면 합니다.

   




  -일본 주오(中央)대 법과 중퇴
-주한 미국 대사관 신문과 번역사, 과장
-AP통신 서울지국 특파원, 지국장
-TIME 서울지국 기자
-Fortune 등 미국 잡지 프리 랜서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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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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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옥 (210.XXX.XXX.99)
정상적 사고를 할 수 있는 대다수 양국 국민들은 사실과 진실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있는데 때때로 정치적 이슈를 통해서 기득권을 얻으려는 정치인들이 얄팍한 망언을 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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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27 19:5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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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 (124.XXX.XXX.37)
한일 관계는 항상 미묘한 감정이 저변에 깔려 있어서
어려운 숙제처럼 조심해야할 사항들이 많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일을 행하시는 분들이 있으니 그래도 기쁘기만 합니다.

계속 그렇게 열린 국제사회가 되길 희망하오며
선생님의 훌륭한 글 감사하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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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25 11: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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