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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곤증 퇴치제 - 『달러』
김이경 2009년 04월 14일 (화) 07:24:56
봄은 여자의 계절이라더니, 그래선지 봄 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마음은 여린 꽃향기에도 벌렁벌렁 뛰고, 피부는 마른 바람만 불어도 하얗게 버짐이 핍니다. 무엇보다 난감한 것은 쏟아지는 잠입니다. 밥 숟가락을 놓기가 무섭게 눈꺼풀이 내려오는 탓에 제대로 하는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원고 마감은 다가오는데 졸음은 쏟아지고, 하품 끝에 비어져 나온 눈물을 닦으며 책장을 더듬습니다. 순간 눈이 번쩍 뜨입니다.

“링컨 대통령은 남북전쟁 기간 동안 정부가 화폐를 발행하는 시스템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는 암살됐고, 은행가들이 화폐발행기의 통제권을 다시 회수했다. …오늘날 누가 국가의 통화를 발행해야 하느냐에 대한 논쟁은 별로 없다. 사람들은 정부가 화폐를 발행한다고 간단히 받아들인다. (하지만 달러를 찍어내는) 연방준비은행은 연방기구가 아니다. 그것은 아주 큰 다국적 은행들의 컨소시엄이 소유한 민간법인이다.”

아니, 달러를 찍어내는 게 미국 정부가 아니라 민간은행이라고? 뜻밖의 사실에 잠이 확 달아납니다. 법학박사이자 변호사이며 11권의 책을 낸 저술가 엘렌 호지슨 브라운은 7백 쪽에 달하는 『달러』라는 책에서 현대 금융 시스템의 사기성을 낱낱이 파헤치는데, 책을 읽다 보면 지금까지 학교에서 배우고 신문과 방송을 통해 매일매일 복습해온 경제 지식들이 뿌리부터 흔들립니다. 아니, 경제만이 아니라 정치와 역사 지식들도 함께 흔들려서 소름이 돋을 정도입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볼까요.

◎ 청교도혁명을 이끈 올리버 크롬웰은 국제적인 돈놀이꾼의 지원에 힘입어 튜더왕조를 무너뜨렸으며, 그 뒤 권력은 정부에서 은행으로 넘어갔다.(5장, 6장)
◎ 미국 독립전쟁은 차에 대한 세금(보스턴 차 사건) 때문이 아니라 영국이 미국의 독자화폐 발행을 금지했기 때문에 일어났다.(3장)
◎ 링컨은 정부가 독자적으로 발행한 ‘그린백’이라는 명령화폐1) 때문에 국제 금융가들에게 암살당했다.(8장, 9장) 케네디 대통령 역시 월스트리트 사업가에 맞서다가 국제 기업-금융-군사 카르텔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암살당했다.(21장)
◎ 러시아혁명을 지도한 레닌과 트로츠키는 국제 은행가들의 지원을 받았다. 그러나 은행가들은 레닌의 갑작스런 죽음과 스탈린의 등장으로 이익을 놓쳤고, 결국 냉전이 시작되었다.(23장)
◎ 1929년 대공황은 연방준비은행과 그 배후에 있는 국제 은행가들이 일으켰다.(15장)
◎ 히틀러가 독자통화를 발행해 독일을 단시간에 재건하자 국제 금융업자들은 “전쟁을 통해 독일을 통제”하기로 결정했다.(24장)

잠이 확 깨는 놀라운 이야기들이지요? 저자가 이런 역사적 사례들을 열거하는 가장 큰 이유는, 누가 화폐를 발행하느냐는 문제가 얼마나 중요하며 얼마나 심각한 결과를 낳는지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오늘날 세계경제를 혼란에 몰아놓은 금융위기도 따지고 보면 기축통화인 달러의 발행주체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게 그의 주장입니다.

앞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달러는 민간은행인 연방준비은행(FRB)이 발행해서 정부에 빌려줍니다. 100달러를 찍는 데 드는 인쇄비는 약 40센트. 연방준비은행은 이렇게 찍어낸 100달러에 10달러의 이자를 붙여 정부에 대출합니다. 문제는 이 100달러가 원래 있던 돈이 아니라 정부에 빌려주는 순간 대출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겁니다. 은행은 아무 재산도 없이 109달러 60센트를 거저먹는 셈이지요. 은행이 실제 가진 돈의 몇 배나 되는 돈을 멋대로 만들어서 유통시키는 사이 경제는 실물경제와 상관없이 왜곡되어 갑니다.

왜곡은 일반 은행에서도 일어납니다. 은행에서 돈을 빌릴 때 사람들은 은행이 이미 갖고 있던 돈을 빌린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그게 상식적으론 맞지요. 하지만 현실은 다릅니다. 은행은 10%의 지급준비금을 가지고 열 배의 돈을 대출해줍니다.(저자는 그 준비금의 실재조차 의심스러워합니다.) 문제는 10달러의 준비금에서 나온 100달러의 대출금 중 90달러는 대출이 발생하기 전엔 존재하지 않던 돈이란 겁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이 비밀을 이용해 빚을 갚지 않은 사례가 있습니다. 1969년 미네소타에서 있었던 ‘몽고메리 퍼스트내셔널은행 대 댈리’ 사건이 그런 경우입니다. 피고이자 변호사인 댈리는 집을 담보로 1만 4천 달러를 빌렸는데, 은행에서 담보 몰수처분을 하자 은행이 자신에게 대출할 때 실제 지불한 돈이 하나도 없으므로 몰수는 부당하다고 맞섰습니다. 처음엔 다들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증인으로 나온 은행 행장의 말에 상황은 돌변합니다. 행장이 자기 입으로, 은행은 대출금을 ‘허공에서’ 만들어내며 그것이 표준적인 은행 업무라고 말했기 때문이지요. 법정은 댈리의 손을 들어줬고 그는 집을 지켰습니다. 은행이 금고에 가진 돈으로 대출을 뒷받침하지 않는다면 그 대출은 무효라는 것이었지요. 하지만 판결을 내린 마호니 판사는 반년도 안 돼 의문의 독살을 당했습니다. 은행을 기소하고 그 사기행위를 폭로하겠다고 위협하던 와중에 벌어진 일이었지요.

아무 근거도 없이 만들어진 돈, 그것은 처음부터 빚입니다. 내가 빌린 돈을 갚는다 해도 빚은 계속 늘어나고 돈도 함께 증가합니다. 결국 이 시스템 안에 있는 한, 빚의 거미줄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국민 일인당 부채가 1,650만 원이라고 합니다. “나는 빚이 없는데?” 하신다면 하나만 생각하신 겁니다. 구제금융이니 공적 자금이니 하는 것들이 다 따지고 보면 국민이 낸 돈으로 빚을 갚는 것이고, 어느새 빚더미에 올라앉은 우리 자신을 보여주는 말입니다.

물론 로스차일드나 모건, 록펠러 같은 거대한 부를 축적한 은행가들은 저 같은 소시민 하나하나엔 관심도 없습니다. 그들의 목표는 더 크고 시야는 더 넓습니다. 국경을 넘어 하나가 된 세계 외환․주식․상품 시장이 그들의 무대이고, 자본 공격에 무방비상태인 제3세계 국가들이 그들의 먹잇감입니다.

기축통화인 달러를 무기로 그들은 외환시장에서 표적물로 삼은 국가의 통화를 공격해 가치를 폭락시키고 환란을 부추긴 뒤, IMF(국제통화기금)를 내세워 금융 투기세력에게 유리한 정책을 강요합니다. 외환을 변동환율제로 바꾸고 자본과 금융시장을 개방하고 공기업을 민영화하고 대량해고를 비롯한 구조조정을 강제하는 것, 우리에겐 너무나 익숙한 이야기들이지요.

저자는 돈과 금융에 대한 사고를 혁명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이런 빚 거미(debt spider)들의 잔치는 계속될 것이며 결국 파국을 불러올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그럼, 어떻게 사고를 바꿔야 할까요? 저자는 무엇보다 돈에 대한 초심으로 돌아가자고 말합니다. 돈이란 그 자체로서 가치 있는 것이 아니라 물건과 서비스를 교환하는 수단일 뿐이라는 것, 그 점을 잊지 말자는 거지요. 『달러』에는 아주 흥미로운 사례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탈리아의 부유한 학자인 아우리티 교수는, 중앙은행들이 수백 년 동안 사람들을 어떻게 빚쟁이로 만들었는지 보여주기 위해 자신이 직접 ‘시멕’이라는 화폐를 발행했습니다. 그는 1시멕을 2리라로 바꿔주기로 지역 상인들과 합의했지요. 사람들은 시멕 가맹점에 가서 물건을 사댔습니다. 리라의 절반 값에 사는 것이니까요. 노다지를 만난 건 상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물건이 잘 팔리는 데다 받은 시멕은 아우리티 교수에게 주고 전액 물건 값을 되찾았으니까요. 당연히 처음에 교수는 손해를 봤습니다. 하지만 사업이 번창하면서 시스템에는 새 돈이 없어도 될 만큼 충분한 돈이 유통되었고, 상인들은 교수에게서 사업을 인수해 갔습니다.

은행가들은 통화량이 물건과 서비스보다 빨리 늘어나면 인플레이션이 일어나므로 정부는 필요한 돈을 찍어내기보다는 은행가에게서 빌려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저자는 새로운 화폐를 발행한다고 해서 곧바로 인플레이션이 되는 건 아니라고 말합니다. 돈이 새로운 물건과 서비스를 만드는 데 쓰인다면 물가는 안정되고 경제는 오히려 활성화될 것입니다. 문제는 새로 발행된 돈이 노동과 물건이 아니라 돈에, 즉 투기적으로 사용되는 것이지요.

이 책에는 아우리티 교수의 ‘시멕’과 같은 다양한 대안화폐들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런 대안화폐들의 목적은 공동체의 경제를 직접 살아 숨쉬게 하는 것입니다. 노동력과 기술이 있는 사람은 그걸 제공하고 대안화폐를 받아 필요한 물자를 삽니다. 이때 화폐는 축적의 수단이 아니라 교환의 수단입니다. 애초 화폐란 그래서 생겨난 것이니까요.

대안화폐와 더불어 저자는 현재의 부패한 금융체계를 대신할 대안 금융에 대해서도 모색하고 있습니다. 그는 은행가들이 곤경에 빠진 지금이 바로 기회라면서, 부실은행을 공공자산으로 삼아 국민의 예탁과 신용 수요에 이바지하는 기관으로 운영하고, 화폐발행권을 국민의 손에 찾아오는 일이 최우선이라고 주장합니다. 나아가 제3세계 부채는 미국에 본사를 둔 국제은행들에 지고 있는데, 이 은행들이 연방기관이 되면 미국 정부는 부채를 전면 면제해서 지금까지 이웃나라에 진 죄를 용서받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부채 면제는 시장의 불안을 가라앉히고 테러의 위험성을 떨어뜨리며 지구 환경 보호에도 도움이 될 것이므로, 여러모로 이득이 된다고 그는 설명합니다.

책의 말미에서 저자가 이야기하는 대안들은 막연한 낙관론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직접 나서서 이웃들과 함께 지혜를 모으고 행동에 옮길 때 꿈은 꿈이 아니라 현실이 된다고 말합니다. 자, 그러니 우리도 춘곤증에서 벗어나 몸을 움직여볼까요? 빚 거미들이 없는 세상을 향해서 한번 달려보자고요!

1) 명령화폐란 정부 포고에 의한 법정통화다. 명령에 의한 것이어서 태환되지 않기 때문에 ‘불환화폐’로 불리지만 이 책에서는 본래 의미를 살려 명령화폐로 옮겼다. ‘그린백(Greenback)’은 뒷면이 초록색으로 인쇄되어서 그렇게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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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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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부자 (211.XXX.XXX.16)
음, 그래서 그런 거로군요!
무엇보다 제가 왜 지금까지 가난하게 살고 있는지 이해가 갑니다.
저는 돈을 '교환 수단'으로만 생각했거든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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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14 15: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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