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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mething in Everything
황경춘 2009년 04월 11일 (토) 09:32:12
한국전쟁이 한창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을 때 우리나라를 취재한 종군기자는 19개 나라의 270여 명이었습니다. 1953년에 휴전협정이 체결되고 국내가 안정을 찾기 시작하자 외국에서 온 기자들은 점차 한국을 떠나 50년대 후반에는 열 명이 될까 말까 한 국내외 기자만이 7~8 개 외신 매체에서 일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현재 서울에 상주하는 외신기자가 100군데 가까운 매체에서 일하는 250여 명임에 비하면 참으로 격세지감(隔世之感)이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국력이 신장하여 국제적 위상이 높아지고 동시에 정보시대를 맞아 매체 자체가 다양해진 때문일 것입니다.

그 점을 감안하더라도 50년대 말에 세계 유수 통신사들이 한국의 취재를 한두 명의 기자에 맡겼다는 사실은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제가 50년대 후반에 모 미국 통신사에 입사할 당시 서울지국의 진용은 취재기자 2명, 사진기자 1명에 현지채용 직원 2명이었습니다. 이 적은 인원으로 정치ㆍ경제로부터 군사ㆍ국제 스포츠경기까지 다양한 뉴스를 취재한다는 것은 참으로 벅찬 일이었습니다.

정전협정으로 유혈전투는 일단 끝났지만 비무장지대에서의 남북 군사충돌이 빈발해 국내정치 불안과 더불어 역시 이 방면의 기사가 대종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간혹 열린 국제 스포츠 경기의 취재에도 적잖이 신경을 썼습니다.

이 무렵 도쿄지국에서 온 경험 많은 어느 기자가 재미있는 도움말을 들려주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something in everything’ 이었습니다. 서울처럼 인원이 적은 사무실에서는 ‘everything in something(어느 한 방면의 전문지식)’보다 ‘something in everything(모든 문제에 있어서 어느 정도의 상식)’이 더욱 큰 무기가 된다는 말이었습니다.

물론 당시에도 국무성만을 출입하는 기자, 194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 할리우드만을 취재하여 얼마 전 기자클럽에서 공로상을 받은 친구처럼 전문기자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서울 같은 곳에서는 속된 말로 ‘만물박사’가 더 쓸모가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더욱이 기사의 스피드가 생명인 통신사에서는 오보가 아닌 이상 타사보다 1분이라도 먼저 기사를 내보내야 하는 숙명적 경쟁의 특수성이 이 교훈을 값지게 했습니다.

상식의 분야를 더 넓힌다는 것이 그때부터의 과제였습니다. 당시 국제적인 뉴스가 되는 스포츠 경기는 주로 골프, 테니스, 권투, 농구 등에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이 중에서도 일본, 대만, 필리핀, 호주, 인도, 한국 등이 회원국이 되어 남쪽 인도부터 시작해 여러 나라를 순회한 끝에 우리나라를 거쳐 마지막으로 일본에서 막을 내리는 아시아 골프 서키트라는 매년 봄에 열리는 골프대회가 가장 큰 행사였습니다.

중학생 때부터 여러 운동에 취미가 있어 조금씩 경험이 있기는 했지만 골프는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생소한 운동이었습니다. 저도 신문이나 잡지를 통해 아놀드 파머니 잭 니클로스 같은 전설적인 골프 스타 이야기는 알고 있었지만 ‘언더 파’니 ‘보기’니 하는 용어와 자세한 룰에 대한 깊은 지식은 없었습니다.

그러니 스코어나 전체적 순위 등을 다룬 기사 도입부에 이어 써야 할 아기자기한 경기 경과에 대해서는 충실할 수가 없었습니다. 골프경기를 잘 아는 독자가 읽으면 누구나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아마추어의 글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아직도 사치스러운 부자들의 게임이라는 비난을 받던 골프를 친구들과 함께 시작했습니다.

골프를 배운 후로는 서울컨트리, 한양컨트리, 안양컨트리 등을 차례로 돌며 해마다 열리는 아시아 서키트 취재가 그렇게 쉽고 재미있을 수 없었습니다. 우승 인터뷰도 나름대로 흥미롭게 꾸밀 수 있었습니다.

연식정구만을 알던 저에게는 러브(0)에서 15(fifteen), 30(thirty), 40(forty)로 뛰어오르는 테니스의 득점방식도 생소했습니다. 국내 언론사 테니스클럽에 가입하여 경기내용에도 익숙해져 한일 간의 데이비스컵 예선전 취재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직접 배우거나 경험하지는 않더라도 ‘something in everything’의 정신은 그 뒤 일상생활에서도 하나의 습성으로 자리잡아 호기심이 앞서는 경우가 많아서 때론 저 자신이 쑥스러움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특별한 전문지식이 없는 저로서는 상식이나마 제대로 갖추어 남과의 회화 때 결례를 안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지금도 가지고 있습니다. 나이답지 않게 주책을 부린다는 핀잔은 피해야지 하는 노파심을 가지면서도 남 달리 새것에 대한 지식욕이 많습니다.

정년퇴직 후 새로운 사업이나 취미에 도전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고 치매 예방에도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은퇴 후 소설을 쓰고, 새로운 음악활동을 시작하고 또는 그림에 열중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이야기가 우리 주위에서도 많이 들립니다.

평균수명이 늘면서 국민의 노후대책에 정부의 획기적인 시책도 필요하지만 늘어난 제2인생에 대처하는 개개인의 긍정적 자세와 도전정신도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전문지식으로 국가나 사회에 기여한 뒤 노후를 즐기시는 분이 그동안 소홀히 했을지도 모를 ‘something in everything’ 쪽으로 눈을 돌리고, 능력과 시간이 있는 비전문인은 ‘everything in something’ 을 위해 도전해 보는 그런 꿈같은 사회를 혼자 그려봅니다.

   




  -일본 주오(中央)대 법과 중퇴
-주한 미국 대사관 신문과 번역사, 과장
-AP통신 서울지국 특파원, 지국장
-TIME 서울지국 기자
-Fortune 등 미국 잡지 프리 랜서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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