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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나무의 강제 이주
김수종 2009년 04월 07일 (화) 08:27:31

   

4월 초순의 제주도는 유채꽃과 벚꽃으로 화려합니다. 꽃처럼 찬란하지는 않지만 더욱 봄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나뭇가지에서 피어오르는 신록입니다.

제주도의 4월을 알리는 나무 중에 하나가 팽나무입니다. 팽나무가 겨우내 상록수 틈에 앙상한 가지를 펼쳤다가 연두색 새싹을 틔우면 봄은 이제 뒷걸음질을 치지 못합니다.

제주도에는 웬만한 마을이면 팽나무가 있습니다. 군락을 이루기도 하고 고독하게 마을 어귀를 지키기도 합니다. 수령이 50년 이상 되면 멋진 모습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마을 어귀에 ‘정자나무’로도 쓰이고, 절벽 틈에 자란 것은 신목(神木)의 기능도 합니다. 과거 밭농사가 번창하던 때는 팽나무 그늘이 밭일하는 부모를 따라 나온 아이들의 놀이터이기도 했습니다. 노거수(老巨樹) 팽나무 그늘은 마을의 문화가 형성되는 곳입니다.

식목일을 며칠 앞 둔 어느날 제주도에 사는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어떤 마을 사람이 퐁낭 한 그루를 팔아 수백만 원을 벌었습니다.” ‘퐁낭’은 팽나무의 제주 방언입니다. 농촌이 살기도 어려운데 나무 한 그루를 팔아 수백만 원을 벌 수 있다면 조상 덕을 톡톡히 보는 것이구나 하고 나무랄 이유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주 팽나무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듣고 보니 “그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근년에 제주도의 나이든 팽나무들이 그들이 뿌리를 내리고 살던 고향을 떠나야 하는 기막힌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조경업자들이 태풍과 바닷바람을 견뎌내며 50년 100년 자란 팽나무를 찾아내기 위해 동네마다 돌아다닌다는 겁니다. 육지에 있는 졸부들이 정원 관상용으로 비싼 값을 주고 사들인다고 합니다.

마치 서울의 빌딩이나 아파트 단지에 조경수로 심기 위해 전국의 산야에서 멋있는 소나무를 사냥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제주도 팽나무가 조경업자들의 눈을 사로잡게 된 것은 몇 년 전부터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남부지방에도 팽나무는 많습니다. 그런데 왜 조경업자들은 제주도 팽나무를 탐내는 걸까요. 태풍과 설한풍이 거센 제주도에서 자란 팽나무 줄기는 미끈하지 못하고 일생 농사를 지은 사람의 손 등걸처럼 험악합니다. 관상목으로서 그만인 셈입니다. 못 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더니 제주도의 팽나무는 그 반대의 운명을 맞은 셈입니다.

작년 제주도의 여미지 식물원 회장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는 제주도 자연훼손의 심각성을 여러 가지 측면에서 걱정하면서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제주도의 팽나무가 육지로 많이 반출되고 있습니다. 제주도가 이런 일을 미리 내다보고 보호했어야 했는데 참 안타깝습니다.”
“누가 팽나무를 사갑니까?”
과문한 나의 질문에 그가 어이없는 듯이 대답했습니다.

“육지에서 관상용으로 심기 위해 제주도에서 수령이 오래된 팽나무를 파갑니다. 우리나라 남해안 지방에도 팽나무가 많지만 모양이 다릅니다. 제주도 팽나무는 모진 바닷바람과 태풍을 견디며 자랐기 때문에 첫눈에 보아도 그 줄기가 육지에서 미끈하게 자란 것과 다릅니다. 팽나무는 제주도 마을의 역사요, 제주도 풍토의 상징입니다. 아무데서도 구경할 수 없는 독특하고 귀한 나무입니다. 그리고 육지로 옮겨진 팽나무를 많이 보았습니다마는 제주도가 아닌 곳에서는 그 멋이 제대로 나지 않습니다.”

오래된 팽나무가 그렇게 반출되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의 지적이 일리가 있습니다. 그는 제주도가 고향이 아니면서 제주도에서 가장 대표적인 식물원을 운영하는 사람입니다. 팽나무가 제주도에서 차지하는 가치를 토박이 주민의 입장이 아니라 외지인이자 식물원 운영자의 입장에서 더 잘 읽고 있다고 봅니다.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 건물이나 아파트 조경수로 전국에서 모양 좋고 오래된 소나무가 끌려옵니다. 이제 팽나무까지 이런 운명을 맞고 있습니다. 학술용으로 몇 그루 옮겨지는 것이야 이해가 되지만 육지의 부잣집 정원 관상수로 제주도 마을의 랜드 마크였던 팽나무가 동원되는 것은 졸부 문화의 극치인 것 같습니다.

좋은 숲과 나무는 그 어떤 인공의 랜드 마크보다도 마을과 도시를 아름답게 만드는 상징적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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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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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에똥만찬 돈덩어리 (120.XXX.XXX.147)
모양이야 당장 보기에 멋집니다만 나무는 환경에 따라 변하기에
지금 당장은 멋져 보여도 이식하는 과정이 잘못되면 가지가 다 말라버리고 이식을 잘 시킨다 하여도 분재나 조경수를 다룰 수 있는 정도의 기술자가 돌보지 않는다면 일반 나무들과 같이 도장하여 지금의 모습을 잃는건 순식간 입니다. 나무 건강하라고 거름 퍼주면 그건 진짜 일이년만에 일어나죠.. 안타깝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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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11 11:34:02
0 0
신부용 (121.XXX.XXX.234)
안녕하십니까?

글 잘 읽었습니다.

애석한 일입니다. 무슨 대책을 세워야하지 않을까요?

제주도의 돌은 반출이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뭐 그런 방법이 없을까요?

또한 어떻게 번식하는지 팽나무를 많이 심도록 하고

일정 수령이나 일정 크기 이상의 것은 나가지 못하게 하는 방안 등.



신 부용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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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07 20:59:25
0 0
tffseoul (61.XXX.XXX.239)
소나무에 이은 팽나무에 얽힌 슬픈 이야기 잘 배었습니다. 그 식물원장 말씀대로
제주도는 제주도 대로 빨리 대책을 세워야겠네요. 시집가서 곱게 잘 산다는 보장이
없으니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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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07 12:16:45
0 0
libero (211.XXX.XXX.199)
느티나무보다 세상에 멋진 나무는 없다고 굳게 믿어왔는데 팽나무의 자태도 참 아름답군요. 인간의 어리석은 욕심과 나무의 수난,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답변달기
2009-04-07 10:52:58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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