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검색어 : 자유칼럼, 에세이
> 연재칼럼 | 김이경 책방
     
다른 인생을 살고 싶다! -『니체가 눈물을 흘릴 때』
김이경 2009년 03월 31일 (화) 08:13:55
남편이 사표를 낸 것은 마흔을 코앞에 둔 어느 봄날이었습니다. 아무 말 없이 사표를 내고 와서 사후통보를 하는 남편에게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고 따졌더니, 저보다 더 배신당한 얼굴로 한마디 하더군요. “힘들면 관두라며!” 저는 기억이 없는데 두어 달 전에 제가 분명 그랬다고요. 회사 다니기 힘들면 그만두라고.

뒷목 잡고 쓰러져봐야 뒷북치는 일이라 한숨만 푹푹 쉬었더랬죠. 사실 달리 할 말도 없었습니다. 다르게 살고 싶다는데, 늦었지만 다시 시작하겠다는데 거기다 대고 뭐라 하겠습니까. 그저 입방정을 떤 제 자신을 탓할 뿐이었지요.

그러고 근 십 년이 흘렀습니다. 두어 해 착실히 고생해서 새 인생을 시작한 남편은, 지금도 가끔 다른 삶을 꿈꿔서 저를 철렁하게 합니다. 얼마 전엔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여자친구랑 도란도란 얘기하고 싶다고 해서 저를 기함하게 하더군요. “나랑 해, 나도 카페에서 분위기 잡고 싶어.” 했더니 그게 가당키나 하냐는 얼굴로 쳐다봅니다.

사실 말은 그리 했지만 저도 그게 가당치 않다는 건 알지요. 저도 근사한 남자친구랑 분위기 잡고 싶은데 남편이라고 뭐 다르겠어요. 문제는 근사한 이성 친구를 사귀기가 쉽지 않다는 거고, 설령 사귄다 해도 일이 그렇게 간단치 않다는 거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 그냥 한숨만 나온다는 거지요.

대단한 꿈이 있어서가 아니라, 가끔은 그냥 다 그만두고 싶고, 좀 다르게 살고 싶고, 다른 사람도 만나고 싶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그런 맘이 간절히 들 때가 있습니다. 지나간 젊은 시절은 멀고, 다가올 세월은 오기도 전에 낡아서 지레 마음이 지치는 그런 때 말이지요. 이럴 때 책이 무슨 약이 되겠습니까마는, 『니체가 눈물을 흘릴 때』라는 소설이 그래도 제게는 꽤 효력이 있었습니다. 일단 철학과 정신분석학이 한데 어우러지니까 읽고 이해하기 바빠서 딴 생각이 안 들더군요.

이 소설을 쓴 어빈 얄롬은 스탠퍼드대학교 정신의학과 교수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심리치료의 권위자랍니다. 전문가가 쓴 팩션(faction 역사적 사실과 허구를 결합한 소설)답게 이 작품은 정신분석학에 대한 일종의 입문서이자 니체 철학에 대한 친절한 해설서로 손색이 없습니다. 대단한 사건 사고는 없지만, 무엇보다 세기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와 정신분석학의 아버지 요제프 브로이어가 만났다는 설정 자체가 호기심을 자극해서 자못 흥미진진하게 읽힙니다.

프로이트의 스승인 브로이어는 어느 날 여행지에서 루 살로메의 기습적인 방문을 받습니다. 아름답고 당당한 살로메에 매료된 브로이어는, 얼떨결에 니체라는 듣도 보도 못한 철학자의 치료를 맡기로 약속합니다. 마흔을 목전에 둔 브로이어는 빈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와 살고 있었지만 여자의 미모에 대한 내성은 아직 생기지 않은 상태였죠. 그 때문에 베르타(‘안나 O’라는 이름으로 정신분석학의 역사에 기록된 유명한 여성입니다)라는 여자 환자와 심각한 문제를 겪었음에도 말이지요.

그리 오래지 않아 브로이어는 자신이 여자의 미모 때문에 또 한 번 실수를 했다는 걸 깨닫습니다. 니체라는 이 무명의 천재 철학자는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겸손했고 치료에 협조적이었지만, 막상 브로이어가 그의 심리적 불안을 치료하려고 하면 강력한 철학적 주장들로 모든 걸 무화(無化)시켰습니다.

예를 들어, 브로이어가 대화치료를 위해 “편두통으로 무슨 이익을 보셨나요?” 하고 묻자 니체는 반발하거나 변명하거나 부인하는 대신 진지하게 대답합니다. 편두통은 철학 작업을 계속하도록 해주었고, 나빠진 시력은 다른 철학자들로부터의 자유를 주었으며, 질병은 죽음의 현실성과 대면하도록 해주었다고 말이지요. “나를 죽이지 못한 것은 무엇이든지 결국 나를 강하게 만든다.”고 선언하는 니체 앞에서 브로이어는 말을 잊습니다.

지독한 편두통과 발작으로 고통 받으면서도 자신의 정신엔 손도 못 대게 하는 환자 니체를 보며 브로이어는 의사로서의 무력감에 시달립니다. 그리고 결국 치료를 포기하기로 마음먹지요. 하지만 그때 니체가 무의식 속에서 그에게 손을 내밉니다. 도와 달라고, 자기를 도와 달라고 애원하는 니체 안의 또 다른 니체를 보며 브로이어는 모험을 결심합니다.

전대미문의 이 까다로운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그는 스스로 환자가 되어 철학자 니체에게 자신의 심리치료를 맡깁니다. 일종의 역할 바꾸기를 통해 니체로 하여금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분석하도록 한 겁니다. 즉, 니체에게 브로이어 자신의 절망과 불안을 드러내 치료하게 함으로써 역으로 니체 자신을 치유한다는 전략이었지요.

이리하여 브로이어는 니체의 몸을 치료하고 니체는 브로이어의 정신을 치유하는 이상한 거래가 시작됩니다. 환자 역을 맡은 브로이어는 똑똑한 니체에게 어설픈 속임수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자신의 진짜 고민을 숨김없이 드러냅니다. 물론 모든 것은 계산된 것이었죠, 처음에는.

하지만 대화치료가 진행되면서 상황이 바뀝니다. 니체를 끌어들이기 위해 과장했다고 믿었던 고민들이 어느 사이 실제로 브로이어를 사로잡은 겁니다. 의사 니체에게 환자 브로이어는 고백합니다.

“마흔 살이 되자 나에게 가능하리라고 여겼던 모든 것들이 산산조각 났어요. 갑자기 내 인생에서 가장 분명한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지요. 시간은 돌이킬 수 없고, 내 인생이 마냥 흘러가버리고 있다는 걸 말입니다.”

젊은 날의 가능성을 잃고 이제는 다른 사람들처럼 죽음을 향해 걸어갈 뿐이라고 탄식하는 브로이어에게 니체는 어떤 위로도 해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기 자신이 되라고, 더 근본적인 통찰로 자신의 삶을 살라고 다그칠 뿐입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올바른 때에 죽으라는 것이오!… 살아있을 때 살아라. 삶을 최대한 누릴 때 죽는다면 죽음이 두렵지 않다. 올바른 때에 살지 못하면 올바른 때 죽지도 못한다.”

하지만 브로이어는 그런 철학적 통찰이 자신의 실제 삶을 바꾸지는 못한다고 비판합니다.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베르타의 성적 환상에 온 몸과 마음이 흔들리지만 신성한 결혼의 의무를 저버릴 수는 없다고, 그런 의무와 책임감으로 지금껏 살아왔노라고 반박합니다. 그러나 니체는 단호합니다. “당신 자신에 도달하지 못했다면 그때 ‘의무’란 자신이 거대해지기 위해 타인을 이용하는 것에 불과”하며, 결혼의 신성함이 결혼생활에 의해 파괴된다면 차라리 그 결혼을 깨는 게 낫다고 단언합니다.

브로이어는 니체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인생을 근본적으로 되돌아봅니다. 게임처럼 시작했던 역할 바꾸기는 이제 그의 답답한 현실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치료제로 뒤바뀝니다. 더 이상 브로이어에게 환자 니체는 없습니다. 그에게 니체는 치료자, 환자 브로이어가 신뢰하는 유일한 의사일 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다시 전도가 일어납니다. 브로이어가 의사이기를 포기한 그 순간부터 니체는 그를 통해 자신을 분석하고 자신의 문제를 인정하기 시작합니다. 서로가 서로의 의사이기를 그만두었을 때, 상대를 환자가 아닌 친구로 보게 되었을 때 진짜 치료가 시작된 거지요. 그들은 서로의 고통에서 자신의 고통을 보고, 서로의 상처를 가슴 아파하며, 서로의 치유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최근 들어 많은 이들이 심리적인 문제로 전문가를 찾거나 심리학책을 읽습니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건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이 소설이 보여주듯이, 내 삶을 투명하게 비춰줄 벗이 있다면 그게 더 좋은 일이겠지요. 정신의학자인 작가 얄롬조차 사람을 치유하는 데는 의학보다 우정이 한 수 위라고 인정하니 말입니다.

인생이 흔들릴 때 모든 걸 털어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한 사람이 있다면 그 인생은 지킬 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길을 가든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회한은 남겠지요. 하지만 참된 벗이 있어 함께 길을 간다면 가끔씩 흔들린다고 대순가요? 그런 사람이 없는데도 그 인생이 흔들리지 않는다면 그게 정말 큰일이지요. 대화치료를 받아야 할 만큼 말이죠.
   
ⓒ 자유칼럼(http://www.freecolum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칼럼의견쓰기(1개)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인내천 (221.XXX.XXX.7)
"나를 죽이지 못한 것은 무엇이든지 결국은 나를 강하게 만든다!"
"...삶을 최대한 누릴 때 죽는다면 죽음이 두렵지 않다,.."
"당신 자신에 도달하지 못했다면 그때 `의무`란 자신이 거대해지기 위해 타인을 이용하는 것에 불과하며...."
무지 생각케하는 심오한 말입니다~~

인생이 흔들릴 때 모든 걸 털어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한 사람이 있다면 그 인생은 지킬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에 적극 동의합니다!
귀한 칼럼 마음에 새기겠습니다! 넘 감사합니다~~
답변달기
2009-03-31 19:11:12
0 0

다음에 해당하는 게시물 댓글 등은 회원의 사전 동의 없이 임시게시 중단, 수정, 삭제, 이동 또는 등록 거부 등 관련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운영원칙]

  • 욕설 및 비방, 인신공격으로 불쾌감 및 모욕을 주거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
  •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저작권을 침해하거나 불법정보 유출과 관련된 글
  •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사생활 침해 및 개인정보 유출
  • 공공질서 및 미풍양속에 위반되는 내용을 유포하거나 링크하는 경우
  • 불법복제 또는 해킹을 조장하는 내용
  • 영리 목적의 광고나 사이트 홍보
  • 범죄와 결부된다고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내용
  • 지역감정이나 파벌 조성, 일방적 종교 홍보
  • 기타 관계 법령에 위배된다고 판단되는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