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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만을 사랑해 ??........
오마리 2009년 03월 19일 (목) 08:28:03
현해탄을 건너 일본에 사시는 할머니 한 분이 계십니다. 저의 친척이 되시는 분으로서, 1923년생으로 현재 86세입니다.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삶과 세계 1,2차 대전을 모두 겪으신 세대인 이분의 삶과 가족 간의 유대감을 조명해 볼까 합니다.

현재 일본의 사이타마켄 사이타마시에서 살고 계시는 이분은, 도쿄(東京)에서 부유했던 중산층의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명문 여학교를 졸업한 후, 긴키(近畿) 지방의 한 소도시에서 태어나 직업과 학교를 찾아 도쿄로 상경한 남자와 사랑에 빠집니다. 그러자 그녀의 집안에서는 그들의 결혼에 심한 반대를 하였으나 결국 결혼을 하게 됩니다.

세계 2차 전쟁이 터지고 일본이 전시에 있을 땐, 그녀는 그 당시의 모두가 그러하듯 생활이 곤궁해지자 자신의 고급 기모노를 팔아 끼니를 때우기도 합니다. 그러나 전쟁은 끝났지만 남편의 직업이 여의치 않아 도쿄의 생활을 청산하고 남편의 고향으로 낙향합니다. 남편은 지방으로 와서 조그만 사업을 시작했으나 그조차 운영이 어려워 빚투성이가 되어 파산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파산은 한 개인의 파산으로만 끝나지 않아 전 가족이 그 빚을 떠안게 됩니다. 이후 남편은 극장 간판을 그려 몇 푼의 돈을 벌지만, 괴로움을 잊으려고 파친코에 빠지게 되며 오래지 않아 병으로 사망합니다.

어려서 부유하게 자랐던 그녀였지만 가족의 생활비와 빚을 갚기 위해 자존심을 버리고 비닐 포장지를 만드는 공장에서 생산직 근로자로 일을 합니다. 또한 출근 전 새벽에 초등생인 아들들과 함께 신문을 돌리는 고단한 생활을 하게 됩니다.

항상 식구 전체가 단칸방에서 살았으며, 세 아들에게 모두 도시락을 싸 줄 수 있는 형편이 아니어서 계란 한 개, 미소 (된장국) 수프 한 그릇도 호화 반찬이었다고 합니다.

이 삼형제 중 큰 아들은 오사카로 나가서 페인트 공을 하여 집안에 송금을 하였으나 결국 아들이 없는 집안에 데릴사위로 장가를 가서 부인 집안의 성씨로 성까지 바꾸게 됩니다.

둘째 아들은 어머니와 뜻이 맞지 않은지라 장가 후에 독립하였고, 어머니를 가장 사랑한 막내아들이 결혼 후 어머니를 모시고 살게 되어 손자 손녀를 키우시게 됩니다. 물론 아들이 집장만도 하여 크게 여유롭지는 않아도 나름대로 행복한 시간을 갖게 되었는데, 막내아들이 사십이 넘자 다른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고, 이혼과 동시에 집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집을 떠나기 앞서 그의 퇴직금까지 털어서 융자를 갚은 빚 없는 그 집을 부인의 위자료로 양도하여 빈손으로 떠나게 됩니다. 그의 어머니와 가족이 주거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할머니와 전 부인은 아들이 이혼한 후에는 남남인 관계가 되어버렸음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같이 살고 있습니다. 아들의 부인이었던 과거의 며느리와 과거의 시어머니였던 사람들이 현재까지 화목하게 잘 지낸다는 소식입니다. (물론 전 부인이 재혼을 한다면 거기엔 변수가 있겠지만)

일본과 한국이 전통과 생활문화의 차이가 있다고는 하지만, 다른 여인을 사랑하여 떠나버린, 미워할 수밖에 없는 남편의 어머니, 이젠 더 이상 며느리라고 부를 수 없는 시어머니, 그 사람들이 한 지붕 안에서 잘 살아 가고 있는 것은 어쩌면 생소한 상황일 수도 있겠습니다. 아들만 떠났을 뿐이지 손자 손녀, 전 며느리와 전 시어머니가 화목하게 잘 살고 있는 이 사실을 우리 한국인의 관점에선 어떻게 보일지 전 궁금합니다.

이혼을 하면 원수 보듯 하고, 친정 부모는 내 부모이고 시댁 부모는 네 부모라는 편협한 생각, 가정에서도 편 가르기가 되어버린 요즘 세태입니다. 고부간의 갈등, 친정 시댁간의 갈등으로 가정이 무너지는 한국의 풍토, 메말라 가는 가족 윤리감이 슬프기만 합니다.

우리는 혈연주의가 강한 민족임을 알고 있습니다만, 꼭 내가 낳은 자식이나 나를 낳아 주신 내 부모이어야지만 사랑하고 포용할 수 있다는 전 근대적인 편협한 인식은 이 시대에서는 이미 낡은 생각이 아닐까 합니다. 내 것이 소중하면, 상대방의 것도 소중하다는 것을 깊이 인식하고 배려한다면 아름다웠던 한국의 전통과 한국적 가족상을 다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한 번쯤 깊이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글쓴이 오마리님은 샌프란시스코대학에서 불어, F.I.D.M (Fashion Institute of Design & Merchandising)에서 패션 디자인을 전공한 후 미국에서 The Fashion Works Inc, 국내에서 디자인 스투디오를 경영하는 등 오랫동안 관련업계에 종사해 왔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글쓰기, 그림그리기를 즐겼으며, 현재는 캐나다에 거주하면서 아마추어 사진작가로 많은 곳을 여행하며 특히 구름 찍기를 좋아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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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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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기 (119.XXX.XXX.228)
이 놈이 구멍가게도 하랴 네이버 지식iN도 하고 블로그 마저 운영하려니 엉망이지요.
모처럼 금요일 오후에 사무실에 혼자 남아 이렇게 여유를 찾았습니다.
박사님 글을 차분히 읽으며 블로그에서 잠깐 인사 올리는 것과 다르네요....
4월의 첫 금요일 오후라 그런지 참 날씨도 좋고 기분도 좋습니다.
요 얼마간 매일 저녁시간에 비지니스로 술을 했더니 몸에 신호가 오는군요.
박사님은 패션 쪽을 하셨나 보는데 여러 분야에 조예가 깊군요...
제 여동생 정수경과도 블로그에서 교류가 빈번하더군요.
저희는 1남4녀 입니다.
제가 맞이인데 제일 빌빌거리지요...^ㅎ^
봄날 오후 우선 인사드리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2009년 4월 3일 낙원동 서재에서 정성기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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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03 17:3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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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리 (99.XXX.XXX.166)
같은 인간에대한 사랑과 연민 그런 마음아닐까요.제 친구는 한국에가서 이혼한 남편의 선산에 다녀왔다고 합니다.자식들 다 떠나고 큰 명절때나 사초때나 찾아지는 천덕꾸러기신세가된 시아버지 산소가 마음에 걸리고 그렇게라도라면 자기애들을 조상들이 잊지않고 잘 살펴줄것같은 그런마음에서,,,물론 이 마음이 다 였겠씀니까마는 사람이 산다는것이 선생님 글처럼 착하게 깨닫고 산다면 굳이 친정도 시댁도 다 넘어서 조금 여유로와 지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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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22 01:5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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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씨 (118.XXX.XXX.27)
영화 "두 여자"가 기억의 파편속에서 되살아 났습니다. 대한항공 폭파 사건 주범(?) 김현희역을 맡았던 김서화가 본부인으로, 전원일기에서 막내 며느리던가 하는 역을 맡았던 당돌한 인상의 배우가 씨받이 첩으로 나온 영화인데..한 집에서 살면서 시샘과 질투심으로 박이 터지게 싸우던 두 여인이 공유하던 남편이 죽자 대를 이어 공유하게 된 아들을 사이에 두고 서서히 포용과 애정을 향유하고 자매처럼 오손도손 한 집에서 살게 되는 국산 영화였지요...왜 오마리 선생님 글을 읽으면서 그 영화 장면이 떠오르는지 모르나 오선생님 글에 담겨 있는 휴머니즘적 사랑과 용서가 가슴에 와 닿게 된 것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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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20 20: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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