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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인 야구 사용기 - 『풀하우스』
김이경 2009년 03월 17일 (화) 00:19:15
세계 야구대회(WBC)의 열기가 뜨겁습니다. 실내야구장에서 방망이 휘두르는 걸 최고의 스트레스 해소법으로 치는 저는 말할 것도 없고, 평소 야구에 별 관심 없던 친구들도 김인식, 봉중근, 김태균 같은 이름을 술술 주워섬길 정도니 말입니다.

하지만 학부모들 중에는 공부해야 할 아이들이 야구 경기에 넋을 뺀다고 불만인 경우도 적지 않은 모양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세계적인 고생물학자이며 못 말리는 야구광인 스티븐 제이 굴드의 책을 소개할까 합니다. 야구도 즐기고 과학 공부도 하는 일석이조의 선택이 될 테니까요.

『판다의 엄지』로 유명한 굴드는 학문적 업적에서나 글쓰기의 내공에서 리처드 도킨스와 자웅을 겨루는 생물학자입니다. 그는 아주 열광적인 야구팬이었는데 어느 정도냐 하면, 메이저리그에서 왜 예전엔 있었던 4할 타자가 지금은 사라졌을까를 고민하다가 진화론의 새로운 학설을 창안했을 정돕니다. 설마 싶으시다면 『풀하우스』라는 책을 보십시오. 진화생물학계의 문제적 저작으로 손꼽히는 이 책의 주제가 바로 ‘야구에서 4할 타자가 왜 사라졌는가?’입니다.

사실 이 문제는 수십 년 동안 야구 전문가와 팬들을 사로잡은 미국 야구 역사상 최대의 수수께끼입니다. 1920년대까지도 드물지 않던 4할 타자가 1941년을 마지막으로 다시는 나타나지 않자 사람들은 위대한 시절은 갔다고 아쉬워합니다. 표면적인 기록만 보면 분명 “아, 옛날이여!”라는 한탄이 나올 만했지요.(참고로 우리나라에선 프로야구 원년에 백인천 선수가 4할 1푼 2리의 타율을 기록한 뒤 4할을 넘긴 선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굴드는 평균값이 아니라 표준편차1)를 분석해서 평균타율의 변이 정도가 감소했음을 밝혀냅니다. 즉, 선수들의 타격 실력은 전체적으로 높은 수준에서 평준화되고 있고 수비력 또한 마찬가지이므로, 뛰어난 타자는 옛날보다 많지만 4할 타자는 나오지 않는다는 거지요.

이와 더불어 그는 ‘4할 타자가 사라졌다’는 말 자체가, 평균값2)에 근거한 잘못된 정식화라고 비판합니다. 물론 외적인 기록만 보면 4할 타자가 사라지는 ‘경향’이 있음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것은 단지 변이의 확장과 축소에 따른 결과일 뿐입니다. 문제는 평균값이란 척도가 이처럼 그릇된 ‘경향’을 끌어내고 오류를 부추긴다는 겁니다.

마흔 살 되던 해 굴드는 복부중피종이라는 ‘거의 치료 불가능한’ 암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습니다. 병에 대해 자료를 찾아본 그는 깜짝 놀랍니다. 중피종은 불치병이며 중간값3) 생존율이 8개월 이하라고 써 있었기 때문이지요. 웬만한 사람이라면 큰 충격에 빠질 일이었지만 굴드는 달랐습니다. 평균값이나 중간값이 말하는 ‘불치의 경향’을 믿는 대신, 자신이 처한 상황들을 토대로 변이의 가능성을 찾아낸 겁니다.

다시 말해, 그래프의 왼쪽 꼬리가 생존율 0의 벽이고 오른쪽 꼬리가 인간의 자연수명이라면, 자신이 얼마큼까지 오른쪽 꼬리를 향해 갈 수 있는지 생각한 거지요. 그리고 굴드는 자신이 놓인 상황으로 볼 때 8개월 안에 죽을 확률보다는 자연수명을 다하고 죽을 확률이 높다는 것을 확인합니다. 이런 과학적 지식 덕분에 그는 치료를 낙관할 수 있었고, 결국 완치 판정을 받았습니다.(그는 20여 년을 더 살고 2004년 예순둘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만약 굴드가 통계치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 ‘불치(不治)의 경향’을 믿었다면 치료를 하기도 전에 절망해서 죽음을 앞당겼을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경향에 대한 그릇된 사고는 인간을 잘못된 길로 이끕니다. 진화론의 지난 역사가 보여주는 것처럼 말이지요.

굴드는 이 책에서 진화를 진보로 보는, 즉 생명은 더 복잡하고 정교하고 고등한 것을 향해 사다리를 올라가듯 진보해왔다는 ‘사다리 진화론’을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그가 ‘사다리 진화론’을 한사코 거부하는 까닭은, 그것이 다윈의 진화론을 왜곡했다는 과학적 이유도 있지만, 또 한편으론 그것이 과학의 이름으로 인간의 오만함을 부추기기 때문입니다.

굴드는 “절지동물이 등장한 후… 어류에서 양서류가 진화했다.… 육상 척추동물의 폭발적 진화로 ‘파충류의 시대’가 개막했고 그 뒤로 ‘포유류의 시대’, 마지막으로 ‘인간의 시대’가 왔다.”는 자연사학자 에드워드 윌슨의 인간중심적 진화론을 비판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전체 종의 80% 이상이 절지동물이기 때문에 어떤 이들은 현대를 ‘절지동물의 시대’로 부르자고 한다. 그러나 그것도 다세포생물을 더 존중하는 선입견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어떻게든 부분으로 전체를 대표하고 싶다면… 우리는 지금 ‘박테리아의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의 행성은 35억 년 전 화석으로 보존된 최초의 생물(박테리아)이 출현한 이래 언제나 ‘박테리아의 시대’였다.”

굴드는, 35억 년이라는 시간적 지속성, 핵폭발 이후에도 살아남는 영원불멸성, 수와 장소에서의 편재성, 산소를 공급하는 유용성 등 여러 측면에서 “박테리아야말로 지구 생물체 중 가장 지배적인 형태”라고 주장합니다. 물론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 그 단세포생물이 어떻게 인간보다 우월하냐고 펄쩍 뛰겠지요.

하지만 굴드는 복잡한 신경망이 없다는 이유로 박테리아를 무시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반문합니다. “정교한 신경망이 인류를 더 ‘고등한’ 어떤 생명체로 튀어 오르게 하려다가 오히려 인류를 멸망시킬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이것을 생명 진화의 가장 중요한 추진력이라고 볼 수 있을까?”

이 책에서 굴드가 다양한 자료와 연구들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단순합니다. 크기나 뇌 용량 같은 몇 가지 요소를 가지고 인간이 뭇 생명체의 정점에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거지요. 그리고 변화의 역사, 생명의 역사는 ‘무엇’이 어딘가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 전체(풀하우스)에서 일어나는 변이의 확장과 위축으로 봐야 한다는 겁니다.

올해는 다윈 탄생 200주년, 『종의 기원』출간 15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제 진화론을 부정하는 사람은 극히 드뭅니다. 하지만 굴드는 다윈혁명이 아직도 완성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다윈은 생명의 진보를 주장하는 책을 보다가 “더 고등하거나 더 하등하다는 말은 있을 수 없다.”고 메모했습니다. 굴드는 이런 다윈의 정신을 일깨우면서, 다윈혁명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생명이란 예측불가능하고 방향이 없다.”는 진화론의 참 의미를 이해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프로이트는 “과학사의 모든 혁신은 절대적 확신이라는 인간의 오만을 뒤엎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굴드는 이 말을 인용하면서, 과학을 내세워 인간의 절대성을 주장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하기야 어디 진화론만 그런가요? 야구의 역사 역시 절대적 확신은 통하지 않습니다. 한국 야구가 통계상 진화의 사다리에서 한 계단 위에 있는 일본을 번번이 꺾는 걸 보면 잘 알 수 있지요. 아마 굴드라면 그게 바로 야구고 그게 바로 진화라고 말할 것 같습니다.

1) 표준편차란 통계학자들이 변이의 정도를 나타낼 때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굴드는 이를 이용해 선수들의 타율이 평균타율에서 얼마나 벗어나는지를 구하고, 1880년부터 1980년까지 백 년 동안 선수들의 연평균 타율의 표준편차를 그래프로 나타냈습니다.

2) 굴드는 ‘평균값’은 현실을 오도하며, 그보다는 가장 흔한 값을 구하는 ‘최빈값’이 좀 더 사실에 가깝다고 주장합니다.

3) 중간값은 평균값과 함께 중심 경향성을 나타내는 척도로 쓰이는데, 점차적으로 변화하는 여러 값들의 중간이 되는 값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5명의 아이가 1원, 10원, 25원, 100원, 1000원을 갖고 있다면 중간값은 25원, 평균값은 약 227원이 되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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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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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인 (211.XXX.XXX.39)
시의적절한 글, 감사합니다.

"예측 불가능하고 방향이 없"는 귀여운 인간들을 일정한 크기의 벽돌로 만들어내는 이상한 나라의 독자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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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18 08: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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