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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작 서부영화(2)
김창식 2009년 02월 21일 (토) 00:12:12
* 하이 눈

   
전문가와 일반 관객 모두 ‘하이 눈(High Noon, 1952)’을 최고의 서부영화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나중 ‘지상에서 영원으로’를 연출한 프레드 진네만 감독에 게리 쿠퍼(Gary Cooper, 1901~1961)와 그레이스 켈리(Grace Kelly, 1929~1982)가 출연하는 흑백 영화이지요.

프랭키 레인의 노래로 알려진 주제곡(영화에서는 텍스 리터가 불렀음)은 서부음악의 거장 디미트리 티옴킨이 담당하였는데 나나 무스쿠리를 비롯한 많은 가수들이 리메이크 하였습니다. 티옴킨은 후세의 마카로니 웨스턴 영화음악의 일인자인 엔니오 모리코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총격전이 화끈하지도 않은 작은 화면의 이영화가 왜 그다지도 영화 팬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일까요?

우선 남녀 주연 배우의 매력과 연기 앙상블을 들 수 있습니다. ‘미국의 연인’ 또는 ‘여인들의 영원한 우상’으로 불리는 게리 쿠퍼는 진솔하고, 망설이며 불안해하면서도 결단을 내리면 뒤돌아보지 않는 보안관 윌 케인 역을 맡아 인간적인 ‘보통영웅‘의 전범을 보여줌으로써 이 영화의 성공에 기여하였습니다.

게리 쿠퍼는 대단한 미남배우인데도(우리나라에는 주로 40세 이후의 영화가 소개되어 미남으로서의 이미지가 강하지 않습니다만) 성실함과 깊이가 느껴지며 거부감이 없습니다. ’로마인 이야기‘의 시오노 나나미는 쿠퍼의 열렬한 팬이어서 그의 부음을 들었을 때 여고생이었는 데도 학교를 결석하고 추모 리본을 달았다고 술회한 적이 있습니다.

그레이스 켈리는 쿠퍼의 신부 에이미역으로 출연합니다. 우아하고 서늘한 미모의 소유자로 그레이스 켈리를 앞서는 배우가 있을까요? 한 때 기네스 팰트로와 니콜 키드만이 그녀의 후계자로 오르내리기도 했지만, 얼마 후 그런 이야기는 자취를 감추었어요. 정의를 지향하여 스스로를 위태로운 상황으로 몰아가는 쿠퍼와 소시민적인 행복을 추구하는 켈리는 갈등 관계에 놓이며 이들의 대립과 갈등이 영화의 또 다른 축을 이룹니다.

이 영화는 두 가지 면에서 서부영화 사상 큰 획을 그었습니다. 그 하나는 영화 속 사건의 진행 시간과 약 90분에 달하는 실제 영사 시간(Running Time)이 일치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기법이었다고 합니다. 서사의 경과를 보여주는 장치로 마을 입구 역에 걸린 큰 시계를 자주 보여 주는데, 심리스릴러 기법을 액션영화에 차용한 발상이 놀랍습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관객의 긴장감이 점증되며 관객도 주인공의 입장이 되어 함께 심리적 압박감을 느끼게 됩니다.

또 다른 한편 이 영화는 종전의 서부영화에서는 보기 힘든 전혀 새로운 영웅을 창조하였습니다. 쿠퍼는 보안관 임무 마지막 날, 자신이 잡아넣은 악당이 형기를 마치고 복수를 다짐하며 12시에 마을에 도착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날은 그의 결혼식 날이기도 하였지요. 보안관 배지를 반납하고 그냥 떠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마을은 다시 무법자 일당의 손에 놓이게 되고 주민들은 고통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는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마을로 되돌아 오지만 공포에 질린 주민들은 도움을 주려 하지 않습니다. 그는 유서를 쓰고 마을 사람들의 무관심과 냉대에 절망하면서도 악당 패거리와의 대결에 나섭니다.

그는 초조해하고 망설이며 갈등하면서도 편한 길을 버리고 ‘고립’을 택하며 죽음의 ‘공포‘에 맞섭니다.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해야 할 일‘을 하려는 것이지요. 이는 ’실존‘ 에의 인식에 다름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쿠퍼는 방황하면서도 끝없이 내면으로부터 용기를 불러일으키는 ‘반(反) 영웅‘의 전형을 창조 하였습니다. 리얼리즘 또는 실존주의서부극이자 심리 스릴러이기도 한 이 영화는 새로운 경향의 서부영화인 '수정주의서부극'의 서막을 알리는 수작(秀作)으로 자리매김합니다.

인터넷 자료를 보니 이 영화가 “1940~50년대 미국사회를 휩쓸던 매카시즘(선동에 의한 집단광기의 공산주의자 사냥)에 대한 비판적 은유”라는 대목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을 짓누르는 두려움의 분위기와 그들의 암묵적인 비겁함은 당시의 미국사회 뿐 아니라 어느 때 어느 사회에도(심지어 오늘날의 사회에도)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 영화는 시대를 초월하는 거대한 알레고리라고 정의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수정주의서부극은 정통서부극의 대척점에 서는 새로운 시각의 영화인데, ‘서부 개척이 사실은 영토 확장을 위한 찬탈’이었고, ‘서부는 자긍심 넘치는 영웅들의 멋있는 놀이터가 아니라 보통 사람들의 비루한 동네’였다는 입장을 갖습니다. 수정주의서부극의 본질은 백인과 영웅우월주의에 대한 반성, 그리고 이에 대한 인류학적인 성찰인 것이지요. 전회에서 소개한 ‘수색자’와 ‘하이눈’은 수정주의영화의 효시격인 작품들입니다.

하이 눈의 첫 시퀀스에 나오는 '시계가 걸려있는 역사에서 부하 총잡이들이 초조하게 보스를 기다리는 장면'은 수정주의서부극의 한 갈래인 마카로니웨스턴의 걸작 ‘옛날 옛적 서부에서(Once Upon A Time In The West),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 헨리 폰다, 찰스 브론슨,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 주연)’에서 오마주됩니다. 악당 부하들 중에 낯익은 얼굴이 눈에 띄는데 나중 개성 있는 영화배우로 성장하는 젊은 리 반 클립입니다.

   




  김창식 nixland@naver.com
경복고, 한국외국어대학 독어과 졸업
재학중 독일어로 쓴 소설, 수필, 논문집 간행
대한항공 프랑크푸르트 공항지점장 역임
외대문학상(단편), 2008 '한국수필' 신인상 수상
음악, 영화, 문학, 철학적 관점을 감성적 문체로 표현.
blog.naver.com/nix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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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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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chung ph. (211.XXX.XXX.160)
서부영화는 별로 관심이 없어서 본 게 거의 없는데 작가님은 진짜 다양하게 모든 장르를 다 보셨나보네요.
다음 편이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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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01 08:37:49
0 0
베토벤 (119.XXX.XXX.140)
영웅이 사라져 버린 이시대에, '진정한 용기의 사람'을 생각나게 하는 게리 쿠퍼였지요.
이같은 용기의 사람 열명만 있어도, 우리 사회는 좀더 좋은 사회가 돼 있지 않을까요?
좀 지나친 얘기일까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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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25 10:36:44
0 0
김윤옥 (210.XXX.XXX.176)
<마을 사람들을 짓누르는 두려움의 분위기와 그들의 암묵적인 비겁함은 당시의 미국사회 뿐 아니라 어느 때 어느 사회에도(심지어 오늘날의 사회에도)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서부극에서 읽혔던 이러한 사회심리가 요즘 우리에게서 느껴집니다.
부패한 정치에 대해 침묵하면서 마음의 짐을 느끼던 사람들이 불의에 당당히 맞섰던 김수환 추기경님의 마지막 얼굴을 보기위해 긴 줄에 동참한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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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22 00:24:43
0 0
다비 (69.XXX.XXX.111)
저는 정통 서부극도 수정주의 서부극도 각 작품이 주는 묘미가 달라
양 쪽 다시 모두 보고 싶은 영화입니다.
언니 오빠에 끼어서 어렸을 때 보아서 기억도 가물거리지만
향수를 불러 일으킵니다.
측히 하이눈의 포스터가 악당들의 다리를 강조한 시각적인
포스터 디자인이 아마 그 당시에는 선풍적 인기 였을 것입니다..
저는 포스터 매니아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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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21 07:21:01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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