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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리타의 사랑법
김흥숙 2009년 02월 20일 (금) 00:37:53
봄을 실은 마차소리가 들리는 2월엔 어느 달보다 떠나가는 노인이 많습니다. 곧 시작될 사계(四季)의 새로운 순환이 버겁게 느껴지는 걸까요?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하신, 즉 ‘큰 죄가 없는 상태에서’ 돌아가신 16일, 멀리 스페인의 마요르카 섬에선 마리아 돌로레스 탈라베라 여사가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93년 삶의 궤적을 볼 때 여사 또한 선종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로리타 안 (Lolita Talavera)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여사는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 (1906~1965) 선생의 부인입니다. 여사의 부음을 접하니 제일 먼저 미안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1946년 안 선생과 결혼해 돌아가실 때까지 한국인이었던 여사에게 우리가 해드린 게 너무 없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선생 생전엔 늘 남편 뒤에 서고, 돌아가시는 날엔 김 추기경 뒤에 가리어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니 더욱 안타깝습니다.

스페인 백작의 딸로 음악에 조예가 깊었던 여사는 선생을 만나기 전부터 그의 팬이었다고 합니다. 한국, 일본, 미국에서 바이올린, 트럼펫, 첼로 등 악기와 작곡법, 지휘법을 배운 후 1936년부터 유럽에서 활동하던 선생을 여사가 알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러다 2차 세계대전 중 선생이 스페인으로 피난을 갔고 마침내 두 사람은 1946년 7월 5일 부부가 되었습니다. 바르셀로나에서 결혼한 후 마요르카에 정착했고, 선생이 마요르카 오케스트라 -- 선생이 창설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의 상임지휘자를 맡아 1965년 9월 16일 59세를 일기로 생을 마칠 때까지 그곳에 살았습니다.

여사의 별세를 전하는 국내 언론은 모두 여사가 남편을 지극히도 사랑하여 선생이 돌아가신 후에도 ‘내내’ 한국 국적을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1992년 여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맞추어 쓴 일간스포츠 김인규 기자의 기사를 보면 ‘내내’라는 부사를 쓰기 민망한 사연이 있습니다. 김 기자의 기사 ‘초대받지 못한 애국가의 미망인’ 일부를 옮겨봅니다.

“마요르카시는 한국에서 온 위대한 예술가를 숭모, 시가지 한 곳을 ‘안익태
거리’로 명명했으며 매년 추모행사를 펼쳐오고 있다. 어여뻤던 신부 로리타는 이제 73세의 할머니가 되어 혼자서 부군 안익태를 생각하며 함께 살았던 집을 지키고 있다. 그러나 스페인의 조그만 섬도시가 먼 동양에서 건너온 예술가를 존경하고 지금도 그의 위대성을 아끼는 것과는 달리 정작 애국가 작곡가의 고국인 한국은 그를 너무나 소홀히 취급하고 있다.

“스페인에서 치러지는 올림픽에, 숨진 남편의 나라 선수들과 임원들, 숱한 관광객, 정부 인사들이 몰아닥쳤으나 누구하나 찾아주는 이 없고, 부군이 작곡한 애국가가 바르셀로나에서 수많은 국가를 제치고 가장 먼저 연주됐음에도, 또한 앞으로 계속 연주될 것임에도, 초청해주는 이 하나 없는 현실이 어떠했을까 미루어 짐작이 간다. 남편과 남편의 조국을 사랑했기에 부군이 숨진 뒤에도 24년간이나 한국 국적을 유지해오다 생활비가 부족, 연금을 탈 단순한 목적으로 지난 89년 스페인국적을 재취득하게 됐을 때 로리타 할머니에게 대한민국은 어떻게 비쳤을까...”

기사엔 또 여사가 한때 집세를 내지 못해 선생과 함께 살던 집을 떠나야할 지경에까지 이르렀었다는 얘기, 이를 안타깝게 여긴 그곳 교민 실업가 권영호씨가 1990년 11월, 그 집을 11만 달러에 사서 여사가 마음 놓고 거주할 수 있도록 조치한 후 그 집을 ‘안익태 기념관’으로 조성하여 한국정부에 기증할 뜻을 밝혔으나 정부가 기념관의 관리비를 부담할 수 없다며 거절했다는 것, 그리하여 기념관 조성사업은 물론 집 소유문제도 어정쩡한 상태에 놓여있다는 얘기가 실려 있습니다.

김 기자의 기사가 게재된 뒤, 한국일보는 국민성금을 모으기 시작했고 외교통상부와 안익태 기념재단설립을 공동추진하기로 합의했습니다. 그 해 10월엔 권영호씨에게 국민훈장 동백장이 수여되었고, 이어서 ‘안익태 기념사업재단’의 창립총회도 열렸습니다. 2001년 2월, ‘안익태 기념재단’으로 이름을 바꾼 재단은 매달 여사의 생계보조비로 천오백 불, 유가(遺家) 관리비로 천 불을 지급해왔으며 매년 9월 16일엔 선생을 위한 추모식을 열고 기념음악회도 개최해왔습니다.

여사는 1972년 안 선생의 일대기 ‘나의 남편 안익태’를 펴냈으며, 2005년엔 한국을 방문해 “애국가는 한국의 것이고 우리 가족은 한국인이므로 저작권은 한국 국민에게 있다”며 무상으로 한국 정부에 애국가의 저작권을 양도했습니다. 또 교향시 ‘마요르카,’ ‘포르멘토르의 소나무’ 등 미공개 악보를 포함한 모든 악보와 선생 관련 자료를 안익태기념재단에 넘겼습니다.

여사가 마지막으로 한국을 방문한 건 2006년 12월, ‘안익태 탄생 100주년 기념 음악회’에 참석하셨을 때라고 합니다. ‘마요르카’의 한국 초연을 지켜본 후 지갑 속에서 빛바랜 남편의 얼굴사진을 꺼내어 한국일보 기자에게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와 함께 한 모든 날, 모든 순간을 기억하고 있다. 그는 좋은 남편, 좋은 아버지, 훌륭한 음악가였고 무엇보다 조국을 사랑했다. 남편이 그랬듯 우리도 늘 한국을 그리워한다.”

두 분이 함께 산 기간은 겨우 19년, 여사는 그 후 44년을 혼자 살았지만 남편과 남편의 조국을 향한 사랑은 한결 같았습니다. 여사가 선생을 잊을 수 없었던 건 어쩜 선생이 여사를 위해 작곡한 가곡 ‘흰 백합화’와 그 악보에 친필로 써놓은 부탁 -- 이 곡을 들을 때마다 나를 기억해주오 -- 때문인지 모릅니다. 그렇담 여사의 끝없는 한국사랑은 어디에 기인할까요? 진정한 사랑은 자라는 거라지만 보답 못한 사랑은 받은 사람을 부끄럽게 합니다.

여사의 부음 기사엔 안익태기념재단 이사인 한나라당 전국위원회 부의장 신현태씨가 영결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스페인으로 출국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적어도 재단의 이사장이 가야 하는 것 아니냐고, 총리는 몰라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정도는 현지에 가서 미사에 참석하고 유족을 위로하는 게 옳지 않으냐고 하면 제가 지나친 걸까요? 은혜를 모르는 사람들, 사랑을 갚을 줄 모르는 사람들이 자꾸 많아지는 우리나라, 오늘 더욱 부끄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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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7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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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우 (211.XXX.XXX.17)
정말 부끄럽군요. 로리타 여사가 저 세상에서 안 선생님을 만나 이승에서 못한 사랑과 삶을
행복하게 살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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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02 09:2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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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숙 (211.XXX.XXX.45)
아래의 글은 스페인에 가서 로리타 여사의 영결미사에 참석하신 안익태 기념재단 신현태 이사님이 제게 이메일로 보내주셨습니다. 독자 여러분께도 보여 드리고 싶어 신 이사님의 허락을 얻어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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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23 09:4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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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태 (211.XXX.XXX.45)
김흥숙 선생님,
올려주신 칼럼, 로리타의 사랑법, 너무나 감명 깊게 보았습니다.
저는 모든 것이 부족하지만 경기관광공사 사장 재직시, 사모님께서 남편의 조국이자 자신의 조국인 사랑하는 한국을 생애 마지막으로 방문하고 싶어 하신다는 이야기를 바르셀로나에 거주하는 교포로부터 전해 듣고 초청해 모신 것이 인연이 되어, 애국가 저작권을 무상으로 한국정부에 기증하게 되었고 그것을 계기로 안 선생님 내외분의 훌륭하신 고국 사랑과 애국심을 느끼게 되어 정치인으로서 많은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어, 안익태 선생님을 위해서 작은 것이나마 무언가 그분의 높으신 뜻을 기리는 일들을 구상하여 Malloca 도시중심에 선생님의 기념 조형물을 현지 정부와 협력하여 2006년에 세우게 되었으며, 당시 준공식 때 Lolita 여사께서 참석하시어 너무나 기뻐하셨으며 그때 그 모습이 지금도 저의 기억에서 맴돌고 있습니다.고인의 영결미사가 있었던 성 니콜라스 교회에는 평소에 안 선생님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스페인 각지에서 참석하신 1.000명의 조문객들께서 애도하는 모습과 마욜카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사중주 연주는 모두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국가의 모든 중요행사에 제일 먼저 부르는 애국가를 작곡하셨으며 천재 음악가이신 안 선생님을 오직 사랑하나로 평생을 헌신하신 님의 마지막 가시는 길에 과연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요. 마드리드 조태열 대사님내외. 바르셀로나 유석만씨를 비롯, 현지 교포 10여명 그리고 저 신현태. 저야 안익태 선생님 기념재단 이사로서 당연히 참석하여 고인의 명복을 빌고 가족들을 위로 해 드려야하는 의무라고 생각하여 참석하였습니다. 미사를 마치고 스페인분들에게 감사인사를 드리는 동안 양국의 참석 인사들의 비중을 보면서 님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Lolita 여사 께서 주신사랑에 비해 너무 부족했다는 마음을 느끼면서.
평소에 사랑하는 남편 곁에 함께 영면하고 싶으시다는 고인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숙제를 안고 귀국길에 오릅니다. 한나라당 전국 위원회 부의장 .안익태 기념재단이사 신 현 태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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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23 09:4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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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희 (211.XXX.XXX.36)
"진정한 사랑은 자라는 거라지만 보답 못한 사랑은 받은 사람을 부끄럽게 합니다."

; 무슨 말을 더 하겠습니까. 국가를 작곡한 분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도 "보답 못하는 행태"의 하나라고 생각하니, 참으로 부끄럽기 그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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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22 11:2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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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천 (221.XXX.XXX.7)
생전엔 안 선생님 뒤에서,
돌아가셔선 김 추기경 뒤에서,보이지 않아도 애절하게 대한조국을 못잊어 하시는 로리타 안의 영전에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많이 부끄럽습니다~~~
어느나라의 국기보다 의미심장(?)한 태극기가
어느나라의 국가 보다 장엄한한 애국가와 함께 게양될 때 느끼는 짜릿함은 저만의 느낌이었을까요?
우리나라 태극기, 모든면에서 세계 최고죠!
거기에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가사와 곡을 갖춘 웅장한 애국가! 정말 최고죠!
그런데
안 선생님에 대한 소홀함도 모자라 로리타 안에 대한 소홀함도 극치를 이뤘으니 무지 부끄럽습니다~~~안 선생님에 대한 불손을 만회할 수 있는 많은 시간들이 있었는데......
늦게나마 의식있는 기자의 보도로 시늉은 냈지만,

모두가 김 추기경의 부음에만 안타까워 할 때
소외 받는 로리타 안의 영혼을 위로하는 김 시인님의 칼럼은 반짝이는 보석입니다!
김 추기경께서도 칼럼을 보시며 많이 미안해하시고 손을 내미실 것 같습니다~~
또 부끄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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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20 16:4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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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졸리나 졸려 (118.XXX.XXX.38)
한국에 특파원으로 와서 일하다 지한파 내지 친한파가 된 카나다인 기자가 쓴 글이 생각납니다. 얼마나 한국에 대해 잘 아는지 이순신에 대해 혀를 내두를 정도로 잘 알고 논개가 왜장을 껴앉고 죽은 진주 남강 까지 다녀 온 분인데 가라사대..."한국인은 자국이 낳은 인걸을 시기 질투하는 경향이 강한데 그 전통이 상당히 깊다고 본다...당대에 이미 구국의 영웅으로 대접받았을 이순신 장군은 모함과 시기에 시달리다 하마터면 나라를 뺏길 뻔 하였고..최근(김대중 대통령이 노벨상을 탄 얼마 후) 북한의 대남 침략 위협을 대화로 방지하여 노벨 평화상을 탄 김대중씨에 대한 험담과 폄하 작업만 보아도 놀랄 정도다...오래 전 부터 노벨상 수여자 한 명 못 내어 난리도 아니더니 심지어 돈 바쳐 노벨상 받았다는 유언비어까지 돌고 있다고 한다. 노벨상 위원회에서 알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상당히 궁금하다. 다른 나라 같으면 이미 "김대중 기념 거리" 하나 쯤은 나올 법도 한 마당에 한국인들의 유언비어 만들기 작업에 놀랄 정도다..." 뭐 그런 내용이었던걸로 기억합니다만...아무튼 한국인들 시기 질투와 배은망덕을 열거하면 끝이 없을 겁니다. 안익태 님은 한참 전성기에는 세계 3 대 지휘자로서 당대 세계적 음악가 반열에 우뚝 섰었으나 한국의 개구리들..그 중에서도 친일 알랑쇠였던 홍난파 등이 앞장서서 그의 잠시 잠깐의 귀국 활동도 방해하거나 정면으로 모욕을 주기에 더 열심이었다고 합니다. 친일 내지 일제 강점기하에서 잘 나가던 자들이 주요직에 앉아 있던 이승만하에 귀국하였을 때도 눈에 보이지 않는 갈등과 이면 작업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읽은 기억이 아련합니다. 이런 식으로 이응노,윤이상,송두율,김대중..김운용(그는 부패한 스포츠 지도자였지만 차기 IOC 위원장 자리를 놓고 카나다에 경쟁자가 있을 정도로 한국 스포츠 발전에는 혁혁한 공을 세운 막강한 실력자였다)한 때는 정명훈씨 까지.... 소위 국내파(우물 안 개구리들)와 반공을 정권 연장 수단으로 악이용한 무리들에 의해서 시기 질투 아니면 탄압과 배은망덕한 홀대를 받아 세계적 지성인들이 나서서 감옥에서 빼내거나 탄원서를 올리는 엽기적 전통을 이어 오게 한 우리 나라 궁민 근성입니다....하~ 하! 시간이 없어 이만 횡설수설...오랜만에 들여다 본 순간 너무나 공감이 가는 좋은 글이 바로 보이기에...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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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20 15:5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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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 (119.XXX.XXX.228)
저런 분 마저도 저러 할진데...
한국전쟁이 끝난 뒤 지금까지도 북에 있는 유골이라도 찾기 위해 애쓰는 미국을 보면서, 살아 있는 제 나라 국민도 챙길 생각도 없는 것 같은 행태를 보면 한숨이 나옵니다. 이렇게 국민을 취급한 정부가 국민에게서 애국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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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20 09:17:35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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