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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외교관이야
오마리 2009년 02월 19일 (목) 01:57:51
외국에서 오래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출장이 잦았습니다. 국내 거주자가 보기엔 모두가 해외 출장입니다. 그렇게 여러 곳을 다니다 보니 한국에 사는 사람들보다 해외 나들이 나온 한국인 여행객들과 마주치는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한국인들과 마주치면 동포이기 때문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됩니다. 다행히 좋은 인상으로 마주치면 그 이상 기분 상쾌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마는 대체적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되거나 나 자신이 한국인임을 숨기고 싶을 만큼 공중도덕의 불감증이나 실종에 부끄러웠던 경험이 많았습니다.

몇 년 전 캐나다의 국립공원 밴프(Banff)에 휴가를 갔습니다. 점심을 먹기 위하여 식당을 찾았으나 당시 그 지역에 한국식당이 없어 일본 식당을 가게 되었습니다. 매우 붐비는 식당의 손님은 대부분 일본에서 온 단체 관광객이었고 다른 외국인들이 좀 있었습니다.

나는 스시맨(스시 만드는 카운터의 요리사)들이 작업하는 카운터 가까이 있는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점심을 즐기고 있는데, 한 테이블 건너에 앉은 두 한국 여학생이 계속 큰 소리로 떠들고 있었습니다.

듣고 싶지 않아도 들리는 이야기를 들으니 그들은 캐나다여행을 마친 다음 일본으로 갈 예정이었습니다. 1시간 가까이 식사 도중 큰 소리로 떠드는 두 여학생은 자리가 스시바에 가까운 만큼 더욱 조용해야 했음에도 오히려 꽉 찬 테이블의 다른 손님들을 아랑곳하지도 않았습니다. 옷차림 등으로 보아 최소한 한국의 중ㆍ상류 이상 되는 가정의 자녀들 같아서 안타까웠습니다.

나 역시 관광지에서 갖는 모처럼의 식사시간의 즐거움이 그들에게로 신경이 집중되어 깨지고, 그들에게 주의를 줄 것인가 말 것인가 참고 있자니 스트레스가 쌓였습니다. 그러나 식사가 끝난 이 여학생들의 다음 행동은 그만 인내심에 불을 지르고 말았습니다.

식사를 마친 그들은 자리에 앉은 채 사람들이 보는데도 머리빗을 꺼내 머리를 빗기 시작했습니다. 더욱이 스시를 만드는 카운터가 바로 옆에 있는데도 머리를 빗고 있었습니다. 스시바가 옆에 없다 하여도 식탁 위에서 머리를 빗는 것은 가정에서도, 밖에서 외식할 때도 바른 예절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거울을 보며 립스틱을 바르는 것도 예의가 아니며 반드시 화장실에 가서 하여야 함). 더욱이 이런 경우는 해외에 살면서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 순간 나도 모르게 일어나 그들에게 다가가 조용히 말했습니다. 머리를 화장실에 가서 빗었으면 좋겠다고. 그러자 그들은 내가 한국인임을 알고 깜짝 놀라 동작을 멈추었고, 나는 거기에 덧붙여, 일본에 가거든 여기 식당에서 하듯 하면 안 될 것이니 각별히 조심하기를 부탁한다며 내 자리에 돌아와 앉았습니다.

계산을 끝낸 두 여학생은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한 채 내 곁을 스쳐 지나가며 머리 숙여 인사를 했습니다.“학생들, 내 말을 들어주어 고마워요”라고 했더니 쑥스럽게 웃으며 나갔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부끄러움을 알았던 착한 여학생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일본 공항의 이민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각국 여행자들이 조용히 입국 절차를 마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데 이민관 바로 앞에 서 있던 한국 여성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자기가 있는 앞 자리로 오라고 남편을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아빠 아빠, 이리 와.”남편을 아빠라고 부르는 것도 무지한 일이지만 공중석상에서 계속 고함을 지르는 것은 무례하고 창피한 일이었습니다.

그 때 내 앞에 서 있던 한국여자의 핸드폰 벨이 이민국의 정적을 깼습니다. 그녀는 한국어로 누군가와 떠들기 시작했습니다. 그 날 그 조용한 이민국에서 소리지르고 핸드폰으로 떠드는 사람은 오직 한국여성 두 명이었습니다.

역시 일본의 호텔에서 생긴 일입니다. 오후 늦게 편히 쉬려고 호텔에 돌아와 누웠는데, 웬 남자가 한국말로 욕을 하면서 옆 방의 도어를 꽝꽝 차기 시작하였습니다. 다른 방에 들어 있는 친구와 무슨 일이 생겼는지는 모르지만 한국인만 알 수 있는 온갖 욕을 하면서 호텔 직원이 달려올 때까지 계속 도어를 발로 찼습니다.

아래 글은 호주에서 살면서 신문과 잡지에 기고를 하는 작가의 글입니다.

최근 조사에서 호주인들의 눈에 비친 한국 사람들은 한마디로 ‘비호감 그 자체’ 라니 정말이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주는 것 없이 밉다’는 말처럼 그들에게 우리는 그렇고 그런 존재도 못 된단 말인가. 전국적으로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나라별 호감도를 물은 전화 설문조사에서 한국은 조사대상국 17개국 가운데 ‘비호감 톱 5’에 선정되는 불명예를 얻었다니 하는 말이다. 더구나 우리나라보다 점수가 낮은 국가라야 파키스탄 이란 이라크 정도였다니 밤낮 테러와 인종, 종교 분쟁을 일삼는 회교국들과 비교해도 호주인들의 눈에는 ‘거기서 거기’로 보였다는 뜻이리라.

역사적 배경 탓에 모국으로 인식되고 있는 영국에 대한 무조건적 호감은 차치하고라도 멜라민 파동을 비롯해 갖가지 불량제품으로 ‘국제적 말썽쟁이’로 찍혀버린 중국조차 우리보다는 친근하게 여기고 있다는 점에서 더더구나 자존심이 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어쩌다 이번에 유독 이런 결과가 나왔겠지’ 하고 섣불리 자위할 수도 없는 것이, 2006년 56점에서 올해는 50점으로 호감도 평점이 더 떨어졌다고 하니 할 말이 없을 수밖에. 하물며 이란 이라크 등도 해마다 꾸준히 점수가 올라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한 유독 한국 학부모들은 자식의 성적에만 열의가 있지 학교 행사나 봉사활동에는 좀체 코빼기를 보이는 법이 없고, 아이들의 등ㆍ하교 길에도 같은 한국인끼리만 왁자하게 모여 떠들기 일쑤라는 주변 호주인들의 공통된 핀잔이 언뜻 떠오른다. 지역사회 활동에 대한 관심은 거의 없고 돈벌이에만 급급하다는 타 커뮤니티의 부정적 평가도 새삼 곱씹게 된다. 거기에 한국인 특유의 근면과 성실성에 ‘눈꼴이 시어지면’ 이기적이고 그래서 얄밉다는 생각이 부채질을 받게 되는 게 아닐까 싶다. 게다가 한국과 관련하여서는 매스컴들이 나서서 안 좋은 소식만 골라 보도하는 판이니 미운 털이 박힌 듯 호주땅 한국인들은 이래저래 풀이 죽을 수밖에.

다음 글은 유럽에서 오래 살고 계시는 교민께서 보내온 글입니다.

근대선교의 아버지라 불리는 영국인 Hudson Taylor목사님 말씀, "훈련이 없는 삶은 무의미하다"(Life without training is meaningless). 기본예의조차 없는 우리 한국인들(아이들, 청년들, 어른들, 장로들, 목사들 등등)을 저는 너무 많이 봤고 들었습니다. 오래 전 일입니다만, 너무 어이없고 창피하고 분통이 터질 듯 해서 한국 정부 관계자 몇 분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지요.

"외국에 나오는 사람들은, 유학이든 이민이든 여행이든, 미리 철저한 예의교육을 시켜 그 시험에 합격한 자들만 출국 허용하라. 아니면 어떤 방법으로든 교양수준을 확인하고 내보내라"

삼사십년 전에는 한국에서 출국하기 위해서는 국가에서 행하는 소양교육을 반드시 거쳐야 했습니다. 나도 그 교육을 받고 출국하였습니다. 물론 지금은 그 당시 집중적으로 받았던 반공교육보다는 예절 교육에 더 치중해야 할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또한 한국정부는 국민들이 철저한 예절 교육을 받도록 소양교육을 부활시키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도 사료됩니다.

우리나라는 동방예의지국이었습니다. 인도의 시성 라빈드라나드 타고르는‘코리아를 위한 동방의 등불’이란 시에서 조선을 동방의 등불로까지 조선과 조선의 문화, 조선인의 존엄성과 아름다움을 격찬하였습니다.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 시기에
빛나던 등불의 하나인 코리아
그 등불 한번 다시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니
마음엔 두려움이 없고
머리는 높이 처들린 곳
지식은 자유스럽고
좁다란 담벼락으로 세계가 조각조각 갈라지지 않은 곳
진실의 깊음 속에서 말씀이 솟아나는 곳
끊임없는 노력이 완성을 향해 팔을 벌리는 곳
지성의 맑은 흐름이
굳어진 습관의 모래벌판에 길 잃지 않은 곳
무한히 퍼져나가는 생각과 행동으로
우리들의 마음이 인도되는 곳
그러한 자유의 천당으로
나의 마음의 조국, 코리아여 깨어나소서

대한민국 여권을 소지하고 타국을 향하여 비행기를 타는 순간 그 때부터 우리는 내가 아닙니다. 내 나라의 문을 나서면서부터 내 몸은 나라를 대표합니다.

또 내가 쓰는 말씨의 모양새는 내 나라의 국어를 들려주는 것입니다. 영어로 의사소통을 한다 하여도 나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외교관과 다름없습니다. 외국인들은 그들이 자주 대면할 수 없는 코리아의 외교관으로부터 한국의 인상을 받는 게 아니라 자국을 방문하는 개인들의 언행에서 그 국가의 민도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그러니 우린 싫어도 외교관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타고르는 심지어 조선을 ‘나의 마음의 조국’이라고까지 하며 조선에 대한 그의 사랑을 표현했습니다. 우리는 타고르의 시처럼 부끄러움이 없는 동방예의지국의 한국인들로 돌아갈 수 없을까요?

   



글쓴이 오마리님은 샌프란시스코대학에서 불어, F.I.D.M (Fashion Institute of Design & Merchandising)에서 패션 디자인을 전공한 후 미국에서 The Fashion Works Inc, 국내에서 디자인 스투디오를 경영하는 등 오랫동안 관련업계에 종사해 왔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글쓰기, 그림그리기를 즐겼으며, 현재는 캐나다에 거주하면서 아마추어 사진작가로 많은 곳을 여행하며 특히 구름 찍기를 좋아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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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브로 (119.XXX.XXX.197)
오마리 여사님!
지금 한국에 오셔서 그러면 위험해요.
참으셔요. 꺼꺼 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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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8 19:5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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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타 (81.XXX.XXX.171)
호주에 계시는 작가께서 언급하신 "호주인들의 눈에 비친 한국사람들"에 관해 오마리님께서 인용하신 것을 읽으면서 큰 충격과 슬픔가운데 떠오르는 사실 한가지가 있습니다. 저는 1977년 봄 유럽 어느 아름다운 작은 도시에서 국제 모임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는데, 유색인은 저포함해서 총 3명, 나머지는 모두 여러 나라들로부터의 백인들이었습니다. 저는 이웃나라에서의 다른 모임에 참석하느라 미리 통보했던대로 가장 늦게 도착, 모든 참석자들 앞에서 소개가 되었습니다. 첫모임후 휴식시간이 되자마자 웬 금발의 예쁜 처녀가 달려와 의자에 앉아 있던 저의 양어깨를 힘껏 누르고 흔들어대며 신이 나서 왈, "당신이 참말로 한국인입니까?" "그렇소". "정말이에요?" "아, 정말이라니까!" "나는 호주인입니다" "아, 그러십니까? 그런데, 왜 이렇게 야단이시요?" "제가 유럽에서 몇달간 지내오는 동안 저의 부보님께서 공산권을 제외한 아시아의 모든 나라를 방문하셨지요. 귀국하신후 어머님께서 저에게 긴 편지를 보내셨는데, '이번에 우리가 방문한 모든 나라들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친절한 사람들의 나라는 한국이었다. 우리는 한국을 가장 좋아한단다'라고 말씀하셨어요.그런데 제가 한국인을 처음 만나니 무척 반갑습니다. 부모님께 저도 한국인을 만났다고 써 보내드리렵니다". 아, 그 순간 저는 기분이 얼마나 좋았던지요! 저는 호주에 가본 적 없습니다만, 32년전 그 처녀의 반가워하던 모습을 자주 기억하며 호주를 동경해오고 있지요. 이제 호주인들의 눈에 비친 우리 한국인들의 모습이 그렇게 부정적이라니, 너무나 마음 아프고 부끄럽습니다. 소양교육을 부활시킴이 필요다고 저도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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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27 18: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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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타 (81.XXX.XXX.171)
챨수 엄마의 귀한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참으로 옳은신 말씀입니다. 예절은 학교, 교회, 종교단체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가정에서 가르쳐지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고 또한 당연합니다.
그러나, 이미 가정에서 그런 아름다운 자세의 가르침이 없었거나 부족했거나 부모님의 가르침을 안 받아들이고 성장한 사람들에겐 소양교육과 그외 더 체계적이고 철저한 교육이 있어야 되지 않을까요?! 오마리님의 글에 인용된 "훈련이 없는 삶은 무의미하다"는 말씀과 시성 타고르의 우리 민족을 향한 시가 "소양교육 이대필수과목"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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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27 17: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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챨수 엄마 (173.XXX.XXX.171)
소양교육을 다시하는 서글픈 현실이 실행되기 전에 우리 가정으로부터의 예절을 잘 가르친다면 얼마나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일일까요?
비단 외국 에서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부모에게 어릴적부터 '배려'라는 것을 배우고 자란다면 한국이든 외국이든 우리 민족은 아름다울 수 있을텐데요. 때로는 무서운 부모가 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또한 자식을 다소 무섭게 키웠습니다만,,잘못하지 않았다고 생각되는것이 아이가 크고나니 그것이 습관이 되어 지금은 스스로가 이해를하고 밖에서 칭찬이라도 드고 오는 날이면 오히려 엄마에게 고마와 한답니다.미안해 할줄 알고 오마리님의 충고를 받아들였던 그 학생들만큼 만이라도 생각이 있어 준다면 참으로 긍적적인 일이기도 하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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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25 01:3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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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석 (211.XXX.XXX.129)
오마리 님
'우리는 외교관이야' 공감하며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전남의대 정신과 이무석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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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23 07:3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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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타 (81.XXX.XXX.171)
옳습니다, 소양교육 다시 합시다! 철저한 예절교육을 위한 소양교육과 동시에 초등학교에서부터 가르침과 훈련이 있어야 됩니다. 오마리님의 글이 여러 관련 부서에 반영되도록 몇군데에 연락해 놨습니다. 시성 타고르의 시가 "필수과목"으로 정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오마리님,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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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20 14:3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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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식 (222.XXX.XXX.94)
제가 느낀 우리 나라 사람등의 성향은 이러합니다.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장점 - 머리가 좋다/속도전을 펼친다(스피드, 기습 공격)/싹쓸이 한다(집중력, 초토화)
단점 - 남을 시기하며 잘 되는 것을 못 본다/ 배려하지 않는다/공중도덕과 예의가 없다
그러고 보니 단점은 일맥상통하는 한 가지 말인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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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20 08:4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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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bero (211.XXX.XXX.199)
만약 마리님 제안처럼 소양교육을 따로 못 시키면 타고르의 시라도 꼭 읽어보고 떠나도록 했으면 좋겠네요. 식당서 떠드는 아이에게 주의주면 그 엄마가 왜 아이 기죽이느냐고 덤비는 형편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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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19 10:5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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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시 (211.XXX.XXX.129)
정말 놀라고 무안했겠다. 옆에서 밥 먹는데 벗어 걸었던 외투를 그 자리에서 챙겨 입는 사람도 참 거슬리던데...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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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19 10: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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