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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조건반사
김홍묵 2009년 02월 18일 (수) 00:58:00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장편소설 「신」에는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벼룩의 자기 제한’이라는 신기한 이야기입니다.

벼룩 몇 마리를 어항에 넣는다. 어항의 운두는 벼룩들이 뛰어오를 수 있는 높이보다 조금 낮다. 그 다음에는 어항의 아가리를 유리판으로 막는다. 벼룩들은 톡톡 튀어 올라 유리판에 부딪친다. 그러다가 자꾸 부딪쳐서 아프니까 유리판 바로 밑까지만 올라가도록 도약을 조절한다.

한 시간쯤 지나면 단 한 마리의 벼룩도 유리판에 부딪치지 않는다. 모두가 천장에 닿을락 말락 하는 높이까지만 튀어 오르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유리판을 치워도 벼룩들은 마치 어항이 여전히 막혀 있기라도 한 것처럼 계속 제한된 높이로 튀어 오른다.

러시아 생리학자 파블로프의 조건반사(Conditional reflex)실험과 상통하는 현상입니다. 파블로프는 1900년 경 개의 소화(消化)에 관한 연구를 하였습니다. 개에게 종소리를 들려 준 다음 바로 먹이를 주는 일을 되풀이하였더니 나중에는 종소리만 들려주면 먹이를 주지 않더라도 침을 흘리는 현상을 발견하였습니다.

먹이가 개의 입 속에 들어가면 저절로 침이 분비되는 무조건반사와 구별되는 개념입니다. 경험적 자극에 의한 조건반사는 고등동물이 될수록 형성되기가 쉽습니다. 조건반사가 형성된 뒤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소멸되지만, 첫 번째와 비슷한 자극을 주어도 같은 조건반사를 일으킨다고 합니다.

영장류의 정상에 있다고 자처하는 인간에게도 조건반사가 있을까요? 자연과학과는 거리가 먼 필자로서는 판단할 능력조차 없지만 아마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화롯불 쬐던 사람은 요강만 봐도 쬔다, 며느리 춤추는 꼴 보기 싫어 굿 못 한다, 개(며느리) 꼬라지 미워 낙지(며느리가 못 먹는 것) 산다는 속담도 있으니 말입니다.

속담은 그렇다 치고 요즘 우리 사회에는 심리적 조건반사에 가까운 현상이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무조건 반대, 반사적 공격, 습관성 비방, 묻지 마 살인 같은 일들입니다. 그에 대한 대응도 법에 따른 일벌백계가 아닌 정치적 흥정이 대부분입니다.

국회만 해도 그렇습니다. 폭력국회, 노는 국회라는 비난이 빗발쳐도 상생정치 민생입법은 외면한 채 골프나 치고 외유나 하는 작태입니다. 여론의 뭇매가 사정거리 밖에 있으면 구두선처럼 떠받들던 ‘국민’은 잊어버립니다. 머리가 부딪치지 않을 만큼만 뛰는 벼룩과 흡사합니다.

일곱 명의 여성을 유괴 살해 암매장한 살인마 강호순은 “죄송하다”는 입에 발린 말 외에는 양심의 가책도 없어 보입니다. 젊고 순박해 보이는 여성만 보면 살의가 생기나 봅니다. 반 사회적 정신질환자(Psychopath)라는 진단이 있지만 보통 사람 눈에는 인면수심의 인격파탄자로 보입니다.

경찰은 오래 전부터 내 놓은 자식 취급입니다. 시위 진압을 지휘하던 간부가 흉기에 맞아 실신하고, 부하가 실명되거나 뼈가 부러지고, 옷을 벗긴 채 두드려 맞고, 파출소가 화염병 투척으로 불에 타도 항상 도마뱀 꼬리는 경찰 몫이었습니다. 경찰을 희생양으로 삼으면 정권은 유지된다는 고식책이 공권력 불신으로 고착된 것입니다.

중국 전국시대, 진(秦)의 효공(孝公)은 제(齊)나라 귀족 공손앙(公孫鞅)을 발탁하여 법제와 개혁을 맡겼습니다. 앙은 치안유지를 위하여 엄중한 법령을 만들고, 범죄자는 물론 공범이나 범인을 숨긴 자도 적에 투항한 자와 같은 형을 과했습니다.

군인은 전공에 따라 작위를 주고, 사투(私鬪)를 엄금했습니다. 생산을 장려하는 한편 일을 게을리 하는 자나 불법으로 잇속을 차린 상인도 엄벌했습니다. 태자(太子)가 법을 어겼을 때도 “법에 저촉된 이상 벌을 받아야 한다”며 일반인에 상응하는 형을 집행했습니다.

신법을 시행한지 10년, 진나라에서는 길가에 떨어진 것을 줍는 자가 없고 산에는 도적이 사라졌습니다. 백성은 전장에서 용감하게 싸웠으나 사사로운 쟁송은 피해 어느 나라보다 질서가 잡히고 강국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법과 규범이 지켜지지 않으면 당하는 사람만 억울하고 손해 본다는 생각으로 준법정신이 흐려집니다. 사면과 감형으로 생색은 낼 수 있지만 사회적 형평이 무너집니다. 유전무죄(有錢無罪) 유권불벌(有權不罰)이 다반사가 되면 죄의식을 상실하는 조건반사가 일어납니다. 법과 정의는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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