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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할 데가 없다 -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김이경 2009년 02월 17일 (화) 00:21:36
“우리의 상황은 바로 이렇다. 우리는 우리가 열 수 없는 닫힌 상자 앞에 서 있다.”
-앨버트 아인슈타인

시작부터 암울하다고요? 그러네요, 미안합니다. 하지만 이 마음을 숨기고 짐짓 태연한 척하기가, 싫군요. 새해가 시작된 지 채 두 달도 되지 않았건만 왜 이리 죽음이 많은지요. 하나의 죽음에 꽃을 바치고 갑자기 끝난 그의 삶을 추도하기도 전에 다른 죽음이 쓰나미처럼 덮칩니다. 이게 옳은 일인가요?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가요? 대체 뭐하는 걸까요, 우리?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이라는 소설은 거기서 시작합니다. ‘대체 뭐야’라는 질문 혹은 한숨 말이지요. 책을 펼치면, 엄청나게 수다스러운 열 살짜리 사내애가 등장해선 말도 안 되는 소릴 늘어놓습니다. 일테면 방귀를 뀔 때마다 “난 아니야!”라고 말하는 항문 이야기 같은 거지요.

진지한 독자는 “대체 뭐야?” 하고 상을 찌푸리겠지만 조금만 참고 읽어보세요. 그 수다의 끝에서 2001년 9월 11일 아침 8시 52분, 9시 12분, 9시 31분, 9시 46분, 10시 4분, 마지막으로 10시 22분 27초라는 전화 메시지 기록을 보는 순간, 짜증 섞인 ‘대체 뭐야?’가 아니라 탄식 같은 ‘대체 뭐야…’를 중얼거리며 책 속으로 빠져들게 될 테니까요.

처음, 이 어마어마하게 긴 제목을 봤을 때는 발랄 쾌활한 청춘소설을 생각했습니다. 9.11참사를 다룬, 믿을 수 없을 만큼 가슴 미어지는 소설일 거라곤 꿈에도 상상하지 않았지요. 물론, 우리는 왜 존재하며 왜 존재를 무화(無化)시키는지, 도대체 무엇에 의지해서 존재해야 하는지 같은 엄청나게 심오한 질문이 담겨 있을 거라곤 더더욱 생각한 적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여서 또 한 번 ‘대체 뭐야!’ 했지요.

소설에는 세 명의 ‘나’가 등장합니다. 2001년 그날 아버지를 잃은 오스카, 2차대전 때 드레스덴 폭격으로 가족과 애인과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잃은 오스카의 할아버지, 같은 날들에 가족을 잃고 혼자서 그 모든 부재를 견뎌온 오스카의 할머니. 그 세 사람이 번갈아서 서로 다른 호흡으로, 서로 다른 기억 속의 자기 이야기를 한 것이 이 소설입니다.

세 사람을 잇는 삼각형의 한 가운데는 오스카의 죽은 아버지가 있습니다. 그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들이 저 무(無)의 암흑 속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잡아당기는 인력(引力) 같은 존재이지요. 살아있는 세 사람은 그의 자장(磁場) 안에서 서로의 존재를 느끼고 삶을 다짐합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어처구니없이 잃고서 살아간다는 게, 제대로 산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요.

그래서 할아버지는 말을 잃은 채 왼손에는 예스를 오른손에는 노를 문신한 채 존재하지 않는 듯 살아가고, 할머니는 눈이 안 좋다며 수천 장의 텅 빈 자서전을 쓰면서 부재의 시간을 견딥니다. 그러나 그들의 몸부림에도 불구하고 불행은 세습됩니다. 이제 그들의 손자 오스카마저 같은 고통을 겪습니다.

자신의 “레종 테트르(존재의 이유)”였던 아빠를 잃고 아홉 살 오스카는 지독한 외로움에 시달립니다. 잠 안 오는 밤, 오스카는 끊임없이 발명을 합니다. 휘파람 부는 주전자, 뒷면에서 과자 맛이 나는 우표, 엘리베이터 대신 건물이 오르락내리락하는 빌딩(비행기가 부딪혔을 때 95층에 있는 사람을 땅으로 내려다줄 수 있는!)….

발명의 목록과 함께 또 하나 늘어나는 것은 편지입니다. 오스카는 스티븐 호킹에게, 링고 스타에게, 제인 구달에게, 그 밖의 여러 유명인들에게 편지를 씁니다. 의례적인 답장과 편지가 오가지만 슬픔은 줄어들지 않습니다. 오스카는 그 마음을 “부츠가 점점 무거워진다.”고 표현합니다.

아빠가 죽었는데도 다른 남자와 깔깔대는 엄마 때문에 부츠가 무거워진 날, 오스카는 아빠의 방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우연히 아빠가 남긴 비밀의 열쇠를 발견합니다. 어디에 쓰는 열쇠인지, 누구와 관계된 것인지, 아빠가 왜 그렇게 은밀히 숨겨두었는지… 유일한 단서는 ‘블랙’이라는 이름. 오스카는 비밀을 풀기 위해 뉴욕에 사는 216가구의 블랙 씨를 찾아 긴 “탐사”에 나섭니다.

아빠의 흔적을 더듬고, 아빠를 아는 사람을 만나고, 아빠에 대해 이야기하고, 아빠를 다시 느끼고, 그리고 아빠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 그것이 살아남은 오스카의 유일한 희망이며, 아홉 살 오스카가 찾은 단 하나의 “레종 테트르”입니다. 그래서 오스카는 타고 싶지 않은 지하철을 타고, 오르고 싶지 않은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오르며 아빠의 뒤를 좇습니다.

하지만 450쪽이 넘는 긴 소설이 끝나가도록 오스카는 열쇠에 맞는 자물쇠를 찾지 못하며, 아빠를 기억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합니다. 발명은 계속되고 편지 쓰기도 여전합니다. 오히려 더 늘어나고 잦아지지요. 오스카 자신의 슬픔에 블랙 씨들의 슬픔이 더해져 부츠는 자꾸 무거워지기만 하고, 오스카는 지칩니다. “아빠를 향해 가고 있다는 느낌”도 더는 들지 않던 날, 오스카는 마지막으로 블랙 씨를 만납니다.

그리고 스티븐 호킹의 다섯 번째 답장이 도착합니다. “제가 발명을 멈추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요?”라는 오스카의 질문에 호킹은 늘 그렇듯 짧고 의례적인 답장이 아닌 긴 편지를 보내옵니다.

“나의 영웅인 앨버트 아인슈타인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의 상황은 이렇다. 우리는 우리가 열 수 없는 닫힌 상자 앞에 서 있다.’
광대무변한 우주 대부분이 암흑물질로 구성되어 있다는 얘기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아실 겁니다. 우리가 결코 볼 수도, 들을 수도, 냄새 맡을 수도, 맛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것들이 깨지기 쉬운 균형을 좌우합니다. 그것이 삶 자체를 좌우합니다. 무엇이 진짜일까요? 무엇이 진짜가 아닐까요? 어쩌면 이런 질문은 하지 말아야 할, 옳지 않은 질문일지도 모릅니다. 무엇이 삶을 좌우할까요?
내가 삶이 의지할 수 있는 것을 만들었더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진짜 호킹이 쓴 편지인지, 작가 조너선 사프란 포어가 상상한 호킹의 편지인지 알 수 없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겠지요. 중요한 건 1945년과 2001년이, 드레스덴과 뉴욕이, 군포와 용산과 평촌이, 우주의 기원과 먼지 같은 한 생애가, 모두 믿을 수 없을 만큼 가깝다는 사실입니다. 어쩌면 그것만이 의지할 데 없는 세상에서 유일한 의지인지도 모릅니다.

오스카의 부츠가 순식간에 가벼워지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오스카는 아빠가 없는 세상에서 의지할 데를 찾은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가 믿을 수 없을 만큼 가깝다는 것, 그러니 당신의 상처가 나의 상처라는 것, 그래서 우리가 함께 울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지요.

그리고 또 하나. 소설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열다섯 장의 사진은 우리가 의지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있을 수 없는 일들, 일어나선 안 되는 일들이 더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우리가 무엇에 의지해야 하는지 말해줍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이제 당신이 찾아보시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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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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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석 (211.XXX.XXX.54)
독후감 잘 읽었습니다.
광주에서 이무석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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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17 22:0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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