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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들이 꼭 읽어야 할 칼럼
서재경 2006년 12월 08일 (금) 00:00:00
지난주 이스라엘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대기업의 야곱 부사장이 우리나라를 다녀갔습니다. 서남해안을 헬기로 돌아본 그는 원더풀을 연발했습니다. 지중해보다도 더 아름답고 잠재력이 크다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현지대사관의 강력한 추천이 없었더라면 이 양반이 바람을 잡는 것은 아닌지 오히려 의심할 정도였습니다. 야곱은 섬을 통째로 개발해 국제적 관광단지로 만들겠다고 했습니다.

다음날 야곱과 저는 섬이 속한 도시의 시장과 서울에서 조찬을 나누었습니다. 야곱은 아침은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터키식 관광클럽을 만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사업얘기에 열을 올렸습니다. 조건만 허락하면 3억 달러는 쉽게 투자하겠다는 것이었지요. 그 대신 시청이 땅을 제공해 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땅을 살 생각은 없고 합리적인 가격으로 장기간 빌려주면 사업에 착수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야곱의 설명이 이어지는 동안 시장은 약간 졸린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듣기만 했습니다. 서울까지 먼 길을 달려와서 저러나? 아니면 알아듣기 힘든 이스라엘식 영어 때문에 저런가? 3억달러가 작은 게 아닌데 더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면 안 되나? 지방자치제 이후 시장들이 훌쩍 커버려서 저러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시장과 야곱을 번갈아 보았습니다.

이윽고 야곱의 이야기가 다 끝나자 시장은 그에게 양해를 구하고, 동석한 한국 사람들에게 말을 시작했습니다. 시장으로서는 참으로 안타깝지만 그 섬은 개인들의 소유라서 시청이 땅 문제에 관한한 도와줄 길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전에도 다른 투자자들이 인근의 섬을 둘러보고 비슷한 제안을 해왔는데 땅 문제로 번번이 좌절되고 말았다는 것이었습니다. 토지 소유자 대부분이 외지인이라서 지역발전에 동참하자고 애향심에 호소할 수도 없다고 했습니다.

시장이 여기까지 말하자 모임은 갑자기 파시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양껏 부풀어 올랐던 풍선에서 픽 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습니다. 땅이 없으면 끝이잖아! 야곱이 이스라엘에서 멀리 한국까지 올 필요도 없었고, 헬기로 서남해안을 돌아볼 필요도 없었고, 시장이 먼 길을 달려 서울까지 올 필요도 없었고, 나도 새벽같이 부산떨고 조찬에 나갈 필요도 없었습니다. 모두 필요 없는 짓이었습니다. 땅만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주이스라엘 한국대사관 직원들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모처럼 능력 있는 기업을 섭외하여 한국에 보내놓고 좋은 소식이 날아오기를 잔뜩 기대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해외공관도 투자나 수출에 기여해야 좋은 평가를 받는 시대가 되었거든요.

조찬은 그렇게 끝났습니다. 당장 양해각서(MOU)를 쓰자고 덤비는 야곱을, 땅에 대해 더 알아본 다음에 연락을 하겠노라고 달래는 것으로 모임은 끝이 났습니다. 참석자 모두가 새벽부터 크게 헛발질한 조기축구회 멤버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야곱도 무엇인가 이해가 되지 않는 듯 이상한 표정이었습니다.

돌아오면서 다른 대사관에 이 소식을 급히 알려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야 요다음에라도 헛발질하는 조찬을 면할 테니까. 한국, 참 큰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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