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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운 주름 대처법 -『오래된 숲을 노닐다』
김이경 2009년 02월 03일 (화) 09:09:48
오랜만에 찻잔을 놓고 마주한 남편, 제 얼굴을 은근히 바라보더니 한마디 합니다. “이마에 주름이 장난 아닌데.” 아! 부부는 가급적 -TV가 놓인- 한 방향을 볼 것이며 서로 말을 섞지 말라는 선배들의 말씀을 새겼어야 했거늘, 행여나 하고 기대했던 자신이 한심할 뿐입니다. 간신히 찻잔 날아가는 일은 면했지만 ‘장난 아닌’ 주름이 깊어지는 일까지 피할 수는 없어서, 모처럼의 티타임은 여야회담보다 더 냉랭하게 끝이 났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세수를 하고 거울을 보니, 과연 푹 파인 내 천(川) 자가 집안의 평화를 포기하면서까지 직언을 할 수밖에 없던 남편의 심정을 헤아리게 합니다. 물론 인상이 이리 험악해진 게 오로지 제 탓만은 아니지요. 출근길 서울 한복판에서 국민이 여섯 명이나 죽어도 책임지는 사람 하나 없는 나라에서 살자면, 용 문신이든 내 천 자든 무어고 하나쯤 몸에 새겨야 든든하니까요.

하지만 이러고저러고 해도 기분 좋은 일은 아닙니다. 세상이 험하다고 제 얼굴까지 더불어 망가지게 두는 건 아무래도 억울하고 어리석은 짓 같습니다. “웃으면 복이 온다.”고 믿고, 웃을 일 없는 경황 중에도 웃을 궁리를 한 옛사람들을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웃자, 울고 싶어도 웃자, 하고 집어든 책. 고전학자 류정월이 쓴 『오래된 숲을 노닐다』입니다.

『오래된 숲을 노닐다』는 조선시대 우스개를 통해 그 시대 사람들의 삶과 애환, 풍습과 문화를 그린 보기 드문 책입니다. 이 책을 보면 조선시대 우스개 책이 생각보다 많은 데 새삼 놀라게 됩니다. 서거정의 『태평한화골계전(太平閑話滑稽傳)』, 강희맹의 『촌담해이(村談解頤)』, 송세림의 『어면순(禦眠盾)』을 비롯하여 작자 미상의 『고금소총(古今笑叢)』, 『파수록(破睡錄)』 등 일일이 열거하기가 숨찰 지경입니다.

또한 책을 쓴 사람들의 면면을 봐도 서거정, 강희맹 같은 당대 최고의 벼슬아치부터 성여학(『속(續)어면순』의 저자), 장한종(『어수신화(禦睡新話)』의 저자) 등 한미한 선비와 중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출신의 인물들이 망라되어 있습니다. 그만큼 여러 계층의 많은 이들이 우스개집(集)을 보고 즐겼다는 얘기가 되겠지요.

사람들이 우스개를 즐기는 이유는 여러 가지지만, ‘잠을 막는 방패’라는 뜻의 『어면순』, ‘잠을 깨우는 글’이란 뜻의 『파수록』같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옛사람들이 특히 강조한 것은 잠을 쫓는 효과입니다. 그런데 어떤 우스개가 옛사람들의 잠을 깨웠을까요?

“조운흘이 서해도(지금의 황해도) 관찰사로 있을 때 새벽마다 아미타불을 외웠다. 어느 날 배천 고을에 갔는데 새벽에 일어나니 창 밖에서 조운흘을 외우는 소리가 들렸다. 배천 군수 박희문이 외우는 것이었다. 까닭을 묻자 말했다. ‘관찰사께서 아미타불을 외우는 것은 부처가 되려 함이요, 제가 조운흘을 외우는 것은 관찰사가 되려 함입니다.’”

도서관에서 읽다가 웃음을 터뜨리는 바람에 눈총 깨나 받았습니다만, 오늘날에도 박희문처럼 새벽마다 전 000청장이나 전 000사장의 이름을 외우는 사람이 여럿 있겠구나 생각하면 아무래도 웃음을 참을 수가 없습니다.

조선시대 최고의 재담가라면 ‘농담의 천자(天子)’로 불린 이항복이 대표적입니다. 이 책에도 이항복에 관한 일화가 여럿 실려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 하나는 웃기기는커녕 골치가 아픕니다.

“(기축옥사가 한창이던 선조 때) 몇 개월째 옥사가 이어지자 심문관이 이항복에게 물었다. ‘이 옥사가 언제나 끝날까요?’ ‘쉽게 끝나지 않을 겁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사람이 왜 그러냐고 물었다. 이항복이 답하길, ‘아산 현감이 연법주를 입량진배하니 쉬 끝날 수 있나요?’ 그 말에 온 사람이 배를 잡고 웃었다.”

웃음이 나오셨다면 당신은 ‘고전의 천자’라 자부하실 만합니다. 하지만 저를 포함한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우스개가 아니라 암호문처럼 느낄 터, 저자의 설명이 필요합니다. 그에 따르면, 입량진배(入量進排)란 ‘들어오는 대로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바친다’는 뜻이고, 연법주는 정여립 역모사건에 연루된 승려의 이름입니다.

그러니까 이 우스개는 연법주의 ‘주(主)’와 술 ‘주(酒)’ 자가 동음인 걸 이용해서, 아산 현감이 공명심에 눈이 멀어 이 사람 저 사람을 역적이라고 계속 잡아 올리니 옥사가 끝나겠느냐고 풍자한 겁니다. 역모사건을 빙자해 권력을 잡으려는 이들을 우스개로 비판한 이항복의 유머감각이 놀랍지 않습니까? 이런 우스개를 통해 잠만 쫓은 게 아니라 정신도 번쩍 차렸을 옛사람을 생각하면 새삼 부끄러워집니다.

그런데 이런 우스개들이 어느 시대 누구에게나 똑같이 통하는 건 아닙니다. 저자는 우스개도 정치․경제․성(性)․지역 등 여러 조건의 제한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안 돼요 돼요” 식의 강간을 소재로 한 우스개는 예나 지금이나 단골 메뉴이지만 여성에게는 웃음보다 모욕감을 주기 십상입니다. 남성의 경우 성적 무능력을 소재로 한 우스개에는 극히 일부만이 웃는다는 조사 결과가 있습니다. 그럼, 이런 우스개는 어떨까요?

“어떤 대장이 아내를 몹시 두려워했다. 어느 날 붉은 깃발과 푸른 깃발을 세우고 ‘아내를 두려워하는 자들은 붉은 쪽으로,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푸른 쪽으로 서라’고 명했다. 대부분이 붉은 깃발에 섰는데 한 사람만이 푸른 쪽에 섰다. 대장이 장하게 여기며 ‘어떻게 수양했기에 이렇게 되었는가?’고 묻자 그가 말했다. ‘아내가 늘 사내들은 셋만 모이면 여색을 이야기하니 세 사람이 모인 데는 가지 말라고 해서 가지 않았습니다.’ 대장이 기뻐하며 말했다. ‘아내를 두려워하는 것이 이 늙은이만이 아니구나.’”

이 책에 실린 유일한 공처가 우스개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공처가 우스개가 조선 전기에 집중되고 후기에는 찾아볼 수 없다는 겁니다. 여필종부(女必從夫)가 제도화된 후기에 들어서면 공처가란 우스개로도 상상불가, 언급불가였던 거지요. 그러니 조선 후기 여성들은 이런 우스개가 통용되던 사회를 그리워하고 남성들은 이런 우스개를 기록하며 가슴을 쓸어내렸을 것도 같습니다.

요즘 인기 있는 텔레비전 진행자 중에는 남의 허물을 들추고 남을 공격해서 우스갯거리로 삼는 이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한 코미디언이 지적했듯이, 그 자리의 모든 사람이 함께 웃을 수 없다면 그건 진짜 우스개가 아닙니다. 우스갯소리조차 제대로 하려면 좌우를 돌아보고 다른 이들과 눈높이를 맞추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거지요.

수백 년 전의 우스개를 읽으며 함께 웃을 수 있는 것은 사람 사는 모습이 다른 듯 닮은 까닭입니다. 하물며 같은 시대, 같은 땅에 사는 사람들끼리야 더 말할 게 없겠지요. 그런데도 차이만을 들추어 함께 웃지 못한다면 해학과 풍자의 달인을 선조로 둔 후예로서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부디 오래된 웃음의 숲에서 함께 웃는 지혜를 배우는 한 해가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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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쟁이 (211.XXX.XXX.53)
박희문이 많은 세상, 이항복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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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03 14: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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