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검색어 : 자유칼럼, 에세이
> 연재칼럼 | 방석순 프리즘
     
이별 연습
방석순 2009년 02월 02일 (월) 01:27:41
15년 이상 닦고 훔치며 타고 다니던 자동차를 폐차 처리하려고 나서던 날은 기분이 착잡했습니다. 오래도록 고락을 함께 해온 애마를 처분하는 마음 같았다면 좀 과장이겠지만.

어쨌든 그 차와 함께 방방곡곡 돌아다니던 기억이 새로웠습니다. 신바람 나서 아내와 함께 지리산 중턱 정령치를 넘어 남녘 섬진강변을 돌아 쌍계사 아랫마을까지 찾아가던 일, 금강산 단풍을 보러 강원도 고성을 향해 꼭두새벽 어두운 길을 달리던 일, 십여 년 간 정든 회사에서 ‘황당하게 명퇴’ 당한 직후 울적한 마음을 달래느라 친구와 함께 동해안을 따라 경주까지 돌아오던 일...

엉뚱한 상념 때문이었는지 약속한 사무실로 차를 끌고 나오면서 정작 필요한 차량 족보(등록증)는 그만 집에다 빠뜨리고 말았습니다. 도리 없이 사무실로 찾아온 견인차량을 안내해서 다시 집까지 돌아가야 했습니다.

되돌아가는 길, 견인차 꽁무니에 자동차가 묶이는 순간 저도 몰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무슨 사고 난 것도 아니고, 그냥 내가 직접 운전해 가도 좋을 텐데...’

망연히 서 있자니 다부지게 생긴 젊은 견인차 기사가 얼른 조수석에 오르라고 채근합니다. 그러더니 “이런 차 처음 타 보셨지요” 하고 묻습니다. 언짢은 기색을 눈치 채고 위로의 말이라도 던져야겠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그 기사는 어느 날도 승용차 하나를 견인차에 매달고 폐차장으로 막 떠나려던 참이었답니다. 순간 차주 아주머니가 “잠깐만!” 하더니 차를 붙잡고 왈칵 눈물을 쏟더랍니다.

그와 몇 마디 이야기하는 사이 그래도 마음이 훨씬 누그러졌습니다. 그제야 견인차량 조수석 앞, 흔히 말하는 다시방 위에 나란히 진열된 성모상과 십자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작고 정밀한 조각 7개가 저마다 다른 재질과 형태로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험하고 힘든 일을 하는 사람이 의외로 속정이 깊구나’ 하며 들여다보는데 마지막 7번째 십자가의 뽀오얀 은빛깔이 특히 눈을 자극했습니다.

“이건 순은제 같네요” 했더니 기사는 “글쎄요, 은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그게 특히 기억에 남긴 하네요” 하고 대꾸합니다. 다른 건 모두 폐차 주인이 신경 안 쓰고 버려둔 걸 그냥 두기 안쓰러워 주워왔답니다. 그래서 어느 차에 있었던 건지 이젠 기억조차 못한답니다. 그러나 7번째 은십자가만은 주인과 사별한 물건이었답니다. 불의의 사고현장에서 먼저 세상을 떠난 주인을 잃고 만 것이지요. 아마도 비극의 현장을 목격했을 그 기사에겐 잊고 싶어도 영영 잊히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공연한 질문을 던져서 차 안 공기가 잠시 무거워졌습니다. 찬찬히 보니 운전석 머리 위에도 동그란 원 속에 십자가가 달려 있었습니다. 아마도 기독교인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주위에서도 인형, 십자가, 거북, 부처, 알 수 없는 부적 같은 걸 매달고 다니는 차량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꼭 주인의 안전을 지켜준다는 보장은 없는 것 같습니다. 스스로 안전하게 차를 모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일입니다. 그것만으로 안전이 보장되는 것도 아닙니다. 예측도 못하고 아무런 대비도 없이 당하는 뜻밖의 사고와 재난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 데 생각이 미치자 누구하고든 무엇하고든 떠나도 좋을 준비를 갖춰야겠다, 언제 떠나더라도 뒷자리가 깨끗하도록, 그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평소 책상서랍 속에 감춰둔 갖가지 잡스러운 물건, 기록물, 몰래몰래 들여다보던 춘화도. 덩달아 ‘아름다운 사람은 떠난 자리도 아름답다’는 어느 지하철 공중화장실 문구까지 생각나 실소했습니다.

별난 친구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는 언제 어떻게 일어날지 모를 모든 재난에 철저히 대비하자는 축이었습니다. 하다못해 제주도로 가족나들이를 떠나도 아이들 따로, 안식구 따로, 자기 따로 비행기표를 끊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가족나들이에 그게 무슨 재미냐고 힐난해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제 소신대로였습니다.

그런 그가 매년 한 번씩 유언장을 쓴다는 이야기를 듣고선 그냥 별나기만 한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진작부터 제가 엄두도 못 내고 있는 이별 연습을 실행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견인차에 끌려가는 자동차와 작별을 고하면서 다시 한 번 떠난 자리를 깨끗이 하기 위해서라도 유언장 만드는 연습, 이별 연습은 꼭 필요하겠다 생각했습니다.
   
ⓒ 자유칼럼(http://www.freecolum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칼럼의견쓰기(2개)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tffseoul (61.XXX.XXX.81)
짧은 글 속에 많은 교훈을 담았습니다.
답변달기
2009-02-02 23:36:25
0 0
신 아연 (123.XXX.XXX.28)
그 기사분은 '죽어가는 차'를 보고 나름의 내면을 다듬어 온 것 같습니다. 무생물의 생로병사에도 자기를 돌아보는 계기가 될 수 있나 봅니다. 물론 선생님께서 글로 표현을 잘 하신 거지만요. 저는 장의차 운전자를 통해 그런 모습을 읽을 수 있었거든요. 인간의 극한 슬픔을 날마다 실어나르며 그 분은 도를 닦은 듯 했습니다.. 내가 떠나는 이별, 누군가를 떠나 보내는 이별, 연습은 두 방향으로 필요할 것 같습니다.
답변달기
2009-02-02 06:30:19
0 0

다음에 해당하는 게시물 댓글 등은 회원의 사전 동의 없이 임시게시 중단, 수정, 삭제, 이동 또는 등록 거부 등 관련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운영원칙]

  • 욕설 및 비방, 인신공격으로 불쾌감 및 모욕을 주거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
  •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저작권을 침해하거나 불법정보 유출과 관련된 글
  •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사생활 침해 및 개인정보 유출
  • 공공질서 및 미풍양속에 위반되는 내용을 유포하거나 링크하는 경우
  • 불법복제 또는 해킹을 조장하는 내용
  • 영리 목적의 광고나 사이트 홍보
  • 범죄와 결부된다고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내용
  • 지역감정이나 파벌 조성, 일방적 종교 홍보
  • 기타 관계 법령에 위배된다고 판단되는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