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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이에 새삼 ‘내리사랑’
황경춘 2009년 01월 17일 (토) 01:25:26
자식에 대한 부모의 ‘내리사랑’은 흔히 맹목적이고 무조건이라 합니다. TV에서 또는 우리 주위에서도 볼 수 있는 동물들의 새끼사랑을 보더라도 이 ‘내리사랑’은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조물주의 오묘한 조화라 하겠습니다.

제 모친은 서른이 되던 해에 장남인 저를 낳았습니다. 종갓집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첫 아이인 누님을 낳은 뒤 4 년 동안이나 손 소식이 없었으니 셋째 며느리인 어머니를 특히 사랑하신 조모님은 험한 산길을 헤치고 올라 가야하는 산 속 암자에 불공을 올리러 자주 다니셨다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태기를 가진 어머니는 일본 후쿠오카(福岡)의 탄광회사에서 일 하시던 아버지를 따라 일본으로 건너가셔서 저를 낳았습니다. 이런 연유도 있었던 때문인지 저에 대한 어머니 사랑은 말 그대로 맹목적이었고 두 동생이 생긴 후에도 자식들에 대한 사랑이 지극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요즘 말하는 ‘마마보이’는 결코 아니었습니다. 어머니는 여필종부(女必從夫)하고 가정을 위해 헌신하는 고전적 유교사회의 여인이란 그런 의미에서 자식들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아버지는 교육열은 대단하였지만 바쁜 직장일과 출장으로 집을 비우는 시간이 많아 대신 집안일은 거의 어머니가 도맡아 하셨고 나의 공부는 학교교육을 못 받으신 어머니 대신 주로 다섯 살 위의 누님이 맡아 했습니다.

이런 어머님이 저로 인해 크게 상심하고 남부끄러운 줄 모르고 눈물을 흘리신 적이 두 번 있었습니다. 이 두 번의 사건이 어머님에 대한 제 생각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어머님 눈물 흘리는 모습을 처음 본 것은 제가 아홉 살의 어린 나이에 돌연 부모와 헤어져 그때까지 다니던 일본인 소학교에서 외가가 있는 먼 한국 시골의 보통학교로 전학을 하게 된 때 일입니다.

생각지도 않았던 이 갑작스러운 이별은 출발 며칠 전에 제게 전달된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충격적인 결정에 얽힌 자세한 이야기는 그 뒤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았습니다. 다만 민족차별문제가 배후에 있었던 것 같다고 새해 아흔한 살이 된 누님이 얼마 전 옛날이야기를 하던 도중에 말한 적이 있었을 뿐입니다.

저는 일곱 살에 일본인 소학교에 입학하여 공부도 잘 했고 한때 부급장을 할 정도로 학교생활에도 잘 적응하여 친구도 많았습니다. 전학은 3학년에 올라갈 봄방학 때 일이었습니다. 그때까지 외가가 있는 경남 남해 섬에는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고 모두가 낯선 사람 뿐인 곳이었습니다.

마침내 집을 나서는 날, 이 일로 며칠 동안 울고도 눈물이 마르지 않은 어머니의 손을 뿌리치고 저는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가까운 기차역으로 걸어갔습니다. 그때 저는 다가올 새로운 생활에 대한 두려움보다 모처럼 아버지와 함께 기차 타고 낯선 곳으로 여행 간다는 들뜬 기분만이 앞섰습니다.

그로부터 3 년 반 동안, 저는 아버지가 일본 생활을 청산하고 온 식구가 완전 귀국할 때까지 외가에서 외로운 나날을 보내며, 한글을 모르기 때문에 다시 1학년부터 보통학교를 다녔습니다.

두 번째로 제가 어머니 눈물을 본 것은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나 제가 일본 군대에 징집되었을 때 일입니다. 2차대전 말기 패색이 짙어가자 다급해진 일제는 조선인 동포도 군에 강제 징집할 수 있는 법을 제정하였습니다. 1924년생인 저는 제1기 입대자에 해당되어 일본에서의 학업을 중단하고 신체검사를 마치고 집에서 소집장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붉은 종이의 공문으로 당시 ‘아카가미’(赤紙) 또는 흔히 ‘저승사자 쪽지’라고 불리던 그 징병영장은 공교롭게도 음력 정월 대보름날에 전달되었습니다. 내용을 짐작한 어머님은 단박 그 자리에 주저앉아 “이를 어쩌나 이를 어쩌나”하시며 앉은 채로 방을 빙빙 돌며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내는 것이었습니다.

일주일 뒤 서울 용산으로 출발하는 날은 마침 제 생일이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일이 이렇게 겹쳐 어머니의 슬픔은 한층 더 했습니다. 10여 년 간격을 두고 두 번 이렇게 비탄에 잠기는 어머니를 보고 나는 만일 살아서 돌아오기만 하면 다시는 어머니가 눈물을 흘릴 일이 없도록 효도를 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전쟁이 끝나 무사히 귀가한 저를 보고 가족 중에서도 어머님이 특히 기뻐하신 것은 두말할 나위 없으며 이젠 집에서 편한 밥 먹으며 학교나 면소에 취직하여 헤어지지 말고 살자고까지 말했습니다.

어머니의 그 간절한 소원을 거역하고 제가 부산에 일자리를 구해 떠날 때의 부모님의 표정, 특히 한 번도 서운한 마음을 풀지 않은 어머니에게 저는 그 후 평생 정신적으로 빚진 심정을 가졌었습니다. 몇 해 후 저에게 미국유학의 기회가 왔을 때 최종적으로 제 결심을 번복케 한 것은 그렇게 아들과 같이 살기를 갈망하는 부모를 전란으로 어수선한 고국에 홀로 남기고 외국으로 떠난다는 것이 장남의 도리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는 심적 부담이었습니다.

환도 후 ‘50년대 후반에 어렵게 내집을 마련하자마자 저는 부모님을 서울로 모셨습니다. 그리고 밤낮없이 바쁜 직장생활이었지만 돌아가실 때까지 한집에서 부모님을 모시는 행복감에 젖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명절이나 기제사 때 또는 가족 모임이 있을 때마다 돌아가신 분에 대한 여러 가지 불효(不孝)했던 일이 떠올라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부모의 ‘내리사랑’을 자녀들은 충분히 보답하지 못하고 그 아쉬움을 자기 아이들에게 ‘내리사랑’으로 풀어 자기만족을 취하고 나르시시즘에 빠진다고 생각됩니다. 효는 무엇보다 부모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그러나 세태의 변천에 따라 가치판단의 차이에서 오는 부모와의 크고 작은 의견 차이는 이를 피할 길이 없습니다.

그것보다 더 심각한 것은 자녀들과 같이 간 유원지에서 버림받는 부모, 그리고 정신질환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정신병원에 갇혀 사는 멀쩡한 노인들도 있으며 그중 어느 누구도 자녀들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고 가나안농군학교 김평일 교장은 말했습니다.

산업사회의 도입이 빨랐던 서양에 비해 동양 그 중에서도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이 부모의 ‘내리사랑’을 바탕으로 한 효(孝)사상이 가족제도와 사회질서의 기반이 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사회의 급속한 변화에 따른 전통적 가족제도의 붕괴로 이 아름다운 전통이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큰 걱정입니다. 
   




  -일본 주오(中央)대 법과 중퇴
-주한 미국 대사관 신문과 번역사, 과장
-AP통신 서울지국 특파원, 지국장
-TIME 서울지국 기자
-Fortune 등 미국 잡지 프리 랜서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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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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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실 (211.XXX.XXX.129)
어머님의 위대한 사랑이 위대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좋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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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20 18:27:46
0 0
이종완 (121.XXX.XXX.16)
황경춘 선생님
선생님의 "이 나이에 내리 사랑"을 잘 읽었습니다. 저도 어머니의 사랑을 많이 받으며 자랐습니다. 이 세상에 가장 숭고한 사랑은 어머니의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사랑을 희랍어로 agape 라고 하지요. 황 선생님이 일제 말기에 학도병으로 끌려 가셨다가 어떻게 살아 돌아오셨는지 알고 싶습니다. 물론 사경을 여러번 넘은 기가 막힌 얘기겠지요. 저도 한국 동란 중 의용군에 끌려갔었으나 유엔군의 진격으로 쉬 풀려 난 후 통역으로 미군부대에서 일하던 중 어느 미군의 오발 사고로 오른 팔에 중상을 입어 평생을 불편하게 살고 있습니다. 59년에 미국 유학해 거기서 아들 넷을 기르며 40년을 살고 은퇴한 후 연변 과기대 영어 교수로 봉사한지 십년이 넘었습니다. Freecolumn 에 글을 올리고 싶으나 방법을 모릅니다. 새해에 더 많은 축복 받으세요.이종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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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17 14:23:58
0 0
김창식 (222.XXX.XXX.22)
고 이청준님의 단편 '눈 길'이 생각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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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17 14:04:50
0 0
김동화 (121.XXX.XXX.16)
어머님은 늘 위대 하신고 생각하면 늘 가슴이 메지지요.
감사합니다.
답변달기
2009-01-17 11:18:17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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