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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떠난 친구에게
방석순 2008년 12월 15일 (월) 07:59:47
세영이, 참으로 오랜만에 자네에게 메일을 띄우네.

마침 늦은 저녁을 먹으며 TV 뉴스를 보느라 정신이 다소 산란할 때 자네 집사람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었다네. 요즘 귀가 조금 나빠졌는지 아들아이 핀잔을 들으면서도 자꾸만 볼륨을 높여 더군다나 전화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어. 그렇지만 핸드폰 LCD 창엔 분명 자네 집사람 이름이 찍혀 있었지.

반가운 마음에 “그동안 잘 지냈어요?” 어쩌구 하나마나한 인사말을 건네는데 자네 집사람은 17일 아침에 성당에 오시려면 오시라는 거야. 얼떨결에 “예? 언제요? 무슨 일이죠? 가만, 제가 수첩 좀 보구요.” 그러는데 집사람 얘기가 바로 자네 1주기라는 거야.

잠시 머리가 띵 해져서 수습하기 어려운 가운데 어찌나 민망하고 부끄럽던지. 다이어리의 12월 17일 네모 칸 아랫단에 깨알만한 빨간 글씨로 ‘07 오세영 떠난 날’이라고 쓰인 걸 확인하고서야 주저앉아 탄식을 했다네.

벌써 그렇게 되었군. 자네 떠난 지가.

그럼 내가 자네 장례 치르고 돌아와 통곡하던 것도 새빨간 거짓이었던가. 아, 나는 겨우 세상을 이 따위로 살아가는 인간이던가. 나의 무심한 전화소리에 자네 집사람은 또 얼마나 서운했을까.

“바쁘시면 안 오셔도 되구요. 인사는 드려야할 것 같아서. 그날 ‘밴댕이들’도 다 오시거든요.”

“저기~ 제가 그날 회의가 있는 날이긴 한데, 사정보아 가도록 할게요. 어쨌거나 일 있을 때 가든 못 가든 연락은 꼭 주세요. 네-!”
이건 또 얼마나 철면피한 소리인가.

세영이. 인간은 저희 부모 파묻어 놓고서도 뒤돌아서서 허겁지겁 빈속을 채우는 참으로 얼빠진 동물이라더니. 자넬 그렇게 보내고 애통해 한 것도 아주 잠시, 아마도 난 무슨 사치스러운 몽상이라도 즐기듯 틈틈이 자넬 떠올리며 감상에 젖었었는지도 모르겠네.

“거 봐. 뒤돌아서면 새까맣게 까먹고서들 잘 사는데, 불쌍한 사람. 당신 생각해 주는 이가 몇이나 될라구.”
자네 집사람의 아쉬운 푸념이 지금 내 귀에 쟁쟁하네.

자넬 보내던 그날 집사람의 그 담담한 표정을 보며 한편 놀랍고 한편 대견하고, 참으로 착잡한 기분이었지. 가장 먼저 쥐어준 삽에 흙을 담아 뿌리며 이렇게 말하더군.
“여보, 아무 걱정하지 말고 잘 가요. 가서 편안히 잘 쉬어요.”

원앙지계(鴛鴦之契)의 깊이를 누가 감히 가늠이나 하겠나. 평생 살을 맞대고 살다보면 느낌으로 아는 것. 필시 자네 집사람은 자네가 마지막 전쟁을 벌이던 그때 벌써 마음으로 이별을 대비하고 있었던 것 같아. 공연한 기대로 자넬 들볶아서도, 또 자신의 마음을 허공에 매달아서도 안 되겠다는 다짐을 했는지도.

자네의 듬직한 아들들, 성당에 모였던 그 많은 신도들, 캠퍼스에 모여든 그 많은 제자들, 장지까지 따라간 그 많은 친구들로 인해 자네도 집사람도 결코 외롭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오히려 우리를 위로해 주더군.

이따금 모임이 끝난 후 모두가 헤어져갈 때 조용히 맥주집으로 자리를 옮겨 한 잔 두 잔 나누던 호프 생각이 난다네. 자네의 그 잔잔하면서도 유머러스한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몰랐었지. 그저 그렇게 잔을 부딪치는 것만으로도 흡족했어. 내가 자넬 알고 자네가 날 안 다음에야 서로가 더 물을 것도 답할 것도, 더 줄 것도 받을 것도 없었으니.

아마도 우리 집사람까지 내세워 가며 이것저것 몸에 좋은 거라고 자네에게 성화를 부리던 것도 어쩌면 그런 즐거움을 잃고 싶지 않았던 내 욕심이었는지 몰라.

자네가 뒷산 가파른 언덕에 올라서서 “내가 이겼노라!”고 고함지를 때 난 정말 자네가 개선장군처럼 돌아와 줄 것으로 철석같이 믿었었네. 자네의 그 거칠고 차가웠던 손도 발도 반드시 따뜻한 온기와 윤기를 되찾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었네.

그런데도 기어이 자네가 먼 길을 떠나던 그날 자네를 아끼고 사랑하던 사람들 가운데 누군들 그러지 않았으랴만 속절없이 자네를 보낸 슬픔에, 부질없이 자네를 부추겨 들볶아댔다는 회한에 둑이 터지듯 울음보가 터지고 말았네.

다시 자네가 떠난 그날을 맞으며 생각해 본다네. 사람은 죽어서 무엇을 남기는가. 대학교수였던 자네라면 강의록 수십 권? 더미를 이룬 책? 학회지에 올린 다수의 논문?

아니, 난 자네가 가족들에게, 친구들에게 남긴 마지막 선물은 늘 온화했던 자네의 미소처럼 따뜻한 사랑일 거라고 믿고 있네. 가족을 가족으로, 친구를 친구로 묶어준 단단한 사랑. ‘밴댕이들’처럼 학교 울타리를 벗어나서도 친구가 가족이 되고 가족이 친구가 되는 끈끈한 사랑. 그 2세들에게까지 번져 모교 교정에서 합동 수연을 베풀게 한 전염성 강한 사랑.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자네를 생각하고 자네 가족을 생각하고 덤으로 우리 자신을 생각하고.

“너희 재물을 땅에 쌓지 말고 하늘나라에 쌓으라”는 성구(聖句)가 생각나네. 이 세상에 두고 가야할 것은 사랑, 사랑을 남기고 간 사람은 행복한 사람일세. 허명이나 재물을 두고 간 어떤 사람보다 더 성공적인 삶을 산 사람일세. 그러니 세영이, 자네도 무척 행복하고 성공한 사람이야. 어느 시인처럼 자네가 이 세상 소풍 마치고 귀천한 후에도 변함없이 내가 이렇게 자네를 친구로 가졌던 복을 누리고 있으니.

* ‘밴댕이들’은 같은 학교를 졸업한 남편들이 나이 들수록 감정의 기복이 심해지는 걸 경계해 그 부인네들이 붙여준 별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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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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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 (24.XXX.XXX.49)
벌써 그분의 일주기가 되셨군요. 갑자기 제 머리가 잠시 숙여집니다. 그리고 먹먹해집니다. 아직도 살아 잇는 사람도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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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15 10:2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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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아연 (123.XXX.XXX.28)
돌아가신 제 오빠가 생각납니다. 마흔 다섯 살에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제가 그 나이를 지나고보니, 그 때 오빠는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심정으로 삶을 정리했을까 자문하게 됩니다. 제가 그 나이가 되었는데도 하나도 오래 살았다는 생각도 안들고, 세상에 대해서도 이렇게 뭘 모르겠는데, 어떻게 훌훌 떠날 수 있었을까 싶습니다.

요즘 들어 한가지 정리가 되는 건, 아무려면 죽는 순간, 돈을 좀 더 벌어둘걸, 공부를 좀 더 할걸, 이러기야 할까 싶은 겁니다. 좀 더 너그럽고, 따스할 걸,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더 베풀 수 있었고 사랑할 수 있었는데, 하는 회한이 들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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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15 09:4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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