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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치코트와 배우들(2)
김창식 2008년 12월 13일 (토) 00:40:44
헐리우드의 미남 배우 계보는 무성 영화 시대의 루돌프 발렌티노부터 시작하여 타이론 파워-게리 쿠퍼-로버트 테일러-록 허드슨-로버트 레드포드를 거쳐 탐 크루즈로 이어집니다. 여기에 프랑스 배우이긴 하지만 알랭 들롱을 빼 놓을 수 없겠지요.

그중에서 특히 빛나는 인물은 로버트 테일러(Robert Taylor, 1911~1969)입니다. 선이 굵으면서도 부드러우며 조각 같은 외모인데, 영화 전문가들과 일반 대중 모두 그를 고전적인 의미에 있어서 사상 최고의 미남 배우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갈매기 눈썹, 오똑한 코, 회색빛이 감도는 푸른 눈, 희고 고른 치아, 단단한 체격 등 어디하나 흠잡을 구석이 없습니다. 약간 처진 듯한 윗입술 끝이 웃을 때면 활처럼 휘어 올라가 달콤하기 그지없습니다.

우리나라에 알려진 그의 출연작은 ‘춘희(Camille, 1936)' '애수(Waterloo Bridge, 1940)' 쿼바디스(Quo vadis, 1951)’ '흑기사(Ivanhoe, 1952)' 등이 있습니다. 주로 멜로물과 사극에서 활약하며 큰 인기를 누렸습니다만 그 흔한(?) 아카데미상도 받지 못 하였으며, 영화사에 걸작으로 칭송되는 작품도 없는 불운한 배우이기도 합니다.

대표작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당대의 최고 스타 비비안 리(Vivien Leigh)와 함께 출연한 '애수'입니다. 안개 낀 워털루 다리 위에서 마스코트를 매만지며 회상에 잠기는 신으로 시작되는 비련의 멜로물인데, 이 영화에서 그는 트렌치코트를 입은 장교로 출연하며 세기의 연인이 되었지요.

사실 그는 군복을 입은 모습뿐만 아니라 사극, 현대물, 전쟁영화, 서부영화를 막론하고 어떤 영화에서든 모든 의상이 다 잘 어울렸는데, 그만한 배우는 앞으로도 없을 것입니다. 올드 팬들의 기억에 남아있는 서부영화 ‘고스트 타운의 결투(The Law And Jake Wade, 1958)에서는 위아래 검정 일색인 옷을 입고 나오는데, 리차드 위드마크에게 시종 끌려 다니는 역할이어서 답답했지만, 스타일은 역시 멋스러웠습니다.

또 한명의 미남스타인 스튜어트 그랜저와 함께 나오는 해양활극영화인 ‘형제는 용감하였다(All The Brothers Were Valiant, 1953)’ 를 보면 그가 얼마나 카리스마 넘치는 미남스타인지 진가를 알 수 있습니다. 로버트 테일러가 윤이 나는 흑요석 같았다면 스튜어트 그랜저는 채석장의 화강암 같았다고 하면 지나친 비유일까요. 아무튼 이 영화에서 로버트 테일러의 매력이 스튜어트 그랜저를 압도합니다. 그 멋있는 스튜어트 그랜저를.

그는 또 다른 대표작인 쿼바디스에서 로마제국의 군단장으로 출연, 강인하고 절제된 매력을 보여 주었는데, 함께 출연한 데보라 카의 청순한 아름다움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데보라 카도 일세를 풍미한 배우였었는데, 고귀함을 타고난 이 여배우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지 못하여 안타깝습니다. 후보에는 여섯 번이나 올랐지만 고작 말년에 아카데미 공로상을 받는 데 그쳤지요.

우리나라 여성 팬들의 심금을 울렸던 3대 영화로는 이 영화 '애수'를 비롯하여 전 회에서 소개한 ‘카사블랑카’와 콧수염이 멋있는 로날드 콜맨, 꿈꾸는 듯한 눈빛의 그리아 가슨이 출연한 ‘마음의 행로(Random Harvest, 1942)' 입니다. '마음의 행로'는 제1차 세계대전 직후를 배경으로 기억상실증에 걸린 남자와 그를 보살피는 헌신적인 여인의 사랑의 역정을 그린 영화인데, 그러고 보니 3편 모두 전란을 배경으로 한 비련의 영화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마음의 행로'는 우여곡절 끝에 해피엔딩으로 끝나기는 하지만 그때까지의 과정이 만만치 않았어요.

참, '애수'에서 비비안 리와 로버트 테일러가 무도회에서 춤출 때 깔리는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의 애잔한 선율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 선율이 두 사람의 파국을 암시하기도 하지요.

한때 일본 사무라이 영화의 영웅 미후네 토시로(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에 출연하여 세계적인 명성을 얻음)가 동양의 로버트 테일러로 거론되기도 했습니다만 그의 짙은 눈썹과 강단 있는 외모는 로버트 테일러보단 오히려 ‘혈(血)과 사(沙)’에 나오는 타이론 파워를 닮은 듯합니다.
   




  김창식님은 독어독문학을 전공, 대학시절 교내 단편문학상을 수상했고 독일어로 쓴 소설, 논문집을 발간하기도 했습니다. 항공회사 프랑크푸르트 지점장을 역임했으며 지금도 문학도의 꿈을 놓지 않고 수필, 칼럼을 집필하고 있습니다.
음악, 영화, 문학 등 다방면에 걸친 관심과 일상생활에서 얻는 철학적 주제에 대한 남다른 관점을 감성적인 문체로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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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9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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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호 (115.XXX.XXX.22)
트렌치코트(바바리?)와 배우들 3편 잘 읽었습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몇 십년 거슬러 올라간
느낌입니다. 적지않은 나이이실데도 어쩌면 기억력이 이렇게 출중하신지...젋었을때 영화관다니며 즐거웠던 기억을 나게해준 김 작가님께 감사드리며, 월간<한국수필> 신인상 수상을
다시한번 진심으로 축하드리고, 앞으로도 계속 왕성한 활동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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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30 15:30:47
0 0
samchung ph. (211.XXX.XXX.160)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글 속에서 따스함을 느낍니다.또 어떤 칼럼이 쓰여지려나 자꾸 기다려집니다.추운 날 건강 조심하면서 정진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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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25 22:11:39
0 0
KBSung From New York (71.XXX.XXX.203)
오랜만에 몇십년전의 팔팔했던 그 시절로 되돌아간 느낌입니다.
마치 어렸을 때, 함박눈이 소복히 내린 추운 겨울 밤, 외갓집에서 화톳불에 고구마 구워서
얼음이 사그락 씹히는 동치미와 맛있게 먹던 추억이 그리운 것 처럼, 김창식 선배님의 글에서 그런 아련한 추억들을 봅니다.
앞으로도 우리의 추억의 창고에 켜켜이 쌓여 있는 아름답고 소중한 수 많은 얘기들을 선배님께서 하나씩 꺼내어 멋진 솜씨로 되살려주실 것이라 생각되니 기대가 큽니다.
이런 정감어린 이야기들은 서로 마주 앉아 밤새 나눠도 좋은데 ... 지구 정반대인 뉴욕에
살다보니 아쉽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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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24 06:15:19
0 0
느림보 (168.XXX.XXX.131)
무거운 눈꺼풀을 매만지면서 형님의 글을 읽었습니다......문학이면 문학, 음악이면 음악
영화이면 영화, 작업이면 작업 등등 그무엇보다도 더 귀하고 소중한 것은 인간 김창식형님으로써 뵙는 것이며,,,,앞으로도 기운내시고 홧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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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17 12:37:45
0 0
김성락 (168.XXX.XXX.225)
칼럼들은 빼 놓지 않고 늘 읽고 있습니다.
이제 막 불혹의 나이에 든 저로서는 소시적에 봤던 영화들인데, 내용은 명확히
생각나지 않지만 영화제목, 배우들 이름은 굉장히 낯 익습니다. 그때에도 그배우 참 멋있다! 라고 생각했었는데 칼럼을 읽노라니 그때의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앞으로 좋은글 많이 많이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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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16 18: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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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협 (121.XXX.XXX.15)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 영화와 배우들 입니다
프랑스 영화가 한때는 우리나라에서도 명성을 날리던때가 있던것 같읍니다
날씨가 궂을때 생각나는 프랑스 영화가 한편 생각납니다
쉘브르의 우산인가요 그때 카트리느 드느브의 젊을때 모습도 기억이 납니다
또 마지막 장면 우산들로 도배가 되다시피한 마지막 장면이 아련히 기억 납니다
오랜추억의 기억을 떠오르게 해주신 김창식 칼럼님의 글은 언제나 새롭읍니다
또 얼마전에 상받으신것 다시한번 축하 드립니다
앞으로 좋은글 많이 More 부탁부탁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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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15 13:0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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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옥 (210.XXX.XXX.19)
비비안리의 *애수* 를 보면서 막 질문하고 싶던 영화 *마음의 행로*의 남자 주인공도 혹시??? 하다가 뒤에 계속된 글로 시원하게 궁금증을 풀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지금의 퇴계로 어디였던가 시청각교실 이란 곳에서 주옥 같은 명화를 토요일마다 봤는데 출연 배우는 제대로 다 알지도 못했습니다.
그래도 온통 마음을 흔들던 영화들이 제게 주었던 아름다운 정서는 지금 제가 살아가는 힘이 아닌가 합니다.
로버트 테일러, 그리아 가슨,등 흑백으로 기억되는 배우들은 언제나 흐릿하지만 애틋하게 제 가장 빛나던 시절을 추억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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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14 23:4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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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ethoven (121.XXX.XXX.159)
누구나 하나쯤 소중하게 갖고 있을 '비밀의 화원'에 초대받아, 향기로운 꽃들을 둘러 본 느낌입니다. 아련한 추억, 아름다웠던 느낌을,서로 공유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김창식님에게 감사드립니다.
오늘 갑자기 트렌치 코트를 입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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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14 17: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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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rby (24.XXX.XXX.49)
그 다리 위에 서서 애수를 떠 올렸던 적이 있습니다. 아름답고 가슴아픈 영화로 오래 남아있는 영화이지요.. 마음의 행로도 기억에 남는 영화입니다. 낭만이 있고 재미있는 글 감사하며 계속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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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13 13:0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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