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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반
임철순 2008년 12월 08일 (월) 00:14:10
대입 수능시험을 끝낸 고3 학생들에게 뭔가 좋은 말을 해 달라는 청탁을 받고, 지난 주 모교에 다녀왔습니다. 좀 망설이다가 응낙을 해 놓고도 걱정이 많았습니다. 그 아이들은 졸업 회수로 따져 39년이나 차이가 나는데, 삶의 큰 고비를 맞은 10대들의 그 소중한 시간에 무슨 말을 해 주어야 좋을지 잘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나는 마이크 앞에만 서면 자꾸 작아져서, 열 개를 생각하고도 반도 다 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고 글을 써 가지고 가서 읽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에에라, 모르겠다. 내가 그 아이들 만할 때 무슨 짓을 하고 살았으며 무슨 생각을 했는지 되는대로 이야기하자. 이렇게 마음 먹고 연단에 올라가 제목도 없고 두서도 없는 이야기를 1시간 남짓 했습니다.

강당에 모여 앉은 학생들은 200명 남짓 했는데, 과연 짐작대로 주의가 산만했습니다. 떠들지는 않았지만 잠을 자거나 옆 친구와 장난을 하거나 딴 짓을 하는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 나이에 안 그러면 오히려 이상한 것 아니겠습니까? 내 말을 경청하게 만들 만한 재간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그러거나 말거나 내버려 두고 내 이야기를 했습니다.

①사람은 누구나 콤플렉스가 있다. 내 경우 그것은 수학이다. 나는 수학 때문에 망한 사람이다. 지금도 미분과 적분을 구분하지 못한다. 수학을 못하더라도 이렇게 나처럼은 되는 수도 있으니 수학을 아주 못하는 학생이 있다면 너무 실망하지 말고 살아라. 수학 때문에 망한 경험을 글로 썼더니 나처럼 수학 때문에 고생했던 사람들이 바로 자기 이야기라면서 좋아하더라.

②여러분 만할 때 나에게는 죽도록 싫은 게 세 가지가 있었다. 말하는 것, (음식을) 씹는 것, 걷는 것. 이 세 가지가 나는 정말 싫었고, 특히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동작인 씹는 행위에 대해서는 혐오감이 심했다. 남들과 잘 어울리지 않았던 나는 장차 무슨 대단한 소설가나 시인이 될지 모른다는 착각 속에서 뭔가 끄적거리고, 수업시간에는 공상이나 하면서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③그러나 나는 이런 나를 고치려고 많이 애를 썼다. 비사교적이고 남을 전혀 배려할 줄 모르고 신경질과 짜증이 심했던 나는 李箱(이상)처럼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게 아닐까 스스로 걱정스러웠다. 그래서 선생님이든 누구든 다른 사람들을 모델로 삼아 그 말투와 몸짓을 모방하는 행동연습을 통해 나를 변화시키려 했다. 신문기자가 된 것도 결국은 그런 시도였다고 할 수 있다. 잘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나는 지금 이렇게 됐다.

대충 그런 줄거리였습니다. 학생들의 진로에 관해 말할 때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The road not taken(가지 않은 길)>도 인용하고, 문예반 반장으로 활동한 경험도 말해 주고, 나는 고 3때 예비고사를 치른 날 저녁부터 뒤늦게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는 싱거운 소리도 하면서 이 소중한 시간에 무엇이든 한 가지를 정해서 해 보라고 권했습니다. 강연을 끝내고 난 뒤 문예반 반장이 다가와 나에게 인사를 했고, 한 학생은 신문사 논설위원이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묻기도 했습니다.

모교 방문을 끝내고 돌아와 생각해 보니 사실 나에게는 고3 때보다 더 중요한 졸업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대학교 4학년 때, 그러니까 1973년입니다. 누구는 “내가 정말 알아야 할 것은 유치원에서 다 배웠다”지만, 돌이켜 보면 나의 모든 것은 1973년 그 한 해에 다 들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리 봐도 글이나 생각이나 그 때로부터 크게 성장한 것 같지 않습니다.

1973년 그 무렵, 특히 2학기에는 거의 하루에 한 끼, 그러니까 하숙집 도시락만 먹고 살았습니다. 시꺼멓고 비쩍 말라 그야말로 ‘본질’만 남은 채로 대단한 예술적 재능이나 있는 것처럼 ‘예술가가 될 것인가, 시민이 될 것인가’ 이런 고민을 제 멋대로 했습니다. 결국 나는 시민이 되기로 했지만, 하숙방에 엎드려 되지도 않은 글을 끄적거리거나 하숙집 뒤의 산에 올라 건너편 아파트의 불이 하나 둘 꺼지는 것을 지켜보던 밤이 참 많았습니다.

그 해에 나는 처음으로 신사복을 입어 봤고 넥타이 매는 법을 혼자 낑낑거리며 터득했습니다. 교생 실습을 나가 처음으로 많은 학생들을 가르쳐 봤으며 신문사 입사시험을 치렀습니다. 영어사전도 없이 대충 살면서 학교 시험기간에도 남들이 보는 앞에서는 공부를 하지 않았습니다. 술주정도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그 해에 나는 사랑을 잃었습니다. 그런 모든 것이 한 해에 이루어졌습니다. 지금도 필요한 것은 그 때에서 찾으면 됩니다. 1973년은 나의 포털 검색사전입니다.

그렇게 35년 전을 생각하던 어느 날 계간 <시인세계> 겨울호를 읽었습니다. 등단한 지 50년이 넘은 77세 이상의 노시인 10명을 앙케이트한 ‘시인들의 노년, 노년의 시와 삶’이 실려 있었습니다. 그 분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으며 원로시인들에게 늙는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알아보려는 기획이었습니다. 그들의 근작 시를 곁들인 특집의 기획자는 “원로시인들은 어쩌면 한결같이 이토록 겸허할까”라며 “단언컨대, 시가 시인을 만드는 것 같다. 인간은 시를 만들고, 시는 인간을 만든다. 그것이 시의 위엄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김광림의 <바위>. 너에게 걸터앉으면/탐나는 것/부러운 게 없어져//벼슬자리/꽃자리/내갈겨 둔 채//듬뿍/술 한 잔 들이켜고/너마냥/잠들고 싶어져//. 그리고 김윤성의 <개화(開花)>. 나는 꽃 피는 순간의 그 현장을/한 번도 본 적이 없다/그러나 기다리다 보면/어느 새 꽃은/활짝 피어 있었다/항상 뒤늦게, 어김없이 피어 있었다/어디서 갑자기 나타난 듯/어디서 많이 본 듯/낯익은 모습으로 피어 있었다/위성에서 찍은 지구의 사진처럼/모든 이의 것이면서/그 누구의 것도 아닌 것이/버젓이 우리들 눈 앞에 펼쳐져 있었다. 이 두 가지였습니다.

삶의 졸업반인 그들의 시와 말을 읽으면서, 끊임없이 발전과 성숙을 거듭해온 그들을 보면서 내 삶의 졸업반 모습이 어떤 것일지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사람과 삶은 늘 증ㆍ개축하고 뜯어 고치고 리메이크해야 할 건물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날 학생들에게도 이미 말했지만, 나의 졸업반 시절을 다시 생각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어 고맙습니다. 언제나 졸업에는 많은 준비와 궁리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눈이 휘날리며 내려 쌓이는 2008년 세밑의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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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9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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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익 (211.XXX.XXX.129)
2008-12-19 03:30:57
자네는 시인이 아니라고 하겠지만, 이런 글이 바로 시라고 할 수 없겠는지. 짧고 긴 것을 고사하고... 잘 읽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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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19 11: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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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211.XXX.XXX.129)
하마마쓰님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반가워해 주셔서 저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한희주 김영권님, 그리고 여기에 의견을 올려 주신 모든 분께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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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10 14:3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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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식 (222.XXX.XXX.125)
정말 1973년은 제게도 뜻깊은 한 해 였습니다. 휴학 그리고 군대 갔다온 후 복학하여 1973년 대학 졸업반이었는데 임 주필님과 비슷한 고민을 했었습니다. 이상과 누추한 현실의 괴리, 관능과 지성의 충돌,예술성과 내재된 소시민성의 갈등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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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10 12:4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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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권 (211.XXX.XXX.129)
사람은 대부분 다 비슷한 생각과 생활을 하는것 같습니다. 1973년은 나에겐 고교졸업반이었습니다. 선생님처럼 수학때문에 다른 괘적의 삶을 살고 있는...고맙습니다. 당신의 진솔한 속 내음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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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10 09:4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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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섭 (211.XXX.XXX.129)
항상 타인의 삶을 통해 자신의 오늘을 반추 하는 것은 아픈 일인 것 같습니다. 타인의 삶이 나와 별반 다른 것이 없을 때 그 사람은 이렇게 극복했는데 난 어떻게 했는가를 반추하면 나의 부끄러운 면이 드러나는 것 같아 아프다는 것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계속 화이팅하십시요. 신정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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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09 09:4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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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주 (58.XXX.XXX.196)
임철순 선생님의 글이 배달되는 날은 제게 잔칫날입니다.
1973년,선생님께서 선택하신 시민의 길은 이 황량한 세상에 한 줄기 청량한 바람을 선사하시게 하기 위한 섭리자의 축원이지 싶습니다.
선생님의 글을 접할 수 있게 된 善緣에 감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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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08 15: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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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길순 (211.XXX.XXX.129)
세밑에, 정말 따뜻한 글이었습니다. 어서 돌아가 흩날리는 눈 속에서 술 한잔 함께 하고 싶군요. 건강하세요. 아직 베이징에서 채길순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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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08 14:4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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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범구 (211.XXX.XXX.129)
쓰시는 글 늘 남다른 느낌으로 읽고 있습니다만 오늘 글은 특히 그렇습니다. 적어도 오늘 하루 동안은 이 느낌을 곱씹어보게 될 것 같습니다. 오늘 글을 읽으면서는 언제 정말 소주 한잔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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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08 14:3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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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 (211.XXX.XXX.129)
수학 못한 것, 임 주필께서는 저보다 나은 편 같습니다. 서울 가면 꼭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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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08 14:3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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