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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치코트와 배우들(1)
김창식 2008년 11월 29일 (토) 08:51:09
가을이 깊어 갑니다. 나무들은 이제 떨어뜨릴 잎도 남지 않은 듯합니다. 계절마다 상징적으로 떠오르는 패션 아이템들이 있는데, 이 계절에 남성미를 제대로 표현해 주는 품목은 개버딘 소재의 트렌치코트(Trenchcoat)가 아닐는지요? 코트 깃을 반쯤 올리고 포도(鋪道) 한 쪽에 비껴 서서 라이터를 ‘자작거려’ 담뱃불을 붙이는 남자의 뒷모습은 멋스럽습니다.

트렌치코트는 원래 참호에서 입는 군복에서 유래하였는데 (보통 우리가 부르는 ‘바바리'는 메이커이자 브랜드 이름), 트렌치코트 입은 모습이 ‘그림’이 되려면 어느 정도 체격이 받쳐주어야 하지만, 그보다는 분위기가 있어야 합니다. 꼭 조각 같은 미남이 아니더라도.

트렌치코트가 어울리는 배우 0순위, 트렌치코트의 지존은 험프리 보가트(Humphrey Bogart,1899~1957)입니다. 크지 않은 키(170cm 초반)이지만 나름대로 균형이 잡혀 있고, 음영 짙은 분위기가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이 배우 만큼 도회의 비정한 느와르 물에 적격이었던 배우는 없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무표정하고, 거칠고, 음울하지만, 센티멘털하고 가슴 속에 한 가닥 선의(善意)를 숨기고 있는 듯한 인간상이지요. 꾸밈도 없으며 희생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쇳소리가 섞인 메마른 목소리도 마음을 헤집습니다. 중절모를 비껴쓰고 담배를 문 모습도 멋있었어요.

그가 출연한 많은 영화들 중 손꼽는 영화는 ‘말타의 매(Malthese Falcon, 1941)' '아프리카의 여왕(Queeen Of Africa, 1951)' '카사블랑카(Casablanca, 1942)’ 등입니다. 말타의 매는 그가 출연한 최초의 메가 히트 영화였으며, 아프리카의 여왕은 그에게 오스카상을 안겨 주었습니다. 그러나 가장 유명한 영화는 역시 잉그리드 버그만과 함께 출연한 카사블랑카일 것입니다.

2차 세계대전 중 북아프리카 모로코를 배경으로 사랑의 엇갈림과 희생을 감각적으로 표현한 흑백 멜로물이었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인 짙은 안개 낀 공항에서의 애절한 이별장면(실제는 워너브라더스 영화사에서 세트 촬영하였음)은 아직도 회자되는 명장면으로 이 영화의 백미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잉그리드 버그만은 투피스에 챙 넓은 모자를, 험프리 보가트는 트렌치코트에 중절모를 쓴 모습이었습니다. 릭(험프리 보가트)은 아직도 자신을 사랑하는 일자(잉그릿 버그만)와 그녀의 남편을 위해 비행기 표를 마련하여 떠나보냅니다. 그때 릭은 일자의 눈을 보며 “당신의 눈에 건배를(Here's Looking At You, Kid)."이라고 읊조립니다. 이 대사는 영화 전편을 통하여 세 번 나오는 데, 어느 외국 기관의 조사에서 ‘영화사상 가장 멋있는 대사 1위’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이 영화, 이 장면, 이 대사로 험프리 보가트는 당당 트렌치코트가 어울리는 배우 1위에 랭크되는 것입니다.

이 영화의 주제 음악은 잘 알려진 재즈 풍의 노래 “As Times Go By" 입니다. 저도 혼동 한 적이 있기에 혹시나 하는 생각에 말씀드리면, 롤링 스톤즈의 믹 재거가 작곡하고 마리안느 페이스풀이 부른 록 발라드 ”As Time Goes By"와는 곡명이 매우 비슷할 뿐, 전혀 다른 노래입니다. 이곡 역시 회고조의 좋은 노래이기는 합니다만. 또한, 험프리 보가트가 입은 트렌치코트는 ‘버버리(Burberry's)’로 한동안 잘못 알려졌었는데, 사실은 ‘아쿠아스큐텀(Aquascutum)’ 제품 이었다고 합니다.

험프리 보가트와 가까웠던 여인들 중 가장 중요한 인물은 ‘소유와 무소유(To Have And Have Not, 1944)'에서 함께 출연하여 부부가 되었던 전설적 여배우인 로렌 바콜(Lauren Bacall, 1924~)입니다. 그녀는 아직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는데, 한창때 ‘눈을 내리 깔았다 치껴뜨면 무대의 커튼 자락이 흔들렸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그만큼 눈빛이 강력하고 매력적이었으며 ‘포스’가 있다는 비유일 것입니다.

저도 이 글을 쓰느라 험프리 보가트를 회상하며 최근에야 착안한 것이지만 깜짝 놀란 점이 있습니다. 동양권에 그를 빼 닮은 배우가 있다는 것에 생각이 미친 것입니다. 그는 바로 홍콩 느와르의 일인자 ‘양조위’입니다. 크지 않은 체격, 눈빛, 가무잡잡한 피부, 결코 미남이 아닌 얼굴(다른 미남 배우들과 비교하여), 진정성과 굳은 심지를 숨긴 무표정함 등에서 두 사람이 많이 닮았습니다.
   




  김창식님은 독어독문학을 전공, 대학시절 교내 단편문학상을 수상했고 독일어로 쓴 소설, 논문집을 발간하기도 했습니다. 항공회사 프랑크푸르트 지점장을 역임했으며 지금도 문학도의 꿈을 놓지 않고 수필, 칼럼을 집필하고 있습니다.
음악, 영화, 문학 등 다방면에 걸친 관심과 일상생활에서 얻는 철학적 주제에 대한 남다른 관점을 감성적인 문체로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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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8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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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길자 (211.XXX.XXX.129)
좋은코너의 말씀들..추천해 주심에 감사^^
앞,뒤,옆,,어디를 돌아봐도 음악관련의 사람들만 접하던 생활패턴에서 포럼을 통해 다양한 분야의 전문인들을 뵙게됨이 저희들에겐 또다른 배움이란 생각이드네요^^
일전 뜻밖의 뮤지컬공연..다시한번 감사드리며.. 따뜻한 하루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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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05 13: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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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식 (222.XXX.XXX.125)
색.계는 팬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있었던 영화였습니다. 그의 매력은 이전 영화들-화양연화, 중경삼림, 해피투게더, 동사서독, 무간도-등에서 더 빛나는 것 같아요. 최근 적벽대전도 있었지만.홍콩 느와르 물 전성기때 여러 배우들이 각축하였었는데, 어느새 양조위가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었어요. 고독하며 음울한 '반영웅'인데 덧 씌어진 무심함에 살짝살짝 내비치는 진정성이 그의 매력 포인트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제게 다가온(그러니까 다시 발견한) 또 한 명의 배우는 장국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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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02 09:4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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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협 (121.XXX.XXX.15)
안녕하세요 김창식 칼럼님 오늘도 우리를 즐겁게 해주는 글을 올려 주셨네요.
이글을 읽다보니 어느덧 성큼 겨울이 다가온 느낌이 진하게 느껴집니다.
여기에 겨울비마져 내린다면 더더욱더 분위기가 깊어지지요.
이런 모습을 상상해봐도 되는지 모르겠네요.
한남성이 겨울비가 내리는 다리위에서 연인을 기다리며 우수에 빠져 담배를 한모금
피우며 서있는 모습을 그리며 상상의 나래를 펴봅니다.
하늘엔 가스등이 켜있고 이거 너무 과거로 흘러 갔나봅니다.
암튼 운치있는 장면들이 그려집니다.
아득한 과거의 기억도 떠오르고요 함튼 김창식 칼럼님 덕분에 옛일이
떠오릅니다. 암무튼 계속 좋은글 기대하겠읍니다
글쓰는 오눌의 분위기도 그런것 같읍니다.
쌀쌀한 날씨에 몸조심 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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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01 16: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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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식 (222.XXX.XXX.125)
맞습니다. 그들이 바로 그들입니다.'연' 다방엔 남국의 빌라처럼 칸막이 대신 곳곳에 '발' 이 쳐저있었지요. 헌데 꽃들은 어디로 갔으며, 그후 수상한 그들은 연 다방을 나와 또 어디로 갔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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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01 09:3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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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옥 (210.XXX.XXX.158)
제가 66학번 이니까 당연히 67년도는 온세상이 절 위해 있었지요
다동 부근 연다방에 가면 주변의 남자대학생들이 *대추*를 권하면서 먹으면 늙지않는다고..
대추 아니라도 전 늘 젊으리라 여겼지요.
사십대 중반에 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친구랑 그 때 그 대추를 건네주던 학생들 보러 연다방엘 갔습니다.
그 곳에는 우리 처럼 늙수구레한 몇몇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만 실망했지요.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니 바로 그들이 그들인 듯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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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30 17:4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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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bby&John Gray (210.XXX.XXX.253)
아마 저 보다는 약간 훗날 분이신 듯 하고..ㅎ 그래도 훈목,본전,갈채는 아련히...청춘시절 전 아주 고지식하고 정석에 따라 살며 문학,음악 모두 고전만 읽고 즐긴다는 규범을 마음대로 정해 놓았었기 때문에 르네상스,필하모니,크로이체르에서 주로 죽쳤습니다. 진작 모두 사라졌는데 아래 두분이 기억하는 찻집이 아직도 남아 있다니...부럽습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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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30 16: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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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식 (222.XXX.XXX.125)
김윤옥님,
험프리 다방이 아직 건재 하다니 반갑습니다. 좋은 다방이 참 많았지요.
가화, 훈목, 설파, 심지, 양지, 본전, 연, 타임, 해남, 갈채, 숙녀, 야지, 로당의 집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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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30 12:4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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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옥 (210.XXX.XXX.62)
실제론 비가오는 날은 아니지만 비가 온다고 상상하며 이 글을 읽으면 문득 트렌치코트를 입었을 김창식님이 상상됩니다.
키는 양조위만 하실까? 표정도 그렇게 무뚝뚝..... 하지만 양조위는 차갑고 뜨겁더이다.
험프리 보가트 시절의 우리 허리우드 키드들에겐 유난히 그리워 할게 참 많은 것 같습니다.그 그리움이 우리를 지켜주는 유일한 힘이기도 하고요.
용산역 건너편 육교밑에 *험프리*라는 이름의 허름한 다방이 아직까지 있는데 그 시절을 그대로 간직함직하게 메뉴판에는 <비어, 호프.커피> 라 써있습니다. 맘이 맞는 사람과 한 번쯤 들어가봐야지.... 맘 먹은지 오래나 아직 지나치며 보고만 있습니다.
내 맘이 움직이기 전에 사라질지도 모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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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29 22:5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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