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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고 있는 사람에게 - 「띠탄공원」
김이경 2008년 11월 25일 (화) 01:44:28
원래 쓰려고 작정한 글은 이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공원에서 본 장면 때문에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부슬부슬 비가 오는 오후였습니다. 젖은 낙엽들을 밟으며 만추의 정취를 흠뻑 느끼는데 어디선가 새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참 처량 맞은 울음소리라고 보이지도 않는 새를 타박하려다 알았습니다. 새 울음이 아니라 사람의 울음소리구나. 제 앞에서 풍경이 되어 걷던 여인이 나무 아래 선 채로 참았던 슬픔을 토해내고 있었습니다.

예순을 넘긴 듯한 여인은 낯선 이의 기척에도 울음을 그치지 못한 채 등을 보이고 흐느낍니다. 시커먼 우산도, 굵어지는 빗방울도 그녀의 설움을 감춰주지 못해 떨리는 어깨가 다 보입니다. 그 어깨를 감싸줄 수 없는 저는, 그저 모른 척 걸음을 옮길 뿐이었습니다. 그것이 제가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위로라 믿었지만 마음은 내내 무겁기만 했습니다.

이순의 나이에 공원 한 귀퉁이에서 남의 시선을 받아가며 울음을 터뜨릴 때는 그만한 사연이 있었을 겁니다. 그 사연을 안다 해서 지독한 그 슬픔까지 나눌 수 있는 건 아니겠지요. 그런데도 오지랖 넓은 저는 자꾸 그 슬픔을 위로하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그녀에게 「띠탄공원」을 읽어주었으면 좋으련만, 그러면 슬픔에 고독까지 더하는 일은 없었을 텐데… 소용없는 후회만 커집니다.

“15년 전 어느 오후, 나는 휠체어를 굴리며 이곳에 들어섰다. 공원은 실의낙백한 젊은이를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해두고 있었다.… 이곳은 한 세계에서 도피할 수 있는 또 다른 세계였기에.”

작가 스티에성(史鐵生)이 4백년이나 된 띠탄공원을 찾은 것은, 스물의 나이에 하반신불수라는 불행을 겪으면서입니다. 실의와 원망에 사로잡힌 그는 매일 아침 집을 나서 공원을 찾았습니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하나뿐인 아들이 죽음을 떠올리며 홀로 공원으로 숨어드는 것을 말없이 배웅했습니다.

“그렇지만 어머니는 한번도 ‘내 생각도 좀 해다오’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으셨다. 나 또한 단 한번도 어머니를 염두에 둔 적이 없었다. 그때 어머니의 아들은 너무나 젊었으며… 운명의 일격에 정신이 혼미해져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불행한 사람이라고 여길 뿐, 아들의 불행이 어머니에게로 이르면 그 몇 배라는 사실은 미처 몰랐다.”

오랜 방황 끝에 스티에성이 문학에서 희망을 발견하고 마침내 소설로 상까지 받았을 때, 그의 어머니는 이미 세상을 뜬 뒤였습니다. 그는 다시 분노와 회한에 가득 차 띠탄공원을 찾습니다. 그리고 늙은 측백나무 아래서, 무너진 담장 가에서 되뇝니다. “어머니는 이제 더 이상 이곳으로 나를 찾으러 오실 수 없구나!”

스티에성의 수필 「띠탄공원」(중국 현대수필집『하늘가 바다끝』에 수록)은, 지극한 슬픔의 끝에서 터져 나온 아름다운 절창을 보여줍니다. 조금 길지만 그 한 대목을 인용합니다.

“봄은 와병의 시절이다. 그게 아니라면 사람들은 봄의 잔인함과 갈망을 쉽게 깨닫지 못할 것이다. 여름, 연인들은 마땅히 이 계절에 실연해야 한다. 아니라면 사랑에게 미안할 것이다. 가을은 타향에서 화분을 하나 사서 집으로 돌아가는 시절이다. 오래 떠나 있던 집으로 그 꽃을 가져가 창문을 활짝 열어 햇빛이 집안 가득하도록 한 다음, 하나하나 추억을 더듬어가며 곰팡이 슨 물건들을 천천히 정리하는 것이다. 겨울은 화로와 책과 더불어 한 차례 또 한 차례 굳고 굳은 결심을 되풀이하며 부치지 못할 편지를 쓰는 것이다.”

15년 동안 오래된 공원을 헤매며 자신의 불행을 곱씹고 자신보다 더한 타인의 불행을 목도한 뒤 스티에성은 깨닫습니다. 병을 앓고 사랑을 잃고 그런 뒤에 남은 계절을 스스로 감당하는 것이 사람살이라는 것을. 쓸쓸한 깨달음이지요. 하지만 그는 체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욕망이 슬픔을 부른다 해서 그 욕망을 지울 수는 없다고, 긴 울음 끝에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그리고 자신은 인생을 달관하는 대신 욕망을 살겠다고 작정합니다. 잃어버릴 사랑인 줄 알아도 사랑하고 부치지 못할 편지인 줄 알아도 쓰겠다고, 그게 삶에 대한 사람의 도리라고 스스로에게 거듭 다짐합니다.

세상에서 한 발 비껴선 공원에조차 슬픔은 있습니다. 잎 진 겨울나무처럼 서러운 일이지요. 허나, 서로의 쓸쓸함을 넌지시 짐작하는 마음이 있고 울기에 좋은 자리가 있으니 슬프면 또 어떠랴 싶습니다. 우는 게 힘들어 삶을 저버리는 것보다야 엉엉 울면서라도 끝까지 살아내는 게 기특한 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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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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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도 (211.XXX.XXX.45)
글을 읽고 존경심이 생겼습니다.

가끔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서, 감동을 받곤 하지만, 이순의 나이에 공원의 나무를 붙잡고 우는 여인을 그냥 지나치지 않으시고, 큰 의미를 부여하시는 그 따스한 심성에 잔잔한 감동을 받습니다.

이래서 세상은 살 맛이 납니다.
선생님은 이 세상을 살 맛이 나도록 해 주시는 분입니다

존경스럽습니다. 2008,11,25일 밤에

전주에서, 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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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26 22:3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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옵저버 (211.XXX.XXX.45)
말씀하신 대로 울기 좋은 계절입니다. 그러나 자신에겐 커보이는 불행이 누군가의 고통 앞에선 엄살이 불과하다는 걸 인식하고 나면 울음을 아끼게 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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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26 10:15:08
0 0
다비 (24.XXX.XXX.49)
안톤 슈낙의 글처럼 슬픔이 흐르는 글입니다. 울수 있는 숲이라도 있다면 숲으로 달려가야지요..옷을 벗어버린 나무 숲에 오늘 처럼 흰눈이 쌓여도 울수만 있는 숲이 거기에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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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25 05:4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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